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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인간으로 오신 상제님 (주미라)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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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절 인간으로 오신 상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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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 탄강지

 

상제님께서는 최수운 대성사가 세상을 떠난 지 8년 만인 1871년 음력 9월 19일, 양력 11월 1일 자시子時에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지금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에서 탄강하셨다. 고부는 곡부曲阜라 불리던 곳으로 당시에는 전주 다음으로 큰 고장이었으며, 1894년 갑오 동학혁명東學革命의 발상지이기도 했다.

상제님이 탄강하신 객망리는 일명 ‘손바래기’라 불리는 곳으로, 객망리는 하늘의 주主를 기다리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상제님의 존성은 인류 최고最古의 성인 진주 강씨晉州姜氏이고, 성휘聖諱는 ‘한 일一 자, 순박할 순淳 자’, 아명兒名은 ‘학鶴 자 봉鳳 자’요, 자는 ‘사士 자 옥玉 자’요, 도호는 시루 증甑에 뫼 산山으로 ‘증산’이다.
증산이란 도호는 설익은 선천 문화를 익혀서 성숙成熟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소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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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은 어린 시절부터 영기靈氣가 넘치고 혜명하셔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동神童, 영아靈兒로 불리며 공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호생好生의 덕이 많아 화초나 나무를 즐겨 심어 가꾸고 미물 곤충이라도 해치지 않았으며, 위기에 빠진 생명을 보면 힘써 구하셨다.

또한 뛰어난 영성靈性을 지니셨는데, 6세 되시던 해 풍물굿을 보시고 문득 혜각慧覺이 열렸다고 한다. 풍물風物은 ‘신을 부르는 악기’라는 뜻으로 춤과 놀이를 통해 가슴속에 맺힌 것을 풀고 신명을 내는 신교 문화의 제의祭儀에서 시작되었다. 상제님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무량無量하고 호연浩然한 기개를 지니고 있었고, 글공부를 하실 때는 언제나 장원을 하셨다.

14세 때 훗날 수석 성도가 되는 김형렬金亨烈을 정읍 불출암佛出庵에서 만나셨고, 이후 가세가 어려워져 사방을 주유하며 만고풍상萬古風霜을 다 겪으셨다. 이렇듯 당시 설움 받는 민중의 삶을 사신 것은 후천 가을개벽기에 가난으로 고통과 억압을 받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주시고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상제님의 이런 모습을 바라볼 때면, 우리는 인류의 새날을 여는 개척의 여정을 걸으며 온갖 고난과 시련을 감내하는 역사 속 인간 하느님의 삶을 순결한 마음으로 절감할 수 있다. 구도자가 걸어가야 할 험난한 삶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면 마음속 깊이 숙연한 감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청년 시절

 

20대 청년 시절, 상제님께서는 시루산에 올라 글을 읽으시고 사색과 명상에 잠기곤 하셨다. 당시 상제님의 풍모에 대해 『도전道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증산께서 장성하시매 얼굴은 금산 미륵불과 흡사하시고, 눈은 일월의 밝음과 같으시고, 음성은 맑은 천둥소리 같으시고, 몸가짐은 정대正大하시고, 도량度量은 관대하시고, 동정動靜이 정중鄭重하시고, 언론言論이 활달하시고, 지감知鑑이 신령하시고, 기상氣像이 웅장하시니라. (도전道典 1:35:10)


 

*증산 상제님께서는 어용御容이 금산金山 미륵불彌勒佛과 흡사하시어 용안龍顔이 백옥처럼 희고 두루 원만하시며 양미간에 불표佛表의 큰 점이 있고 천안天眼은 샛별과 같이 반짝이시니라. 또 목소리는 인경처럼 맑고 크시며 왼 손바닥에 ‘북방 임壬’ 자와 오른 손바닥에 ‘별 무戊’ 자 무늬가 있고, 등에는 붉은 점으로 뚜렷하게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으며 발바닥에는 열세 개의 점이 선명하니라. 머리카락은 유난히 검고 윤이 나며 턱과 양 귀밑에 용수龍鬚가 고아하게 나 있는데 평소에는 말려 있어 잘 보이지 않으나 세수하실 때면 양 귀밑으로 흘러 펼쳐지니라. 용안과 의표는 상하좌우가 두루 원만圓滿하시어 전후가 반듯하게 균형을 이루시고 머리부터 허리까지 마치 기둥을 세운 듯 반듯하시고 목은 절대 굽는 법이 없으시니 그 기상이 의연하시며, 걸어가시는 모습은 더할 수 없이 우아하시니라. (도전道典 3:320:1~7)


 

동학혁명의 발발과 상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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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은 20대 청년 시절 #동학혁명東學革命#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셨다. 동학혁명은 농민전쟁이면서 종교적인 요소가 자리하고 있다. 창도주 최수운 대신사가 밝힌 동학의 궁극적 이상은 ‘시천주 조화정’에서 알 수 있듯이 상제님의 강세와 상제님 무극대도의 출현으로 실현된다.

