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역사/문화

환단고기 관련 다양한 컨텐츠는 대한사랑 K역사문화채널 홈페이지 http://koreanskorea.com 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한사군은 한반도에 있었을까?-

운영자 0 149
한민족 뿌리역사를 도려낸 일본

19세기 중반에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를 시작한 일본은 세계 제패의 꿈을 키우면서 한국을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식민주의 사관을 확립하였다. 식민주의 사관은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략과 식민 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조작한 역사관관이다. 조선인을 예로부터 다른 나라의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온 열등감과 자기 비하에 빠진 민족으로 묘사하여 조선을 영원히 지배하겠다는 것이 일제 식민사관의 요지이다.

이러한 식민사관의 정립과 실현을 위하여 일제는 조선침략을 군사적으로 준비함과 동시에 자국의 쟁쟁한 사학자들을 동원하여 한국사를 연구하게 하였다. 일본의 한국사 연구는 주로 정치적 필요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결국 한반도 지배를 위한 학문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일본의 대학에는 ‘조선사 강좌’가 설치되고 논문과 저서가 속속 간행되었다. 일본인이 한국사를 이른바 근대 역사학의 방법론을 내세워 주관적으로 서술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사 연구를 반석에 올려놓은 일본의 식민 사학자는 하야시 다이스케林泰輔(1854~1922),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1865~1942), 후쿠다 도쿠조福田德三(1874~1930) 등이다. 이 세 사람은 독일에 직접 유학을 하거나 일본 내 대학을 다니면서 실증주의 사학을 공부하였다. 실증주의 사학은 조상의 무덤과 집터를 파헤쳐 꺼낸 유골과 유물을 과학적으로 검증함으로써 문헌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려 한다. 그리고 고증되지 않은 기록은 대부분 불신한다. 이러한 실증사학의 정신에 따라 식민주의 사학자들은 태곳적 환국-배달-고조선 시대를 고증되지 않은 신화시대로 만들어 버리고, 그 대신 ‘위만조선과 한사군’ 시대를 한민족의 상고 시대라 정의하였다. 하야시 다이스케가 『조선사』와 『조선근세사』에서 정한 한국사의 시대 구분이다. 한사군 이전은 태고太古, 삼국에서 통일신라까지는 상고上古, 고려 시대는 중고中古, 조선 시대는 금대今代로 구분하였다(김용섭, 같은 책, 498쪽).  이후 그들은 만철滿鐵조사부를 세워 만주와 한반도의 역사와 지리에 관한 조사를 하였는데, 그 목적은 한국인의 뿌리 역사를 말살하고 그 자리를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 역사’로 채우는 데에 있었다.

마침내 1910년에 한국을 강제 병탄한 일제는 자국의 식민주의 사학자를 대거 조선으로 데려왔고, 1920년대에 폭압적인 무단통치에서 유화적인 문화통치로 정책을 바꾸면서 그 학자들을 중심으로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였다. 조선사편수회의 일제 관학자들은 조선 역사를 본격적으로 변조하여 조선 역사는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한반도의 북쪽은 ‘한사군’이라는 중국의 식민지였고, 남쪽은 ‘임나일본부’라는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이다. 또한 상고 이래의 한일교섭사 중에 일본에 불리한 사실은 모두 은폐하였다. 임진왜란을 마치 일본이 승전한 것처럼 기술하고, 광개토태왕비의 비문과 칠지도 명문을 조작하는 등 우리 역사와 문화재에 손대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일본이 왜곡한 사례 중에서 한국인이라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한민족사의 밑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버린 것으로,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조작한 “석유환인昔有桓因”이다. 1903년 동경제국대 대학원에서 한국사를 전공한 후 조선에 파견된 이마니시 류는 조선 역사를 일본에 미치지 못하는 역사로 깎아 내리기 위해 고심하던 중 마침내 조선의 한 사서에서 실마리를 찾아냈다. 그 사서가 바로 『삼국유사』이다.

그는 조선 중종 1512(壬申)년에 간행된 『삼국유사』 임신본에 적힌 “석유환국昔有桓国”의 ‘국国’ 자를 ‘인因’ 자로 변조시켰다. ‘국’ 자와 ‘인’ 자는 서로 모양이 비슷하여 변조하기가 쉽기도 하지만, 일연이 붙인 ‘제석을 말한다謂帝釋也’는 주석에 힘입어 석유환국을 석유환인으로 과감히 변조한 것이다. 이리하여 환국을 불교 신화에 나오는 나라로 둔갑시키고, 환국을 계승한 배달과 고조선도 허구의 나라로 만들었다. 이것은 실로 ‘한국 고대사의 핵을 도려낸 사건’이다. 이로써 한국사의 영혼이 뿌리 뽑히게 되었다. 일제의 만행으로 7천 년 상고사가 통째로 잘려 나간 것도 통탄스럽지만, 해방 이후 한국 사학계마저 식민사학을 추종하여 환인·환웅·단군을 신화의 인물로 전락시킨 것은 더욱 가슴 아픈 일이다.

