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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원한의 진혼곡의 시작 ‘단주수명’丹朱受命의 단주대종丹朱大宗

운영자 0 701

 

제1장 인류 원한사의 첫 장, 단주丹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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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 상제님께서 내려주신 이 성구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과정의 섭리이자, 우리 삶의 대 전제가 되는 말씀이다. 누구나 간절한 희망과 뜨거운 의지를 가지고 참다운 삶을 살기를 소망하지만 지금까지 자신의 뜻대로 살다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상극이라는 말 그대로, 자연환경 자체가 서로 대립하고 투쟁하는 구도 속에서 살아야 했고 인간 내면의 영성이 온전하게 발현될 수가 없었다. 약육강식, 우승열패, 억음존양의 환경 속에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우리의 마음 속에는 켜켜이 원한이 맺히고 쌓여 왔다.

선천 말대의 마지막 밤 열차를 탄 수많은 사람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이 원한의 응어리를 품고 돈과 권력, 명예와 쾌락을 좇으면서 내면으로는 우울과 불안, 공허와 무기력에 빠져 하루하루를 죽음의 길로 질주하고 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인류가 ‘큰 병’을 앓고 있다고 진단하시고, 인류 역사가 전개되어온 이래 처음으로 천지이법 차원에서 그 근본 원인이 ‘원한寃恨’

 

※주1)

 

임을 밝혀 주셨다. 아울러 그 원한을 해소하는 ‘해원解寃’을 길을 열어주시고 영원한 인류 화평을 길을 제시해 주셨다. 이 원한의 첫 머리, 시초에는 뜻밖에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으나 이면에 진실 왜곡의 참혹한 역사가 감춰져 있는 요순시대堯舜時代와 요임금의 아들 단주 丹朱의 이야기가 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근원적인 원한의 주인공 단주!
사실 바둑 애호가가 아니라면 어쩌면 현대를 사는 대중에게는 생소한 인물이다. 서경을 비롯한 유가 경전이나 사마천의 사기 등에서는 성군의 대명사로 알려진 요임금의 불초不肖한 아들 정도였던 단주, 그는 진정 누구인가?

역사상 원한의 문제
단주에 대해 말하기 전에 우선 이 원과 한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그에 대한 해결책이 왜 해원으로써 가능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한이란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라는 속담에서 볼 수 있듯이 흔히 ‘원한을 품는다’라는 형식으로 표현한다.※주1)
 

단주는 불초不肖하였나?


‘불초不肖하다’는 말은 자식이 그 아버지를 닮지 못했다는 말이다. 아버지의 현명함을 닮지 못한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을 불초자라고 한다. 이런 불초한 자식의 대명사인 단주. 이런 단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서경 요전堯典에 나온다.
 

(요임금 제위 70년이 되자 임금 자리를 물려 줄 후계자를 물색하여 대신들에게 후사에 대해 의견을 묻는다)
요 임금께서 말씀하셨다.
“때를 순응할 누구를 찾아내어 등용하게 할 것인가?”
방제放齊가 아뢰었다.
“맏아들(胤子)인 주주가 명석합니다(啓明).”
“아니오, 완악하고 말다툼이나 하는데 되겠소(은송嚚訟)? 누가 나의 일에 순응하겠소?”



요임금은 단주를 천거한 방제의 진언을 물리치면서 “단주는 말이 믿음이 없어 입으로 미더운 말을 하지 않고, 또 싸움과 송사를 좋아하니 불가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결국 홀아비였던 우순虞舜을 시험하였고, 두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을 뿐만 아니라 제위도 넘겨주었다. 이른바 요순 선양禪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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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과연 단주는 진정 불초하였는가? 단순히 단주가 제위를 잇지 못했기 때문에 원한이 생길 것일까? 단주의 원한은 이런 표면적인 원인뿐 아니라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제위를 이어받지 못했다는 사실보다는 자신이 이상적인 통치로 생각하였던, 동방 동이족과 서방 화하족의 통일이라는 원대한 대동사회 구현의 꿈을 실현할 수 없게 된 좌절 속에서 허망한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단주는 4300년 전 인류가 가장 이상적인 정치 시기로 꼽는 요순堯舜시대 때 인물이다. 요堯임금은 본래 동방 배달국 8세 안부련 환웅의 신하인 소전씨少典氏

 

※주2)

 

의 후예인 제곡帝嚳 고신高辛의 아들이다. 요임금은 산의씨散宜氏의 딸 여황女皇을 아내로 맞아 맏아들 단주 외에 아홉 아들과 아름다운 두 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두었다. 적장자인 주朱가 단연丹淵(단수丹水, 지금의 단강丹江)이란 곳의 제후로 봉해져 단주라고 불렸다.

 

※주3)

 


순舜임금과 우禹의 문답형식으로 구성된 서경의 익직益稷 편에서는 단주에 대해 이렇게 평하고 있다.
 

“요임금의 아들 단주처럼 오만하고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그는 게을러 놀기만 좋아하였고, 오만한 행동과 포악한 짓만을 일삼았으며 밤낮 없이 이런 짓을 쉬지 않았습니다. 물이 없는 곳에 배를 띄울 만큼 억지와 행패를 부리고, 떼지어 집안에서 음탕하게 놀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단주의 집안은 그의 대에서 끊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또한 유학 경전인 맹자 만장 편에도 ‘불초한 단주’라는 표현이 몇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역사 왜곡이 굳어져 축적돼 왔다. 이러한 평은 역사 왜곡의 단면이지만, 증산 상제님께서는 그 이면에 숨은 역사의 진실을 직접 밝혀주셨다. (도전 4편 30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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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결론부터 말하면, 요의 조정에 있던 신하들은 그가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경륜이 있는 계명啓明(계는 열리다開의 뜻으로, 심지가 열리고 성품과 식견이 밝아 만사를 잘 풀어 해결하고 사리에 통달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한 인물임을 알고 있었기에 천거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후한 때 경학자 정현鄭玄(127~200)도 “요 임금의 뒤를 잇는 자식은 이름이 단주이며 개명開明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단주는 동방의 본조本朝인 단군조선의 뜻을 아우르는 평화의 대동세계大同世界를 꿈꾸며 온 천하를 구별 없이 한집안으로 만들려는 정치적 포부를 가졌다는 것이다(도전 4편 31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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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에서는 천자가 사는 도성 주변의 땅을 왕기王畿라 했고, 이를 중심으로 해서 순차적으로 가까운 데서부터 먼 곳으로 5백리를 한 구획으로 하여 다섯 구역으로 구분하여 오복五服이라 했다. 복服은 ‘천자를 섬기다’라는 뜻으로 서경 우공禹貢 편에 의하면, 오복은 전복甸服, 후복候服, 수복綏服, 요복要服, 황복荒服을 말한다. 만약 당대에 단주가 통치를 했다면 도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요복과 황복에 이르기까지 제왕의 교화가 골고루 미쳐서 함께 잘 살며 중화와 동이를 구별할 필요가 없는 대동세계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단주의 원한에 얽힌 배경


