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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히스토리’ 소개와 비판적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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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이후 138억 년을 꿰뚫는 ‘빅 히스토리’

 

빅히스토리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생물학·경제학 등 넘나드는 통섭 학문…기업 미래 진단 등에 활용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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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네안데르탈인 모형.


빅 히스토리(big history)는 한국말로 거대사(巨大史)라고 하는데, 빅뱅에서부터 현재까지 우주·지구·생명·인류의 과거를 과학과 인문학 같은 다양한 학문을 엮어 통일된 하나의 이야기로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른바 요즘 유행하는 통섭적 접근 방법이다.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이들에게는 빅 히스토리가 정말 무모한 시도로 보일 것이다.

138억 년 전에 빅뱅으로 우주가 갑자기 생기고 46억 년 전에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가 생성된다. 35억 년 전에는 지구에 최초의 생명체가 생기고 20만 년 전에는 현생 인류와 같은 종(species)인 호모사피엔스가 나타나 2014년 현재 72억 명의 사람들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장구한 기간을 빅 히스토리로 풀어내려면 우리가 그동안 축적해 온 온갖 지식을 동원해야 한다. 우주 생성 과정을 설명하려면 우주학(cosmology)·천체물리학·천문학·화학이 필요할 것이고 지구 생성 과정을 설명하려면 지구과학·지질학·해양학·대기학이 필요하다. 또 생명체 발생 과정을 설명하려면 생물학, 인류 진화 과정을 설명하려면 고고학·인류학 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간의 복잡한 사회경제 현상을 설명하려면 정치학·경제학·사회학 같은 사회과학이 요구되고 1750년 이후의 자본주의를 설명하려면 경제학·경영학·금융학이 없으면 안 될 것이다. 물론 이 밖에도 심리학·뇌과학·우주생물학 등도 총동원된다.


1989년 역사학자 데이비드 크리스천이 시작
빅 히스토리는 역사학자 데이비드 크리스천(David Christian)에 의해 시작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러시아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75년부터 호주 매쿼리대에서 러시아사와 유럽사를 가르쳤다. 그는 공산주의가 몰락하던 1989년에 역사 입문 강의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우주 빅뱅부터 시작하면 좋겠다는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생겨 그때부터 빅 히스토리 개념의 강의를 시작하게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빅 히스토리 개념은 세계 여러 군데로부터 호응을 얻어 다른 대학에서 빅 히스토리 강의를 하게 됐다. 2003년에는 ‘시간의 지도(Maps of Time; An introduction of Big History)’라는 책을 저술했다. 그의 접근 방법은 빌 게이츠로부터 큰 공감을 얻어 재정적 지원을 받아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www.bighistoryproject.com) 사이트를 통해 온라인에서 무료로 콘텐츠가 제공되고 있다. 2012년에는 국제 빅 히스토리 학회(www.ibhanet.org)가 미국에서 열리기도 했다.

빅 히스토리 강좌는 전 세계적으로 50여 개 대학에 개설돼 있고 한국에서는 2009년부터 이화여대에서, 2012년부터는 일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도 개설됐다.

앞서 말했듯이 빅 히스토리는 다양한 학문을 총동원해 138억 년을 설명하려는 시도다. 네안데르탈인의 몰락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4만 년 전까지만 해도 네안데르탈인은 유럽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아프리카에서 시작된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크로마뇽인)가 유럽으로 오면서 네안데르탈인은 점차 밀려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도대체 네안데르탈인은 크로마뇽인에 비해 어떤 점이 부족했을까. 여러 해석이 있지만 최근 들어 일부 경제학자들은 크로마뇽인이 분업·협력·교역에서 능력이 탁월한 것을 그 이유로 꼽는다.

