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공사(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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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실제상황 중] 애기판 씨름과 1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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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판의 시대 배경

인류역사는 그 변혁의 마디마다 중대한 고비가 있었다. 상제님이 천지공사를 보시던 20세기 초는 “동양이 서양으로 넘어간다. 목구녕까지 다 넘어갔다”(3:300:4) 하신 절박한 말씀 그대로,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각축을 벌이며 동양 여러 나라의 영토를 침탈하고 참혹하게 유린하던 때였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부터 인도, 동남아 그리고 중국에 이르기까지 영토 분할을 마무리한 서구 열강은 동북아의 맨 끝에 위치한 은둔의 왕국 조선에까지 집요하게 침략의 손길을 뻗쳤다.

이제 동양 형세가 누란累卵과 같이 위급하므로 내가 붙들지 않으면 영원히 서양으로 넘어가게 되리라. (5:4:6)

증산 상제님은 당시 조선을 비롯한 동양의 약소국들이 직면한 위기 상황을 이렇게 진단하시고, 동양의 유일한 제국주의 국가였던 일본에게 잠시 ‘천하를 통일하는 기운과 일월의 대광명 기운’을 붙이시어, 서구 제국주의 기운을 물리치는 ‘동양의 머슴’으로 삼으셨다.

이제 만일 서양 사람의 세력을 물리치지 않으면 동양은 영원히 서양에 짓밟히게 되리라. 그러므로 서양 세력을 물리치고 동양을 붙잡음이 옳으니 이제 일본 사람을 천지의 큰 일꾼으로 내세우리라. (5:50:4~5)

러일전쟁에 숨겨진 비화

상제님은 먼저 바둑판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일본과 러시아가 전쟁을 하도록 불을 붙이셨다.
당시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종주권을 파기시키고 조선의 식민지화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면서 청으로부터 요동반도와 타이완·펑후섬을 할양받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도 받아냈다.

그러나 부동항不凍港 확보를 위해 남진 정책을 펴고 있던 러시아가 프랑스, 독일과 손잡고 압력을 행사하자 대륙 진출의 발판인 요동반도를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이러한 삼국 간섭에 분개하여 러시아의 팽창을 두려워하는 영국과 동맹을 맺고, 영국·미국의 지원 하에 러시아와의 전쟁준비에 전 국력을 투입한다. 마침내 1904년 2월 8일, 일본함대가 러시아 남진정책의 보루인 여순군항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러일전쟁이 발발하였다.

이 전쟁의 구도는 일본과 러시아가 직접 대결을 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각기 영·일 동맹과 러·불 동맹을 맺어 훈수를 두는 러시아·프랑스 대 일본·영국의 대결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때까지만 해도 아시아의 작은 나라 일본이 유럽의 초강국 러시아를 물리치리라고 내다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 러시아의 세입은 일본의 8배, 상비 병력은 15배인 300만 명에 달했다. 상제님께서는  “일러전쟁을 붙여 일본을 도와 러시아를 물리치려 하노라”(5:50:6) 하시고 다음과 같이 공사를 보셨다.

“이제 49일 동안 동남풍을 빌어 와야 하리라. 이 동남풍으로 밀려드는 서양의 기세를 물리쳐야 동양을 구할 수 있으리라.” 하시고 49일 동남풍 공사를 행하시니라. (5:53:3~4)

실제로 일본은 동남풍이 매서운 북서풍을 몰아내듯 한반도의 북서쪽에서 밀고 내려오는 러시아 세력을 물리쳤다. 그런데 러일전쟁의 승패를 가른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이 신도의 도움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출항한 러시아 발틱함대는 무려 7개월의 긴 항해 끝에 극동지역에 도달하였다.쫡 1905년 5월 27일, 발틱함대는 소등을 하고 비밀리에 쓰시마 해협을 통과하려고 했다. 그런데 뒤처져 있던 병원선이 불을 환히 밝히고 항해하는 바람에 그만 일본 순양함에 발각되었다. 결국 세계 최강의 위용을 자랑하던 발틱함대는 일본 함대의 기습을 받아 궤멸되고 말았다.

한편 당시 일본 해군의 주역이었던 아키야마 사네유키 중장은 발틱함대가 쓰시마 해협을 항진하는 장면을 두 번이나 꿈에서 생생하게 보았는데 그는 이 꿈을 ‘신의 계시’로 확신하였다 한다. 역사가들은 일본 함대가 뛰어난 기동력과 화력을 갖추어 승리했다고 분석하지만, 그 이면에는 분명 ‘신도의 손길’이 작용했던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발발에 얽힌 신도의 비밀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동아시아 침략의 야욕을 접어야 했던 러시아는 다시 유럽의 발칸반도로 눈을 돌렸다. 발칸지역은 예나 지금이나 여러 민족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곳이다.

남슬라브계의 여러 민족은 발칸전쟁(1912∼1913)을 통해 투르크의 지배에서 해방되자, 세르비아 왕국을 중심으로 남슬라브 통일국가를 건설하려 했다. 러시아는 그들을 지원했으나 반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자신의 세력권에 편입시키고자 했다. 그리하여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범슬라브주의와,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범게르만주의가 격렬하게 충돌함으로써 발칸반도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그러한 와중에 1914년 6월,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가 발칸의 일각인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했다가 세르비아 청년 프린치프의 총탄에 피살되었다. 이 사건을 도화선으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 눈에 띈다. 당시 세르비아 민족주의 비밀 결사단체인 검은손Crna ruka은 페르디난트 황태자를 암살하기 위해 행사장에 일곱 명의 암살단을 대기시켰다. 그러나 황태자가 탄 차량 뒤에서 폭탄이 터져 수행원들만 다쳤을 뿐 암살기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행사를 마치자 황태자는 부상당한 수행원들을 방문하기 위해 일정을 변경한다고 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황태자의 운전기사는 일정이 변경되었음을 알지 못한 채 황태자를 태우고 예정된 장소로 향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기사가 자동차를 멈춘 순간,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던 암살단원 중 한 사람인 프린치프가 정지된 목표물을 향해 총격을 가했던 것이다.