인류 역사를 보면 정치권력이 투쟁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평화적으로 이양移讓된 적은 거의 없다. 직접적인 무력은 아닐지라도 결국에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였던 것이 지나온 선천 역사의 속성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 임금은 제위를 차지한 후 자신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서 적장자인 단주를 폄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장수절張守節의 『사기정의史記正義』의 기록에서는 요가 덕이 쇠해서 순에게 구금당하였고, 단주는 언偃 땅에 가두어 놓고 농림부장관 격인 농관農官 후직后稷에게 그를 감독하게 했으며, 부자지간에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고 전한다. 순에 의해서 요와 단주 부자의 천륜이 끊어진 것이다.

또한 『죽서기년竹書紀年』[#※주4)

에 따르면, 순이 요를 감금한 뒤 단주의 다리를 절게 만들어 서로 못 만나도록 했다고 한다. 그 뒤 후직이 단주를 석방시켰다는 기록도 있다. 후직은 훗날 문왕과 무왕에 의해서 건국된 주왕조의 시조가 되는 인물이다. #]
 

단주와 삼묘족의 연합 투쟁

분울한 나날을 보내던 단주는 반격의 실마리를 잡게 된다. 『산해경山海經』 등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남방의 동정호洞庭湖와 팽려호彭蠡湖 일대에는 구려九黎의 후예인 유묘有苗혹은 삼묘三苗라는 부족이 있었다. 본래 삼묘는 환국 시절부터 반고씨를 따라온 삼위산족이었다. 지금도 삼묘족은 반고를 반왕盤王이라 부르며 생사生死, 수요壽夭, 빈천貧賤을 반왕이 주관한다고 믿고 제사를 지낸다.

그런데 이들이 삼위산에서 황하 유역으로 정착한 이후로는 동방 태호 복희씨의 교화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배달국 치우천황이 동방을 통일하고 중원에 입성하자 치우 천황에게 귀속함으로써 오늘날까지 묘족은 반고씨, 태호복희씨, 치우천황 세 분을 조상으로 섬기며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삼묘족은 동방족의 일원으로 치우천황의 명을 받들어 탁록대전에서 황제 헌원에 맞서 싸웠기 때문에 이후 서방족에게 미운털이 박혀 갖은 박해를 받아야 했다.

이들은 단주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고, 요임금이 순에게 제위를 넘겨주자 이에 승복하지 못하고 삼묘의 왕이 단주와 연합하여 반기를 들었다. 당시 삼묘국 임금은 협화만방協和萬邦을 주장하는 요임금의 아들 단주를 흠모하여 그의 등극을 후원하였다. 그러나 요임금은 단주를 불초하게 여겨 순에게 섭정을 맡기고 장차 보위를 넘기려 하자 삼묘국 임금은 부당한 처사라며 강력히 비난하였다.

이에 요임금은(실질적으로는 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친히 남방으로 출정하게 된다. 두 세력은 단수 포구에서 격돌하였고 단주와 삼묘의 연합군은 궤멸당했다. 이 싸움에서 삼묘의 왕과 단주는 전사하였다고 한다. 살아남은 삼묘족의 백성들은 본래 왔던 삼위산三危山으로 유배 보내졌다는 것이다.
 

단주의 죽음에 관한 기록들

단주의 죽음에 관련해서는 다른 기록도 있다. 『맹자孟子』에서는 요임금이 승하한 후에 삼년상을 마치고 순임금이 단주를 피해 남하南河의 남쪽으로 피신했으나 천하의 제후들이 순에게 조근朝覲을 하고 백성들은 소송의 해결을 위해 순에게 달려갔으며, 순을 칭송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단주는 적어도 아버지인 요임금이 승하한 후 삼년상을 마쳤으며 따라서 순이 제위에 오른 후에도 생존한 셈이 된다.

하지만 『맹자孟子』의 기록 태도는 불초한 단주라는 표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순임금에 대해 우호적으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순의 여러 행적에 비추어 보면 단주와 순임금의 치열한 권력 투쟁에서 단주는 패배해 전사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중국의 신화학자 원가袁珂에 의하면 전쟁에서 살아남은 삼묘 사람들은 멀리 남해안으로 가서 삼묘국三苗國을 세웠고, 단주의 후손들은 삼묘국 근처에 환주국讙朱國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므로 단주가 생존해 환주국 곧 단주국丹朱國을 세웠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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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중 가장 초라한 단주의 묘

어쨌든 단주의 최후는 쓸쓸했고,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단주를 추모하여 제단주帝丹朱라고 칭제하며 존경을 표했다고 한다. 또한 남방의 거산柜山이라는 산에는 올빼미처럼 생긴 새가 살았는데, 이 새를 주鴸라고 한다. 이 새의 발톱이 마치 사람 손처럼 생겼고, 온종일 주~주~ 하고 우는데, 이 새가 바로 단주의 영혼이 변해서 된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마치 숙부 수양대군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단종의 슬픈 넋이 자규子規(소쩍새)가 되었다는 이야기처럼.

그의 묘소에 대해서 『산해경山海經』에서는 창오산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되어 있다. 그 반대편 남쪽에는 순임금을 장사지냈다고 한다. 현재 중국 허난성河南省 푸양시濮阳市에 단주 묘가 정비되어 있는데, 중국에 있는 어느 인물의 묘소와 비교해 보아도 그가 잠든 묘소는 너무나 작고 초라하고 보잘것없다.
 

왜 해원의 첫머리가 단주일까?


대동세상을 열려는 꿈과 야망이 모두 깨져버린 단주는 동이족의 고위층 신분으로 단군조선의 국력을 배경으로 왕위에 오른 순舜을 향한 증오와 분노를 영혼에 깊게 새기게 되었다.

원한으로 깊이 물들지 않은 순수의 시대는 이제 저물어가고 동방 배달의 역사는 물론이요,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은 단주의 원한은 인간의 잠재의식에 유전되면서 인류의 죄악과 고통이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인생이란 화폭 위에 장밋빛 꿈을 펼쳐보고자 하는 삶의 본능(에로스Eros)이 좌절되면, 타고난 운명을 증오하고 울분을 터트리며 삶을 저주하게 되고 죽음의 파괴본능(타나토스Thanatos)이 고개를 쳐들게 된다. 이 파괴본능은 자신과 상대방의 삶을 파괴하고 나아가서는 이 세상을 진멸시키는 도화선이 되어버린다. 원한은 바로 삶의 본능을 빼앗고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를 죄악과 죽음의 늪으로 몰아넣는 극단적인 죽음의 본능이다.

