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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과 증산도 중] 중국 문명의 주역, 배달 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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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가 전하는 배달의 역사는 중국 역사책에 ‘동이東夷’의 역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강단사학계에서는 중화주의 역사관에 영향을 받아 ‘동이’를 ‘동쪽 오랑캐’로 해석하지만, 본래는 중국에서도 그런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한 말이 아닙니다. 서기전 5세기에 공자가 당대 노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춘추春秋』에서 과거 주나라 주변의 민족을 ‘오랑캐’로 매도하면서 ‘동이’를 ‘동쪽 오랑캐’라고 해석하게 되었다.

‘동東’은 태양이 떠오르는 광명한 방위를 말합니다. ‘이夷’는 ‘뿌리(柢)’라는 뜻도 되고 ‘활을 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는 또한 ‘인仁’ 즉 ‘어질다’는 뜻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이’의 올바른 뜻은 ‘동방의 뿌리 민족’, ‘활을 잘 쏘는 동방의 민족’, ‘동방의 어진 민족’입니다.
그리고 상(은)나라 갑골문을 보면 이夷는 시尸, 인人과 함께 ‘사람이 똑바로 서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시尸는 제사 때 신이 응감應感하도록 세워 놓은 신상神像으로 ‘신의 대리인’을 뜻합니다. 중국 한족이 동방의 배달족에게 이처럼 신의 대리인을 뜻하는 ‘이夷’ 자를 붙여서 부른 것은 당시 그들이 동이족을 신성시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역사적으로 중국인들이 동방 민족을 ‘동이’라 부른 것은 치우천황이 큰 활을 만들어 쓴 이후부터입니다. 큰 활의 위엄에 두려움을 느낀 한족이 배달민족을 가리켜 ‘큰 활을 잘 쏘는 동방 사람’이라 부른 것입니다. 중국 사서에 나오는 동이의 역사는 곧 배달 시대로부터 시작된 한민족의 서방 개척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동이’ 앞에 정식 국호인 ‘배달’을 붙여 ‘배달 동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동이족은 치우천황의 영토 확장을 계기로 서토西土 깊숙이 퍼져나가 중국의 역대 왕조를 이끈 주류가 되었습니다.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를 쓴 대만의 쉬량즈徐亮之와 북경대학의 고고문박학원考古文博學院 교수인 옌원밍嚴文明의 논문을 보면 대만과 중국 학자들 스스로 ‘중국은 동이문화’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중국 역사의 시조인 황제헌원부터 동방 배달의 한 종족입니다. 『사기』 「오제본기」에서 헌원의 종족 이름을 유웅有熊이라 하였는데, 유웅씨는 배달 초기에 흡수된 웅족 계열입니다.

황제헌원뿐 아니라 오제五帝로 꼽히는 소호, 전욱, 제곡, 요, 순도 모두 동이족입니다. 그 뒤를 이은 고대 3왕조의 개국조인 하나라 우禹, 상(은)나라 탕湯, 주나라 문왕과 무왕까지도 모두 동이족 혈통입니다. 특히 상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로 제도와 풍습이 당시 그들의 상국上國이던 단군조선과 아주 유사합니다. 그리고 주나라 초기에 강태공이 제후로 봉해진 제나라도, 그 이웃인 노나라도 역시 동이의 나라였습니다.

동이는 중국의 역대 왕조를 일구었을 뿐만 아니라 신교문화와 문물을 중국 땅에 전했습니다. 동이의 도자기 제조술, 제철법, 역법曆法, 갑골문자, 천자天子 제도, 조세 제도, 윤리규범 등 다양한 문물제도가 전해졌습니다. 동이족은 지금의 산동성, 하북성, 하남성, 강소성, 안휘성, 호북성, 절강성 등 광대한 영역에 걸쳐 활동하면서 중국 황하문명의 근간을 이루었습니다.
한마디로 ‘배달 동이’는 중국에게 지배를 받은 민족이 아니라 중국의 역사와 문명 발전을 주도한 지배 세력이었습니다.

그러면 현 강단사학의 거두이자 서울대학교 역사학 명예교수인 한영우 교수가 그의 저서인 『다시 찾는 우리역사』에서 아사달족인 동이에 대한 기술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주류사학은 그동안 단군조선은 한반도 평양을 중심으로 한 소국으로 출발하여 위만조선으로 이어지고 한 무제에 의해 패망당하고 한사군이 설치되었다는 것이 주류였습니다. 한영우 교수의 책을 보면 주류 강단사학계의 소조선론과 단군을 신화로 보던 시각에서 『환단고기』의 역사 영역에 접근한 부분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한반도의 선사시대와 비슷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발해안을 끼고 도는 산동山東지방, 요서遼西지방, 한반도, 그리고, 일본의 일본의 큐슈 지방에도 널리 퍼져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상정하는 것은 무리가 없다.『다시 찾는 우리역사』(한영우)p78-

다음은 『환단고기』 「단군세기」에 기록된 단군조선 영역이다.
●乙卯 二十九年 命 菁莪褥薩丕信 西沃沮褥薩高士琛 貊城褥薩突盖 封爲列汗 戊寅 五十二年 帝 崩 牛家 屹達立『단군세기』「12세 아한」
☞을묘 29년(乙卯 二十九年)에 아한 단군께서 명(命)을 내려 청아 욕살 비신(菁莪褥薩丕信), 서옥저 욕살 고사침(西沃沮褥薩高士琛), 맥성의 욕살 돌개(貊城褥薩突盖)를 그 지역의 제후(汗, 汗은 단군조선 거수국의 제후)에 봉하도록 하였다(封爲列汗). 당시 청아, 서옥저, 맥은 난하의 서쪽에 있었던 거수국(제후국)이었다.

