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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 증산도 중] 문왕의 도수(대두목이 걷는 창업의 고난)

운영자 0 7

문왕의 도수(대두목이 걷는 창업의 고난)

대두목이 받는 실질적인 역사의 정신으로 가장 중요한 도수가 문왕의 도수이다. 상제님께서 일찍이 문공신 성도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상제님께서 공신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에게 정음정양 도수를 붙이나니 네가 온전히 잘 이기어 받겠느냐. 정심으로 잘 수련하라. 또 문왕(文王) 도수가 있으니 그 도수를 맡으려면 극히 어려우리라(도전5:207)

일반적으로 중국의 하(夏,하)나라, 상(商,상)나라, 주(周,저우)나라를 중국의 고대 3왕조라 한다. 상나라는 본래 초대임금(成湯)이 하남성(河南省)인 상구현(商邱縣)에 자리를 잡아 상(商)나라라 했는데 [초기 도읍지로 안휘성(安徽省) 박현(毫縣)으로도 본다], 19대 반경(盤庚)에 가서 도읍을 은(殷)지역으로 옮기면서부터 은나라라 부른 것이다. 이 나라들은 고조선으로부터 신교문화를 전수받고 조공을 바친 나라들이다. 사실 이 하•은•주는 동방 고조선 문명과의 관계를 빼놓으면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는 고조선 문화를 우습게 알고 2096년 동안의 47대 단군을 역사에서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고조선이라 하면 단군의 건국신화를 인정하는 척 하고 있을 뿐이다. 외세 식민사대주의가 주류인 한국은 제뿌리를 부정하는 나라이다.

아직도 식민사학이 주류인 사학계는 고조선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단군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단군조선의 실상을 이야기 하는 민족사학 진영을 유사역사학이니, 사이비 역사학이라고 매도를 하고 있다. 고조선의 실제 마지막 황제는 47대 단군 고열가(古列加)이다. 한민족사는 밑둥이가 잘려나갔다. 그러니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문화의 실상(참 모습)을 알 턱이 있는가? 중국에서도 고고학 발굴의 성과로 하나라의 실존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가 고조선을 부정하는 동안, 중국은 황하문명보다도 최소한 1천여 년 이상 앞선 고조선의 영토에서 발굴된 홍산문명을 중국사로 편입하는 동북공정을 완료하였다. 우리가 우리 역사를 부정하면서 우리 역사가 중국사로 넘어간 것이다. 얼마나 천인공노 할 일인가. 통일 이후에도 북방사를 우리 역사로 주장할 근거를 중국에 넘긴 것이다. 이는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보다도 더 악질적인 매국노인 것이다. 식민사학자들은 해방된 조국의 역사를 미리 팔아버렸다. 그럼에도 주류사학계에서는 홍산문명과 고조선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하나라는 사우(姒禹)가 열었다. 서기전 2284(丁已)년에 기독교 구약 성경의 노아의 홍수와 유사한 9년 대홍수가 일어나자 순임금이 우의 아버지 곤(鯀)에게 치수사업을 맡겼다. 그러나 곤은 치수를 소홀히 하여 우산으로 귀양을 가 죽게 된다. 그리고 순임금은 그 아들인 사공 우에게 치수사업을 맡겼는데, 우가 아버지의 한을 품고 치수사업에 성공하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 고조선의 단군왕검의 맏아들 부루태자(2대 단군)가 와서 금간옥첩(金簡玉牒,오행치수법)을 전해준 것이다. 우임금이 낙서(洛書)와 이를 근본으로 인사의 영원한 큰 법을 세운 것이 서경에 전하는 ‘홍범구주’(洪範九疇)의 내용이다. 후에 우는 고조선 왕조의 개조이신 단군 성조가 보내주신 오행치수법으로 치수사업에 성공해서 인망을 얻어 하나라를 연 것이다. 그래서 우임금이 죽을 때는 단군왕검의 큰 은혜를 잊지 못하여 회계산(會稽山)에 묻어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하나라가 망한 뒤에 탕(湯)임금에 의해 상(은)나라가 열렸는데, 이 탕임금은 그 혈통이 동이족이다. 그리고 이 은나라가 말년에 문왕•무왕에 의해 문을 닫고 주나라가 열리는데, 이들 역시 동이족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상제님이 대두목에게 붙이신 문왕의 도수란 문왕이 주나라를 여는 창업의 정신을 제3변 도운의 성숙시대를 마무리짓는 도수로 쓰신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 어떤 창업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가? 먼저 주나라의 기원부터 살펴보자. 주나라의 원 시조는 요순시대에 농사(農師)라는 벼슬을 맡았던 기(棄)이다. 그의 호는 후직(后稷)이며, 그의 어머니는 제곡(帝嚳) 고신씨(高辛氏)의 정비(正妃)로서 강원(姜源)이다. 강원이 어느날 들에 나가서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잉태한 아들이 바로 기다. 그 기로부터 3대를 지나 공유(公劉)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공유가 섬서성(陝西省) 서북쪽의 빈(豳)이라는 땅에 수도를 정하여 주나라의 발상지가 되었다.

