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역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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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과 증산도 중] 고구려 이후 대한민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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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여의 국통은 고구려로 계승되었습니다. 북부여의 6세 고무서 단군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고주몽이 동부여에서 탈출하여 졸본으로 들어왔습니다. 고무서 단군은 범상치 않은 주몽을 보자 자신의 둘째 딸 소서노와 혼인시켜 사위로 삼은 후, 왕좌의 대통大統을 물려주었습니다(서기전 58년).

●至癸亥春正月(지계해춘정월)하야 高鄒牟(고추모)가 亦以天帝之子(역이천제지자)로 繼北扶餘而興하(계북부여이흥)사 復檀君舊章(복단군구장)하시고
祠解慕漱(사해모수)하사 爲太祖(위태조)하시고 始建元(시건원)하사 爲多勿(위다물)이라하시니 是爲高句麗始祖也(시위고구려시조야)시니라. 『삼성기 상』
☞「계해(BCE 58)년 봄 정월에 이르러 고추모(고주몽)가 역시 천제의 아들로서 북부여를 계승하여 일어났다. 단군의 옛 법을 회복하고, 해모수를 태조로 받들어 제사지내며 연호를 정하여 多勿다물이라 하시니, 이분이 곧 고구려의 시조이시다. 」

주몽은 북부여의 시조인 해모수의 4세손입니다. 즉 해모수의 둘째 아들이 고진이고, 고진의 손자가 불리지인데, 주몽은 바로 불리지의 아들입니다. 주몽은 동부여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고향인 북부여로 돌아가 고무서 단군을 이어 북부여의 7세 단군이 된 것입니다. 주몽은 단군으로 즉위하자 해모수를 태조로 삼아 제사를 지내고, 나라 이름을 고구려로 바꾸었습니다(서기전 37년, 『삼성기』 하).

또한 『삼성기』에는 북부여와 번조선의 멸망과 위만정권, 한무제를 물리친 북부여의 영웅 고두막한과 신라의 뿌리가 북쪽의 유목문화에서 기원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壬戌 秦始時에 神人大解慕潄가 起於熊心山하시고
丁未 漢惠時에 燕酋衛滿이 窃居西鄙一隅할새
番韓 準이 爲戰不敵하여 入海而亡하니
自此로 三韓所率之衆이 殆遷民於漢水之南하고
一時 群雄이 競兵於遼海之東이러니
至癸酉 漢武時에 漢이 移兵하여 滅右渠하니라.
西鴨綠人 高豆莫汗이 倡義興兵하여 亦稱檀君하고
乙未 漢昭時에 進據夫餘故都하여
稱國東明하시니 是乃新羅故壤也라『삼성기 상』

☞「임술(BCE 239) 년 진왕 정 때 신인 대해모수가 웅심삼에서 일어났다
정미(BCE 194) 년 한나라 혜제 때 연나라 유민의 우두머리 위만이 서쪽 변방의 한 모퉁이를 도적질하여 차지하였다.
이에 번한의 왕 준이 맞서 싸웠으나 당해 내지 못하고 바다로 도망(금강유역) 하였다. 이로부터 삼한 에 속해 있던 백성들은 대부분 한수 (한강)이남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이후 한때 여러 영웅이 요해의 동쪽에서 군대를 일으켜 서로 힘을 겨루더니, 계유(BCE 108) 년 한무제 때 한나라가 쳐들어와 위만의 손자 우거를 멸하였다.이때 서압록 사람 고두막한이 의병을 일으켜 또한 단군이라 칭하였다. 을미(BCE 86)년 한나라 소제때 고두막한이 부여의 옛 도읍을 점령하고 나라 이름을 동명이라 칭하시니, 이곳은 곧 신라의 옛 땅이다.」

한국사 교과서를 보면 고구려 역사(서기전 37년~서기 668년)는 건국에서 패망까지 700년이 조금 넘습니다. 그런데 중국사서 『신당서』를 보면, 시어사侍御史 가언충賈言忠이 요동에서 돌아와 당 고종에게 고구려와의 전시戰時 상황을 보고하면서 ‘고구려는 900년을 넘지 못하고 팔십 먹은 장수에게 망한다’고 한 『고구려비기』 내용을 전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가언충이 인용한 ‘고구려 역사 900년’은 주몽이 아닌 해모수를 고구려의 태조라고 해야만 해석이 가능합니다. 해모수가 북부여 단군으로 즉위한 해로부터 계산하면 고구려의 역년이 꼭 900년입니다(서기전 232년 ~서기 668년). 『신당서』의 이 기록은 당나라 때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해모수는 물론 북부여 역사를 알고 있었음을 입증합니다.