다음은 세종실록 지리지에 기록된 단군의 통치영역이다.
●檀君古記云 :「上帝桓因有庶子, 名雄, 意欲下化人間, 受天三印, 降太白山神檀樹下.」 是爲檀雄天王. 令孫女飮藥, 成人身, 與檀樹神, 婚而生男, 名檀君, 立國, 號曰朝鮮. 朝鮮, 尸羅, 高禮, 南北沃沮, 東北扶餘, 濊與貊, 皆檀君之理.
☞조선,시라,고례,남북옥저,동북부여,예와 맥국이 모두 단군의 통치영역이었다.『세종실록 지리지』
중국의 양서에도 ‘동이의 나라는 조선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東夷國曰朝鮮『梁書』 (동이의 나라는 조선이다)

이어서 한영우 교수의 동이東夷에 대한 기술을 살펴보자.
●중국인들은 이들은 자신들과 구별하여‘동이족東夷族’이라 부르고 이들의 문화를 ‘동이문화’라고 했는데,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아사달족’이라 부르는 것이 좋다...(고조선이 처음 건국된 지역이 바로 아사달이다)
‘아사달족’의 영역은 매우 광대하다. 가장 북쪽의 초원지대에 살던 아사달족이 농경지가 많고 따뜻한 요서 지역으로 들어오고, 이들의 한 갈래는 다시 산동지방과 회수淮水 지역가지 내려오고, 다른 한 갈래는 요동을 거쳐 한반도로 이주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중국에 전란이 일어날 대마다 산동지역의 아사달족도 한반도로 이주해 왔다.

고고학상으로 보면 ‘아사달족’은 공통의 선사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민무늬토기, 고인돌, 비파형동검 등 공통된 선사문화를 지니고 있으며, 태양을 숭배하는 신앙(광명신앙)도 서로 비슷하고, 단군에 관련된 유적도 공통적으로 보인다.....,요서 지역에 살던 주민들이 뒷날 선비鮮卑,동호東胡,오환烏桓, 거란契丹, 조선족朝鮮族 등으로 불렸는데, 이들이 모두 아사달족에 속한다. 그런데 홍산문화 유적은 단군신화의 내용과 일치하는 점이 매우 많다. 태백산과 곰이 그렇고, 여신상은 웅녀熊女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지역의 이름 가운데 적봉赤峯, 홍산紅山, 조양朝陽 등의 이름도 태양이 떠오르는 동방을 상징하는데, 그것이 바로 아사달이다. 그렇다면 고조선의 건국은 바로 이 지역에서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아사달 족의 초기 추장은 치우(蚩尤天皇)씨, 태호(太昊伏羲)씨, 소호(少昊金天)씨 등으로 알려져 있다.『다시 찾는 우리역사』(한영우 저著)-p79-

삼국사기에서도 이 부분이 기록되어 있다.
●先是朝鮮遺民, 分居山谷之間爲六村 『삼국사기』「신라본기」
☞“이보다 먼저 조선朝鮮의 유민이 이곳에 와서 산골짜기에 흩어져 살면서 여섯 촌락을 이루고 있었다”(신라가 열리기 전에 고조선이 무너지고 열국시대로 들어서며 진시황의 노역을 피해서 조선 유민들이 내려왔다)
●吾東方(오동방), 檀君始祖也(단군시조야) 蓋自天而降焉(개자천이강언) 非天子分封之也(비천자분봉지야) 檀君之降(단군지강) 在唐堯之戊辰歲(재당요지무진세)迄今三千餘禩矣(흘금삼천여사의)『태종실록 』「경승부윤 변계량상서敬承府尹卞季良上書」
☞우리 동방은(吾東方) 단군(檀君)이 시조입니다.
대개 하늘에서 내려왔고 천자가 분봉(分封)한 나라가 아닙니다.(본래 천자의 나라다) 단군이 내려온 때는 당요(唐堯)의 무진년(戊辰年:기원전2333년)입니다. 우리나라는 단군이 나라를 연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3천년 동안 하늘에 제사를 지내왔습니다『태종실록』「변계량상서」

주요 사서를 비롯하여 주류 강단사학의 대가라 불리는 한영우 교수의 책을 살펴보면 홍산문화의 주역이 바로 아사달 문화를 연 동이東夷요, 단군조선이 이었고, 한국은 이 천부인天符印사상으로 국통을 이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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