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관(개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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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 증산도 중] 개벽은 언제 오는가?

운영자 0 153
▣개벽은 언제 오는가?

인간의 삶에서 가장 큰 명제는 삶과 죽음에 문제이다. 개벽문제가 됐든 다른 어떤 분야의 문제가 됐든 간에 인간의 모든 일은 죽고 사는 생사문제 뿐이다. 인간이 안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생명의 문제는 사는 것과 죽는 것 이상이 없다. 생사문제보다 더 영원한 것은 없다. 그렇다면 천하사의 본질 또한 무엇인가?

●“천하사는 살고 죽는 두 길에 그치나니 우리가 쉴 새 없이 서두르는 것도 하루에 밥 세 때 벌이로 잘 먹고 살려는 일이니라.
이제 먹지 않기를 꾀하는 자 무슨 영위(營爲)가 있으리오.”(도전9:22:2~3)

증산 상제님은 인간이 의문부호를 가지고 풀려고 하는 삶의 문제, 우주의 문제, 구원의 문제, 종말의 문제, 새 세상을 어떻게 여느냐 하는 문제 등,그 모든 것은 죽고 사는 두 길에서 그친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포교하고 상제님의 도를 닦는 것이 겨우 하루 밥 세때 먹자고 하는 것이냐?”고 싱겁다는 듯이 말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상제님을 신앙하고 일하는 과정을 다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하는, 때가 안 벗어진 순진한 말이다. 그 사람은 상제님이 말씀하신 그 밥이 무슨 밥인지를 모르고 있다. 밥이면 다 같은 밥인가! 상제님이 말씀하시는 밥은 세속에서 말하는 의미의 밥이 아닌 것이다. 천지에서 내려주는 녹(祿)을 말한다. 전 인류가 개벽기에 살려주셨다고 감사하는 보은줄로 영원히 바치는 녹이다.

인간의 문제는 사는 것과 죽는 것 이상이 있을 수 없다. 이 우주가 열린 이래로 앞으로 우주 1년이 백 번, 만 번,천만 번 돈다 할지라도 사는 것과 죽는 ‘생사문제’가 인간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근본 문제이다. 오늘 우리가 다시 한 번 정리해 볼 가을개벽의 문제는 우리들 에게 심각한 의문점을 던져주고 있는 완전한 죽음과 영원한 삶의 문제이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과 일상생활 속에서의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 죽으면 영원히 죽고 살면 영원히 사는 영생(永生)과 영사(永死)로서의 인종 추수개벽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가을을 맞이하고 있는 종말론의 실질적인 명제이다. 그런데 종말이라 하면 먼저 심판을 연상하고, 단지 그 속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수준의 감각밖에 없는 이 세상 종교인들이 과연 개벽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개벽의 참 맛을 느낄 수 있겠는가? 개벽은 단순히 때려 엎는 것, 전격적으로 이 세상을 정리하는 것 등, 우리 머리 속에는 항상 개벽이 아주 극단적이고 과격한(raical) 변혁을 동반하는 대변국이라는 관념이 못박혀 있기 때문에, 상제님의 진리를 날마다 우주 창조원리로 말하면서도 ‘과연 개벽이 올까?’하는 이율배반 속에서 헤매게 된다. 분명히 현상을 보면 개벽이 와야 하는데, 가슴 한 구석에는 과연 그런 엄청난 대개벽이 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개벽이라는 문제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온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가을이 오는 과정, 즉 가을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원리와 변혁의 과정을 이치적으로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이 개벽 이야기를 해주면 다 이해한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이 가까운 장래에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데에는 심각할 정도로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종종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 왜 그럴까? 우리들의 신앙과 믿음이 얕고 천격이라 그런 것인가? 진리를 보는 눈이 천박해서 그런 것인가? 원래 개벽이라는 문제가 그러한 광대한 스케일의 성격인가? 아니면 이 세상 인간들이 의심이 많아서 ‘나’ 또 한 그런 것일까? 이런 문제들을 품고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 해 볼 때 이 세상을 사는 전 인류의 삶의 결론인 개벽문제가 왜 안 풀리는 것인가? 한마디로 이 개벽문제는 너무도 심오하기 때문이다. 개벽은 우주의 모든 문제의 결론이면서도 새 출발의 핵심적인 문제이다. 도의 가장 높은 차원에 있는 우주 시공 창조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깨닫고 체험하여 개벽문제의 핵심을 볼 수 있는 신령한 눈이 열리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있어 개벽은 ‘믿음의 문제’밖에는 안 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개벽이 올 것이다. 개벽은 오는 것이다. 가을은 너무도 당연하게 오는 것이 아닌가?’하고 이성적으로 긍정하면서 믿어 보려는 마음을 가질 뿐, 항상 의문을 가슴 한 구석에 품고 다니게 되는 것이다.