오늘날 우리 인류는 이 죽음의 파괴본능이라는 불꽃에 휩싸여 있다. 바로 이 원한의 불꽃을 잠재우고, 인간과 신명들의 마음속 깊이 응어리져 있는 모든 억울함과 비통함을 풀어버리는 해원의 시초에 바로 단주 해원이 있다.
 

증산 상제님의 단주 해원의 의미

수천 년간 얼기설기 얽혀서 누적된 모든 원한의 시초 단주. 왜 증산 상제님은 단주의 해원을 첫머리로 하셨는가?

첫째로는 단주의 포부와 역량을 들 수 있다. 단주가 꿈꾸던 대동세계는 후천 상생조화세계의 비전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요순선양이라고 하는 역사왜곡의 실체를 바로잡는 역사의 정의 문제가 있다.

셋째로는 천륜이 파괴된 원한으로 역사의 방향이 바뀌어 버렸다는 의미의 원한이다. 그 상황이 명확히 기록되고 수천 년간 인구에 회자되면서 내려온 최초의 원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천륜이 파괴된 원한을 좀 더 짚어보면, 천륜이란 부모와 자식 간처럼 하늘이 정해준 관계이다. 부부지간에는 설령 이혼이라고 하여 서로 남이 되기도 하지만, 부모 자식 사이에는 그럴 수 없는 대자연의 법칙이 들어 있다. 이를 어기거나 끊게 되는 행위는 역천逆天이나 불선不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순임금은 요와 단주 사이를 떼어 놓아 천륜을 해함으로써 이 사건을 통해 인류 역사의 방향을 화합에서 대립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증산 상제님은 오늘날 동서양의 대립과 갈등 구조가 마치 동방족과 서방족이 대립하던 당시의 시대상황과 유사하기 때문에, 단주를 신명계의 중심 주벽主壁으로 내세워 후천의 통일 조화문명시대를 열도록 천명을 내려주셨다(丹朱受命). 즉 제왕이 되지 못했던 한을 풀어주셨고, 그동안 누적된 그의 원력寃力을 원력願力으로 승화시켜 세계질서를 통할하고 질서를 바로 잡는 데 일조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이다. 나아가 꿈과 이상으로만 품고 있던 ‘대동세계 건설’의 한을 풀어주어 동서양을 하나로 묶어 통합된 후천 선경세계가 열릴 수 있도록 하셨다. 실로 우주의 주재자만이 하실 수 있는 ‘절대적 신의 한 수’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단주의 해원을 머리로 하여 수천 년간 얽혀온 원한의 실타래가 낱낱이 풀어지는 해원의 노정 속에서 우리는 후천의 조화상생시대를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상제님의 천명, 단주수명丹朱受命


증산 상제님은 단주를 자미원紫微垣에 앉혀 천명을 봉행하게 하셨다. 이는 단주를 제왕신帝王神의 자리에 두었다는 말이다. 고대에는 천체의 별들을 크게 3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이를 삼원三垣(원은 담장이란 의미이다)이라 칭했다. 바로 자미원紫微垣, 태미원太微垣, 천시원天市垣이다. 자미원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쪽 하늘의 중앙에 위치한 영역으로, 하늘을 다스리는 천제가 거주하는 자미궁이 있다고 여겼다. 자색紫色은 붉은 색과 푸른색이 섞여 음양이 교호하는, 곧 태극을 상징하는 색이며 천자를 상징한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황제나 고위 성직자, 신선, 고귀함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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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주는 상제님의 천명을 받았다, 丹朱受命!

구체적으로 단주가 천상의 신도 세계에서 선천 세상을 마무리 지으라는 명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상제님께서는 단주에게 제왕신 역할을 맡김으로써 인간계와 신명계를 통할하여 지나간 세월 동안의 처절한 상극 대결구도와 함께 그 속에서 발생한 원한을 다 풀어내고, 오래지 않아 다가올 상생의 후천 새 역사를 창조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맡기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단주를 단주대종丹朱大宗이라 호칭해야 할 것이다.
 

오선위기 바둑판 도수

증산 상제님께 천명을 받은 단주대종은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형상인 순창 회문산 오선위기五仙圍碁 혈穴

 

※주5)

 

의 기운을 바탕으로, 천지 시공을 바둑판으로 삼고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과 신명들을 바둑돌 삼아 바둑을 두면서 선천 상극질서를 끝막음하고 있다. 이런 오선위기 도수는 현실적으로 대결구도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세계대전’의 양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즉 오선위기 도수는 바로 전쟁 도수인 것이다. (도수度數는 프로그램, 시간표 정도로 이해하는 게 좋겠다)

오선위기 도수를 통해 단주대종의 해원이 이루어짐과 함께 선천 상극 운을 끝맺고 후천 상생의 대운이 열리도록 한, 지구촌 유토피아가 실제 펼쳐지게 하는 해원의 긴 노정은 세 번의 바둑을 거쳐 상씨름이라고 하는 대전쟁을 목전에 두고 있다.

거대한 역사의 전환점이 될 상씨름의 종결은 곧 선천 상극시대의 종결을 의미한다. 또한 이로써 전 세계가 한 가족이 되어 화합하는 진정한 세계일가 통일정권이 성립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토록 긴 세월 인내하며 건설하고자 했던 단주대종의 꿈이 현실 속에서 펼쳐지게 된다.

 

※주6)



 

5천 년 해원의 노정

4300여 년 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 요와 순, 단주에 얽힌 많은 이야기들은 기존의 이해를 넘어선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단주대종 한 사람의 원한이 단초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집단의 갈등으로 확대되고, 이는 결국 세력과 세력의 대결, 분열과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이 와중에 두 당사자는 전사하거나 비명횡사하기도 하였고 아황과 여영의 비극적 결말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로부터 시작된 원한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증폭되고, 공간적으로 그 영역이 확대되어 역사의 과정 속에서 수많은 원한이 축적되었다.

역사적 사건의 이면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근원적 인간의 마음과 성품 문제와 그 영향력까지! 즉 뿌리까지 드러내 주시는 상제님의 ‘원한의 관점에서 본 인간 역사와 미래 비전’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오직 절대자만이 보여주실 수 있는 영역일 것이다.

