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공사(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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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개벽이다 중] 후천 건설의 첫 걸음,단주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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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공사의 궁극 목적은 가을 개벽기에 일어날 대변혁에서 가을에 씨종자가 될 천하 백성을 널리 건지고 이 땅 위에 후천 오만년 선경 낙원을 세  우는 것이다. 그런데 천지에 가득 찬 원신과 역신의 원한을 먼저 풀어 주지 않으면 상생의 후천 세상이 열릴 수 없다. 그러므로 선천의 상극 도수  때문에 갚은 원한을 맺은 신명을 해원시키는 것이 후천 선경 건설의 첫걸음이다. 천지공사가 신명 해원 공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천 오만년 동안 쌓여 온 원과 한을 해소하려면 원시반본의 도에 따라 원한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원한을 먼저 끌러내야 한다.


●만고의 원한 가운데 단주의 원한이 가장 크니라. (『道典』4:3)


●이 무릇 머리를 들면 조리條理가 펴짐과 같이 천륜을 해害한 기록의 시초이자 원寃의 역사의 처음인 당요唐堯의 아들 단주의 갚은 원을 풀면 그 뒤로 수천 년 동안 쌓여 내려온 모든 원의 마디와 고가 풀리게 될지라.  (『道典』4:17:1~2) 

 

이처럼 단주는 ‘원寃의 역사의 처음’ 이자 모든 원한을 푸는 단초이다. 단주는 일반적으로 ‘불초한 아들’ (『맹자』 「만장萬章」), ‘대홍수로 온 천하가 물로 가득할 때 배를 타고 세상을 유력遊歷하고 친구를 집으로 불러들여 술마시기를 즐긴 인물’ (『상서』 「익직益稷」)로 전한다. 그러나 상제님의 말씀에 따르면,단주는 ‘계명啓明하고, 부지런하였고 대동세계를 만들고자 하였으며, 사람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한 인물’(『道典』4:30)이었다. 단주는 당시 동방 동이 조선족과 중국 한족漢族의 뿌리인 서방 화하華夏족을 통합하여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자 했던 평화주의자요 세계주의자였다.

 

●단주가 세상을 다스렸다면 시골 구석구석까지 바른 다스림과 교화가 두루 미치고 요복要服과 황복荒服의 구별이 없고 오랑캐의 이름도 없어지며 ,만 리가 지척같이 되어 천하가 한집안이 되었을 것이니 요와 순의 도는 오히려 좁은 것이니라.(『道典』4:31:1~2)

 

그러나 서방족 중심의 정책을 편 요임금은 자신과 정치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왕위를 동이족 출신인 순에게 넘기고 자신의 아들인 단주를 외지인 방房 땅으로 추방하였다. (이재석『인류 원한의 뿌리 단주』)

여기에는 숨겨진 역사가 있다. 중국의 역사서에서는 요임금이 28년 동안 온갖 시험으로 순을 단련시킨 후 순에게 제위를 선양하였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왕권이 순에게 전해진 것은 맞지만 그 과정은 선양이 아니라, 당시 동북아의 중심 국가, 단군조선의 제후였던 순에게 요가 밀려난 결과였다. 요순선양설은 춘추전국 시대에 유가儒家에서 요순 간 정권이양에 관한 진실을 조작하고 미화한 것이다. 동이족 순에게 밀린 서방 한족의 수치를 숨기기 위해, 순을 미화하여 중국 역사로 편입하고 단주를 깎아내린 것이다.

순에게 대권을 빼앗긴 단주는 아버지 요임금이 만들어 준 바둑으로 소일하다 쓸쓸하게 일생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사후에도 아버지를 닮지 못한 못나고 어리석은 인물로 수천 년 동안 세간의 조소를 받아왔다. 천하를 통치할 배포와 능력이 있었음에도 그 뜻을 펴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약 반만 년이나 불초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단주의 원한이 얼마나 사무쳤겠는가.