시경에 빈풍(豳風)이란 노래가 나온다. 이 빈풍은 빈 지역에 살던 백성들이 부르던 노래 이름이다. 그 노래 가사에서 상제님이 한 구절 인용하신 성구가 바로 안씨(安氏) 재실(齊室)에서 공사를 보실때 ‘시운(詩云) 벌가벌가(伐柯伐柯)여 기측불원(其則不遠)이로다’하신 말씀이다. 여기에서 다시 10대 후손이 바로 문왕의 할아버지인 고공단보(古公 亶父)인데, 고공단보는 도읍을 빈에서 바로 섬서성 기산(岐山) 아래의 주원(周原)으로 옮겼다. 본래 주족은 야만습속을 지닌 부족이었다. 그런데 주족의 궁성을 짓고 문화적 토대를 닦은 인물이 바로 고공단보이다. 그래서 주족은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그를 ‘태왕(太王)’으로 추존했다. 그 태왕의 아들이 셋인데, 큰 아들이 태백(太伯), 둘째 아들이 우중(虞仲), 셋째 아들이 계력(季歷)이다.

태왕이 주원에서 거주지를 옮길 때 셋째 아들 계력만이 아버지를 모시고 일을 했는데, 후에 계력은 왕계(王計)라 불렸다. 그가 바로 ‘문왕의 아버지’이다. 그런데 이 왕계가 상나라의 문정(文丁,28대)에게 참혹한 죽음을 당한다. 후에 서백(西伯) 창(昌)이 덕을 쌓고 인망을 얻어서 서방지역의 유력한 제후가 되자 은의 마지막 임금인 주(紂)왕은 서백 창을 유리(羑里)에 귀양보내 가두어 놓고 그의 아들 백읍고(伯邑考)를 죽여 국을 끓여서 창에게 먹게 하였다. “세상에서 서백 창 그 녀석을 소위 성인이라 하는데 그가 이 죽을 먹으면 제 자식의 살점을 먹는 것이니 사람도 아니요, 먹지 않으면 그를 죽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창은 그것을 먹는 시늉하고 미친 척하여 풀려나왔다.(풀려날 때는 영토와 미녀를 뇌물로 바쳤다는 기록도 있다.) 이와 같이 그의 아버지도 죽고, 그의 아들도 죽고, 은나라에 대한 서백 창의 한은 너무도 깊었다. 그리고 이 서백 창의 아들 발(發)의 아내가 왕강(王姜)인데, 이 왕강의 성이 또 강씨다. 이렇게 문왕은 그 조상에서부터 강씨와 인연이 깊었다. 그런데 이 서백 창이 천하통일을 하는데 있어서 누구의 힘을 비는가? 바로 강태공을 만난다.

그가 고공단보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전설이 있었다. 그것은 “앞으로 우리 집안을 부흥시킬 성인을 만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어느날 사냥을 가려고 점을 치자 “용도 아니고 짐승(이무기)도 아니고 곰도 아니고 잡는 것은 패왕을 보필할 신하다”는 점괘가 나왔다. 그래서 위수(渭水)의 북쪽 강가에서 곧은 낚싯대 3,600개를 벌려 놓고 10년 동안 천하사를 위해 때를 기다리고 있던 태공망 여상(呂尙)을 만난 것이다.

●강태공이 십 년 경영으로 삼천육백 개의 낚시를 벌였음이 어찌 한갓 주(周)나라를 일으켜 봉작(封爵)을 얻기 위함이었으랴.
이를 널리 후세에 전하려 하였음이니라.(도전4:145)
그런데 상제님의 말씀은 강태공이 위수에서 10년 동안 3,600개의 낚시를 벌려놓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한갖 벼슬을 얻고자 함이 아니라 천하사를 하는 심법을 전수하기 위함이었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왜 상제님이 강태공을 칭찬하셨는가? 그것은 가난속에서 이 세상 인간의 가장 밑바닥을 살면서도 마음을 닦으며 성성(惺惺)히 깨져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때를 기다려 왔기 때문이다. 강태공의 삶을 두고 ‘궁팔십 달팔십 (窮八十達八十)’이 라고 한다. 강태공은 가난 속에서 가장 인생 밑바닥을 산 것이 80년 동안이었고, 또 80년 동안을 이 세상에서 가장 영화로운 자리에서 살았다. 강태공은 주족을 도와 부흥시키고 제나라의 초대왕이 되었다. 그가 비단 옷을 몸에 걸치고 일국의 총리가 되어 고향에 돌아왔을 때 가난한 살림을 참지 못하여 집을 나갔던 그의 부인(마부인)이 돌아와 용서를 빌고 다시 인연맺기를 애걸하였다. 이에 강태공은 물항아리를 엎어놓고 그것을 다시 담아보라며 마부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로 마부인은 방황하다 죽고, 전설에는 그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성황당의 돌무더기가 생긴 것이라고 전한다.

강족(姜族)은 배달의 후예로서 정통 동이족이다. 그런데 상제님 성씨의 강족(姜族)이 왜 은나라와 철천지 원한을 맺고 있었느냐 하면 상나라에서 산동반도에 주로 살던 강족을 토벌하여, 포로가 된 강족의 목을 잘라 인신제사를 지냈기 때문이다. 노예들은 주인이 죽으면 그 순간 같이 죽어야 했다. 은나라의 무덤을 파보면 수백 명의 목을 잘라 함께 묻은 유골의 잔해가 그대로 나온다. 이 때의 제사에는 사람을 희생제물로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인류의 역사는 원한의 역사이다. 그동안 인류문화는 파란만장한 한 서린 길을 걸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강족이 그런 수모를 당했기 때문에 은족에 대해 철천지한을 가지고 있었다. 강태공을 최고 사령관으로 임명해서 군사를 지휘하게 한 것도 이 원한관계를 이용한 것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관통증산도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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