결국 이 원寃과 한恨의 문제는 비단 단주대종의 해원解寃만이 아니라 우리들 개개인의 해원과도 직결되어 있다. 상제님께서는 단주대종의 원한과 그 해원과정을 통해서 근본적이고 항구적인 인간문제 해결의 길(道)이 무엇인지를 밝혀주셨고, 동시에 우리들에게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삶의 방식도 근본적으로 대개벽해야 함을 엄중하게 깨우쳐 주시고 있다고 보아야 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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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순에 얽힌 역사의 진실


 

세상에서 우순虞舜을 대효大孝라 일러 오나 순은 천하의 대불효니라. 그 부친 고수高叟의 악명이 반만년 동안이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였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리오. 세상에서 요순지치堯舜之治를 일러 왔으나 9년 홍수는 곧 창생의 눈물로 일어났나니 요堯는 천하를 무력으로 쳐서 얻었고, 형벌刑罰은 순舜으로부터 나왔느니라. [도전 4편 30장 1절~4절]



황하黃河는 강바닥에 황토를 쌓으면서 서해로 흘러간다.

강물은 언제나 황토의 누런빛, 강물의 절반 이상이 흙이라고 하며 물 한 말에 황토 여섯 되라고도 한다. 도도히 화북 평원을 흘러온 황하의 물길은 늘 마지막 길에서 망설였다. 앞길을 막아선 산동의 태산 때문이다. 옆으로 갈지 저 옆으로 갈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황하의 하류는 늪지를 제멋대로 흐른다. 바다를 앞두고 북쪽 발해로 흐르기도 하고, 남쪽 동중국해로 흘러가기도 한다. 수많은 물길 변화는 지금까지도 거대한 범람이라는 재앙을 감추고 있다.

그런가 하면 풍부한 수량과 토사로 인해서 농사짓기에 아주 좋은 땅이 되어 많은 창생들을 먹여살리는 고마운 젖줄이 되어 주었다. 이런 천변만화하는 황하의 물길을 다스리는 시기에 요순시대가 있었다.

요堯임금, 순舜임금을 이어 우禹임금은 물길을 파서 회수와 사수를 양자강으로 흘러들게 하고, 제수와 탑수는 바로 바다로 흘러들어가게 하는 공으로 하夏왕조를 개창하기도 했다. 유가儒家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태평성대로 꼽는 이 시대, 이 시대는 신화와 전설 그리고 역사가 교차하던 때이며 동방 배달동이倍達東夷와 중국 한족의 화이華夷가 갈라서는 정점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단주대종의 원한은 단순히 개인의 원한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동방 배달과 중국 역사의 왜곡을 밝혀낼 수 있는 코드다. 그 시대의 진실의 베일 속을 들여다보면 핏빛 서린 단주대종의 원한과 창생들의 눈물, 역사 왜곡의 모습과 비운의 왕자 단주의 원한을 바르게 깨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내막을 자세하게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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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를 무력으로 차지한 요 임금


먼저 이 모든 이야기의 시초인 요堯임금.
오제五帝의 한 사람이자 황제 헌원의 증손자인 제곡帝嚳 고신씨高辛氏에게는 전부 네 명의 비妃가 있었다.

첫째는 태씨邰氏의 딸 강원姜嫄으로 후직后稷(주周나라의 시조)을 낳았다.
둘째는 융씨娀氏의 딸 간적簡狄으로 설卨(契, 상商나라의 시조)을 낳았다.
셋째는 진봉씨陳鋒氏(또는 진풍씨陳豊氏)의 딸 경도慶都로 방훈放勳(또는 放勛) 즉 요를 낳았다.
넷째는 추자씨娵訾氏의 딸 상의常儀로 지摯를 낳았다. 일설에 의하면 어머니 배 속에서 14개월을 있었다고 한다.
제곡 고신씨가 승하하자 맏아들 지가 제위를 계승하였는데, 그가 정치를 잘 하지 못하여 동생 요가 제위를 선양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요임금의 성姓은 이기伊祁 혹은 기祁이고 이름은 방훈이다. 임금이 된 지摯는 방훈을 도陶(산둥성山東省 하택현河澤縣)에 봉하고 다시 당唐(허베이성河北省 당현唐縣)에 봉했다. 그래서 요임금을 도당씨陶唐氏라고 한다.

정치세력이 미약한 형 대신에 꾸준히 세력을 키운 요는 복종치 않거나 반란을 일으킨 제후를 정벌하였다. 그 과정에서 등극을 반대하는 제후와 정적을 숙청하고 무고한 백성들을 무참히 살육하여 천하를 피로 물들였다. 피비린내 나는 살상의 정벌전쟁을 통해 실권을 장악한 요는 인망을 잃은 형을 몰아내고 선위형식으로 제위에 올랐다. 이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4300여 년 전인 BCE 2357년으로, 이후 24년 후인 BCE 2333년에 단군성조께서 배달국을 계승하여 조선을 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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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임금은 자신의 조상이자 중국인들이 시조로 받드는 황제 헌원의 통치이념을 계승하려고 하였다. 즉 화이華夷 세력을 중심으로 천하를 지배하려는 통치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미 그 이전에 동방 배달에서 갈려나와 서방에 자리잡은 헌원이 스스로 천자라 자처하며, 동방의 배달국을 배척하다 탁록에서 치우천황蚩尤天皇에게 무릎을 꿇은 굴종의 역사가 있었다. 이를 잘 아는 요가 등장하자 중원은 다시 전란의 시기로 접어들었고, 요 자신이 제왕이라 칭하며 동방의 본조인 단군조선에서 이탈하려 하였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이웃과 영토 분쟁을 일으켰다.
 

창생의 눈물, 구년 홍수


천하를 무력으로 차지한 요의 시대는 각종 재앙이 끊이지 않았고 일찍이 유례가 없을 정도의 대홍수가 오랫동안 계속되어 백성들이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살 곳을 잃었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목숨을 잃었다.

 

※주7)

 



구년 홍수는 요 시대를 지나 순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순의 시대에 홍수로 인한 치수 책임자는 우의 아버지 곤鯀이었다. 하지만 그의 치수는 실패하였고, 결국 우수羽水라는 지역으로 추방당한 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후 아버지 대신 황하 전역의 치수 사업을 담당했던 우禹는 BCE 2267년 갑술년 동방 천자인 단군성조께서 파견한 부루扶婁태자의 오행치수법을 전수받아 치수에 성공한다. 그리하여 각 지역의 민심을 얻어 세력을 키운 뒤 결국 아버지를 죽인 순의 제위를 빼앗아 하夏나라를 세우게 된다.
 

단주의 꿈, 대동세계

요임금과는 달리 아들 단주는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개방적이고 사교적인 심법을 지닌 인물이었다. 늘 민중의 삶을 염려하였고, 동방 동이족과 서방 화이족이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려는 대동세계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아들에게 대권을 넘길 뜻이 전혀 없던 요는 말년에 왕위를 전할 인물을 찾았고 이에 단군왕검은 동이족과 인연이 있는 우순虞舜에게 요의 땅을 나누어 다스리도록 명하였다.