동학의 주제는 선천에서 후천으로 시명時命을 바꾸는 것으로, 인류사의 생장 과정을 마치고 성숙과 통일로 들어서는 후천 가을 대개벽을 맞이하여 천지에서 인간과 신명의 씨종자를 추리는 ‘서신사명西神司命’(4:152:2)의 길을 여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혁명에 참가한 사람 가운데 이런 동학의 사명과 그 실현 과정을 아는 자가 없었다. 한마디로 때가 너무 일렀던 것이다.

그래서 상제님은 친히 현장을 쫓아다니시며 역사의 대세를 깨우쳐 주셨다. 싸움터에 친히 가셔서 대세를 살피시고, 때로는 삼매에 드시어 천하대세의 결말을 가늠해 보셨다. 결국 대도의 차원에서 새 세상을 열지 못한 채 상극적 방법으로 일어난 동학혁명은 사회를 개혁하는 수준에 그치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동학혁명은 조선의 낡은 체제를 개혁하여 악습을 혁파하는 갑오개혁(1894~1896)과, 청일전쟁(1894~1895)을 불러일으켜 세계를 격동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동학혁명은 당시 한중일韓中日의 세력 판도를 뒤집는 계기가 되었고, 20세기 러일전쟁(1904~1905)과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을 격발시키는 방아쇠 역할을 하였다.

이 상황에서 상제님은 세계 창생을 광구匡救하려는 큰 뜻을 품으시고 유⋅불⋅선, 음양참위陰陽讖緯 등의 모든 글을 읽으신 뒤에 세태와 인정을 몸소 둘러보시기 위해 천하 유력遊歷의 길을 떠나셨다. 그 과정에서 정역의 창시자 김일부金一夫를 만나셨으며, 만고萬苦를 체험하고 만상萬相을 둘러보시니 박학博學과 광람廣覽을 따라 혜식慧識이 더욱 명철해지셨다.

수년 동안 각지를 유력하시며 민심과 풍속을 살피고 명산대천의 지운地運과 기령氣靈을 관찰하신 뒤 30세 되시던 경자년에 고향으로 돌아오신 상제님은 이후 시루산 상봉에서 수도에 전념하셨다.

 

후천 선경의 새 세상을 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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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일련의 상제님 행적을 살펴보면, 우선 큰 뜻을 품고 이법적인 틀을 잡으신(글을 읽으심) 다음, 세상에 나아가 체험을 한 뒤에 깊은 수행을 통해 새 세상을 여는 일을 하셨음을 알 수 있다.
선천 성자들처럼 ‘역사를 창조한 선구자들’은 한결같이 자기를 계발하기 위해 산이나 광야로 물러나 연단鍊鍛하였다가 성령의 힘과 영광으로 가득 찬 초인으로 변모하여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속세로 되돌아왔다. 얼핏 생각하면 상제님께서 걸어가신 광구천하의 행적도 이러한 선천 성자들의 구도 과정과 흡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상제님께서는 세상을 널리 살펴보시고 가을 우주의 새 세상을 열기 위한 대도통의 수도 과정을 거치신 후 ‘천지대신문天地大神門’을 여셨다. 몸소 인간 완성의 궁극의 길을 보여 주시고, 중통인의中通人義의 무상한 권능으로 천지대신문을 여신 것은 기존 성자들처럼 창생의 교화나 깨달음을 위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이는 삼계 우주를 주재하시는 통치자 하느님으로서 천상의 조정에 맡기셨던 삼계대권三界大權을 직접 주재하시어 인간과 신명을 구원하시고 후천 가을 대개벽을 집행하여 병든 천지를 개벽하시기 위한 것이다. 만유 생명의 구원과 우주의 통일을 이루시는 ‘서신사명西神司命’의 우주 가을철 시대를 여셨다는 점에서 상제님의 천지공사天地公事는 선천 성자들의 진리 기국과 결정적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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