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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도사님과 함께 떠나는 금산사 성지순례

종도사님과 함께하는 성지순례 | 무극대도 일꾼들의 진리 고향 금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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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5일 초립동이 일꾼들의 두 번째 성지순례 여행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무극대도 일꾼들의 진리 고향인 모악산 금산사 순례다. 금산사는 천지 어머니 산인 모악산母岳山 자락에 있어 언제 가도 정겨움과 포근함을 느낄 수 있다. 종도사님과 함께 천지부모이신 상제님과 태모님의 숨결을 느끼는 아름다운 순례길을 따라가 보았다. 금산사 성지의 각 코스를 경유하면서, 도전 성구와 관련 항목에 대한 자료 소개를 제외하고 기사 본문의 내용은 모두 종도사님의 말씀으로 구성되었다.


 

금산사 및 구릿골 일대(위성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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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에 대한 도훈 말씀

상제님께서 늘 금산사를 자주 집처럼 드나드셨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이곳이 아주 정겨운 곳이다. 여기는 우리 참동학 무극대도 닦는 사람들의 고향이고, 앞으로 후천 5만 년 지구촌 인류와 천지신명들의 진리 고향이다. 여기가 금제군(김제군)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 금미륵불, 전부 금金 자가 들어간다. 모악산은 금산金山이다. 이 천지의 원 주인 아버지가 미륵부처님으로 오시는데 바로 천지의 가을 산에 오신다. 그것을 사자성어로 서신사명西神司命이라고 한다. 가을철에 인류 지구문명을 추수하시는 분이 바로 서신西神, 금신金神으로 오신다. 지구 어머니 모악산에 올 때는 이런 큰 이치를 알아야 한다. (146년 음11월 27일) 


 

미륵불의 성지, 금산사 순례를 떠나면서

 

미륵불이신 증산 상제님의 미래의 주역, 초립동

오늘 마침내, 약 150여 년 전에 인간의 몸으로 이곳 동방 땅에 강세하신 증산 상제님의 도생道生들이요, 후천의 꿈나무들이며, 미래의 주역들인 초립동草笠童들이 선천 불교 3천 년 역사 시대를 마무리하고 가을 천지문명의 미륵불 시대를 본격적으로 개막하려고 하는 역사적인 시간대를 맞아 금산사金山寺 순례의 장정에 올랐습니다.

천상 도솔천兜率天에 계신 미륵불의 명命을 받고 이 세상에 내려온 석가불은, 자신의 불법이 인류 교화력의 한계에 이를 때, 진정으로 온 인류를 건져 내시며 새 진리ㆍ새 법을 내려 주시는 미래의 부처님, 인류 희망의 부처님, 구원의 부처님으로서 도솔천의 천주이신 미륵님이 이 동방 땅에 내려오실 것을 아들 라훌라와 종통 전수의 계승자 가섭迦葉 등에게 미래의 역사적 사건으로 선언하였습니다.

바로 그 미륵불이신 상제님께서 금산사를 통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상제님은 평소 금산사를 당신님의 집처럼 자주 왕래하셨습니다. 9년 천지공사를 마치신 후 천상 옥좌로 돌아가실 때에도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노라.” 하시며, 금산사를 통해 환궁還宮하셨습니다. 금산사는 가을 문명의 무극대도의 첫 관문입니다. 상제님께서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 미륵불을 보라.”고 하셨는데, 미륵전을 참배할 때 상제님의 이 말씀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됩니다.

오늘 금산사 순례를 통해서, 그동안 준비해 온 불교 3천 년 역사문화 경전사經典史, 또 역사적인 불ㆍ보살들과 조사들의 깨달음의 정수를 정리하면서, 이제 인류 문명사가 본격적으로 개벽불開闢佛이신 미륵부처님의 새 진리의 길로 접어들게 됨을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또한 『도전』 강독을 앞두고 오늘 실시되는 후천선경의 주인공인 초립동 제2차 성지순례, 금산사 성지 답사는 우리 모두에게 후천 가을 문명의 중심주제인 태을랑太乙郞의 태을선太乙仙 도심주道心柱를 체득하는 데 잊을 수 없는 큰 추억과 현장 문화체험이 될 것입니다.

우선 금산사로 들어서기 전에, 상제님께서 모악산에서 흘러내려 오는 물가 옆에 우뚝 서 있는 (윗)상나무쟁이에서 개벽사의 미래 주인공 초립동과 더불어 상씨름 공사를 보시고, 그 마지막 한판 승부를 열흘 후 어천하시기 4일 전인 기유년(도기 39, 1909) 6월 20일에 지소촌紙所村에서 초립동과의 생사를 겨룬 최후의 상씨름 역사 전쟁 공사를 보셨습니다.

그 (윗)상나무쟁이 성지를 뒤로 하고 금산사 길로 올라서면, 상제님의 분신이요, 도道의 종통이며, 대두목의 상징인 임술생 태운장 김형렬金亨烈 성도가 태어난 환평環坪 마을이 있고, 이어서 김형렬 성도와 친구처럼 지냈던 인물로서, 상제님이 천상에서 데리고 내려오신 유일한 지상의 친구, 하나님의 영원한 친구인 안필성安弼成 성도가 살았던 계룡鷄龍마을이 있습니다.

