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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개벽이다 중] 불교와 기독교에 남아있는 신교의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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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불교의 원형이 고대 조선 문화 속에  심어져 있었다는 충격적인 역사적 사실이 많이 밝혀졌다. 최인崔仁(?~1982) 선생은 역작 『신한국 시장』과 『한국의 재발견』에서 ‘불교의 본래 발상지는 한국’ 이라는 문제에 대해 신빙성 있는 자료를 다수 제시하였다. 불교가 한국에서 발생했다는 주장이 파문을 일으킨 이유는 그 주장이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를 입증하는 생생한 실례 가운데서 몇 가지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석가의 출생이다. 주로 캔지스 강 북쪽에 살던 석가족을 포함한 종족들은 아리안계 백인이 아니라 황인종이었고 넓은 의미의 몽골족이었  다. 석가족이 황인종이었을 것이라는 학설은 19세기 학자들도 주장했다.  그 후 여러모로 연구한 결과 가장 유력한 학설로 인정받고 있다.(와타나베 쇼코,『불타 석가모니』,129쪽)  『삼국유사』 「아도기라阿道基羅」를 보면 고구려 아도화상阿道和尙의 어머니  고도령高道寧이 아들 아도를 신라에 보내면서 “이곳 고구려는 불법을 알지 못하나 그 나라(신라)의 경도京都 안에는 절터 일곱 곳이 있으니 이는 모두  전불前佛 시대의 절터니라” 라고 말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이것은 인도에서 석가모니가 탄생하기 전에 한국에 불교와 유사한 ‘그 어떤 신앙’ 이 있었으며 그것이 바로 불교의 원형이라는 점을 말해 주는 것이다.  『옥룡집玉龍集』과 『자장전慈藏傳』과 제가諸家의 전기傳記에는 모두 “신라의 월성 동쪽 용궁의 남쪽月城東 龍宮南)에는 가섭불迦葉佛의 연좌적蓮坐石이 있다. 전불 시前佛時의 절터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석가불은 제4 존불尊佛 이고 고대의 가섭불은 제 3 존불第三尊佛이다. 이것 또한 석가불 이전 가섭불迦葉佛 시대에는 이곳이 부처의 뿌리 나라[佛國土]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려 충숙왕 15년에 인도의 108대 조사祖師인 지공선사指空禪師가 양주 천보산天寶山 회암사檜巖寺에 와서 그 절터를 둘러보고 말하기를 “상세칠불上世七佛 시절의 대가람 터다大伽藍之址也)"라고 한 바 있다. 『화엄경』은 바다 건너 동방에 있는 나라가 불교의 종주국임을 이렇게 말하였다. 

●해중海中에 금강산金剛山이 있는데 옛적부터 모든 보살이 그 산중에 살고 있다. 현재도 법기法起라는 보살이 1,200명의 보살 무리를 거느리고 금강산에 상주하며 불법을 강설하고 있다.

법기는 중국 동진東晉 시대(317~420) 사람인 담무갈曇無竭을 말한다.  ‘옛적부터’ 란 동진 이전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372년) 전을 말하는 것이다. 보덕암普德庵 승려가 지은 『금강산기金剛山記』에는, 중국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62년)에 인도에서 금불상金佛像 53불佛이 금강산에 왔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들 불교도는 중국과 인도에서 시원 불교 문화의 나라, 즉 동방 신교문화의 본산지인 성지聖地를 순례하려고 이 땅을 찾아왔던 것이다. 불교의 도래 이전에 불상과 불경 그리고 불교 예배 의식 등이 동방에 널리 유행하고 있었다는 이와 같은 놀라운 기록은 곧 동방 신교문화의 소도蘇塗 신앙 의식과 술어가 그대로 불교문화에 흘러들어 불교화되었고, 훨씬 후대에 다시 이 땅으로 회귀하여 들어왔다는 사실을 더욱 명료하게 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기독교의 「요한계시록」에는 종말의 대심판 때에 우주적인 대환란이 펼  쳐지고, 이 때 동방 해 뜨는 나라의 흰 옷 입은 민족에서 구원의 무리가 출세한다고 전한다. 이러한 「요한계시록」의 메시지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과 달리 예수 복음의 핵심은 장차 지상에 내려오시는 주 하나님이 개벽하시는 신천지 가을세계(후천시대)에 대한 메시지에 있다. 사도 요한에게 내린 대개벽의 계시를 통해, 세계 인류에게 십十무극의 우주통일의 대도大道가 동방에 펼쳐질 것을 구원의 새 소식으로 선포한 기독교는, 환국의 신교에서 갈라져 나간 선맥 중에서도 후천 십무극 시대를 지향하는 남방선南方仙의 성격을 띤다.

 

환국환國은 12개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 열두 나라 가운데 우르(虞婁, Ur)국과 수밀이須密爾, Sumer국이 있다. 이 두 나라가 환국 말기에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지금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세운 문명이 수메르 문명이다. 수메르인은 스스로 ‘검은머리’ 사람이라 했다. 크래머  Kramer 박사는 현 서양문화의 뿌리요 기독교 문명의 모체인 수메르 문명(BCE 3500~BCE 1950)을 건설한 사람들은 ‘동방에서 왔다’고 주장하였다(1958년). 고든Gordon 박tk는 수메르인이 중근동中近東에 들어서기 전에 고대의 문자 기호를 가지고 온 듯하다고 하였다.

일본 학자 우에노上野景福는 수메르에서 사용한 설형楔形문자가 태호 복희의 팔패 부호와 흡사하다고 지적하였다. 『대영大英 백과사전』에는 수메르어와  한국어는 같은 교착어로서 그 어근語根을 같이한다고 하였다.  특히 수메르의 종교 신앙 가운데 ‘하나님의 산’ 혹은 ‘하늘 언덕’ 이라 불린 지구랏Ziggurat은 제천단 유적으로서, 신교의 삼신신앙과 제천 문화가 여전히 환국의 후예인 수메르인의 삶과 신앙 의식 속에서 제 1의 중핵 자리를 점하고 있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라 할 것이다.

 

그러면 수메르 문명과 기독교의 관계는 무엇일까? 수메르 문명은 서양 문명의 시원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대다수 학자의 공통된 의견이다. 단적으로 「창세기」에 나오는 저 유명한 바벨탑(수메르의 지구랏) 이야기를 통해서 성서에 끼친 수메르 문명의 영향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에덴동산과 노아의 홍수 신화도 수메르 신화에서 기원한다. 뿐만 아니라, 신교 경전인 『삼일신고三一神誥』에 나오는 삼신일체三神一體 신관과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관은 혼동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유사하다. 수메르 문명이 기독교 문화에 끼친 영향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는 기독교(유대교) 문화의 뿌리가 되는 유대족의 조상 아브라함이 본래 수메르의 갈데아 우르Ur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에는 수메르 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것이 개벽이다 하』-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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