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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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민족종교 말살책.

운영자 0 229
한민족은 지난 1세기 남짓 동안 엄청난 역사의 횡포에 시달려 왔다.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경쟁적 횡포에 농락당하고,이어서 나라를 빼앗기고 일제의 식민지 통치하에 들어가는 역사적 치욕을 당했다.식민통치에서 해방은 되었지만 곧 민족은 분단으로 귀착되는 비극을 맞이한다. 그리고 6.25라는 민족상쟁의 아픔을 겪게된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통일을 맞이하게 되겠지만 불행하게도 그 통일은 미국,중국,일본,러시아를 포함한 국제 세력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다.따라서 일제의 강점기에 조작된 식민사학과 해방이후에 우리문화와 역사를 배타적 시각으로 바라본 외래종교의 사대적 시각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통일이 진행되면 우리의 민족은 극도의 사회혼란과 분열만을 조장할 것이다.

열강들의 잇권 노름으로 시작된 일제의 한반도 강점은 그만큼 우리민족의 현재와 미래를 돌이킬 수 없는 불행으로 몰아넣은 대사건이었다. 이러한 국권 상실의 운명 앞에 민족종교는 후천개벽사상을 주창하며 미래의 희망과 확신을 표출한다. 이는 역사의 횡포에 민족의 희망과 열망으로 분연히 일어난 민족종교의 핵심 사상이었다. 그 효시가 1860년 최제우가 일으킨 동학이었다. 보국안민의 기치아래 민족종교는 당연히 격렬한 항일운동의 정신적 주체가 되었다. 갑오동학혁명,3.1운동,그리고 만주에서의 항일독립운동등과 같이 한국 근대사의 주요한 사건들은 모두 후천개벽사상과 보국안민의 사상적 기치아래 전개되었던 운동이었다.이처럼 민족종교는 민족주체의식의 사회적 실체였다.

그러므로 조선 총독부는 민족종교를 민족정기의 온상이며 항일정신의 핵심으로 간주하고 탄압을 가했다.

오직 순수한 민족애와 민족 정체감만이 천도교,불교,기독교 같은 특정종교의 세계관에 구애되지 아니하고 한민족을 하나로 묶을 수가 있었다. 가령 유교,불교와 같이 오래된 외래종교라 해도 그 사상이 우리민족 정체성의 핵심을 반영하지 못하고,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일천한 기독교는 아직 민족문화 전통의 정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였다.

민족종교는 망국의 한에 빠져있는 국민에게 커다란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였으며,민족의 통합에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이러한 사실을 간파한 일제는 민족종교의 탄압을 가속화 했다.

민족종교가 일제치하에서 독립과 민족정신의 회복을 기도했다면 일제는 민족종교를 말살했다.양자는 첨예한 대립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정책적 의도에 의하여 설정된 개념의 범주 안에서 아직도 우리사회가 민족종교를 이해하고 있다면,아직도 일제의 식민지배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충격적 사실을 입증하는 것일 뿐이다.

한국 민족종교를 신흥종교,유사종교 또는 사이비종교,심지어는 사교라는 용어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오늘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관행이다.이러한 개념들이 사용되기 시작한 역사적 시대가 바로 일제시기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서양으로부터 시작된 제국주의 정책은 타문화에 대해 일방적 통행을 강요했다. 우리의 전통가치는 근대화라는 명목하에 멸시되었고 파괴되었다. 역설적이지만 서양사상과 종교가 합리적이라는 근거는 더 더욱 없었다. 과학발전은 오히려 서양종교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가고 있었다. 그동안 역사적으로 본다면 깨어난 과학자들이 하나님의 신권에 도전한다는 명목하에 탄압을 받았던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서구를 깨운 것은 중세의 신권사회에서 부터의 이탈인 르네상스였다. 오히려 서구의 근대화란 탈신권주의의 각성으로부터 출발한 것이었다. 근대화란 서양화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동안 발전의 모델인 서양을 모방하다 보니까 서양의 종교는 합리적이고 다른 종교는 비합리적인 태도로 대응을 해왔다. 일제는 우리문화는 온통 미신으로 매도해 놓고 자신들은 아직도 수많은 신을 모시는 신도(신사)문화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제의 위장된 문화정책은 큰 효력을 발휘하였다. 민족종교에 대한 이런 냉소적 태도는 불과 반세기 전 일제하에서 우리민족이 겼었던 수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

