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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과 증산도 중] 환국과 배달의 역사를 밝힌 홍산문화

운영자 0 19

 
1)동북아와 인류의 창세사를 다시 쓰다
동북아의 역사는 참으로 오랫동안 왜곡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 왜곡된 한민족 뿌리 역사의 진실이 중국의 홍산문화 유적 발굴을 통해 송두리째 드러났습니다. ‘홍산紅山’은 내몽골자치구 적봉시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산 전체가 적철광으로 뒤덮여 붉게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배달 시대 이래 우리 조상들의 활동 강역이던 내몽골 지역과 중국 요령성 지역에서 홍산문화의 유적과 유물이 대거 발굴되었습니다.

홍산 인근에서 나온 5,000~6,500년 전의 문명은 협의의 홍산문화이고, 만리장성 이북의 요서 일대에서 발굴된 최고 9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모든 신석기, 청동기 문명은 광의의 홍산문화입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무려 9천 년 이상 된 고대문명의 출현은 20세기 고고학 최대의 발굴 사건이었습니다. 홍산문화 발굴은 1908년, 일본 학자인 도리이 류조우鳥居龍藏가 적봉 일대의 지표를 조사하다가 우연히 신석기 유적과 적석총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뒤 1922년 프랑스의 에밀 리쌍E. Licent이 유적 발굴에 참여하였고, 1930년대 들어와 중국 근대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의 아들인 량쓰융梁思永이 내몽골의 적봉 홍산 유적지를 조사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기 전인 1935년 일본의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 등에 의해 본격적인 고고학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으로 홍산 유적은 한동안 잊히게 됩니다.

그 후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71년 8월, 내몽골자치구 옹우특기에 사는 한 농민이 과수원에서 갈고리 모양의 물건을 발견하고는 녹슨 폐철이라 여기고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그의 어린 동생이 그것을 가지고 놀다가, 녹이 벗겨지며 광택이 나타나자 옹우특기문화관에 신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문화관에서도 이것을 창고에 넣어둔 채 방치하다가, 10여 년이 지난 뒤 북경대 고고학자 쑤빙치蘇秉琦 교수에게 보내어 감정한 결과, 5천 년 전에 만들어진 옥기玉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로선 가장 오래된 용 유물인 이 ‘C자형 옥룡’을 중국 정부는 ‘중화제일용中華第一龍’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1984년).

유물이 발굴될 때마다 동북아의 시원 역사를 다시 쓰게 하는 홍산문화는 세계 4대문명보다 앞선 것으로 ‘제5의 문명’입니다. 환국 문명의 자취가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것을 생각할 때, 홍산문화는 인류 역사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주는 매우 소중한 문화 자원입니다.

홍산문화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것은 3,40년 전의 일입니다. 1979년에 요령성 객좌현 동산취촌東山嘴村에서 제사 유적이 발견되고, 1983년 무렵 그 인근 우하량촌牛河梁村에서 적석총積石塚(돌무지무덤)[塚], 신전[廟], 제단[壇] 유적이 한꺼번에 발굴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홍산문화의 중심지이자 성지인 우하량 지역의 유적은 계급이 분화된 국가 단계의 고대 문명을 보여 주는 것으로 더욱 이목을 끌었습니다. 대형 적석총을 보면 최고 통치자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중앙의 대묘大墓를 작은 무덤들이 둘러싼 형태입니다. 한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은 신전은, 최고 통치자가 제사장으로 천제를 올려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던 제정일치 시대의 유적임을 말해 줍니다.

그렇다면 6천 년 전에 이미 국가 체제를 갖춘 뛰어난 이 문명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우하량 유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적석총이 이를 말해 줍니다. 적석총은 고대에서 삼국 시대까지 계속 나타나는 한민족의 대표적인 묘제입니다. 적석총은 충적층 지대인 황하 지역에 형성된 한족 문화권에서는 전혀 출토되지 않는 무덤입니다. 한족은 땅에 구덩이를 파고 주검이나 관을 묻는 토광묘를 짓습니다. 결론적으로 홍산문화의 주인공은 배달 동이족인 것입니다.

또한 우하량 제2 지점에서 발굴된 원형제단과 그 옆에 나란히 위치한 무덤군은 동방 우주론의 주요 사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원형 구조를 한 제천단은 ‘하늘은 원만하다’는 천원天圓 사상을 나타낸 것이고, 방형方形으로 짜진 무덤군은 ‘땅은 방정하다’는 지방地方 사상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 천원지방 구조는 배달을 계승한 단군조선 시대 초대 단군왕검이 쌓은 강화도 마리산의 참성단과 근세조선 말에 고종 황제가 세운 원구단에서도 나타납니다. 뿐만 아니라 명나라 때 지은 북경 천단공원의 환구단에서도 나타납니다. 수천 년에 걸쳐 일관되게 이어져 온 제천단의 천원지방 구조로 볼 때, 5,500년 전에 세운 우하량 제단은 동북아 제천단의 원형인 것입니다. 원형 제단이 3단 구조를 취한 점 또한 동방 우주론의 삼수三數문화를 보여 줍니다.