요임금은 단주에게 바둑판을 만들어주며 “너는 이 바둑을 두면서 먼저 덕을 닦으라”고 훈계하였고, 대동세계를 열려는 꿈과 야망이 모두 깨져 버린 단주는 순을 향한 증오와 분노를 영혼에 깊게 새기게 된 것이다.
 

천륜을 해한 순임금

 

※주8)

 

에 대해서는 흔히 천하의 대효자라고 하는 논조가 있는 반면(『맹자』「만장萬章 상上」편 및 『사기』「오제본기」) 『장자』 「도척편」에는 ‘순불효舜不孝’

 

※주9)

 

라는 구절이 있고 『한비자』 「충효(忠孝)」편에서도 불효자이며 요의 왕위를 찬탈한 포악한 ‘패륜아’로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한비자의 저자인 한비가 자신의 논설을 정당화하기 위해 황당한 이야기를 꾸몄다고는 보기 힘들다.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고사를 인용하여 논설을 전개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순임금은 군대를 이 끌고 요를 압박하였고 요임금은 우순에게 전권을 넘기게 되었다. 이는 순이 단군조선의 고위층 신분으로 유력한 실력자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순은 대권을 잡자 요와 단주 부자를 서로 만나지 못하게 천륜을 끊어 놓았다.

왕위에 오른 순은 ‘오형五刑’이라는 다섯 가지 무거운 형벌을 만들어 자신의 정책에 반발하는 세력을 처단하고 박해하였다. 형벌제도가 시행되었다 함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강권을 발동했다는 뜻이다.

또 실제로 순은 자신의 등극에 복종하지 않는 많은 세력들을 소멸시키기 위해 수많은 정벌전쟁을 일으켰으며, 말년에도 단주를 옹호하는 남방의 삼묘족을 정벌하러 갔다가 결국 창오蒼梧(지금의 광서 장족자치구의 창오현)에서 비명횡사를 하게 된다.
 

요순선양설은 사실왜곡

이미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 보았듯이 요가 다른 성을 가진 순에게 천자의 자리를 전해주었다는 이른바 요순선양설堯舜禪讓說은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들이 자신들의 정치이상을 주장하기 위해 당시 널리 전파되었던, 요-순 간의 정권이양에 관한 전설을 미화시킨 것으로 일부 사실이 왜곡되기도 한 것이다. 즉 제위가 순에게로 전해진 건 사실이지만, 요의 아들 단주가 불초한 결과로 인한 게 아니라 순의 세력이 커져 힘으로 제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에 대해 순자荀子는 요순선양설은 거짓말이며 천박한 사람이 전한 것이고 지식이 비루한 사람이 말한 것인데, 그들은 순역順逆의 이치와 작은 것과 큰 것, 이르고 이르지 않는 변화를 모르는 사람들로서 함께 천하의 큰 이치를 말할 수 없다고 단언하기까지 하였다.

한비자韓非子는 근본적으로 요순선양설 자체를 부인한다. 이는 유가와 묵가가 조작한 것이며, 선양설이라는 것은 신하가 군주를 시해한(臣弑君) 결과라고 말하였다.
 

“옛날에 요가 덕이 쇠해서 순에게 구금당했다.” (堯德衰, 爲舜所囚)
“순은 요를 구금한 후에 단주를 막아 부자지간에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
(舜囚堯, 復偃塞丹朱,使父子不得相見也) -죽서기년



이런 기록 등을 볼 때 요순선양설은 거짓이고, 순이 무력으로 요를 핍박하고, 요와 단주를 만나지 못하게 하면서 천하를 차지하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기록들은 유가경전의 대의에 위배되기 때문에 배척당했고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다.
 

미증유의 대혼란, 구년 홍수

요와 순 임금 시대에 흘렸던 창생들의 피눈물은 거대한 9년 홍수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요의 치세 후반부터 시작된 대홍수. 하늘에서 물벼락을 내린 것은 간단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옛날 사람들의 인식으로 보자면 임금이 성군이 아니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대홍수를 요임금은 어쩌지 못했다. 순 역시 미증유의 대혼란을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 이에 순은 곤鯀이라는 비운의 사나이에게 이를 떠넘겨 버렸다. 곤은 정력적으로 일을 하였다. 도시마다 둑을 쌓아 물길을 막았다. 8년 동안 물과 싸웠지만 물은 언덕을 넘어 뭍을 돌아다녔다. 막은 둑이 터지고 고였던 물이 도시로 넘쳐흘렀다. 곤은 제방을 끊임없이 높여 가며 물과 싸웠지만 늘 실패하였다. 혼란은 더욱더 가중되었고 이에 요와 순은 결단하였다. 곤을 희생으로 올려 처형한 것이다. 잠시 홍수가 멎는 듯했다. 그 사이에 순임금의 뒷방 노인이 된 요가 죽고 단주는 허수아비가 되었으며 순이 제위에 올랐다.

홍수洪水는 끊이지 않았다. 높은 곳에 지은 나라 창고는 물에 잠기지 않는다 해도 백성들이 농사짓는 들판은 늘 물에 잠겼다. 세상은 곤의 아들을 이야기했다. 바로 우禹였다. 사람들은 곤의 아들만이 이 홍수를 다스릴 수 있다고 믿었다. 결국 순은 우를 불렀고, 아비가 실패한 일이니 자식이 성공해 보라고 했다. 성공하면 자신의 덕이고, 실패하면 곤과 우 세력의 완전 몰락이었다.
 

우禹의 치수

우는 생존을 걸고 물길과 대결하였다. 13년(맹자에서는 8년) 동안 우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순의 세력이 미치지 않는 먼 곳을 다녔고, 아버지와는 반대로 둑을 쌓는 대신 크고 작은 자(尺)를 들고 땅의 높낮이를 살피고, 막힌 물길을 뚫어 주었다. 황하로 흘러드는 지류들을 묶어 회하로 돌리기도 하였고, 어떤 지류는 바다로 바로 빠지게 물길을 바꾸기도 하였다. 다음에는 아버지 곤이 했던 대로 군데군데 둑(坡)을 쌓아 수로 벽을 만들었다. 물은 뚫린 물길을 따라 순순히 흘러갔다.

이렇게 세력을 모은 우는 대규모 집단을 거느리고 전토를 누볐다. 홍수가 멎자 작은 나라들이 자기 나라 경계를 찾기 위해 우에게 달려왔고, 우는 이를 잘 조정해 주었다. 여러 지방의 사정을 그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주인 있는 땅의 주인은 조정해주고 주인 없는 땅은 자신의 세력으로 삼았다. 이제 아버지 곤의 한을 풀었고, 자신을 사지로 내몬 순을 극복할 때가 되었다.
 