더군다나 일제하에서 민족종교가 어떤 역사적 사명을 감당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데서 기인한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우리역사를 왜곡한 것만큼이나 민족의 정신의 산물인 민족종교역시 철저히 곡해되어 왔던 것이다. 민족종교에 대한 잘못된 일차적 이해는 일제의 식민지 문화정책에서 비롯된다. 일본총독부는 처음부터,천도교,대종교,증산교(보천교)등 사회적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한국민족종교들을 종교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이들을 종교와 유사한 단체라는 뜻에서 유사종교, 또는 사이비종교로 규정했다. 이처럼 민족종교는 처음부터 존재를 거부당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일제는 정략적으로 민족종교를 거세시켰던 것이다.

 일제시대에 공인된 종교는 일본의 신도,불교,기독교만이 공인되고 그 외의 종교는 종교로 인정을 하지 않았다.이는 식민지정책을 수행하는데 매우 효과적이고 편리했다.민족종교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민족종교는 사회에서 제거해야할 단체로 취급되었다. 슬픈일이지만, 해방이 된지 오래건만 노예적 사관에 사로잡혀 일제가 만들어 놓은 이 개념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기독교는 서구 열강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해서 오히려 장려를 하였다. 식민지국가에서 민족종교가 기댈 수 있었던 세력은 오직 한국 민중이었다. 그러나 식민지의 민중역시 총독부의 수탈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민족종교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무자비한 탄압정책에 희생되어 만신창의가 되었다.

 그러나 해방이후에도 우리나라는 친일파들이 실권을 쥐면서 오히려 민족사학자와 독립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아서 숙청을 했다. 국권을 잃은 민족에겐 힘없는 국가의 민족정신을 철저히 짓밟히는 고통이 뒤따라야 했다. 식민지 조선의 사상과 가치 종교,역사 모두 철저히 멸시되었다. 국가와 민종종교는 외세 앞에 철저히 유린당했다. 일제의 식민정책에 의해서 철저히 유린당하고 희생된 한국 민족종교의 비극적인 역사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가. 피해자가 무능하다고 봐야할 것인가. 아니면 약육강식의 논리대로 가해자는 신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었다고 승리의 찬가를 불러야 하는가.

가치관이 결여되고 도덕적으로 무감각한 지금의 일본의 아베정권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건강한 가치관에 의해서 일관되고 통일된 도덕적 태도만이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사과할 줄 아는 용기를 갖게 한다. 과거 역사의 올바른 교정은 자기를 반성하는 용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국민은 용기 없는 가해자를 만난 불행한 처지에 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위해하는 악의적인 가해자를 역사에서 다시 나타나지 않도록 공동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인간지성은 인간사회에서 단순피해자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명령한다. 인간의 양심은 정의를 지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신은 정의의 편이기 때문이다. 강자가 되는 것이 하늘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성자들의 가르침에서도 마찬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유대율법과 로마강권에 항거한 해방자로서의 예수의 삶, 부귀를 버리고 불성을 회복하라는 부처의 삶, 인의를 바탕으로 한 대인군자의 삶을 살으라고 했던 공자도 역시 패권놀음에서 벗어나 본질을 지향해라 했다.  그러나 그 사상을  진실 되게 믿지 않고 종교권려과 패권주의로 믿는  사람들은 성자들의 가르침을 잃어버리고 패권놀음의 하수인이 되어 버린 아타까운 현실이다.

올바른 인간, 참된 가치관 등 그동안 인류가 지향해온 숭고한 가치가 일반적 상식이 되는 사회가 되려면 구성원들의 양심과 성숙된 인격이 필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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