크로마뇽인들은 능력에 따라 할 일을 나눴다. 숙련된 사냥꾼들은 수렵에 전념하고 사냥은 잘 못해도 무엇을 만드는데 재주가 있는 사람은 집에서 도구나 옷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사냥꾼과 기능공은 각자 필요한 것을 서로 교환했더니 동물을 더 많이 잡을 수 있어 인구가 계속 늘어났다. 하지만 전체 동물의 수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동물을 많이 잡지 못한 네안데르탈인은 고기를 구할 수 없어 결국 멸종을 당한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왜 몰락했나
이처럼 각자의 능력에 따라 분업해 생산을 극대화한 후 협력과 교역을 했던 크로마뇽인은 전체 생산성을 높여 세상을 지배했다.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분업의 중요성을 구체적으로 열심히 설명했는데 이런 경제학적 관점과 지식이 인류 종의 변화를 설명하는데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수렵, 채취 생활을 하다가 빙하기가 끝나던 기원전 1만2000년 무렵부터 야생동물을 가축화하는 데 성공한다. 양·염소·소·돼지·말·당나귀·개·순록·낙타·알파카·야크 등을 키웠다. 야생동물이었던 이들은 어떤 조건 때문에 가축화됐고 또 다른 야생동물은 왜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축이 되지 못했을까.

진화생물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자신의 책 ‘총, 균, 쇠’에서 야생 동물들이 가축화되기 위해서는 여섯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동물의 식성이 너무 좋아서는 안 되고 특정 먹이를 너무 선호해서도 안 된다. 동물이 먹을 것을 사람들이 구하기가 어려우면 사육하는 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가축은 빨리 성장해야 사육할 가치가 있다. 고릴라는 성장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므로 가축이 되지 못했다. 셋째, 가축은 야생 상태가 아니라 감금 상태에서도 번식을 잘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치타는 그런 상태에서는 도통 번식을 하지 못했다.

넷째, 회색곰처럼 사람을 해칠 정도로 너무 포악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가젤처럼 인간에 대해 너무 겁을 먹는 동물은 사람과 어울려 살 수 없다. 여섯째, 같은 동물끼리 위계적 질서를 지키고 서로 무리 지어 다니는 사회성이 있어야 한다. 이처럼 여섯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가축이 될 수 있고 그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야생동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보면 첫 구절에 이런 글이 나온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즉, 잘되는 집안은 다들 비슷하게 근심이 없고 건강하며 화목하지만 안 되는 집안은 애정이든 금전이든 자녀든 천차만별의 이유로 불행해진다는 말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이를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라고 소개하면서 여러 조건 중에 다른 모든 것을 잘 갖춰도 하나라도 부족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이 법칙은 가정 행복에도 해당되고 야생동물의 가축화 과정, 그리고 기업 성공 분석에도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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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항공우주국(NASA)의 광역 적외선 탐사 망원경이 포착한 초신성의 탄생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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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화력발전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


이처럼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분업 원리가 네안데르탈인 몰락의 원인을 캐는 데 도움이 되고 문학가 톨스토이가 소설에서 언급한 가정 불행의 원칙이 가축화 실패 이유를 찾는 데 활용된다. 다양한 지식은 엉뚱한 곳에서 쓸모를 찾는다. 이것이 통섭이고 빅 히스토리의 묘미다.


인간의 비극적 운명 예고하는 ‘인류세’
성층권의 오존층 파괴에 관한 연구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네덜란드의 대기과학자 파울 크뤼천이 2001년에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며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65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에 환경 변화로 생물종의 75%가 멸종했고 2억5100만 년 전 고생대 페름기 말에 바다 생물종의 96%, 육지 생물종의 70%가 멸종했다. 그런데 1750년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끊임없이 뿜어내는 온실가스·질소비료·방사능·습지파괴로 현재 많은 생물종들이 죽어가고 있는 비극적인 현상을 비꼬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단호한 노력이 없으면 인간도 비극적인 운명을 피하지 못할 것이고 한참 나중에 어떤 생명체가 인간이 지배했던 이 시기를 인류세라고 말할 것이다.

캐나다 지질학자들은 녹은 플라스틱이 화산암, 바다 모래, 조개껍데기 등과 섞인 딱딱한 돌덩어리를 ‘플라스틱괴(plastiglomerate)’라고 부르며 인류세를 대표하는 지표석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현재 이 지구의 다른 종들은 인간을 벼락부자라고 부른다. 인간이 짧은 시간 동안 지구를 석권했기 때문이다. 소득 불평등 심화 때문에 요즘 한국에서 일고 있는 피케티 신드롬도 이런 인류세 시각에서 볼 수도 있다.

