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역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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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과 증산도 중] 중국과 일본이 조작한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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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국 역사 왜곡은 그들이 자국의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함과 거의 동시에 자행되었습니다. 서기전 5세기에 공자가 당대 노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춘추春秋』를 보면, 과거 주나라 주변의 민족을 ‘오랑캐’로 매도하였습니다. 즉, 중국은 높이고 다른 나라는 모두 깎아 내리는 존화양이尊華攘夷, 중화中華주의를 취한 것입니다. 이 중화주의 역사관은 그 후 모든 중국 역사 서술의 기본 지침이 되었고, 그로 인해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한민족의 역사는 대부분 오랑캐의 역사로 각색되었습니다.

일본의 한국 역사 왜곡은 백제가 망하자 나라 이름 ‘왜倭’를 ‘일본日本’으로 바꾼(670년) 뒤, 자국의 역사서 『고사기古事記』(712년)와 『일본서기日本書紀』(720년)를 쓰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우선 단군조선 때부터 한반도에서 넘어간 이민자들이 개척한 일본의 고대사를 본래 그 땅에서 자생自生한 왕조 역사로 바꾸어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왜곡함과 동시에 일본 문화의 뿌리, 역사의 뿌리인 한민족을 오히려 그들의 식민지 백성으로 조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일본의 한민족사 왜곡은 20세기에 35년 동안(1910~1945) 조선을 강점하면서 그 절정에 달했습니다. 중국과 일본이 행한 숱한 역사 왜곡 가운데 한국인이라면 누구도 꼭 알아야 하는 중대한 내용을 몇 가지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중국은 역사서를 비롯한 모든 문헌에서 동방문화의 주인인 한민족의 나라 이름을 아예 밝히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국호를 모두 폐기처분하고 이상한 별칭으로 불렀습니다. 유교의 대표적인 경전인 13경을 보면, 중국의 고대 삼왕조인 하상주夏商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고조선의 국호 ‘조선’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고조선 후반기를 살던 유가의 창시자 공자부터 중화 문화의 조국인 조선을 구이九夷라 불렀습니다. 구이九夷란 동쪽의 아홉 오랑캐 씨족이라는 뜻으로 폄훼를 하는 언어입니다. 구이를 구체적으로는 견이畎夷ㆍ우이于夷ㆍ방이方夷ㆍ황이黃夷ㆍ백이白夷ㆍ적이赤夷ㆍ현이玄夷ㆍ풍이風夷ㆍ양이陽夷의 구족九族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중국은 우리나라를 구이九夷(『논어』), 이예夷穢(『여씨춘추』), 직신稷愼(『일주서』), 숙신肅愼(『산해경』), 맥貊(『논어』), 예맥穢貊, 산융山戎, 동호東胡 등 혐오스럽거나 야만적인 느낌을 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예穢는 ‘더럽다’는 뜻이고, 맥貊은 짐승의 한 종류를 가리킵니다. 산융은 ‘산에 사는 오랑캐’, 동호는 ‘동쪽에 사는 오랑캐’를 의미합니다. 관자(管子)에서는 조선을 발조선(發朝鮮)으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후한서』에는 선비와 오환을 모두 동호東胡(번조선)의 후예라 했습니다. 동호東胡는 동쪽의 오랑캐란 뜻으로 東夷와 같은 말입니다. 조선을 오랑캐로 깍아 내리는 표현입니다. 『양서』를 비롯한 여러 사서에는 “동이국왈조선(東夷國曰朝鮮)”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이의 나라는 조선이다.” 이를 볼 때 중국의 수·당 제국을 세운 선비는 고조선에 속한 족속 가운데 하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조선의 나라 이름을 의도적으로 불러주지 않아서 각자 다른 나라처럼 인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각기 다르게 부른 이 지역은 고조선이 있던 곳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고조선이 서기전 24세기에 건국되었다는 사료의 기록대로 고고학을 통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하가점 하층문화에서 발굴된 초기 청동기 문화의 상한 연대가 서기전 2500년 까지 올라갑니다. 그러자 고조선 1호 박사라는 송호정 교수는 ‘고조선식 동검’이 만주일대와 한반도 일대에서 출토되자 고조선의 대표적 표지유물인 비파형 동검이 고조선의 것이 아니라 ‘산융. 동호 등의 북방이민족이 만든 것이라는 겁니다. 물론 산융, 동호는 고조선(동이)의 다른 별칭입니다. 중국에서 으레 고조선을 깍아내리기 위해 오랑캐로 기록을 한 것입니다. 그렇건만 송호정은 1차적 사료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이 청동기가 고조선의 것이 아니라 산융, 동호의 것이라고 우기는 것입니다. 이들은 어떤 유물이 나오든, 어떤 사서의 기록이 나오든지 가릴 것 없이 고조선 역사 죽이기에 몰두를 합니다. 이들이 단군조선을 부정하는 이유는 우리 역사를 외세 중심의 역사관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한민족을 짐승이나 야만인이란 뜻을 가진 이름으로 기록함으로써 한민족의 역사를 중국 주변에 흩어져 살던 야만스럽고 미개한 부족의 역사로 조작한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식민사학자들이 이 논리에 동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적 목적으로 왜곡된 중국 사서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왜 우리의 기록들은 안 믿는 것일까요.