슬픈 역사의 흔적, 소상반죽


순은 재위한 지 39년 되는 해 남쪽의 형산衡山으로 순수巡狩하며 삼묘를 정벌한 후 구봉산으로 갔다가 창오의 들녘에서 사망하였다.

이에 대해 『급총쇄어』에는 “순이 우에게 창오로 쫓겨나서 죽었다”고 기록하였다. 이때 정벌에 따라갔던 순의 비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은 후난성湖南城 악양시嶽陽市 동정호洞庭湖 안에 떠 있는 군산君山(상산이라고 한다)에 머무르고 있다가, 남편인 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에 서로 부둥켜 앉고 통곡을 하다가 마침내 소상강瀟湘江(원래 상강이다. 소瀟는 물이 맑고 깊다는 의미이다)에 빠져 죽었다. 두 왕비가 흘린 피눈물이 아로새겨져 검붉은 얼룩이 새겨진 반죽斑竹이 자라나기 시작하였고, 지금도 두 왕비의 무덤가에 쑥쑥 자라고 있다. 이른바 소상반죽瀟湘斑竹으로 불리는 슬픈 역사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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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반죽에 얽힌 두 가지 가설

아황과 여영의 죽음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순의 죽음이 요임금을 몰아낸 순임금에 대한 단주의 50여 년 가슴에 품었던 저주와 원한의 독기 때문이었고, 이를 알고 있던 두 왕비가 그 슬픔을 하소연할 곳이 없어 그렇게 슬프게 한 많은 생을 마감해야 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임금이나 순을 따르지 않는 작은 나라들과의 전투에서 순이 사망하자, 적 앞에서 자신을 보호할 길이 없는 두 왕비가 백제가 망할 당시 백마강 낙화암의 백제 여인들처럼 강물에 뛰어들었을 가능성이다. 피눈물을 뿌렸다는 것은 서글퍼서도 흘릴 수 있지만 분노의 눈물일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결국 아비를 죽인 자에게 복수를 한 우임금은 자기에게 복속한 나라의 수장들을 도산에 소집하여 제후들의 맹주가 되었으며, 제위에 올라 하夏왕조(BCE 2205~1766)를 개창하였다.

단주 원한의 역사 이면에는 이렇게 요堯순舜우禹 삼대에 걸친 역사와 진실이 담겨 있다. 요순선양설과 구년 홍수, 그리고 소상반죽에 얽힌 비극적 이야기를 통관해 보면 단주의 원한은 제위를 물려 받지 못한 개인 차원의 단순한 문제를 넘어서서 천하를 대동세계로 만들고자 한 원대한 이상 실현의 꿈이 좌절되며 발생한 분울함과 원통함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것이 인간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의미있는 원한의 시초가 되어 갈수록 증폭되고 확대일로로 치달으면서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살기와 참화의 기운으로 화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미 인류 해법의 한계를 넘어선 이 문제는 오직 우주의 절대자만이 무상의 권능으로 풀어낼 수 있는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인간문제가 되었다.

그렇기에 인존 천주이신 증산 상제님께서 열어주신 ‘해원解寃의 도道’는 그 무엇보다 값지고 절대적이다. 해원의 대도는 인간과 우주 속 모든 신명들과 만유 생명의 원과 한을 모두 끌러내어 원한의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는 평화와 성숙의 대도라 할 수 있다. 그 출발점에 있는 단주의 원한에 대한 이해는 천지의 원한을 해소하는 해원의 운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친히 강세하신 상제님께서 집행하신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더욱 깊게 인식할 수 있는 토대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풀어나갈 인간문제의 해법과 삶의 방식, 역사 전개의 비전과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다 할 것이다.
 




도전 속 인물 개요


인류의 원한의 뿌리, 요임금의 아들 단주
이제 원한의 역사의 뿌리인 당요唐堯의 아들 단주丹朱가 품은 깊은 원寃을 끄르면 그로부터 수천 년 동안 쌓여 내려온 모든 원한의 마디와 고가 풀릴지라. 대저 당요가 그 아들 단주를 불초不肖하다 하여 천하를 맡기지 않고 그의 두 딸과 천하를 순舜에게 전하여 주니 단주의 깊은 원을 그 누가 만분의 하나라도 풀어 주리오.

마침내 순이 창오蒼梧에서 죽고 두 왕비는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었느니라. 그러므로 단주 해원을 첫머리로 하여 천지대세를 해원의 노정으로 나아가게 하노라. 이제 사람도 이름 없는 사람이 기세氣勢를 얻고, 땅도 이름 없는 땅에 길운吉運이 돌아오느니라. (도전 2편 24장 4절~10절)

대동세계를 만들고자 한 단주의 진실 왜곡사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堯의 아들 단주가 불초不肖하였다.’는 말이 반만년이나 전해 내려오니 만고의 원한 가운데 단주의 원한이 가장 크니라. 정말로 단주가 불초하였다면 조정의 신하들이 단주를 계명啓明하다고 천거하였겠느냐. 만족蠻族과 이족夷族의 오랑캐 칭호를 폐하자는 주장이 어찌 말이 많고 남과 다투기를 좋아하는 것이겠느냐? 온 천하를 대동세계大同世界로 만들자는 주장이 곧 ‘시끄럽고 싸우기 좋아한다.’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한 성도가 상제님께 여쭈기를 “우禹가 단주의 허물을 들어 말하기를 ‘밤낮 쉬지 않고 강마다 배를 띄우고, 벗들과 떼를 지어 집 안에서 마시며 세상을 없애려 하였다.’ 하였습니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단주가 밤낮없이 쉬지 않았다는 것은 쉬지 않고 무엇인가를 하며 부지런하였다는 것이요 강마다 배를 띄웠다는 것은 대동세계를 만들자는 것이며 벗들과 떼지어 집 안에서 마셨다 함은 사람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 하였다는 말이요 세상을 없애려 하였다 하는 것은 서로 주장하는 도道가 같지 아니하였다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도전 4편 30장 5절~13절)

만고원신 해원 공사
상제님께서 이어 말씀하시기를 “요순시대에 단주가 세상을 다스렸다면 시골 구석구석까지 바른 다스림과 교화가 두루 미치고 요복要服과 황복荒服의 구별이 없고 오랑캐의 이름도 없어지며, 만리가 지척같이 되어 천하가 한집안이 되었을 것이니 요와 순의 도는 오히려 좁은 것이니라. 단주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깊은 한을 품어 순이 창오에서 죽고 두 왕비가 소상강에 빠져 죽는 참상이 일어났나니 이로부터 천하의 크고 작은 모든 원한이 쌓여서 마침내 큰 화를 빚어내어 세상을 진멸할 지경에 이르렀느니라.