오늘 성지순례의 첫 말씀은 금산사의 정문인 돌무지개문(홍예문虹霓門)인데, ‘상제님은 왜 9일 동안 충청도에 다녀오신 후 돌무지개문에서 깊은 밤에 김형렬 성도를 부르셨는가?’ 하는 문제를 정리해 봅니다. 미륵전 앞에서는 금산사의 역사적 의미와 미륵전에 대해서, 또 불법의 근본정신과 불교의 정수, 석가불과 미륵불, 미륵님으로 오신 상제님의 진법의 핵심 정수와 총 결론인 태을랑 문화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자, 다 함께 “만국활계 남조선 청풍명월 금산사”란 말씀에서 이 “청풍명월 금산사淸風明月 金山寺”의 참뜻을 깨쳐보는 금산사 순례의 길을 함께 떠나 봅니다.

도기 146년 음력 11월 27일(양력 12월 25일)
종도사宗道師 안경전安耕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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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돌무지개문 앞에서

 

모악산에 대한 성구

 

* 전주 모악산母岳山은 순창 회문산回文山과 서로 마주서서 부모산이 되었나니, 부모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모든 가족을 양육 통솔하는 것과 같이 지운地運을 통일하려면 부모산으로부터 비롯해야 할지라. (증산도 道典 4:19)
* 모악산 치맛바람을 아느냐? 모악산 치맛바람이 장차 천하를 진동케 하리라. 모악산은 청짐관운형靑鴆貫雲形인데 그 살기殺氣를 피워 내는 바람에 세계가 물 끓듯 하리라. (증산도 道典 4:148)


 

금산사에 대한 성구

 

* 중 진표眞表가 석가모니의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최수운崔水雲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 (2:30)
* 천황지황인황후天皇地皇人皇後에 천하지대금산사天下之大金山寺라 (2:66)
*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이요 청풍명월금산사淸風明月金山寺라
문명개화삼천국文明開化三千國이요 도술운통구만리道術運通九萬里라
만국을 살려낼 활방은 오직 남쪽 조선에 있고
맑은 바람 밝은 달의 금산사로다.
가을의 새 문명은 삼천 나라로 열려 꽃피고
도술 문명의 대운은 우주 저 끝까지 통하리라. (5:306)


 

미륵불이 어찌 모악산에 있을까?


금산사金山寺는 미륵부처님의 고향, 미륵신앙의 고향이다. 이것을 꼭 염두에 둬야 한다. 또 금산사하면 무슨 산이 생각나요? (모악산) 모악산母岳山은 문자 그대로 어머니 산이다. 그럼 아버지산은 어디에 있어? 오선위기五仙圍碁가 있는 회문산. 전라남북도 경계에 있는 회문산回文山이다.

회문산과 모악산은 서로 마주 보고 부모산父母山이 되었다. “미륵불이 어찌 모악산에 있을까?”(도전 2편 67장) 그 말씀을 생각해 보면 모악산이 지구의 어머니 산이 된다는 것은 이 지구가 바뀌는구나, 천지개벽이 되어서 지구의 어머니 산이 되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제님께서 늘 금산사를 자주 집처럼 드나드셨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이곳이 아주 정겨운 곳이다. 여기는 우리 참동학 무극대도 닦는 사람들의 고향이고 앞으로 후천 5만 년 지구촌 인류와 천지신명들의 진리 고향이다.
 

모악산은 청짐관운형


가을천지의 어머니 산으로 태어나기 전에 모악산은 지금 기운이 어떠냐? 『도전』에 보면 “모악산 치맛바람을 아느냐?”(4편 148장)라는 성구가 있다. 치맛바람은 별로 좋은 의미가 아니다. 모악산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술어를 빌리면, 청짐관운형靑鴆貫雲形이다. 푸른 짐새가 구름을 꿰뚫은 형이다. 독사가 천 년 묵으면 짐새가 된다는 전설이 있다. 옛날 한나라를 창업한 한고조 유방의 아내가 여태후인데 시기 질투가 많고 심성이 좋지 않았다. 한고조의 또 다른 아내 척부인을 질투해서 사지를 잘라 버리고, 돼지우리에다 집어넣었다. 나중에 척부인을 죽일 때 짐새의 독을 풀어 가지고, 독주를 먹여서 죽였다는 말이 있다. 짐새가 그렇게 독을 품고 있는 새다. 모악산 기본 형국이 그런 짐새가 구름을 꿰뚫은 형국이다. 천지의 어머니 산이지만 그런 살기를 품고 있어서, 상제님이 선천 상극세상을 정리하시는데 그 기운을 전부 풀어 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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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은 금산이다


여기가 금제군(김제군)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 금미륵불. 전부 ‘금’ 자가 들어간다. 음양의 이치로 보면 서방 금金 자를 썼다. 모악산은 금산金山이다. 금金은 가을을 의미한다. 그래서 여기는 가을 산이다. 이 천지의 원 주인 아버지가 오시는데 바로 천지의 가을 산에 오시는 거다. 가을철 기운을 몰고 오신다. 그것을 사자성어로 서신사명西神司命이라고 한다. 서신은 우주의 가을철에 오시는 천지의 추수자 하나님을 말한다. 그것을 음양오행 원리로는 가을을 나타내는 금 기운을 써서 금신金神이라고 한다. 공간적인 방위로 말할 때는 서신西神이라고 그런다. 가을철에 인류 지구문명을 추수하시는 분이 바로 서신, 금신으로 오신다. 지구 어머니 모악산에 올 때는 이런 큰 이치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금산사에 오면 인류 문화, 역사, 생명의 근원을 찾는 회귀본능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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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화의 틀이 바뀌는 대사건