기업은 유기체다. 살아 있는 생물체와 다르지 않다. 특정 조건에서 생겨났다가 성장하고 환경 변화든 내부 문제든 어떤 이유로 사멸한다. 물론 어떤 기업은 갖은 위기를 극복하고 덩치를 키우며 오래 살기도 한다. 기업 사람들이 회사 내에서 팀을 구성해 다양한 지식이 버무려진 빅 히스토리를 배우다 보면 138억 년에 걸친 우주·지구·생명·사람의 과거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또 배우고 토론하다 보면 상상력이 가동돼 여러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기업의 현황 진단과 미래 예측과 준비에 다 도움이 된다.

우리가 빅 히스토리에 대해 배우려면 여러 방법이 있다. 우선 데이비드 크리스천이나 신시아 브라운이 쓴 빅 히스토리 책을 역서나 원서로 보면 된다.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 사이트에 가면 동영상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데이비드 크리스천이 만든 48개 시리즈 강의를 DVD 형태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국제 빅 히스토리 학회 웹사이트에도 많은 정보가 게재돼 있다.

빅 히스토리에 대한 기본 정보는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각자 이것을 가지고 서로 토론하고 다른 각도에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과학과 인문학의 결합체인 빅 히스토리 관점에서 기나긴 역사를 보는 데 분명히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투자할 가치는 분명히 있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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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비판적인 리뷰입니다. 참고하세요

 

빅 히스토리, ‘최종 이론’인가 ‘최종 지배’인가박민영 문화평론가, 유발 하라리 등 빅 히스토리 비판

강성민 리뷰위원 | 승인 2017.02.16 10:58

 

신생 학문 분야로 떠오르고 있는 ‘빅 히스토리’에 대한 도끼날 비판이 제기되었다. 『인물과 사상』 2017년 1월호「반(反)기업 인문학: 빌 게이츠는 왜 빅 히스토리를 지원할까?」를 실은 박민영 문화평론가가 도끼를 든 주인공이다.

빅 데이터는 들어봤어도 빅 히스토리는 낯설어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2년 사이 베스트셀러였던 『사피엔스』라는 책과 그 저자인 유발 하라리를 떠올려 보자. 책 한 권으로 전세계적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 『사피엔스』는 두툼한 인문서로는 드물게 한국에서도 대형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사피엔스』야말로 빅 히스토리의 전도사와 같은 책이다. 이 책도 낯설면 얼마 전 OBS에서 수입 방영한 BBC의 8부작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면 된다. 거기에 우주의 기원부터 현재까지 빅 히스토리의 견지에서 담은 영상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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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빌 게이츠는
빅 히스토리 연구를 후원하는가


보통 우리가 큰 범위의 역사를 말할 때 ‘문명사’라는 단어를 쓴다. 개인의 역사인 자서전에서 점점 넓어져 집단의 역사, 국가의 역사가 되고 이런 국가들이 모여 ‘인류’라는 모집단이 될 때 그 모집단이 외부의 공격이나 내부의 문제를 해결해가며 발전해온 역사가 바로 문명사다. 따라서 문명사는 수천 년의 시공간을 장대하게 다룬다. 그런데 빅 히스토리 학자가 볼 때 문명사는 콧구멍 한 번 후빌 시간에 불과하다. 빅 히스토리는 인류를 넘어 자연, 지구, 우주로 범위를 넓혀 빅뱅 이후 135억 년의 시공간적 전개를 하나의 내러티브로 체계화하려는 매우 거대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우 강력하고 실질적인 파운데이션을 갖고 있는 물리적 프로젝트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빌 게이츠가 후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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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와 데이비드 크리스천 교수

“빌 게이츠가 빅 히스토리를 지원하게 된 경위는 이렇다. 그는 평소 운동을 하면서 다양한 온라인 동영상 강의를 시청하는 습관이 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데이비드 크리스천 교수의 빅 히스토리 강의를 듣고 눈이 번쩍 뜨였다. ‘역사는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 빌 게이츠는 마침 미국에 와 있던 데이비드 크리스천을 만나서, 빅 히스토리를 전파하는 데 자기가 일익을 담당하면 좋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곧바로 의기투합해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137쪽)