그러므로 먼저 단주의 깊은 원한을 풀어 주어야 그 뒤로 쌓여 내려온 만고의 원한이 다 매듭 풀리듯 하느니라. 이제 단주를 자미원紫微垣에 위位케 하여 다가오는 선경세계에서 세운世運을 통할統轄하게 하느니라.” 하시니라. (도전 4편 31장)

새사람이 될지니라
재생신 재생신, 이 몸 사업 재생신.
재생신 재생신이요, 조화 조화 만사지라.
지심대도술知心大道術이니 깊은 마음의 문을 열어 하나같이 새사람이 될지니라. 천갱생 지갱생은 다 끝났으니 이제는 인갱생人更生이 크니라.
단주수명 우주수명丹朱受命 宇宙壽命. (도전 11편 205장)

단주와 바둑(圍碁)


우리 인간이 발명한 놀이 중 가장 지적知的인 게임은 무엇일까? 여러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아마 바둑을 꼽는 데 주저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난 3월, 인간 대표 이세돌李世乭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 사이에서 벌어진 세기의 바둑 대결에 대한 관심을 되새겨 보면 이 명제는 타당해 보인다.

바둑의 수, 바둑판의 비유
바둑판을 흔히 인생에 비유한다. 판 전체의 국면을 읽고, 부분적인 형세와 변화를 정확히 판단해서 이에 적절한 한 점 돌을 놓는다. 우리 인생도 비슷하다. 살다 보면 풀어나가야 할 문제와 만나고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판단하고, 이에 대한 선택의 책임은 온전히 본인이 져야 한다. 나아가고 물러서는 순간 판단을 잘못해 낭패를 당하게 되는 건 바둑이나 인생이나 비슷하다. 그래서 우리는 바둑을 두면서 인생의 지혜를 배우기도 한다.

바둑의 수는 천변만화하여 지금까지 수많은 바둑 대국이 있었어도 같은 판이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쌓여진 지혜가 농축된 바둑. 이 바둑의 기원에 단주대종이 있다.

바둑의 기원
바둑의 기원에는 여러 전설이 있다. 그중 가장 신빙성 있으며 흥미로운 것은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이 그의 아들 단주丹朱와 상균商均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해 만들었다는 요순창시설堯舜創始說이다.

전국시대의 책으로 알려진 『세본世本』「작편作篇」에는 “요가 바둑을 만들었고, 단주가 이를 잘 두었다”고 기록하였고, 수신기搜神記와 함께 위진 남북조魏晉南北朝시대 지괴소설志怪小說
※주10)
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장화의 박물지博物志에는 ‘요조위기단주선지堯造圍棋丹朱善之’(요임금이 바둑을 만들었고 단주가 그것을 잘했다)라는 문구가 있다.

이외에도 비슷한 시기에 양나라 사람인 소역蕭繹이 편찬한 금루자金樓子라는 책에 의하면, 요임금이 수양을 목적으로 맏아들 단주에게 바둑을 가르쳤다. 바둑판은 문상文桑의 나무로 만들었고, 바둑알은 물소 뿔과 상아로 만들었다고 한다.

단주는 처음에 바둑에 재미를 느끼고 몰두했으나 얼마 후에는 다시 친구들과 어울려 지냈다고 한다. 원나라 때 편찬된 바둑책인 현현기경玄玄棋經에서도 “옛날 요 순이 바둑을 만들어 아들을 가르쳤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하튼 바둑을 최초로 둔 인물이 단주인 것은 맞는 것 같다.

한편 요임금이 단주에게 바둑을 가르친 시점은 순에게 제위를 넘겨준 이후라는 시각이 있다. 제위를 잇지 못한 아들 단주에게 바둑을 만들어 주면서 제위를 잇지 못한 원과 한을 삭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가 순을 28년간 시험 끝에 제위를 물려주었다는 『사기』 「오제본기」 기록에 따라 단주는 최소한 50세가 되어서야 바둑을 배우게 된 것이다.

바둑판의 원리
바둑은 가로 세로 각 19로路, 총 361호戶
※주11)
로 바둑판에 두 사람이 음양을 상징하는 흑과 백 돌을 번갈아 놓아가면서 누가 많은 집을 내느냐를 겨루는 게임이다.

바둑판에는 기본이 되는 중요한 아홉 개의 화점花點이 있으며, 그 중 한 가운데에 있는 화점(좌표 10×10)을 하늘의 근원 또는 천지를 운행하는 중심이라는 의미로 천원天元이라고 한다. 본래는 태극이라고 했다는데 근세에 와서 천원이라고 바뀌었다 한다. 우리말로는 배꼽점이라고 한다.

우리의 옛 바둑판의 화점은 네 귀와 네 변의 16개점과 그 사이에 8개의 점, 중심의 천원점 1개를 합하여 모두 25개의 점이 있었다고 한다. 중심의 천원을 제외하고 24방위 또는 24절기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바둑판의 네 귀(모퉁이)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하며, 화점이 네 번째 줄과 네 번째 줄의 교차점에 있는 것 역시 사계절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네 귀의 화점은 각각 춘분, 하지, 추분, 동지를 상징한다. 바둑판 자체가 우주를 상징하고 우주의 이치를 밝혀주는 도구였다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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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읽기와 게임의 룰, 욱여드는 형상
바둑을 둘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읽기이다. 항상 선수先手와 후수後手가 정확해야 하며, 하나의 돌을 놓기 전에 그 돌이 계기가 되어 발생하는 수많은 변수들을 머릿속에서 종합하여 언제나 상대방보다 한 수가 높게 포석하여야 한다.

또한 게임을 시작할 때 제일 먼저 두는 곳은 중앙이 아니라 외곽부터이다. 즉 밖에서 안으로 욱여 들어오는 형상인 것이다. 마치 그 동안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났던 세계대전이나 여러 사건 등 모든 문제가 지구의 중심 혈자리인 우리 대한민국 한반도로 집결하여 온 모습과 비슷한 형국이다.

상제님께서는 단주를 해원시켜 주시기 위해 그에게 천상 자미원에 머물며 세계 정치 운로를 관장하게 하는 공사를 보셨다. 전 세계의 정치 판도를 주인인 한국을 중심으로 4대 강국(네 신선)이 바둑을 두는 오선위기五仙圍碁의 형국으로 잡아 돌리시고 후천의 새 역사 창업에 단주를 주인공으로 참여하게 하신 것이다. 이 공사에 따라 단주대종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의 세계 정치질서를 통할하며 바둑을 두듯 인류 역사를 조율하고 있는 것이다. 최초로 바둑을 둔 인물인 만큼, 그가 가장 자신 있는 바둑 형상으로 세계 운로를 진행시키고 있다고 봐야 하리라. ◎


※주1)
‘원한’은 원래는 원망할 원 怨이지만 상제님께서는 원통할 원寃 자를 사용하셨다. 원寃은 작은 동물을 가두는 새장 모양의 우리를 의미하는 멱冖 과 토끼를 의미하는 토兎가 결합된 글자로, 토끼가 우리에 갇혀서 나가지 못하고 움츠리고 있는 상태를 본뜬 문자다.

