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역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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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손으로 파괴한 우리 역사

운영자 0 144
지금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역사서로 학계에서 인정하고 가르치는 대표적인 사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이다. 『삼국사기』는 1145년(고려 인종 23)에 김부식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책으로, 삼국 시대를 기록한 정사正史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김부식은 고려 중기의 유학자로 중화주의와 사대주의 사관을 바탕으로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때문에 북방을 다스리며 중국을 제압하던 고구려를 “진한秦漢 이후로 중국의 동북 모퉁이에 끼어 있었던” 나라로 정의하고 ‘중국의 국경을 침범하여 중국을 한민족의 원수로 만든’ 적대국으로 표현하였다. 자기 동족을 원수로 기록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라 귀족의 후손인 김부식은, 멸망한 신라를 한국사의 정통 계승자로 만들기 위해 신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대진大震(발해)의 역사를 단 한 줄도 기록하지 않았다. 이처럼 대진 역사를 기록하지 않은 사실을 두고 신채호는 “동·북 양 부여사를 빼 버려 조선 문화의 근원을 진흙 속에 묻어 버리고, 발해를 버려서 삼국 이래 결정結晶된 문명을 짚더미에 내던져 버렸다”고 통탄했다.  신라가 모국이고 경주김씨 후손인 김부식은 한민족의 북방사를 제대로 기록을 하지 않았다.

『삼국사기』에서 그 첫머리를 박혁거세 원년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나라 이 민족사의 상부를 잘라 버렸다”(문정창, 『고조선사연구』, 64쪽)라고 하여 김부식의 저술을 비판하였다. 그는 또한 “대진국 초기에 쓴 『단기고사』가 『삼국사기』에 수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나라 사람들이 처음부터 우리 조국의 모든 것이 중국보다 낙후된 약소국으로만 인식하게 되고 단군조선의 실사까지 알지 못하게 되었다”(문정창, 같은 책, 65쪽)라면서 『삼국사기』가 한민족의 고유사서를 충분히 싣지 못하였음을 통탄하였다.

신채호의 말 그대로, 김부식은 한민족의 상고 역사를 한반도에 국한된 반 토막 역사로 축소시켜 버린 인물이다. 삼국만 존재하던 기간은 100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인식은 김부식이 구축한 『삼국사기』의 고대사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삼국사기』의 역사 인식은 한편으로는 편의적이고 한편으로는 자의적이다(이근우, 『고대 왕국의 풍경 그리고 새로운 시선』, 101쪽).
고조선과 부여를 비롯한 상고사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삼국 시대만을 기록한 사서가 어찌 한국을 대표하는 사서가 될 수 있는가!

『삼국유사』는 어떠한가? 1281년(고려 충렬왕 7)경에 승려 일연一然이 편찬한 이 책은 저자 개인의 관점에서 자유로운 형식으로 역사를 기술한 야사野史의 성격을 띠고 있다. 고조선에서 신라 말기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제1권과 2권을 「기이紀異」편이라 이름 붙인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신이한 것을 기록한다’는 편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적인 사서와 달리 『삼국유사』는 각 왕조사를 그 흥망성쇠와 관련된 신화와 전설에 비중을 두어 기록하였다.

