개벽문화 북콘서트

동학혁명 발발의 배경과 전개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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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 1년 전에는 전봉준의 아버지 전창혁이라는 분이 고부古阜 군수 조병갑趙秉甲에게 끌려갔어요. 조병갑은 백성을 수탈하는 전형적인 모델 같은 인물이었는데 조대비趙大妃의 권세를 믿고서 탐욕을 부렸어요. 조병갑이 전봉준 장군 아버지를 때려서 장독杖毒으로 돌아가시게 했습니다.

 

그래서 너무 억울하니까 이 원한을 좀 끌러보자 하고 자기 이름을 서명해서 사발통문沙鉢通文을 돌렸습니다. 1894년 1월, 3월, 9월에 갑오년 동학혁명이 전개되기 시작했는데, 고부에서 농민들이 봉기蜂起하여 고부를 점거하고 3월에 무장茂長에서 기포起包해서 동학혁명으로 실제 발화가 된 것입니다.

 

 3월 25일 날 본진을 백산으로 옮겼는데, 흰옷 입은 사람들이 죽창 하나씩 가지고 있었으니 ‘앉으면 죽산竹山, 서면 백산白山’이라는 유명한 말이 생겼어요

 

.그러고서 4월 7일 황토현黃土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4월 27일 전주성에 입성했습니다. 그런데 잘못하면 전쟁이 터진다는 근심 때문에 5월 7일에 전주화약全州和約을 체결하고 동학 농민군이 일단 해체를 했습니다.

 

그러나 6월에 청나라 군이 들어오고 7월에 일본군이 경복궁을 습격하여 접수하고, 이어서 청일전쟁淸日戰爭(1894∼1895)이 터졌어요. 동학은 경상도 경주에서 선언된 근대 역사, 진정한 새 역사의 개벽의 도인데 실제적인 개혁의 몸부림, 갑오동학혁명은 전라도에서 고부를 중심으로 폭발했습니다.

 

김개남金開南(1853∼1895) 장군은 남원에서 쭉 올라와서 청주성으로 가려고 했어요. 당시 우리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동학혁명의 전쟁터에 직접 가셔서 “이 길은 너희들의 죽음의 길이니 가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이 말씀을 들은 인물들은 다 살았어요. 김개남 장군 부대에 조선에서 키가 가장 큰 안필성安弼成(1870~1961)이라는 인물이 있었어요. 청주 솔밭에서 상제님을 만나서 “필성아, 가지 마라. 가면 너는 이번에 죽는다.”(道典 1:58:7)라는 상제님 말씀을 듣고 목숨을 건졌어요. 안필성은 나중에 ‘하느님의 친구 도수’를 받았습니다.

 

지금 공주, 부여로 넘어가는 우금치牛禁峙에서 전투가 있었습니다. 농민군이 너무 배고프고 지쳐서 “장군님, 오늘 하루는 여기서 그냥 쉬게 해 주옵소서.” 하고 퍼져서 쉬다가 계곡에 매복하고 있던 조선군과 일본 특수부대에게 대패를 당했어요. 일본군은 미국에서 직수입한 대포라든지 빛이 번쩍번쩍하는 캐틀릭 기관총을 가지고 제일 먼저 조선의 농민군을 사살하는 무기로 썼어요. 그때 금강이 몇 달 피로 물들었다고 하는데 우금치에 그 기념탑이 있습니다.

 

이렇게 무참하게 무너지고 김개남, 손화중孫華仲(1861∼1895) 장군도 연속으로 패배를 당했습니다. 11월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하고, 13일 날 청주에서 김개남 장군이 무너지고 또 17일 날 강경에서 경군京軍과 전투를 벌여 또 패배했어요. 태인 전투에서 진 전봉준 장군은 12월 2일 날 순창 피노리避老里, 노론老論 사람들이 거기 와서 살아서 피노리라 그러는데, 거기서 관군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제가 한 20년 전에 피노리를 답사했는데, 거기서 조금 올라가 보면 김개남 장군 후손이 사는 집도 있습니다. 그 땅 이름 유래가 과거 KBS 역사스페셜에서 방영된 적이 있어요.

 

“개남아, 개남아, 그 많은 군사 어디다 두고 짚둥우리가 웬 말이냐.”라는 말이 전해 오는데, 김개남 장군은 끌려가서 12월 초순경에 왕 대못에 박혀서 처형되었어요. 동학군은 일본군에게 아주 참혹하게 죽어갔습니다. 몸에 기름을 뿌려서 불 놓아서 죽여 버리고, 시퍼런 칼날로 몇 명을 세워놓고 단칼에 수평으로 목을 쳐서 죽이니까 그 목이 팔짝팔짝 뛰었다고 그러잖아요.

 

동학혁명이 이렇게 무참하게 무너졌지만, 실제 조선 민중들은 앞으로 5만 년 운수를 받는다고 하는 새 희망의 불을 가슴 속에 지폈습니다. 이 운동은 작게는 동북아의 역사 질서를 판가름 짓는 청일전쟁, 나아가서 10년 후에 러일전쟁(1904∼1905)으로 이어졌습니다. 조선은 비록 패망 당했지만, 지구촌 역사의 질서를 동북아의 역사 대전쟁을 향해서 나아가게 하여, 개벽의 역사를 여는 변혁의 역사 대세를 이끌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갑오동학혁명은 지구촌 민중들에게 자유와 평등과 새 역사에 대한 열망, 그 희망을 불붙인 위대한 민중 봉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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