※주2)
소전씨의 맏아들이 신농씨이고, 둘째 아들이 공손씨로 그 10세손이 황제黃帝 헌원軒轅이다. 헌원은 배달국 14대 치우천황의 제후였다.

※주3)
또는 환두讙頭, 환두讙兜, 환주讙朱 등으로도 불린다.

※주4)
죽서기년: 사마천의 사기와 함께 중요한 고대 역사서의 하나이다. 제목은 없고 출토된 지명을 따서 ‘급총기년汲塚紀年’ ‘급총고문汲塚古文’ 또는 ‘급총서汲塚書’ 등으로 불린다. 원서가 죽간竹簡으로 되어 있어 죽서竹書라고도 하며, 역사적인 사건들을 연대순으로 기술하는 편년체로 되어 있어 기년紀年으로 칭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죽서기년竹書紀年이라고 부른다.

201605_1121.jpg서진 태강 2년인 281년 허난성河南省 지셴汲縣의 양왕릉에서 《목천자전穆天子傳》《주어周語》 등과 더불어 발견되었고, 당시 위魏의 안리왕安釐王(일설에는 위양왕魏襄王)의 묘에 매장되어 있어서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부터 훼손을 피할 수 있었다. 죽서는 하은주를 거쳐 위魏의 양왕襄王(재위 BCE334∼BCE319) 때까지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발견 즉시 진晉나라 조정에 바쳐졌고, 순욱荀勖 등 학자의 정리, 교정 과정을 거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수隋나라 때까지 도합 13권이 있었는데 점차 흩어져 없어지고 남송南宋 시대에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현재 유포되고 있는 양梁나라의 심약沈約의 주가 붙은 《주서기년》 2권은 원元·명明나라 때의 위작僞作이다. 1917년 왕궈웨이[王國維]는 고서에 이용된 본래의 기년을 집성集成 교정하여 《고본죽서기년집교古本竹書紀年輯校》를 저술하고, 다시 심약이 주한 《금본죽서기년今本竹書紀年》과 《고본죽서기년古本竹書紀年》의 차이점을 밝혔다. 그래서 《고본죽서기년》의 사료가치가 높이 평가되었다.

※주5)
회문산回文山(837m)은 김제 금산면에 걸쳐 있는 모악산(793m)과 함께 천지 부모산이 된다. 회문산에서 문文은 부父로 새기기도 한다. 회문산은 전라북도 순창군에 위치해 있는데, 호젓한 분위기와 광활한 전망이 일품으로 숲이 무성하다. 북으로는 섬진강, 동으로는 오원천, 남으로는 구림천이 태극 모양으로 감싸고 있다. 주봉에서 서쪽으로 투구봉(장군봉), 동쪽으로 태산 같은 지리산, 남쪽으로는 무등산無等山, 북쪽으로는 모악산이 바라다 보인다.

이곳은 상제님께서 사람 몸에 24추椎가 있듯이 회문산에 24혈穴이 있다고 하시고, 이곳에 산군山君 도수를 붙이셨고(4편 109장) 최수운 대성사를 초혼하여 장사지내기도 하시고(5편399장), 가을천지 추수 운과 연관되는 세 번 밤 까는 도수로써 오선위기 공사(5편 296장)와 단주 해원(5편 176장) 도수를 보기도 하셨다.

※주6)# ‘단주수명’과 ‘오선위기’에 관련해서는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의 『천지의 도 춘생추살』과 안경전 종도사님의 『증산도의 진리』,『개벽실제상황』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 여러 번 읽다 보면 그 의미에 깊이 탄복할 것이다.

[#※주7)
이 처참한 홍수에 대한 기록은 『사기』「오제본기」와 『서경』「요전堯典」과 『산해경』「해내경편」에 단편적으로 나와 있다. 좀 더 자세한 사항은 『맹자』「등문공 상」「등문공 하」 편에 기록되어 있다.

※주8)
순은 우순虞舜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우’는 나라이름이며 유우씨有虞氏라고도 한다. 성은 요姚, 이름은 중화重華인데 순의 눈동자가 두 개라서 중화라고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주9)
순의 부친인 고수高叟(高叟란 장님을 뜻한다)는 동방 조선의 조정에서 농사를 주관하는 직책을 맡은 고시高矢의 친형이다. 고수는 아들 순이 서방 정권에서 벼슬을 하다 마침내 왕위에 올라 동방의 조선에 맞서자 아들과 대립하였기에 이를 곱게 보지 못한 서방 한족의 사가들이 그를 눈먼 자라고 폄하한 것이다.

※주10)
지괴소설: 괴이한 것을 기록해 놓은 소설이란 뜻으로, 여기서 ‘소설’이란 서구식 의미인 픽션(fiction), 곧 허구虛構가 아니라 유가 경전에 의거하지 않는 자질구레한 말이나 길거리와 골목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의 모음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지괴소설은 대부분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일이나 기이한 이야기에 대한 기록이라고 봐야 하겠다.

※주11)
총 361점에 천원점 1개를 제하면, 360점이 남는다. 이에 대해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께서는 이 수는 조선시대 우리나라 고을 수인 360고을과 일치하고 있다고 하셨다(『천지의 도 춘생추살』 156쪽 참조). 또한 30일 1개월을 12개월로 곱한 수인 정원수正圓數 360일과도 일치한다.


<참고문헌>
『증산도 도전』 (도전편찬위원회, 대원출판, 2003)
『천지의 도 춘생추살』 (안운산, 대원출판, 2007)
『역주본 환단고기』 (안경전, 상생출판, 2012)
『증산도의 진리』 (안경전, 상생출판, 2014)
『개벽실제상황』 (안경전, 대원출판, 2009)
『인류원한의 뿌리, 단주』 (이재석, 상생출판, 2009)
『서경』 (권덕주, 올재, 2013)
『사기 본기』 (정범진 외, 까치, 2014)
『산해경』 (정재서 역주, 민음사, 2001)
『갑골에 새겨진 신화와 역사』 (김성재, 동녘, 2000)
『장자』 (안동림 역주, 현암사, 1998)
『맹자집주』 (성백효 역주, 전통문화연구회, 1996)
제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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