‘광개토태왕이 17세손’이라는 광개토태왕 비문 구절 또한 해모수가 고구려의 태조임을 밝혀 줍니다. 광개토태왕은 주몽의 13세손이자 해모수의 17세손입니다. 이처럼 고구려가 북부여의 정통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북부여를 ‘원고구려’라고 부릅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구려 장수 대중상大仲象은 다시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후고구려’라 하였습니다. 이렇게 원고구려-고구려-후고구려로 이어지는 역사 또한 우리 국통맥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대중상의 후고구려는 그의 아들 대조영大祚榮에 의해 대진大震으로 이름이 바뀌어 한민족의 국통맥을 이어갑니다.
진震은 ‘동방’을 뜻하므로 대진은 ‘위대한 동방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우리 귀에 익숙한 ‘발해’는 당나라가 대진을 제후국으로 깎아내리려고 발해渤海라는 바다 이름에서 따 붙인 것입니다.
대진은 동북아의 주인이던 고구려의 계승자로서, 당시 국경을 맞대고 있던 신라와 달리 독자적인 연호를 쓰고 황제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릴 정도로 강성했으나 거란의 침입으로 926년경에 멸망하고 맙니다. 일설에는 백두산 화산이 폭발하여 수도인 상경용천부 일대가 화산재에 뒤덮여서 그 여파로 멸망했다고도 합니다.

후신라(통일신라)와 대진이 공존하던 남북국 시대가 끝난 후, 한민족의 국통은 고려, 조선, 대한민국으로 계승됩니다. 단군조선 시대의 사관史官 발리는 「신지비사神誌秘詞」에서 ‘한민족의 국통 맥은 아홉 번을 바뀌며 전개된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예견한 것처럼 우리나라는 ①환국 → ②배달 → ③(단군)조선 → ④북부여(열국 시대) → ⑤고구려·백제·신라·가야(사국 시대) → ⑥대진·신라(남북국 시대) → ⑦고려 → ⑧(근세)조선 → ⑨대한민국(남북한 분열시대)으로 이어져 온 것입니다.

한편 단군왕검의 신하였던 神誌(신지)가 지은『神誌秘史신지비사』와 『書雲觀秘記서운관비기』에서 震檀九變圖(진단구변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진단(震檀)은 곧 조선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나라의 국호가 아홉번 변하게 된다는 것을 예견한 비기(秘記)입니다. 9數는 선천 불열의 마지막 수數이고 10數에서는 천지인天地人 삼계三界가 완전히 열려서(개벽) 하나로 돌아갑니다. 열 번째 나라는 통일된 한국으로 인류최초의 황금기였던 환국이 건설될 것을 의미합니다. 천지의 본성인 광명을 회복하여 천지와 하나된 태일太一인간이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입니다. 한민족의 건국이념은 천지광명天地光明을 체득하여 대우주와 하나된 삶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신지비사神誌祕詞』는 조선의 여러 서책에서도 인용을 하는데, 거기에는 ‘구변도국九變圖局’, 또는 ‘진단구변도震檀九變圖’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

●구변九變의 도국圖局이 어찌 사람의 뜻이랴. 《용비어천가》
국局은 도국圖局이다. 구변도국이란 신지가 찬한 도참의 이름으로써 우리나라 역대歷代를 말하였으니 무릇 구변의 도국이며 아울러 본조가 천명을 받아 도읍한 것을 말하였다.《용비어천가 주注 》
●태종 9년 기축(1409)년에 태조의 능에 비碑를 세웠는데 글에 “...서운관의 구장비기舊藏秘記에 구변진단九變 震檀의 도국이 있어서 건목득자建木得子라고 했으니, 조선 곧 진단의 설이 이미 수천 년 전에 나와서 오늘에 이르러 하늘이 덕 있는 이를 도운 일에 징험했으니 진실로 믿겠도다”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태조가 왕이 되기 전에 구장 서운관비기에 구변진단의 도국과 건목득자의 설이 있었는데 조선은 곧 진단이다. 《이중환의 ‘팔역지’》

‘구변진단九變震檀’의 뜻은 우리나라 진단震檀의 역대 국명國名이 아홉 번 변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열 번째 나라에서는 남북으로 분열된 한국이 통일되고 인류미래 문명을 주도하는 ‘도주국道主國’으로 부상을 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와 문화가 회복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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