빌 게이츠는 자신이 빅 히토스리에 빠진 이유는 단지 긴 시간을 다루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어떤 분야보다 포괄적이며, 우리가 자연과학, 역사학, 경제학에서 배우는 모든 것을 융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민영 씨는 여기서 의문을 제기한다. 왜 다른 융합학문도 많은데 굳이 빅 히스토리일까? 빅 히스토리가 융합학문의 ‘끝판왕’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어떤 사람도, 학문도, 세계도 빠져나갈 수 없는 ‘거대한 틀’을 빌 게이츠가 구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 빅 히스토리 협회의 정의에 따르면 “빅 히스토리는 우주, 지구, 생명, 인류의 역사를 통합학문을 통해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이해하려는 노력”(139쪽)이다. 바로 모든 학문을 포괄하는 ‘틀(프레임)’로서의 위상을 빌 게이츠가 포착했고, 그것을 활용해 학문 전체에 대한 통제권을 확대하려는 게 아니겠냐는 의문이다.


신시아 브라운,
“언젠가 모두가 빅 히스토리로 공부하게 될 것“


박민영 씨는 빅 히스토리는 역사학의 한 분과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역사학이 빅 히스토리의 분과라고 지적한다. 그것도 그다지 큰 비중이 아닌 여러 분과 중 하나로서 말이다. 우리가 아는 역사는 ‘단편적인 지식’에 불과하며 그것을 보다 큰 맥락 속에서 재배치하는 걸 배워야 한다는 게 빅 히스토리 학자들의 견해다.

“국제 빅 히스토리 협회의 창립이사인 신시아 브라운은 『빅 히스토리』 서문에 ‘언젠가 모두가 빅 히스토리로 공부하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빅 히스토리는 이제 막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신생학문이다. 그런데 거기에 종사하는 학자들은 무모할 정도로 자신만만하다. 이러한 자신만만함은 유발 하라리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아이들 세대는 기성 교육으로는 (세상 변화에)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역사상 첫 세대가 될 것이다.’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것의 80~90%는 아이들이 40대가 됐을 때 별로 필요 없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현 교육 체제는 산업시대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144~145쪽)

유발 하라리가 늘상 주장하는 ‘학문의 새로운 모델’이 바로 빅 히스토리라고 박민영 씨는 지적한다. 여기서 빅 히스토리가 사회적으로 흔쾌히 받아들여지는 맥락을 잠깐 환기해볼 필요가 있다. 박 씨가 서술한 것처럼 “인구 증가, 에너지, 자원, 물, 농경지, 삼림, 어장, 기후 변동, 지구 온난화, 경제 불평등, 생명공학이나 인공지능의 위협 같은 전 지구적 당면 과제들은 한두 분야의 학문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런 아포리아에서 나오는 해결책이 ‘총동원 체제’다. 인류의 지혜를 모두 끌어모아 대처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학문의 벽을 넘어 우주, 지구, 생명, 인간, 모든 것의 역사를 아우르며 그 해답을 찾아가야 한다. 여기에 가장 부합하는 지식생산과 학습의 플랫폼이 바로 빅 히스토리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빅 히스토리의 태생적 한계는
심층 콘텐츠 생산력 


이 지점부터 박민영 문화평론가의 비판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우선, 지구적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면 오히려 우주의 역사보다는 가장 최근의 역사를 더 잘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본주의의 각종 문제, 유한한 자원으로 무한한 이윤을 내려는 복잡다단한 자본의 동학과 거기에 맞물려 돌아가는 현실세계의 온갖 파노라마를 이해하는 데 굳이 빅 히스토리적 통찰을 기반으로 할 필요가 있을까? 그것은 혹시 치킨으로 맥주 한잔 마시며 피곤한 하루를 날리려는데, 저 시골의 농장까지 가서 닭을 공수해오는 일은 아닐까? 우선 이런 종류의 의문이 드는 것이며, 그다음으로는 본질적인 질문인데 “어떤 학문이 존재하려면 당연히 심화된 고급 콘텐츠가 있어야”(147쪽) 하지 않겠는가 라는 점이다. 그런데 빅 히스토리는 현재로서는 이게 불가능하다. 기초 교양적 콘텐츠만 존재한다.