중국은 최근 홍산유적이 발굴되면서 중화고대문명탐원공정中華古代文明探源工程’을 진행하였다. 이 공정은 하상주단대공정보다 한 술 더 떠서 중국 역사의 시발점을 1만 년 전으로 끌어 올려 중화 문명을 ‘세계 최고最古 문명’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중국은 만리장성 밖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동이 오랑캐문화라 하여 한족문화권으로 보지 않았었다.그러나 만리장성밖에서 황하문명보다도 수천년 앞선 홍산유적이 대량 발굴되자 이를 중국역사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완료하였다.  그러나  옥기문화, 청동유물, 석관묘제, 천원지방형의 원형신전, 용봉유물, 옥웅룡.웅녀여신상,수행하는 여신상.주문읽는 토우. 곰발바닥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홍산유적은 북방유목문화의 전형이자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웅족 토템기록을 명확히 증언해주고 있다. 동이문화의 전형적 특성을 보여줌에도 한국학자들은 고조선 문화와는 관계없다고 애써 외면하고 있다. 우리나라 학계가 신화시대로 치부하고 연구조차 하지 않는 작금에  중국은 이 홍산문화의 주인공이  자신들이라고 중국의 고대사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〇아직도 살아 있는 식민사관
1945년에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았지만, 이 땅의 사학은 여전히 식민사학의 잔재를 떨쳐 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이 땅의 역사 광복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방 후 한국 사학계는 조선사편수회에 몸담고 식민사학의 주구 노릇을 하던 몇몇 학자와 그 후예들에게 잠식되었다. 그들은 지난 식민통치시기에 8백만 이상의 조선인을 참살한 일제가 주장한 식민사관을 실증사학이라는 가면 아래 교묘히 숨겨 그대로 수용하였다.지금도 식민사학계는 이런 홍산유적에 대한 실질적 연구는 외면하고 이미 학계에서는 검증이 끝났다면서  곳곳에서 여론과 인터넷을 통해 실증사학으로 고증이 되지 않는다고 몰면서 식민사학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고대사를 신화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이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역사상 가장 반인륜적이고 파괴적인 역사관인 식민사관을 옹호하고 변론하였다. 이것은 자국의 역사를 자국민이 파괴하는 해괴한 행위로, 세계인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한사군 재在한반도설’이다. 한사군설은 고조선 말기 한반도 땅에 한나라가 한사군이라는 식민지를 설치하였다는 주장이다.일제는 대동강 유역에 점제현신사비秥蟬縣神祠碑라는 조작된 유물을 심어놓고, 그 비석을 한사군 유물로 내세워 한사군의 위치를 한반도로 비정하였다. 그런데 한국 사학계는 그 조작설을 그대로 따랐다. 최근 그 비석의 화강암 재질을 분석한 결과 위조된 유물임이 드러났지만, 한국인들은 한반도 내 평양 주변에 한사군이 있었다고 배우고, ‘낙랑·임둔·진번·현도’라는 이름을 반세기가 넘도록 열심히 외우고 다녔다. (이병도李丙燾 등이 참여하여 설립한 진단학회에서 1965년에 간행한 『한국사』 7권에 수록)

그리고 일제가 내세운 한사군설을 그대로 따라 우리 역사학자들의 손으로 한반도에 한사군을 설정한 것이 빌미가 되어 우리는 지금 다시 중국에게 역사를 빼앗기고 있다. 중국은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설을 동북공정에 적극 활용하여2,100여 년 전 한나라 때의 중국 영토를 한강 이북까지 확장하였다. 중국의 이 황당한 주장이 서양의 세계사 교과서에 그대로 실려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무너뜨리려면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부터 청산해야 한다. 일제의 식민사관과 중국의 동북공정이 한 덩어리가 되어 한국사의 뿌리를 뽑기 때문이다. 중국의 중화 패권주의 사관과 일본의 식민사관은 남의 역사를 강도질하는 패악의 근원이다.

초·중·고 교과서에서 우리는 일제가 꾸민 역사 사기극의 잔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환국과 배달의 역사는 전혀 보이지 않고 단지 족장이 다스리던 부족 사회가 있었다고 서술한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고조선의 출현에 대해 “족장 사회에서 가장 먼저 국가로 발전한 것은 고조선이다”라고 하면서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라고 서술한다.

얼핏 보아도 너무나 싱거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라는 이 서술조차도 우리 역사를 찾으려는 뜻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2009년에야 겨우 개정된 내용이다. 그 전까지는 “건국되었다고 한다” 또는 “건국하였다고 한다”라고 하여 남의 나라 역사를 말하듯이, 설사 우리 역사라 해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듯이 서술하였다.
그런데 비단 학교 교과서뿐 아니라 국가공무원 수험서, 육·해·공군의 역사 교재, 아동용 역사책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모든 역사책에는 일제가 조작한 잘못된 한국사가 기록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일제 식민사학의 여독이 오늘날까지도 모든 한국인의 뼛속 깊이 배어 있는 것이다.(환단고기 안경전역주)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Comments

 

글이 없습니다.
글이 없습니다.





State
  • 오늘 방문자 698 명
  • 어제 방문자 1,220 명
  • 최대 방문자 3,354 명
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네이버밴드에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