이에 상제님은 “만고의 원한 가운데 단주의 원한이 가장 크다”라고 하시며, 단주가 원의 역사의 시초, 즉 인류 원한의 뿌리임을 밝혀 주셨다. 단주의 원한은 한 개인의 원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사의 모든 원한을 풀 수 있는 핵심이며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단주 원한의 심각성과 역사적 중대성이 있다. 단주 대신에 대권을 잡은 순임금은 형벌 제도를 만들고 무력 정치를 행사 하였으며, 요임금의 동서방 분리 정책을 계속 유지하였다. 그리하여 그 이후 4천여 년 동안 동북아에는 동방 동이족과 서방 한족 사이에 대립이 끊이지 않았고, 갈등과 대립은 시간이 흐르며 더욱 깊어지고 복잡해져 갔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만약 그때 단주가 요임금을 계승하였더라면 동방족과 서방족의 구분이 없는 대동세계가 열려 태평천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통치의 도가 좁고 배타적인 순에게 왕권이 넘어가면서 동북아 역사는 피눈물과 원한의 역사로 빠져들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처럼 단주의 원한은 역사 속에서 생겨난 모든 원한의 머리요 뿌리이다.


그래서 상제님은 “단주 해원을 첫머리로 하여 천지대세를 해원의 노정으로 나아가게 하노라”(『道典』2:24) 하시고 단주가 천상 신명계에서 세운을 이끌어 나가는 주역이 되게 하셨다.

 

단주는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개방적이고 사교적인 심법을 지녔고 늘 민중의 삶이 행복하기만을 바랬습니다. 동방 배달의 천지광명 문화의 심법을 지닌 단주 왕자는 부친 요임금과 달리 동방의 동이족(韓民族)과 서방의 화이족(漢族)이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는 대동 세계를 건설하고자 했습니다다. 그러나 순에 의해 아버지와의 천륜이 끊어지고 대망大望이 좌절 된 단주는 깊은 좌절과 울분에 휩싸였습니다. 더욱이 요임금은 단주에게 바둑판을 만들어 주며 “너는 이 바둑을 두면서 먼저 덕을 닦으라.”라고 훈계하였다 합니다. 이것이 바둑판에 얽힌 사연입니다. 대동세상을 열려는 꿈과 야망이 모두 깨져 버린 단주는 순을 향한 증오와 분노를 영혼에 깊이 새긴 채 바둑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죽습니다.

 

순임금이 객사한 원인도 천륜이 해해지고 정권탈취에 대한 단주의 깊은 저주와 원한의 살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왕비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슬픔을 하소연할 곳이 없었고 결국 피눈물을 뿌리며 서로 부둥켜안고 상수에 몸을 던져 한 많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지금도 상수 부근에는 보랏빛 반점이 선명한 대나무(소상반죽潇臟竹)가 자라고 있는데, 이 반점은 이때 두 왕비가 흘린 피눈물이 대나무에 아로새겨진 것이라 전합니다. 중국 동정호 내 군산 공원에 순의 두 왕비 아황과 여영의 묘가 있습니다. 아황과 여영은 단주의 여동생이기도 합니다. 단주의 원한 기운의 충동으로 순임금이 죽자 두 왕비는 눈물을 흘리며 동정호에 몸을 던져 자결했습니다. 지금도 묘 주위에는 검은 반점 이 박힌 소상반죽이 자라고 있는데, 반점의 얼룩은 두 왕비의 피눈물이 묻어서 된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옵니다. 바로 단주 문제는 동방과 서방의 갈등과 원한  그리고 천륜의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의 중심에 있던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상제님은 이 단주 해원을 머리로 하여 대동세계로 나가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회문산에 오선위기가 있나니 바둑은 당요가 창시하여 단주에게 전수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단주의 해원은 오선위기로부터 비롯되나니 천하의 대운이 이로부터 열리느니라.” 하시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이로써 또한 조선의 시비를 푸느니라.” 하시니라(『道典』4:20)

●그러므로 먼저 단주의 깊은 원한을 풀어 주어야 그 뒤로 쌓여 내려온 만고의 원한이 다 매듭 풀리듯 하느니라.
이제 단주를 자미원(紫微垣)에 위(位)케 하여 다가오는 선경세계에서 세운(世運)을 통할(統轄)하게 하느니라.” 하시니라(『道典』4:31),

 

 

『이것이 개벽이다 하』-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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