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역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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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과 증산도 중] 동북아를 호령한 대제국, 단군조선

운영자 0 76

 

1)중국의 9년 대홍수를 다스리게 해 준 단군왕검
단군왕검 재위 50년(서기전 2284년)에 홍수가 나서 강이 범람하여 백성이 편안히 살 수 없게 되자 왕검께서 풍백風伯 팽우에게 물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운사雲師 배달신倍達臣을 시켜 강화도 마리산에 삼랑성三郞城과 제천단을 쌓고 천제를 올렸습니다. 그 제천단이 지금도 남아 있는 참성단입니다.

당시 중국은 요堯 임금이 다스리던 때로 단군조선이 물난리를 치르고 몇 년이 지나, 중국 땅 역시 큰 물난리를 겪게 됩니다. 요임금의 신하 곤鯀이 홍수를 다스리려 했으나 실패하고, 곤의 아들 사공司空 우禹가 치수를 맡았습니다. 우는 치수에 힘쓰는 수 년 동안 자기 집 앞을 세 번이나 지나갔지만 한 번도 들르지 않을 정도로 전력을 쏟았습니다. 그럼에도 홍수가 그치지 않고 국가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지경이 되자, 중국은 동방 천자국의 단군왕검에게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단군왕검께서 도산塗山(회계산) 회의를 소집하고, 태자 부루扶婁를 파견했습니다. 그 회의에서 부루태자가 사공 우에게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오행의 원리로 물을 다스리는 법)’을 전하여, 중국은 마침내 물난리를 해결 할 수 있었습니다(서기전 2267년). 이것이 ‘중국 9년 홍수 치수’의 전모입니다. 단군조선의 홍수는 서기전 2284년에 일어나 1년 만에 해결됐습니다. 중국은 9년 동안 홍수를 겪다가 서기전 2267년에 끌러졌으니, 서기전 2276년경에 홍수가 발생한 셈입니다. 단군조선의 물난리가 끝나고 7년 후 중국의 홍수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 시대는 성경에서 말하는 노아의 홍수시대와 때를 같이 합니다. 이 때는 전 세계적으로 홍수기였습니다.

『구약』에서 전하는 노아의 홍수는 겨우 40여 일이지만 중국의 홍수는 무려 9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중국의 9년 대홍수는 고대 동북아의 대재앙이자 인류사의 가장 큰 자연재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단군왕검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중국의 역사는 요순시대에서 더 이상 전개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단군은 중국의 국난을 끌러준 후 나라의 경계를 정하였는데, ‘회수와 태산 지역(지금의 산동성, 안휘성, 강소성, 절강성)’을 단군조선에 귀속시키고 분조分朝를 두어 우순(순임금)으로 하여금 단군을 대신하여 다스리게 했습니다. 단군은 또 산동 지역의 낭야성에 감우소監虞所(우순의 정치를 감독하는 곳)를 설치하여 순으로부터 분조의 정사를 정기적으로 보고 받았습니다
부루태자가 단군왕검의 명을 받고 특사로 도산에 갈 때, 도중에 낭야성에 들러 반 달 동안 머무르며 백성의 사정을 묻고 들었는데, 이때도 순임금이 치수에 대한 모든 일을 부루태자에게 보고하였습니다(『환단고기』 「태백일사」).

낭야성은 그 성을 개축한 번한의 2세 왕 낭야(치우천황의 후손)의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이곳은 오늘날에도 ‘낭야’로 불리고 있습니다.이것을 증명해 주는 기록이 『서경』 「순전舜典」의 “사근동후肆覲東后”입니다. 이것을 대개 ‘순임금이 동쪽의 제후를 만났다’라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후인 순임금이 동방의 천자인 단군왕검을 알현하였다’라고 해석해야 맞습니다. 『예기』 「곡례曲禮」에 의하면, ‘근覲’은 제후들이 북쪽을 향해서 천자를 알현하는 것이다. 『이아爾雅』의 주註에서는 ‘근覲’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뵙는 것(下見上)’이라 풀이합니다. 사근동후는 단군조선의 제후였던 순임금이 동방의 천자인 단군왕검을 알현한 사건에 대한 기록인 것입니다.

