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문화권을 신앙하든지 간에, 수련이란 자기가 자기
심법(心法)을 연마하는 것이다.
상제님의 공사 내용을 보면 이런 게 있다. 어떤 한 노처녀가 도통을 하고 싶어서 수도하는
이웃사람을 찾아갔는데, 마침 그 부부가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주문이 뭐냐고 물으니, 그 노부부가 귀찮아서“아무것도 싫다”고 대답한다.
그 소리를 듣고 그 처녀는 만날“아무것도 싫다, 아무것도 싫다”하고 일심으로 외우고 다녔다.
아, 그러니 식구들이 오죽이나
싫어했겠나.
하루는 처녀가 물동이를 이고 오는데, 그 아버지가 밉다고 도리깨로 물동이를 후려쳐 버렸다. 그 바람에 돌 위로
넘어졌는데, 동이도 성하고 물도 쏟아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게 다 일심(一心)을 강조하신 것이다.
또
참선이라 하든, 수도라 하든, 수련이라고 하든, 뭐라고 명명하든지 간에 그것도 다 일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직 일심으로써만이 참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앉아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일심 정성을 갖고 주문을 읽다 보면 저도 모르게 모든 걸 다 잊어버리게 된다. 옛날 사람들은 그걸
망형망재(忘形忘在)라고 표현했다. 형체도 잊어버리고 자기 존재도 잊어버리는 걸 말한다. 이 세상에 내 육신이 있는지 없는지, 내 존재 자체를
망각해 버리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무아지경(無我之境)에 이른다. 무아경(無我境), 내가 없는 경지를 가야 그게
하늘마음이다. 대자연 속에서,‘ 내 마음이 천지의 마음이 돼서, 나는 그저 대자연인일 뿐 이다’하고 내 자신을 완전히 망각할 때, 그때
통(通)이라는 경지를 접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도 그 경지를 밟지 않고서는 절대로 도통경지에 들어가질 못한다.
그런데 앉아서
수련을 해보면 알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왜 그런지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 난다. 잡념을 버려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잡념을 버리기는커녕
엄마 젖 먹을 때 생각까지 다 나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잊어버렸던 것이 정신이 말쑥해져서 더 많이 생각나는 것이다. 열 배 스무 배 더 생각이
난다. 그러다 차차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것이 없어진다. 그게 마치 뭐와 같으냐 하면, 물 한 동이 떠다가 하루고 이틀이고 놔두면 물 찌꺼기는 다
가라앉고 아주 맑은 물만 남는 것과 같다.
그것과 같이, 수도할 때는 세속적인 혼탁한 생각이 다 가라앉아야 한다. 화식(火食),
불로 익힌 밥을 먹고 세상 사물을 접하면서 여러 십 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정신이 혼탁해지고 잡념에 휩싸이는데, 그런 것들이 물 찌꺼기
가라앉듯이 다 없어져야 한단 말이다.
[춘생추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