상제님께서 여기 금산사를 집처럼 자주 오셨다. 지금 우리가 금산사 입구 돌무지개문에 와 있다. 지금 모습은 상제님 계셨을 때 당시 모습으로 최근 복원된 것이다. 자료집에 보면 추사 김정희의 제자 소치小痴 허련許鍊의 그림이 있다. 거기에 상제님 당대의 금산사 모습이 나와 있다. 그게 아주 소중한 자료다. 거기에 보면 돌무지개문이 있고, 그 위에 전각이 있다. 이 돌무지개문 바로 위 전각에 상제님이 앉으셔서 누구를 불렀나? “형렬아, 형렬아, 형렬아!” 이렇게 세 번을 부르셨다. 이 사건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인류 역사의 틀, 인류 문화사의 큰 틀이 바뀌는 대사건이다. 그때가 상제님이 인간 세상에 오셔서 31살 되시던 해다. 상제님이 이 위에 앉으셔서 북서쪽 제비창골에 살고 있었던 김형렬 성도를 향해서 “형렬아, 형렬아!” 이렇게 소리를 지르신 거다. 증언을 들어 보면 그때 시간이 낮이 아니고 깊은 밤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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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구원의 실제 첫 발걸음을 떼신 날


상제님은 성수 31살 되시던 해, 신축辛丑년(도기 31년, 1901년) 음력 7월 7일 가을 천지의 도통문을 여시고 미륵부처님의 도를 이루셨다. 해가 바뀌어서 32살 되시던 해, 임인壬寅년 음력 4월 4일 바로 저 앞에 있는 원평 장터에서 김형렬 성도를 만나셨다. 김형렬 성도가 식구들 밥 먹이려고 양곡을 팔러 온 돈을 상제님께 다 드렸다. 상제님이 그 아름다운 마음씨에 큰 감동을 하셨다. 형렬에게 “내가 지금은 충청도에 볼일이 있어 가니 갔다 돌아오는 길에 들를 참이네.”(도전 3편 8장) 그러셨다. 그러고서 9일 후에 바로 여기에 오셨다. 그날 깊은 밤에 상제님이 여기서 “형렬아, 형렬아!” 외치셨다. 그때 태운장은 바로 서전재 너머 제비창골에 있는 집에서 잠들어 있었는데 귓가에 대고 부르는 것처럼 그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밖에 나가서 보니까 금산사 쪽에서 들려왔다. 상제님이 천지 성령으로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기운을 받아서 상제님께서 금산사에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 김형렬 성도가 호롱불을 들고 서전재를 넘어 여기에 와서 상제님께 절을 하고 상제님을 만나셨다. 얼마나 반가웠겠어. 아마 그때 시간이 하늘 문이 열리는 자시子時가 아니냐. 여기서 상제님을 모시고 이쪽 아래로 용화동으로 해서 제비창골 집으로 가셨다. 집에 들어가시기 전에 감나무 아래에 앉으셨다. 천하사에 마음을 변하지 않겠느냐고 세 번 언약을 받으시고 집으로 들어가셨다.(3편 11장) 그래서 임술壬戌생 태운장 김형렬 성도는 인간으로 오신 도솔천 천주님, 상제님의 분신이면서 상제님의 대행자이시다. 상제님이 무지개문에서 인사의 주인공 김형렬 성도의 집으로 가신 사건은 뭐냐? 가을 천지개벽기에 인간으로 오신 도솔천의 천주 미륵님이 인류 구원의 실제 첫걸음을 인간 세간사를 향해서 내딛으신 것이다. 천지 개조 역사를 보시는 실제 첫걸음을 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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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는 태을주의 제2고향


미륵불은 개벽불이다. 미륵님은 하늘과 땅, 인간과 천상 신들의 세계를 새 질서로 바꾸어 놓으시는 부처님이다. 미륵불은 궁극의 부처님, 종불宗佛이다. 구원의 부처, 희망의 부처 미륵불은 서 있는 부처님이다. 금산사 미륵불을 보면 미륵전 안에 금불이 서 있다. 세계에서 실내불로서 가장 큰 미륵부처님이다. 미륵불은 신선이 되시는 부처님이다. 앞으로 미륵부처님의 도를 받는 일꾼들, 제자들은 어떤 부처가 되느냐? 신선이 된 부처, 신선으로 살아가는 부처가 된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상제님이 동학혁명이 패망당하는 24세 전후에 여기 금산사에 오셨는데 누구를 만나셨나? 바로 신선이 되게 하는 주문, 태을주를 전수해 주신 김경수 대성사를 만나셨다. 김경수 대성사가 미륵불을 참배하고, 여기서 상제님을 뵈었다. 김경수 집안의 후손들은 김경수 할아버지가 상제님보다 2세대 내지 3세대 나이가 많으셨다고 한다. 상제님이 20대였다면 김경수라고 하는 분은 최소 70대에서 80대 초였다.