프린치프가 황태자를 저격할 때의 심경을 들어보자.

쏴야 할 것인가, 쏘지 말아야 할 것인가? 하지만 어떤 이상한 감정이 나를 황태자에게 다가서게, 심지어 내가 서있던 보도에서 내려서게 만들었어요. 그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요. 내가 총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도, 심지어 내가 누군가에게 총을 쏘았는지, 쏘지 않았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1)

또한 1차 대전 내내 영국을 이끈 로이드 조지D. L. George(1863~1945)

 수상의 증언도 흥미를 끈다.

각국에서 발표된 회고록이나 저서를 읽어보면 읽어볼수록 정치의 요직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한 사람도 전쟁을 의도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의 늪에 미끄러져 떨어진 것이다. 아니, 전쟁의 돌부리에 채여서 비틀거린 것이다.

당시 각국의 정치지도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전쟁을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전쟁으로 휩쓸려 들어갔다는 말이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1차 세계대전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미스터리’와 ‘해프닝’의 연속 끝에 발발한 기묘한 전쟁이었다고 지적한다.

과연 무엇이 프린치프로 하여금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게 하고 각국 정치 지도자들을 전쟁의 늪 속에 빠뜨렸는가? 이에 대한 해답이 1903년 3월에 보신 상제님의 천지공사에 들어있다.

계묘년 3월에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조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어 천지에 전쟁을 붙이는 일꾼으로 쓰려 하노라.” 하시니라. (5:23:5)

이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말씀이 있다.

이제 동양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누란의 위기에 처한 약소국을 건지려면 서양 열강 사이에 싸움을 일으켜야 하리라. 관운장이 조선에 와서 극진한 공대를 받았으니 그 보답으로 당연히 공사에 진력 협조함이 옳으리라. (5:166:3~4)

상제님께서 친히 관운장 신명을 부르시어 세계대세의 위급함을 말씀하시고 조선의 신명들과 더불어 서양에 가서 대전쟁을 일으키라는 천명을 내리신 것이다. 1차 대전의 배후에 이 같은 신도 세계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을 누가 알겠는가! 3부에서 말했듯이 인류역사는 천지의 이법을 바탕으로 신명이 들어서 이루어지는 것쫡이다. 따라서 신명계의 개입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역사의 진실을 온전히 알 수 없다.

그런데 상제님은 왜 조선 신명에게 서양의 일을 주관하게 하셨을까? 한민족은 선천의 시원역사를 주도한 신교문화의 종주이다. 상제님은 원시반본의 개벽정신에 따라 조선의 신명들로 하여금 선천 역사를 총 마무리하도록 천명을 내리신 것이다.

뜻밖의 복병, 인플루엔자

사람들은 1차 세계대전의 전투에 대해서는 얘기를 많이 하지만, 전쟁 종식의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는다. 자연재앙이 인간 역사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여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존 배리J. M. Barry는 2004년에 출간한 『위력적인 인플루엔자The Great Influenza』에서 1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앞당긴 결정적 요인은 바로 다름 아닌 전쟁의 마지막 해(1918년)에 창궐한 ‘인플루엔자’였음을 밝히고 있다.

당시 이 치명적인 독감은 격전지를 중심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밀집해 있는 군부대의 막사는 바이러스가 확산되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했던 것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을 휩쓴 독감은 스페인을 초토화시키고, 북아메리카와 아시아까지 확산되었다. 특히 알래스카와 캐나다를 비롯한 북아메리카 대부분의 지역은 죽음의 땅이 되고 말았다. 이른바 ‘1918년의 대재앙’이라 하며 스페인 독감으로 불리는 이 치명적인 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의 인명을 앗아갔다(1억 명으로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약 8백만, 2차 세계대전에서 1,500만 명의 군인이 사망한 것으로 볼 때 독감의 위력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쏟아 부은 폭탄을 모두 합한 것보다, 심지어 핵폭탄보다도 강력한 것이었다.

당시 상황을 보면 1918년 10월까지만 해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독일을 초토화시키기 전에는 전쟁을 끝낼 수 없다는 입장이었는데, 독감이 미군 기지를 휩쓸자 그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쫡
보통 인플루엔자는 어린이와 노약자에게 치명적인 데 반해 이때는 유독 젊은 군인들을 쫓아다니며 생명을 앗아갔다 한다. 더욱 기이한 것은 평화조약이 체결된 11월 11일을 기점으로 인플루엔자가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애기판 씨름의 결과

이 공사의 결정으로 인하여 천하의 모든 약소민족도 조선과 같이 제 나라 일은 제가 주장하게 되리라. (5:177:13)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투르크의 네 전제 국가가 붕괴되어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들의 지배를 받던 약소민족들은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의 원칙에 따라 대부분 독립하였다. 하지만 이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에 대해서는 민족자결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전승국들이 패전국 독일에게 가혹한 배상을 강요함으로써 2차 대전의 불씨가 싹트게 되었다.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은 상제님이 천상 조화정부에서 짜 놓으신 ‘세계일가 통일 정권’이 1차 세계대전 종결과 함께 지상에 발현되었다는 점이다. ‘국제연맹’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소련·독일 등 강대국의 불참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국제 분쟁 문제를 미결인 채로 남겨 놓았다.


[개벽실제상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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