중국은 오랫동안 천자국의 패권을 뺏어가기 위해 끈질기게 한민족을 침략했습니다. 그리고 동방의 천자국인 조선의 나라 이름을 없애버리고 문화의 스승국인 조선을 실체를 영원히 뿌리 뽑고 중화패권을 뿌리내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중화족의 끈질긴 이 작업은 한민족이 세력이 약해지고 역사와 영토를 잃게 되면서 뿌리역사가 뽑혀나가게 됩니다. 이러한 행위는 우리나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너무나 악질적인 소행입니다. 이렇게 중국은 우리 역사를 저희들 입맛대로 왜곡을 하였습니다.

중국 정사正史의 비조로 꼽히는 사마천의 『사기史記』 첫머리에서부터 철저한 역사 왜곡이 등장합니다. 중국의 처음 다섯 왕을 기록한 「오제본기五帝本紀」에 중국 역사의 시조 황제헌원의 이야기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황제가 제후들의 군대를 징집하여 탁록의 들에서 싸워 드디어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禽殺蚩尤)’. 황제헌원이 동방의 천자 치우천황을 사로잡아 죽였다!

이 주장은 터무니없는 역사 왜곡이요 날조입니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우리 역사의 참 모습을 밝힐 수 있는 한민족 상고사의 정통 사서 『환단고기』를 보면 그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치우천황은 배달의 제14세 환웅으로 중원을 경략하여 한민족사에서 강역을 가장 크게 넓히고 배달을 가장 강성한 제국으로 만든 분입니다. 치우천황은 151세를 사시며 국사國師인 자부선사紫府仙師에게서 전수받은 선仙 문화를 동북아 전역에 뿌리내린 동방 신선 문화의 원 종주입니다.
당시 헌원은 치우천황의 통치 하에 있던 서방 지역의 일개 제후였습니다. 헌원도 자부선사에게서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고 선 문화를 전수받았습니다. 하지만 헌원은 배은망덕하게도 스스로 천자가 되려는 욕심으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탁록 벌판에서 10년 대전쟁 끝에 치우천황에게 무릎을 꿇고 그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사기』 첫머리에 정반대로 기술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천은 이 구절에 앞서 ‘치우가 가장 강포하여 능히 그를 정벌하지 못했다’고 하여, 치우천황은 누구한테도 패한 적이 없었다고 역설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헌원이 치우천황을 사로잡아 목을 베었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으로 ‘금살치우’가 조작된 내용임을 스스로 드러냅니다. 『사기정의』(장수절張守節의 『사기』 주석서)도 당시 치우천황의 위엄과 군사력에 대해 “치우 군대가 금속 투구를 머리에 쓰고 큰 쇠뇌[太弩]와 같은 병장기를 갖추고 출전하여 그 위력을 천하에 떨쳤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방문화의 주인에 대한 중국의 왜곡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다. 최근에는 치우천황과 염제신농씨의 혈통까지 왜곡하면서 역사를 탈취해 갔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 홍산문화가 발굴되자, 홍산문화의 주인이며 동방 천자 문화의 종주임을 자처하기 위해 그 동안 인격을 말살하고 괴물로 그려 온 동이족의 치우천황과 염제신농씨를 그들의 조상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하북성 탁록에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이라는 사당을 지어놓고 헌원과 함께 염제신농, 치우천황을 ‘중국의 위대한 세 조상’으로 모셔 놓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중국의 역사를 5천 년 전, 6천 년 전으로 끌어올렸습니다.

 

『한민족과 증산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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