201704_1102.jpg후천 5만 년 신선으로 살아가는 부처님들의 새 세상이 바로 용화낙원이다. 앞으로 5만 년 지상 조화선경, 미륵불 세상을 만드는 심법을 전수받는 조화의 주문이 태을주이다. 50년 동안 기도해서 그 주문을 천상에서 받아 내린 분이 김경수 성인이다. 그가 금산사 미륵불을 참배하고 나서 상제님을 뵈었다. 그리고 상제님께 직접 태을주를 전수해 주셨다. 바로 그 사건이 금산사 여기에서 이루어졌다. 금산사는 이런 우주사적인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금산사는 태을주의 제2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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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련암에서

 

『도전』 성구

 

* 계묘癸卯(道紀 33, 1903)년 4월에 상제님께서 모악산 안양동安養洞 청련암靑蓮庵에 머무르시며 공사를 보시니 이때 박금곡이 수종 드니라. 상제님께서 11일 해 돋기 전에 공사를 마치시고 아침 해가 솟아오를 때에 ‘용봉龍鳳’ 두 글자를 상하上下로 대응시켜 크게 쓰신 뒤에, 그 왼편에 작은 글씨로 ‘독존석가불獨尊釋迦佛’이라 써서 금곡에게 주시니, 금곡이 상제님의 친필을 공손히 받아 먼저 깨끗한 종이로 싸고 다시 비단으로 고이 감아 보물처럼 보관해 두니라. (6:8:1~4)



계묘癸卯년(1903년) 4월 초에 상제님이 여기 청련암에 오셔서 공사를 보셨다. 4월 11일 새벽에 공사를 보시고서 해가 떠오를 때 두 글자를 쓰셨다. 아래에다 용龍 자를 쓰시고, 그 다음 봉鳳 자는 뒤집어 가지고 거꾸로 쓰셨다. 용과 봉이 서로 머리를 맞대는 모습으로 그리셨는데 용과 봉은 누가 높다 누가 낮다 할 수가 없다. 용봉龍鳳 두 글자를 쓰셔서 대원사 주지 박금곡에게 주셨다. 그런데 왼쪽에 다섯 글자가 더 있다. 조금 작은 글자로 ‘독존석가불獨尊釋迦佛’ 다섯 글자를 쓰셨다. 선천 부처와 후천 대불大佛이 있다. 상제님의 도통을 전수받으신 태모님께서 후천 대불도수를 보셨지 않나. 선천의 지존이신 석가불보다도 더 큰 부처님, 우주의 지존이신 상제님이 미륵불의 도를 여는 것을 말한다. 용봉은 미륵님의 도법정신을 상징하고 또 미륵불의 도를 여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가 안양동安養洞인데 안양은 안양安養 양신養神에서 왔다. 평안한 마음을 기르고, 몸을 새롭게 하고 불멸의 몸을 길러 낸다는 의미다. 그래서 안양동은 바로 천지의 조화로운 생명의 마음, 부처의 마음을 기른다는 뜻이 있다. 안양동은 직접적으로 종통하고도 연관이 있다. 왜냐하면 용봉도수는 상제님 태모님의 대행자를 상징한다. 용은 천지의 물을 맡아 다스리고, 봉황은 천지의 불새, 태양새라고 해서 태양의 불기운을 맡는다. 용과 봉은 이 세상에서는 없지만 영적인 4차원 세계에서는 자연신으로 있다. 용이 중간 하늘에서 바닷물을 끌어올려 비를 내려 준다. 용과 봉이라는 것은 하늘과 땅, 천지부모의 대행자이다. 순수 양, 하늘을 대행하는 것은 감坎괘다. 감괘는 중앙에 양이 있고 천지의 물을 상징한다. 불이라는 것은 땅 어머니의 순수 음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용문화, 용토템은 태호 복희씨가 처음 가지고 오셨다. 태호 복희씨는 바람 풍風가로 인류 최초의 성씨다. 봉의 문화를 처음 가지고 오신 분은 바로 염제 신농씨다. 신농씨는 강姜가로서 인류 성씨의 아버지가 된다. 그래서 미륵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 강姜씨로 오셨다. 강씨는 그 문화가 봉황이다. 중국의 염제신농씨 사당에 가보면 봉황새가 꽉 차 있다. 복희씨와 염제 신농씨, 인류 성씨의 뿌리 족속의 상징이 용과 봉이다.

여기서 보면 제비산이 보이고 제비산 뒤에 구성산이 보이고 오른쪽에 계룡봉이 보인다. 계룡봉에서 상제님의 친구, 영원한 인간 세상의 친구, 안필성 성도가 저기서 살았다. 그 아래 조금 내려가다 보면 용화동인데 그 왼쪽 환평에서 김형렬 성도가 살았다. 위아래 마을에서 그렇게 두 양반이 친구처럼 살았다. 김형렬 성도가 안필성 성도보다 여덟 살이 많다.

여기 청련암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모셨는데 아미타불은 무량광, 무량수불이다. 수명이 제한이 없고 광명이 경계가 없는 온 우주의 광명 부처님이다. 불가에서는 안양정토安養淨土라고 해서 아미타불의 정토낙원을 말한다. 아미타불은 미륵님과 함께 이 세상에 오셔서 미륵님의 지상선경 용화낙원을 건설하시는 그런 부처님이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에서 나무라는 것은 돌아간다는 의미다. 아미타 부처님에게 돌아간다 말이다. 결국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것은 아미타 부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결론은 우리 모두가 아미타불이 된다. 우리는 아미타불이다! (복창) 이 아미타불은 미륵부처님을 모시고 그 부처 세상을 완성하는 부처님이다. 그럼 모든 걸 완성하는 자가 누구냐? 바로 상제님의 일꾼들 초립동草笠童이다. 우리 초립동이들이 바로 이 태을주 조화주문을 받아가지고 태을선, 태을 부처가 된다. 이번에 1만 2천 명의 도통 부처들이 나온다.