이 홍산문화는 중국 땅으로 전파되어 황하문명의 발달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시베리아과학원의 고고학자 세르게이 알킨 교수도 ‘홍산문화는 중원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중원문화가 홍산문화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홍산문화는 동북아 고대문화의 최고봉으로서 중국 한족 문화와는 계통이 전혀 다른, 동방 한민족의 독자적인 문화입니다. 그러므로 홍산문화의 실체는 환웅천황 열여덟 분이 다스린 배달의 역사를 시작부터 끝까지 기록해 놓은 『환단고기』로만 해석이 가능합니다.

홍산문화 가운데 소하서小河西문화는 중국 남방의 신석기문화보다 1천 년이 앞섭니다. 여기에서 신석기 집단거주 유적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흥륭와興隆洼문화 유적지에서는 7,8천 년이나 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옥 귀고리(옥결玉玦)가 발굴되었는데, 이 옥결과 같은 유물들이 강원도 고성 문암리와 전남 여수 안도리에서도 나왔습니다. 이것은 만주와 한반도가 하나의 문화권으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입증합니다. 옥은 변하지 않는 보석으로 영생불멸을 뜻하고 하느님의 신성神性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옥황상제玉皇上帝’라고 합니다. 홍산인들은 옥으로 고귀한 신분을 나타내는 장신구, 신과 소통하는 신물神物, 천제天祭에 쓰는 제기 등을 만들었습니다. 홍산문화에서 또 주목을 끄는 것은 사해査海문화로, 여기에서 7,600년 전에 돌로 용의 형상을 만든 석소룡石塑龍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조보구趙寶溝문화 지역에서는 7천 년 전에 만든 봉鳳 형상의 토기가 나왔습니다.

예로부터 용은 천자天子를 상징합니다. 또한 천자문화의 근원은 중국이 아니라 동이족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중국은 진시황이 6국을 통일하며 최초로 천자가 됩니다. 그 이전의 천자권의 종주는 늘 동방조선이었습니다.

●“龍, 人君之象也.”(『논형論衡』「기요紀妖」)
●天子, 夷狄之所稱, 父天母地故, 稱天子『독단(獨斷)』-후한시대 채옹(蔡邕)
“천자는 동이족 임금의 호칭이다. 하늘을 아버지, 땅을 어머니로 섬기는 까닭에 하늘의 아들이라 한다. 채옹은 이와 같이 천자제도의 근원이 동이족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동황태일(東皇太一)『楚辭』「초(楚)나라 굴원屈原」
동방의 황제는 태일太一이다.(천지와 하나된 인간을 태일太一이라 한다. 천자天子는 삼신상제를 대행해서 인간 세상을 다스렸다) 굴원은 동방의 천자였던 단군을 태일이라 말한 것이다.
●자기동래紫氣東來「중국 태산 입구」
자미원은 천자가 거하는 별자리입니다. 이 기운을 받아서 천자가 되는데 천자문화가 동(동이족)에서 유래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동안 중국인들은 그들이 세계 4대문명의 하나인 황하문명의 주인공이자 나아가 용 문화의 원류로서 천자문화의 주체라고 자부해 왔습니다. 이 황하문명의 용 유물은 아무리 멀리 잡아도 5천 년 전 것입니다. 그런데 만리장성 밖, 배달 동이의 영역에서 중국 것보다 2천여 년 이상 앞선 용봉 문화의 유물들이 나온 것입니다. 용봉龍鳳은 천자天子를 의미합니다.
옥 문화와 용봉 문화를 비롯하여 동이족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놀라운 유물이 계속 쏟아져 나오자 중국의 정치 지도자, 역사학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홍산문화의 진실을 감추고 그것이 중화문명인 것처럼 꾸미기 위해, 중국은 한민족의 고대 역사를 그들의 것으로 흡수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 작업을 통해 그들은 ‘홍산문화는 중국 문화로서 세계 4대 문명의 근원이 되는 진정한 인류의 창세문화, 원형문화’라고 주장합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한국 강단사학계는 홍산문화에 대해 침묵하거나 ‘우리나라 문화 코드와 달라서 우리 문화의 직접적인 원형이 아니다’라며 부정하고 있습니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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