고조선 역사도 예외가 아니다. 「기이」편의 고조선 조를 보면, 아버지 환인의 허락을 받아 백두산으로 내려온 환웅이 신시神市를 열어 세상을 다스렸는데, 그때 ‘곰 한 마리一熊’와 ‘호랑이 한 마리一虎’가 사람이 되고자 환웅을 찾아왔다고 한다. 그 리고 백 일 시험 기간을 무사히 통과한 곰이 여자가 되어 환웅과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단군왕검으로서 고조선을 세워 약 1,900년 동안 다스리다가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 기록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환국·배달·옛[古]조선이라는 7천 년에 달하는 우리 상고사를 환인·환웅·단군 3대에 걸친 인물사로 잘못 기록하였다. 둘째, ‘배달의 백성으로 귀화하고자 한 두 부족’인 웅족과 호족을 ‘사람 되기를 갈망한 두 마리 동물’로 묘사하였다. 셋째, 마흔일곱 분 단군이 다스린 고조선을 단 한 명의 단군이 다스린 것으로 오기하였고, 그 단군왕검도 산신이 되었다고 하여 고조선 역사 전체를 신화속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더구나 『삼국유사』는 불교사관으로 덧칠이 되어 있다.  이에 대해 신채호는 “불법의 일자一字도 유입되지 않은 왕검시대부터 인도의 범어로 만든 지명·인명이 충만하여(신채호 저, 이만열 역주, 『조선상고사』, 33쪽)”라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주체성이 결여된 역사관은 현대사에서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외래사관이나 사대주의사관, 외래종교 신봉자인 경우, 자신의 사상과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한민족 역사를 기술하여 심각한 역사왜곡을 초래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식민사학계열과 뉴라이트 계열 사학자들이다.  자신종교의 역사관과 우월성을  피력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우리 역사를 폄훼하고  신화로 만들면서 우리 고유역사와 전통문화에 가해를 하는 경우이다. 역사가 후세에 자신들의 믿는 종교나 신념으로 인해 의도적으로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실제로 일연은 화랑도의 미시랑未尸郞을 미륵선화彌勒仙花의 재생자라 하였고, 한민족 고유의 제천행사인 팔관회를 황룡사 9층탑에 결부시켰다 일연은 ‘현 인류 문명의 최초 나라’인 환국을 불교 신화 속의 나라로 변질시켰다.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라고 기록하면서 이 구절에 “제석을 말한다[謂帝釋也]”라는 주석을 붙여, 환국을 불교 신화에 나오는 제석신의 나라로 풀이한 것이다.불교적 신념에 입각해서 주석을 붙인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역사인식으로 말미암아 그전까지 분명히 실존했던 환국의 역사가 부정되고 말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의 옛 사서들이 다 사라지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 한국의 대표 사서로 남게 되었는가? 일차적인 책임은 김부식과 일연, 두 사람에게 있다. 이들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저술하면서 당시까지 남아있던 사서 중에서 유교사관과 불교사관에 위배되는 문헌은 고의적으로 배제하였다. 『삼국사기』에는『신라고기』,『신라고사』,『삼한고기』,『해동고기』,그리고 김대문의『계림잡전』,『화랑세기』,『한산기』,『악본』, 최치원의 『제왕연대력』과 문집,『김유신행록』등의 국내문헌과『삼국지』,『후한서』,『위서』,『송서』,『남북사』, 『신당서』,『구당서』, 『자치통감』,『진서晉書』 등의 중국 문헌이 인용되었다.

그 후 고려를 이은 조선의 숭유崇儒 정책과 조선을 무너뜨린 일제의 식민 정책은 이 두 사서를 한국의 대표 사서로 굳히는 요인이 되었다. 조선은 고려보다 더욱 강력하게 유교를 장려하며 정치와 사회 전반에 걸쳐 성리학적 질서를 확립하고자 하였고, 그 선행 작업으로 한민족의 독자적인 사서를 사처私處에 간직해서는 안 될 책으로 규정하여 수탈·소각하였다. 그리하여 소중한 사서가 많이 사라진 터에, 일제는 일제대로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20여 년에 걸쳐 이 땅의 사서를 침탈하였다. 더욱이 일제는 한국사 말살의 일환으로, 상고사는 생략하고 삼국의 역사를 중심으로 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조선 사회에 널리 배포하였다. 특히 환국·배달·고조선의 역사가 일부 기록된 『삼국유사』는 그 내용을 변조하여 유포하였다.

만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마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한국의 고대사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역사 해석의 푯대가 되는 이 두 사서가 한민족의 정통 사관이 아니라 사대주의 사관과 유교·불교라는 외래 종교의 관점에서 쓰여 지는 바람에 우리 문화와 역사의 참모습을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손으로 우리 역사를 파괴한 것이다. 19세기 말 개항 이후 서구 물질문명에 편승하여 들어온 기독교는 이 땅에 발을 붙이는 순간부터 한민족의 고유한 정신문화와 시원 역사를 철저히 부정하였다. 지금도  시대는 달라졌지만 이런 주체성 없는 역사왜곡은 외래종교에 의해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한민족은 이상하리만큼 우리 스스로 국조를 부정하여 중국과 일본의 고대사 침탈을 도와주고 있다. 우리는 어떤 종교,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든지 선조들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려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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