“학문 위의 학문, 즉 최상위의 학문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빅 히스토리는 다른 학문을 초월하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급 콘텐츠가 없다는 점에서 학문 그 자체로 성립되지 않는다. 독자적인 학문으로 서지도 못하면서 최상위 학문의 위상을 차지하겠다는 모순, 그것이 빅 히스토리가 처한 현실이다.” (147쪽)

박 씨에 따르면 빅 히스토리는 일단 현실적으로 별로 쓸모가 없다. 그의 지적을 듣다보면 그게 큰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우주에서 시작해 우주에서 길찾기가 아닌 길잃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도 든다. 여기서 탁월한 비유가 등장한다. 약간 음모론적 문제제기이기도 한데, 135억년 우주의 시간을 24시간으로 환원하면 인간의 역사는 채 1초도 되지 않는데, 이런 틀로 인간사회를 다룬다는 것은 고대사의 비중을 늘리고 근현대사의 비중을 낮춰, 근현대사의 민감한 문제를 주마간산으로 넘으려는 지배층의 의도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빅 히스토리 속 인간의 역사 또한 수렵시대-농경시대-현대, 딱 셋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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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

 

글의 마지막에서 그의 비판의 화살은 ‘빅 히스토리’의 적장자 유발 하라리를 향한다. 그가 방대하게 우주의 탄생부터 사피엔스 이야기를 서술하고 난 뒤의 결론이 너무 허무하다는 게 비판의 골자다. 논문에 인용된 유발 하라리의 결론의 일부를 다시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예컨대 프랑스 혁명을 보자. 혁명가들은 왕을 처형하고, 농민들에게 땅을 분배하고, 인권선언을 하고, 귀족의 특권을 폐지하고, 유럽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느라 바빴다. 하지만 이중 어느 것도 프랑스인의 생화학 시스템을 바꾸지는 못했다. (…) 이것이 프랑스인의 행복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다.” (150쪽)

여기서 생화학 시스템이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분비물질, 이를테면 우울감을 줄여주는 세로토닌 같은 물질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 쪽으로 인간을 진화시키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생화학 요법을 개발하는 데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다면, 혁명을 일으키지 않아도 과거 어느 때보다도 사람들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라고 말이다.


유발 하라리
장대한 문제제기 끝에 빈약한 결론?


다소 생뚱맞은 주장인데, 글로벌 제약회사의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은 생화학자가 할 수 있는 소리로 들린다. 필자는 이런 하라리 식의 논리가 전형적인 자기계발 논리라고 논파한다. 그것이 “개인의 삶이 의미 있고 가치 있으려면 자신이 삶을 그렇게 바라봐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펼치기 때문이다. 빅 히스토리라는 ‘대안적 모델’을 내세우며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장대한 질문을 던진 것 치고는 결론이 “미약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분명, 우리 사회가 지난 몇 년 동안 흡수하고 있는 이 ‘빅 히스토리’ 담론은 필자의 지적대로 의심의 눈초리로 논의해볼 대목이 많은 것 같다. 스스로 분과 지식의 창출자가 아니면서 그것들을 끌어모아 유기적으로 엮어내는 것으로 학문이라 칭할 수 있는지의 문제, 그러한 틀이 거대한 자본과 결합, 블랙홀처럼 모든 지식을 끌어들여 재배치하고 인공지능 시대의 ‘신전’처럼 버티고 앉아 신탁을 내놓지는 않을지의 우려, 무엇보다 돋보기로 현실에 포커스를 맞춰 문제를 태워 없애야 할 시기에, 천체망원경을 들고 우주 구경이나 한갓지게 하고 있을 거냐는 식의 야유에도 답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이런 빅 히스토리적 접근법이 등장한 ‘내재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것도 분과학문의 고질적 아집을 넘으려는 융합적 시도 중의 하나인지라, 그 융합의 계보학 속에서 펼쳐놓고 이해하려는 좀도 심화된 토론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테면 『총균쇠』 류의 저작들과 비교를 통해서 서로 어떤 지점에서 같고 다른지 등등 말이다.

 

강성민 리뷰위원  paperf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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