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관(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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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학계의 『환단고기』 위서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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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학계는 그동안 『환단고기』 위서론을 펼쳤던 조인성 교수의 한계가 드러나자, 이문영이라는 무명 소설가를 『환단고기』 위서론 전문가로 내세워 민족사학 죽이기를 자행하고 있다. 이문영은 자신의 글에서 재야 사학자들은 체계적인 역사 훈련도 받지 않은 비전문가라며 역사 연구를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라고 맹비난을 해 왔으며, 심지어 윤내현 교수라든지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인 이덕일 박사까지도 ‘재야사학자’ 곧 ‘사이비역사학자’라고 비난해 왔다.

그런데 정작 민족사학을 그렇게 매도하는 이문영은 학부 출신으로 체계적 전문 훈련을 받지 않은 비전문가이다. 따라서 그도 역시 사이비 역사학자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는 관용과 정당성을 베푸는 것이다.무조건 자신의 역사관하고 다른 민족사학에 대해서는 적대와 증오감을 서슴없이 표출한다. 그의 사고방식은 내가 연애하면 로맨스, 남이 연애하면 불륜인가 보다. 생각이야 자유니까 더 이상 거론은 하지 않겠다. 자신도 박사학위가 없으면서 전문 과정을 거친 박사 출신 사학자를 재야사학이라 비판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자기가 주장하고 싶은 것만 옹호하고 그 외에 학설은 ‘유사 역사’, ‘사이비 역사’로 낙인을 찍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서는 획일적이고 일방통행식 사고관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문영은 자기들만의 카르텔에 갇혀서 자신은 정통사학이요, 절대적이라는 망상에 빠져 있다.

모든 이에게 정보가 개방된 정보화 사회에서는 정보를 독점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한문 해석 실력만 있어도 어느 역사서든 들어가서 원전을 살펴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과연 얼마까지 학문 독점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자신들만이 절대적이라는 사고방식은 제국주의 사고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독선적인 사고관의 기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의 종교관일까. 아니면 그의 역사관일까. 아니면 주류사학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일까.

이문영은 『환단고기』가 전해진 과정과 전수자 이유립의 생애를 잘 모를 뿐만 아니라 『환단고기』 전체를 깊이 연구한 것도 아니다. 이러다 보니 진지하게 분석하고 비판한 것이 아니라 소설가다운 상상력으로 추측한 것을 사실인양 표현하거나 이유립에 대한 인신공격성 글로 독자를 기만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것만 보아도 역사 전문가가 아닌 인물의 부적절한 글을 유력 학술지에 실어 주고 강사로 내세우는 주류사학계는 국민들을 속이고 우리 역사를 망치는 주범이자 식민사학 집단이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환단고기』 출간 과정『환단고기』 위서론자들은 오형기吳炯基가 1949년에 『환단고기』를 정서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강화도 대시전大始殿이 1969년에 건축되었기 때문에 오형기가 1949년 대영절大迎節에 대시전에서 이유립의 부탁을 받고 『환단고기』를 정서하였다는 환단고기 발문 내용은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화도에 대시전이 건립된 1969년 이전에는 단단학회檀檀學會에서 제천행사 때 쓰던 작은 임시 건물이 있었는데 현판만 없었을 뿐 그때에도 대시전이라 불렀다.

이유립의 제자들 증언에 의하면, 1979년에 간행된 ‘광오이해사본光吾理解社本’은 오형기가 1949년에 정서한 필사본을 그대로 영인한 것이 아니다. 이유립의 제자 조병윤趙炳允은 스승의 허락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을 대표로 하여 몰래 광오이해사에서 『환단고기』를 출판할 때, 출간에 적합한 사본을 만들기 위해 오형기에게 필경筆耕을 요청하여 제작하였다. 오형기는 이유립이 ‘배달의숙본’을 간행할 때에도 필경을 담당하였다.

광오이해사에서는 『환단고기』를 1979년 9월과 12월 두 차례 간행하였으며 보급판 외에 고급 대형판도 출간하였다. 그러나 광오이해사본은 급히 제작하다 보니 잘못 필사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1979년 12월 재판에서는 잘못된 부분을 정정한 오류표를 붙여 출간하였다. 이해에 이유립은 이러한 광오이해사본의 오류를 고쳐서 새로 판본을 만들었으나 출판비가 없어 1980년에 배달의숙 이름으로 정식 출간하였다.

주류 강단사학계가 『환단고기』의 독보적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위서론자들이 책 제목인 『환단고기』의 뜻조차 모르고, 둘째, 『환단고기』를 단 한 번도 깊이 있게 제대로 읽지 않았으며, 셋째, 유불선 경전을 비롯한 동북아의 고전과 인류의 시원 종교인 신교의 우주론에 대한 이해가 천박하기 때문이다. 『환단고기』를 바르게 해석하려면, 『환단고기』 저자들만큼 높은 학덕 수준에 이르러야 가능한 법이다. 성인聖人이라야 能知聖人이라 하지 않았던가. 성인聖人의 경지에 가야 성인聖人을 능히 알 수 있다.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삼성기」, 「단군세기」,「북부여기」,「태백일사」를 지은 저자들의 신관과 인간관, 우주론과 역사관의 언어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판만 일삼는 것이다. 비판한 내용을 읽어보면 완전히 수준 이하다. 불가에서 본질을 보지 못할 때 이런 말을 한다. “달을 보라하는데 손가락만 본다.” 이와 같이 『환단고기』의 핵심은 보지 못하고 겉만 보고 비판하는 학문과 정신의 천박함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환단고기』 깊은 신관神觀과 철학, 역사관과 정신세계를 느껴보려는 노력은 해보았는가?

위서론자들은 『환단고기』를 위서로 만들기 위한 목적에만 급급하여 『환단고기』 원문은 물론 『환단고기정해』조차 정독하지 않고 자신들이 공격에 유리하다고 생각한 문구만 골라 일방적으로 결론지어 버린다 . 『환단고기』를 무조건 위서로 만들려는 목적은 하나다. 『환단고기』를 비판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그들의 밥그릇, 식민사학이 붕괴되어 자신들의 기득권이 상실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미 거대하게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어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역사학에 마음이 열려있는 자들은 결코 『환단고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환단고기』를 위서로 몰아가는 이들은 그들의 영달과 직결된 식민사학의 아성을 방어하기 위해 『환단고기』를 매도하고 헐뜯는 것이다. 그들은 『환단고기』와 관련된 어떤 말만 나와도 경기驚氣에 가까울 정도로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역사적으로 보면 『성경聖經』의 말씀을 인용한 자들이 선하고 정의로운 자만 인용한 것이 아니다. 악인惡人도 성경을 인용하여 자신들의 목적을 쟁취하는 데 이용하였다. 지구촌의 수많은 창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악인들도 성경을 이용했었다. 악인이 성경을 인용했다고 해서 성경이 위서인가? 그것은 인용한 자의 잘못된 욕심이 문제인 것이지, 성경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환단고기』 「단군세기」 한 구절을 탄핵된 박근혜 전대통령이 인용했다고 해서 환단고기가 위서가 될 수 없다. 그 당시에도 이 사건을 두고 환단고기를 위서로 만들기 위한 주류사학계의 여론몰이가 있었다.

이유립은 일찌감치 한국사 되찾기 운동을 펼치면서 우리 역사학계가 완고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절감하였다. 1980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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