진리의 가장 심오한 차원인 개벽은 단순한 믿음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이 개벽의 문제를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혼백이 처절하게 깨져야 한다. 그리고 개벽의 원리를 알아야 하고, 실제로 체험해야 한다. ‘나를 내려보내신 상제님이 지금 나를 보고 계신다. 나는 우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증산 상제님의 일꾼이다’ 하는 정신이 하루 24시간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몸이 잠들기 전에는 반드시 5분 정도는 그날을 반성하고 세상을 한 번 더듬어보면서 잠의 세계속에 들어서는 습관을 가지라. 상제님 대업을 계속적으로 해나가기 위해서는 이 개벽의 문제를 깨야 한다. 온몸으로 느끼고 철저히 깨야 한다. 천지개벽을 체험하려면 인간 의식 속에서 개벽을 체험해봐야 한다. 한 인간의 의식이 열리는 과정이 천지개벽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절감해 봐야한다. 그러려면 기본교리를 알고 진리를 남에게 전하라. 순정이 核心이다. 한시도 상제님의 대업을 잊지 말라! 진리를 전해보지 않은 도생은 관념속 개벽에 머무를 뿐이다. 개벽은 개벽을 집행할 일꾼들이 길러졌을 때 온다. 우리 스스로가 인사로 천지사업을 마무리 짓는다는 사명감과 주인의식이 확고하게 각성이 돼야한다. 개벽의 때나 기다리는 일꾼이 돼서는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의통을 집행하고 새 역사를 창업할 1만 2천 도통군자가 길러질 때 개벽이 오고 개벽을 집행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환상에 빠진 개벽신앙을 경계하라. 난법과 참법의 문제도 개벽을 잘 깨닫지 못하고, 개벽에 대해 환상을 갖고, 편협하고 수준 낮은 자기 나름의 조잡하고 유치한 개벽관을 갖고 있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개벽에 잘못 빠지면 현실감각이 마비되어 자신도 타락하고 자기 주변 사람들을 죄악의 구렁으로 몰아넣는다. “이제 곧 개벽하는데 뭘 힘들게 사니” 하면서 자식들에게 공부도 시키지 않고 학교에도 보내지 않는다. 종말론적 한탕주의에 빠져서 현실감각이 마비되어 남의 돈을 빌리고도 아예 갚을 생각도 하지 않는 종말론자가 될 수도 있다. 증산도의 1·2변 도운시대에 있었던 가장 큰 악폐, 반드시 개벽해야 될 신앙의 본질문제로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우리들 상제님 신앙인들에게 제기되고 있는 문제가 바로 이 개벽신앙이다.

그러면 개벽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개벽은 모든 인간문제의 해답이다. 우주 시공변화의 극치의 해답이다. 또 개벽은 단순히 가을이 오는 것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이 우주가 변화해가는 순간순간의 시간의 변화과정, 새로운 창조과정이다. 이 우주의 존재와 변화실상이 개벽인 것이다. 그리고 이 개벽은 앞으로 인류가 맞이하게 될 후천(우주의 가을) 대개벽, 종말론적인 세계문명의 심판과 구원의 문제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러면 개벽기에 심판과 구원의 문제를 알아보자. 개벽이란 무엇인가? 다가오는 대개벽이 주는 참 뜻은 무엇인가? 왜 개벽이 일어나야만 되는가? 개벽이 아니면 이 세상문제는 해결될 수 없는가? 우리가 이 개벽문제의 핵심을 깨닫고 보면 인간은 이미 우주에서 태어나면서부터 개벽당할 존재로 규정지어져 있음에 놀라게 된다.

우리가 개벽을 모르면 그저 하루하루를 무한한 꿈만 갖고 사는 존재일 뿐이다. 미래 지향적이고, 또 낙망하면 좌절하고 자살하고 싶고, 실제로 죽음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가을개벽’이 있다는 것을 알고보면 이미 운명적으로 인류의 모든 생사문제가 하나의 공통된 길을 선택당하고 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상제님이 다음과 같은 우주문제의 결론을 말씀하신 것이다.
●대저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편할지라. 오는 일을 아는 자는 창생의 일을 생각할 때에 비통을 이기지 못하리로다. 이제 천하창생이 진멸(盡滅)의 경계에 박도하였는데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이(利)끗에만 몰두하니 어찌 애석치 아니하리오.(도전2:45:1~2)

여기서 말씀하신〈오는 일을 아는 자〉는 개벽의 정신을 참되게 아는 자, 개벽정신에 대해 한 소식을 들은 자를 말한다. 상제님의 참법이 나오는 제3변 도운에서〈오는 일을 아는 자(지도자)〉가 나온다. 상제님의 개벽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구원의 소식, 개벽에 대한 총체적인 의문을 벗겨주는 상제님의 일꾼이 나오고, 대도의 진리체계가 조직화되고 상제님의 행적이 담긴『도전』과 삼신 상제님의 역사책인 『환단고기』 완역본이 출간되면서 천지와 신神과 인간에 대한 진리의 전면목이 드러나고 우주론에 눈을 뜨면서 개벽의 실상이 뭔지를 이제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관통증산도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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