저 하늘을 봐. 하늘은 동서남북, 위아래 아무것도 없어. 하늘은 어떤 성질이 있는 게 아니다. 불교는 하늘 마음, 하늘의 도를 근본으로 해서 생겨났다. 그래서 괴로울 때, 자기 한계를 느낄 때, 자기가 어리석다고 느껴질 때 맑은 하늘을 보라. 이것이 바로 본래 자연의 마음이고 부처의 마음이고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들 생명의 본성은 나이가 많고 적고, 배우거나 못 배우거나 키가 작거나 크거나에 전혀 관계없다. 우리 마음이 본래 우주의 마음이고 우리는 우주 자체다. 나는 살아 있는 우주다. 나는 살아 있는 천지다! 여기 안양동에서는 이걸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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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 앞에서

 

용소에 대한 성구

 

* 하루는 상제님께서 형렬과 호연을 데리고 금산사 용소龍沼에 이르시어 호연에게 “내 손 잡아라.” 하고 손을 내미시거늘, 호연이 손가락을 잡자마자 상제님께서 용소 안으로 쑥 들어가시니라. ··· 잠시 후 어디선가 “오빠, 오빠~” 하고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리거늘, … 말씀하시기를 “여기에 거꾸로 빠져서 죽은 사람인데 자기 오빠를 슬프게 부르고 있구나.” 하시고, 용소 밖으로 나오시어 제물을 차리고 친히 제를 지내 주시며 신도에 칙령을 내려 그 여인의 영혼을 데려가라고 명하시니라. (9:81)


 

천왕문 먹구렁이 공사

 

* 하루는 상제님께서 금산사 천왕문天王門의 상량을 커다란 구렁이로 만드시니 중들이 무섭고 징그러워 근접을 못하는지라 … 커다란 구렁이로 만드시니 중들이 무섭고 징그러워 근접을 못하는지라 … “구렁이라고 이 상량을 짐승으로 알지 말아라.” 하시고 … 잠시 후 상제님께서 간짓대 앞에 서시어 구렁이 흉내를 내며 춤을 추시니 구렁이가 바닥으로 떨어져 함께 춤을 추거늘, 상제님께서 “용마龍馬내려졌다!” 하고 소리치시니라. (9:38:1~5)

* 4월 초파일에 … 사천왕상 꼭대기에서 커다란 먹구렁이가 기어 나와 혀를 내두르며 “남의 것 훔쳤거나 훔쳐 먹은 사람들, 죄지은 사람들은 다 나와라.” 하고 … “남의 길쌈해 주고 실꾸리 도둑질해서 옷 해 입고 온 사람은 비켜서라.” 하니,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며 “아이고, 참말로 맘씨 옳은 사람이나 다닐까, 맘씨 궂은 사람은 여기 못 오겠네.” 하고 수군거리니라. (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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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소龍沼에서의 천도식


우리가 금산사 경내에 들어와서 천왕문天王門 앞에 서 있다. 왼쪽에 있는 다리가 무슨 다리? 다 함께 해탈교解脫橋.(복창) 예전에 해탈교 바로 위 한 10미터 지점에 용소가 있었다. 도전에 보면 어느 날 상제님이 형렬과 호연을 데리고 저 용소 앞에 오셨다. 상제님이 저 용소 앞에 서셔서 갑자기 호연의 손을 잡고 용소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셨다. 호연이 무서워서 상제님 손을 꽉 잡았는데 갑자기 급류가 나타났다. 예로부터 여기의 물이 깊어 가지고 한번 빠지면 살아 나오지를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속에서 10대 소녀 같은 젊은 여인이 “오빠, 오빠.” 하면서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그 죽은 영혼의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그래서 상제님이 그 죽은 여자 신명을 데리고 나오셔서 천도식을 올려주셨다. 그 여인이 물에 빠져서 거꾸로 서서 죽었는데 그 육신에서 영혼이 빠져나와 가지고 수신이 돼서 빠져나오지를 못하니까 오빠, 오빠 찾으면서 그 숱한 날들을 살려 달라고 절규를 하는 거여. 지금 세월호 사건도 그런 거와 같은 거야. 바닷속에서 “엄마 아빠 살려 주세요.” 하고 절규를 한다 말이여. 우리가 천도식의 중요성을 이 용소에서 크게 배우게 된다. 영혼을 건져 내는 것은 인사人事를 통해서, 사람의 손길을 통해서 건져지는 것이다. 인간이 죽은 뒤에 그 신명들의 억울한 죽음과 고통이라는 것은 사람의 손길을 통해서 새로운 삶의 길로 인도되는 것이다. 불가에도 천도식 문화가 아주 잘 정비돼 있다.
 