2)하상주 왕조의 흥망을 좌우한 단군조선
단군조선은 요순 시대를 이은 하상주夏商周의 건국과 흥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나라의 창업자는 바로 회계산에서 단군조선의 부루태자로부터 오행치수법이 적힌 금간옥첩을 받아 치수에 성공한 사공 우禹입니다. 9년 홍수를 해결한 덕에 인심을 얻어 하夏나라를 연 우임금은 조선의 은혜를 잊지 못해 죽을 때 회계산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현재 우임금의 왕릉은 회계산에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사서 『오월춘추』를 보면, 우가 단군조선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부루태자를 ‘현이의 창수사자玄夷蒼水使者’ 라고 기록하였습니다(현이玄夷는 북쪽에 있는 단군조선을 의미합니다. 창수사자는 푸른 물(창수蒼水)를 건너온 사자使者란 뜻으로 창수사자는 발해만을 건너 온 부루태자를 말한다). 그런데 우의 꿈에 나타나 비법을 알려 주어서 우가 스스로 국난을 해결하였다고, 진실을 왜곡하였습니다.
중국측 기록인『오월춘추』는 부루태자를 ‘현이의 창수사자玄夷蒼水使者’ 라고 바꿔치기 해서 말할 뿐 나머지는 『단군세기』 내용과 동일합니다.
●甲戌六十七年 帝遣太子扶婁 與虞司空 會于塗山 太子傳五行治水之法
재위 67년 갑술(BCE 2267)년에 왕검께서 태자 부루扶婁를 보내어 우순虞舜이 보낸 사공(司空=禹)과 도산에서 만나게 하셨다. 태자는 오행치수법을 (禹에게) 전하였다.『환단고기』「단군세기」

『오월춘추』는 현이의 창수사자에게 오행통수의 이치를 전해 받아서 치수에 성공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환단고기』를 위서로 모는 이유는 무엇인가? 『서경』「홍범」에서는 “하늘이 우에게 홍범구주를 주셨다(天乃錫禹洪範九疇)”라고 하여 부루 태자를 이번에는 ‘하늘(天)’로 바꿔서 기록하고 있다. 이는 둘 다 상국上國인 고조선의 존재를 숨기려는 의도였지만, 고조선은 천자天子의 나라였기 때문에 우虞나 하夏 등의 중원왕조에겐 ‘하늘’과 같은 나라로 기술을 했던 것이다.

하나라에서 상商나라로 중원 왕조가 교체될 때도 단군조선의 힘이 작용하였습니다. 폭군 걸桀의 폭정으로 하나라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자, 성탕成湯이 걸을 정벌하고자 하였습니다. 단군조선의 13세 흘달 단군은 처음에는 걸을 지원했으나 걸의 폭정이 지속됨에 결국 탕을 지원하여 이기게 했습니다. 성탕은 걸왕을 패사敗死시킨 뒤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상商이라 하였습니다. 상나라의 왕통王統은 동이東夷의 혈통입니다. 상나라는 신교神敎로 나라를 열고 국가를 경영하였습니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하늘에 제를 올리고 길흉을 점쳤는데, 그것이 잘 알려진 갑골甲骨문화로, 신교의 풍습입니다. 또한 상나라의 유물인 옥玉이나 삼족기와 같은 도기陶器를 보면 이들이 홍산문화를 계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나라의 개국공신인 이윤伊尹도 동이족 출신입니다. 이윤은 단군조선 11세 도해 단군 때의 국사國師인 유위자有爲子에게서 신교神敎의 대도大道 문명을 배워 상나라의 제도와 질서를 정립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상나라의 초기 왕들 역시 단군조선을 상국上國으로 받들었습니다. 이윤과 유위자의 관계는 『환단고기』만 아니라, 공자의 10세손인 공빈孔斌이 지은 『동이열전東夷列傳』에도 나옵니다. “은殷의 탕湯왕을 보필하여 하나라의 마지막 왕인 폭군 걸桀을 쫓아낸 명재상 이윤이 유위자의 문하에서 대도를 전수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12세 하단갑 때부터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조공도 바치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단군조선의 변방을 침범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조선의 21세 소태 단군과 22세 색불루 단군이 상나라를 정벌하였습니다. 전쟁을 할 때마다 패전을 거듭하던 상나라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결국 단군조선의 지원을 받은 주周나라에게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주 무왕은 당시 많은 병력과 전차를 보유한 강력한 상나라 군대를 이기기 위해 배달 동이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였습니다. 이때 무왕을 도운 동이족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강태공입니다. 이렇게 상나라 다음으로 등장하여 550년 동안 중원을 지배한 3천 년 전의 주나라도, 창업 때부터 단군조선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전의 왕조와 마찬가지로 조선에 조공과 방물을 바쳐 예를 표했습니다.

『환단고기』에는 주나라 왕 하瑕(4세 소왕昭王)가 고조선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친 일, 32세 추밀 단군 때 주나라가 번조선에 방물을 바친 일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인류문화의 성숙기로서 인류의 시원역사가 밝혀지는 때입니다. 그 시원역사의 본래 모습을 담고 있는 사서가 바로 『환단고기』입니다.
단군조선과 중국의 관계를 간단히 정리하면, 단군조선은 동북아의 천자국天子國이었고, 하·상·주 중국 3왕조는 모두 단군조선의 정치적 통제를 받은 제후국이었습니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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