금산사 구렁이 공사


여기 사천왕문四天王門 앞에 왔다. 불법을 닦아 가지고 부처님의 극락세계에 들어갈 때는 이 천왕문을 통과해야 된다. 천왕문은 문자 그대로 천상에서 부처님의 불법, 또는 불법을 닦는 구도자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말한다. 동서남북에 4대 수호신이 있다. 동방에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이 있다. 나라를 지킨다. 그 왼쪽에는 칼을 들고 있는 남방 증장천왕增長天王이 있다. 사람들의 선한 마음, 선근을 늘려 준다, 강하게 해 준다 해서 증장천왕이라고 한다. 그리고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이 있다. 아주 눈을 부릅뜨고 있다. 용과 여의주로 상징이 된다. 그 다음에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불법을 듣는 것을 즐겨 하시고 이 도량을 지켜준다. 후천문화에서는 천지의 팔문八門도수가 붙어 가지고 사천왕四天王 문화가 팔천八天, 천왕문화로 더 강화가 될 거다. 천왕은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다. 정법이 아닌 일체의 난법, 법을 파괴하고 흔들고 뒤집는 모든 난법을 처단한다. 부처님의 불법을 훼방하면 누구도 다 목을 베어 버리겠다. 이런 위엄을 떨치고 있다. 바로 갑진甲辰년(1904년), 상제님 성수 34살 되시던 해에 이곳에 오셔서 직접 공사를 보셨다. 이 천왕문의 위에 있는 상량 봇돌이를 구렁이로 만들어 놓으셨다. 그러시고서 상제님이 이 구렁이로 하여금 천왕의 목소리를 내게 하셨다. “남의 것 훔쳤거나 훔쳐 먹은 사람들, 죄지은 사람들은 다 나와라.” (9편 39장) 그리고 나서 그 먹구렁이가 달려들어 한 여자의 옷을 확 벗겨 버렸거든. 남의 길쌈을 해 주고서 실꾸리를 훔쳐서 해 입은 옷이 아니냐? 도둑질해서 입은 옷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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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죄를 지은 자는 천왕문을 통과하지 못해서 불법에 낙원세계에 들어갈 수가 없다. 우리가 정법의 수호신이 될 때 부처님의 불국토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단순히 뭐 좀 알고 수행을 조금 했다고 해서 부처의 세계에 가는 게 아니다. 상제님께서는 “죄가 없어도 있는 듯이 잠시라도 방심하지 말고 조심하라.”(7편 24장) 하셨다. 오늘 내가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무엇을 잘못 판단했는가 이런 것을 늘 헤아려 보며 아침, 저녁으로 청수 올리고 자기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걸 과감하게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고 늘 참회하는 마음을 가질 때 이 천왕문의 관문을 당당하게 통과할 수 있다.
 

수호신으로서의 뱀 문화


도전에 보면 금산사 천왕문 상량에서 먹구렁이가 위에서 떨어져 내려와서 사람처럼 상제님하고 같이 춤을 춘다. “그걸 구렁이로 알지를 말아라. 용마(龍馬) 내려졌다!”(9편 38장)는 상제님 말씀이 있다. 그래서 이 천왕문 도수에는 용마 도수가 있다. 선천 문명에서는 수호신으로서의 뱀 신앙, 뱀 문화가 있다. 그건 세속에 있는 징그러운 뱀을 상징하는 게 아니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가 보면 아테나 여신의 왼쪽에 먹구렁이가 딱 서 있다. 원래 그 문화는 이집트에서 왔다고 그런다. 이집트 파라오들의 머리에 뭐가 있나? 코브라 같은 뱀신이 있다. 남방 불교를 가보면 부처 뒤에 연꽃이 있는 게 아니고 일곱 마리 뱀이 있다.

석가가 보리수에서 공부를 할 때 하늘에서 막 소낙비가 내린다. 그때 뒤에서 코브라가 머리를 열어서 받쳐 준다. 그것을 힌두교 문화에서는 나가Naga라고 한다. 나가가 가루다Garuda라는 새를 타고 다닌다 한다. 일곱 마리 나가는 칠성을 상징하는 거다. 상제님은 석가불을 서방칠성이라고 하셨다. 미륵님은 동방칠성이다. 미륵불은 동방칠성 문화 시대다. 그것은 상제님 문화에 의해서 본래 우주의 황금시절의 시원문화, 뿌리문화, 원형문화가 나오는 거야. 이제 그 미륵님의 도법과 심법을 그대로 전수받아서 처음으로 미륵불 세계의 문을 활짝 연 한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러 천왕문을 통과해서 미륵전 앞으로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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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미륵전앞에서

 

미륵전 성구

 

* 내가 미륵이니라. 금산사 미륵은 여의주를 손에 들었거니와 나는 입에 물었노라.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 미륵불을 보라.
금산사 미륵불은 육장六丈이나 나는 육장 반으로 오리라. (10:33:5-7)
* 금산사 미륵불이 솥 위에 서 있으니, 솥이라 하는 것은 항시 새것을 취하는 법이니라. (2:67:4)


 

금산사 대장전 성구

 

* 상제님께서 그 글(물목기)을 공우와 광찬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금산사 미륵전 앞에 대장전大藏殿이 있어 불편하니 너희 두 사람은 이 물목기物目記를 금산사에 가지고 가서 대장전 석가불상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불상을 업어다 마당 서편으로 옮겨 세운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종이를 불사르라.” 하시니, 두 사람이 금산사에 가서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그 뒤에 금산사를 중수할 때 대장전을 마당 서편으로 옮겨 세우니 비로소 미륵전 앞이 넓어지니라. (5:282)



여기 금산사 미륵전을 세우신 인물이 진표율사眞表律師다. 진표 스님은 참 진眞 자에 드러낼 표表 자다. 즉 미륵님 진리에서 근본이 되고 모델이 되는 인물이다. 진표 스님은 통일신라 시대 완산주 사람이다. 12살 때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부처님의 도를 닦겠다고 여기 금산사를 찾아왔다. 당시 금산사의 주인이었던 숭제법사崇濟法師가 “너는 석가불에게 빌지 말고 오직 미륵님에게 기도를 해라. 미륵님의 계법을 받아 세상에 널리 전하라.” 하고 약속을 한다.

그래서 전국 명산을 찾아다니면서 미륵님에게 기도를 하고 천제를 올렸다. 마지막으로 27살에 변산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으로 갔다. 거기가 90도의 완전 절벽이다. 인간의 생각과 뜻으로써는 헤아릴 수가 없는 그런 곳이다. 부사의방장은 가 보면 한 사람이 들어설 수 있는 작은 굴로 되어 있다. 거기에 쇠말뚝이 있다. 거기서 3년을 공부했는데 수기, 곧 신교를 못 받았다.

결국 죽으려고 뛰어내렸는데 지장보살이 나타나서 그를 구해 주었다. 지장보살이 천지와 일생일대 건곤일척의 영적 승부를 벌이는 구도자가 나타났다고 해서 천상에서 내려와서 그를 지켜본 것이다. 그래서 용기를 얻어서 21일을 망신참법亡身懺法으로 용맹정진을 했다. 마지막 21일이 끝났을 때 천상 도솔천의 미륵님이 직접 오셔서 이마를 쓰다듬어 주며 “장하도다. 대장부여. 그대가 이토록 신명을 아끼지 않는구나. 네 마음은 천지와 같아졌다. 너는 앞으로 이 몸을 버리고서 천상에서 대법국의 왕으로 태어난다.”고 하셨다.

지금은 선천의 부처님을 모시지만 앞으로 석가 부처님의 꿈과 뜻을 궁극적으로 이루어 주시는 부처님, 미륵님이 오신다. 미륵불은 천지의 주인이고 우주의 통치자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주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천지 개벽기에 오신다. 그 천주님이 지구에 들어오시는 관문이 금산사이고 천상으로 가실 때도 금산사 미륵불을 통해서 떠나셨다. 미륵님 불상이 솥 위에 서 있다. 왜 밑 없는 솥단지에 미륵불이 서 있냐? 솥은 시루다. 그릇은 시루보다 더 큰 것이 없다. 시루는 천지에서 가장 큰 도의 그릇을 상징한다. 또 대우주, 하늘과 땅, 삼신상제님을 상징한다. 그렇게 크게 알아라.

오늘의 결론은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 청풍명월금산사淸風明月金山寺”(5편 306장)다. 이 말씀은 미륵님의 도법이 전개 되어 나가는 법맥, 종통맥을 알 수 있는 성구다. 만국활계남조선, 전 지구촌을 살려내는 법방은 조선의 남쪽 땅에 있고 금산사의 원 주인은 충청도에서 나온다는 말씀이다. 앞으로 진표처럼 참회를 근본으로 해서 제대로 닦는 일꾼들이 나온다. 미륵님의 화신化身이 된 부처, 그 사람들이 태을랑太乙郞이고 후천 대불이다. 앞으로 후천 세상을 여는 지고지존의 거룩한 부처님들이 나온다. 앞으로 미륵님의 도통 군자가 금강산 기령을 받아서 1만 2천 명이 나온다. “너희들이 지금은 이렇듯 친숙하되 뒷날에는 눈을 바로 뜨지 못하리니 마음을 바로 갖고 덕 닦기에 힘쓰라.”(8편 21장) 이런 말씀을 잘 보고 도에 욕심을 가져야 된다. 앞으로 천지의 원 주인이신 상제님의 진리를 잘 닦아서 개벽의 모든 충격을 극복한다. 가을 개벽은 소멸이다. 춘생추살春生秋殺, 봄에는 천지에서 나에게 생명을 주셨는데 가을에는 소멸을 시킨다. 지금 닭들이 AI로 2천만 마리 이상이 죽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을 대신해서 죽는다고 봐야 된다. 우주의 여름에서 가을 문명으로 들어갈 때는 서릿발 기운이 온다. 이것을 늘 마음에 두고 열심히 태을주 읽고 다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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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전과 미륵불상의 건립과 변화 과정

금산사의 미륵전彌勒殿은 미륵불彌勒佛을 본존으로 모신 전각이다. 통일신라 때인 762년(경덕왕 21년)부터 766년(혜공왕 2년) 사이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미륵도량으로 중창하면서 미륵불에게 계를 받았던 체험 그대로를 적용하여 미륵불상을 세웠다.

미륵전이 있는 터는 본래 용龍이 살고 있는 연못이었으나(『택리지』), 진표율사가 도술로써 그 지역에 눈병(眼病)을 일으킨 후, 참숯을 한 짐씩 지고 와 연못에 붓고 연못의 물로 눈을 씻어 눈병이 낫도록 함으로써 쉽게 연못을 메우고 그 터에 33척의 철불金佛로 불상을 세운 후 미륵전을 건립하였다.

진표율사가 처음에 미륵불상을 세울 때에는 전통적인 불교 의식에 따라 돌로 만든 연화대蓮花臺(석련대石蓮臺)를 놓고 그 위에 미륵불상을 세우려 하였으나 신기하게도 석련대가 자꾸만 멀리 날아가 떨어지므로 다시 미륵불의 계시를 받아 밑 없는 시루(철수미좌)를 걸고 그 위에 불상을 건립하였다.

이 미륵불상과 미륵전의 건립 연대에 대해서는 「관동풍악발연수석기關東楓岳鉢淵藪石記」에 잘 나타나 있는데, 불상은 764년 6월 9일에 완공하였고 미륵전은 2년 뒤인 766년 5월 1일에 완공하였다. 그리고 미륵전 남쪽 벽에는 진표율사가 미륵불과 지장보살에게서 계戒를 받을 때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이 미륵전은 정유재란(1598) 때 다른 전각과 함께 소실되어, 수문대사守文大師가 재건을 시작한 이후 35년 만인 1635년(인조 13년)에 복원을 마쳤다. 이때 다시 조성한 미륵불상은 36척 높이에 나무로 만든 목불木佛이었다. 그리고 미륵불의 양옆에는 토불土佛로 협시보살挾侍菩薩(8.79m, 다른 말로 보처보살補處菩薩이라고 함)을 세웠다.

그런데 이 미륵불상은 1934년 3월 9일 밤에 또다시 전소되는데, 일설에 의하면 한 동자승童子僧이 시루에 담긴 동전을 줍기 위해 촛불을 들고 불상 아래에 내려갔다가 실수로 불을 내서 미륵불상이 (여의주를 든) 왼팔만 남고 모두 타 버렸다.

이에 당시 태인의 큰 부자였던 김수곤金水坤 거사가 건립비를 헌성함에 따라, 금산사 주지 황성렬黃成烈이 주관하여 안양동 청련암靑蓮庵 앞에 있던 은행나무를 잘라 와 뼈대를 만들게 하고(대장전 앞에 있던 은행나무는 잘라서 부재로 사용함), 조각가 김복진金復鎭으로 하여금 석고로 39척 높이의 토불土佛을 제작케 하여 1938년 9월 3일에 완공하였다. 점안식 예불은 당시 예산 수덕사에 주석하던 만공滿空 스님이 와서 거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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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母岳山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전주시 중인동, 완주군 구이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전라북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모악산은 예로부터 ‘엄뫼’, ‘큰뫼’로 불리어 왔는데, 그것은 모악산 정상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쉰길바위’(사람 키 50배에 해당하는 길이의 바위)가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형상과 같다 하여 이름이 지어졌다 한다. 모악산은 『삼국유사三國遺事』(1281)와 『고려사高麗史』(1451)에는 ‘금산金山’으로 기록(이 지역을 금산으로 부르는 이유)되어 있고, 조선 성종 때(1481)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 비로소 ‘모악산’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모악산’으로 불린 것은 조선시대부터인 것으로 판단된다. 『금산사지金山寺誌』(1934)에는 “조선의 고어로 엄뫼 또는 큰뫼로 칭하였다. 엄뫼는 ‘모악’이라 의역意譯하고, 큰뫼는 큼을 음역音譯하여 ‘금金’으로 하고 뫼는 의역하여 ‘산山’으로 하였다.”고 나와 있다.
 

금산사金山寺

금산사金山寺는 모악산 서쪽 자락에 자리 잡은 우리나라 미륵신앙의 대표적인 도량道場으로, 백제 법왕 원년(599)에 ‘임금의 복을 비는 사찰’로 창건되었다. 금산사의 당우堂宇로는 미륵전彌勒殿, 대적광전大寂光殿, 대장전大藏殿, 원통전圓通殿, 천왕문天王門, 명부전冥府殿, 나한전羅漢殿, 금강문金剛門, 보제루普濟樓 등이 있고, 부속 암자로는 심원암深源庵, 용천암龍天庵(지금의 청룡사靑龍寺), 청련암靑蓮庵 등이 있다.

금산사는 창건 당시 소규모 사찰이었으나 신라 혜공왕 2년(766)에 진표율사眞表律師에 의해 중창되면서 대가람의 면모를 갖추었다.

고려 문종 33년(1079)에 주지로 부임한 혜덕왕사慧德王師가 다시 절을 중수하여 88당堂 711칸間의 어마어마한 거찰을 만들고, 부속 암자를 40여 개나 지어 금산사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런데 이 당우堂宇들은 선조 31년(1598) 정유재란 때 금강문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불타 버렸다. 이것은 서산대사, 사명대사와 함께 임진왜란 때 ‘구국 3화상救國 三和尙’의 한 분인 처영대사處英大師가 금산사를 중심으로 승병을 일으켜 활동한 것에 대한 왜군들의 보복 때문이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수문대사守文大師가 35년 동안 재건축을 실시하여 인조 13년(1635)에 낙성한 건물들이며, 대적광전은 1986년에 전소全燒되어 1994년에 중수한 것이다.
 

안양동安養洞 청련암靑蓮庵

김제 금산면 금산리 안양동安養洞에 있는 청련암靑蓮庵은 금산사의 말사末寺(본사에 딸린 절)로서, 조선 중기(정유재란 이전)까지는 청사굴靑社窟로 불렸다. 청련암에는 본당인 극락전極樂殿(아미타불을 모신 전각)과 부속 건물로 삼성각三聖閣이 있다. 1959년에 전각을 새로 지으면서 상제님 재세 시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으며, 2012년 12월에 또다시 현재의 모습으로 개축하였다. 청련암은 안양동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안양’이란 안양정토安養淨土를 줄여서 이르는 말인데, 불가에서는 아미타불이 상주하는 청정한 서방 극락정토의 세계를 말한다. 이 마을이 안양동이 된 것은 바로 이곳에 있는 청련암에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아미타불은 미륵불이 인간 세상에 강림하실 때 따라 내려와 미륵불께서 내놓은 완성의 도를 닦아 부처가 된 후, 위로는 미륵불을 모시고 아래로는 중생들을 깨우쳐 미륵불의 용화세상으로 인도하는 부처를 말한다. 즉, 아미타불은 미륵불께서 열어 주시는 극락세계를 구체적으로 건설하는 부처를 말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미타불을 모시는 불단 위에는 여의주如意珠를 입에 문 용龍과 극락조極樂鳥(= 봉황)를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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