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통관(수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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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 증산도 중] 종통의 뿌리와 그 전수과정

운영자 0 247

 

종통의 전수과정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증산도 종통이 전수되는 과정은 한마디로 지도자의 개척의 길, 희생과 고난의 길이다. 그러면 증산도 종통의 뿌리는 누구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과거의 공자, 석가, 예수를 비롯한 그 어떤 사상가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오직 증산 상제님의 도법에만 있는 수부도수(首婦度數) 문제에서 찾아야 한다. 이 수부도수에 의해 진법의 씨앗이 뿌려졌기 때문에 수부로부터 종통의 연원이 유래하는 것이다. 증산도 1·2·3변 도운(道運)의 역사는 바로 종통을 전수하는 과정이다.

상제님이 진법의 씨를 고수부님을 통해 뿌렸는데도 그 당시 성도들은 이 문제를 깊이 인식하지 못했다. 상제님께서는 정미(1907)년 동짓달 대흥리 차경석 성도집에서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수부 책봉 공사를 보시고 종통을 전수하셨다.

 

●동짓달 초사흗날 대흥리 차경석의 집 두 칸 장방(長房)에 30여 명을 둘러 앉히시고 수부 책봉 예식을 거행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주(眞主) 도수를 천한 데 가서 가져온다.” 하시고 “정읍은 왕자포정지지(王者布政之地)요, 정(井) 자는 새암 정 자 아니냐.” 하시니라. 이어 경석에게 명하여 “수부 나오라 해라.” 하시고 부인께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만나려고 15년 동안 정력을 들였나니 이로부터 천지대업을 네게 맡기리라.” 하시며, 수부님을 옆에 끼시고 붉은 책과 누런 책 각 한 권씩을 앞으로 번갈아 깔게 하시며 그 책을 밟고 방에서 마당까지 나가시어 “남쪽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네 번 절하라.” 하신 뒤에 다시 그 책을 번갈아 깔게 하시며 밟으면서 방으로 들어오시니라.


이어 수부님께 “웃통을 벗고 누우라.” 하시고 배 위에 걸터앉으시어 “경석아, 장도칼 가져오너라.” 하고 명하시니라.
상제님께서 장도칼을 수부님의 목에 대고 말씀하시기를 “죽어도 나를 섬기겠느냐, 천지대업에 중도불변(中途不變) 하겠느냐?” 하고 다짐을 받으시니
수부님께서 “변할 리가 있으리까.” 하매 상제님께서 “그러면 그렇지.” 하고 기뻐하시니라.
이번에는 상제님께서 친히 누우시어 수부님께 말씀하시기를 “내 배 위에 앉아서 그와 같이 다짐을 받으라.” 하시거늘
수부님께서 하는 수 없이 그와 같이 하시며 “나를 일등(一等)으로 정하여 모든 일을 맡겨 주시렵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변할 리가 있으리까, 의혹하지 마소.” 하시고 부(符)를 써서 불사르시며 천지에 고축(告祝)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인의 말은 천지에 쩡쩡 울려 나가나니 오늘의 이 다짐은 털끝만큼도 어김이 없으리라.” 하시고
이도삼(李道三), 임정준(林正俊), 차경석(車京石) 세 사람으로 하여금 증인을 세우시니라.(도전 6:37)

 

그것은 그 당시 가부장적인 조선의 유교 문화가 벗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여자인 수부님께 종통이 전수되었다는 것을 두고 일개 여자에 불과하다는 의식도 있었고, 자기들이 먼저 상제님을 모셨다는 우월감과 상제님 천지공사 당시에 각자 성도 자신들에게 맡겨진 도수의식도 작용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오는 후천은 곤도수이므로 ‘여성을 바탕으로 한 새 문화를 연다’,‘여자의 말을 듣지 않고는 남자의 권리를  행하지 못한다’,‘내가 여자의 한을 푼다’고 하신 상제님의 말씀에 표출된 수부의 정신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수부 종통 전수공사에 직접 간여하고 종통대권이 수부님께 전수된 것을 알고 있었던 차경석 성도조차도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냥 누님이요, 고부인이라고 여겼을 뿐, 수부라는 말도 잘 쓰지 않았으며, 여자가 무얼 하느냐고 고의적으로 고수부님을 무시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교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고수부님이 계신 방에 예문(禮門)이라 하여 주렴을 치고 사람들과 접촉을 금지시켜 버렸다.

 

해방 후에 종도사님이 제2변 도운을 개척하실 때도 종통이 어디에 있는지, 개념이 확고하게 깨어 있지도 않았다. 지금의 제3변 도운에 와서야 종통을 볼 수 있는 역사의식의 눈이 생긴 것이다. 일단은 시간이 흘러서 과거가 쌓여야 역사를 논할 수 있다. 사람도 태어난 지 대여섯 해 밖에 안 됐다면 어찌 인생을 논할 수 있겠는가? 인생을 살아온 전력이 없으므로 이야기할 내용이 없는 것이다. 증산도도 해방 전후에는 아직 경력이 부족했다. 과거에는 역사적인 과정을 통해 축적된 것이 적었기 때문에 내놓을 만한 업적이 크게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증산도는 약 100년이라는 축적된 세월 속에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는 개척시간의 역사를 신앙의 문화유산으로 갖게 되었다. 어떤 정신으로 증산 상제님 신앙을 했으며, 어떻게 하다 망하고 죽었는지를 다 들여다 볼 수가 있다. 그런 축적된 문화를 갖게 된 것이다. 

 

☯도운의 3변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상제님께서 구릿골 약방에 계실 때 하루는 여러 성도들을 벌여 앉히시고 큰 소리로 글을 읽히시니 이러하니라.
三國時節(삼국시절)이 誰知止於司馬昭(수지지어사마소)리오
삼국시절이 사마소에서 대세가 그칠 줄을 그 누가 알았으리오.
또 말씀하시기를 “술수(術數)가 삼국시절에 나와서 해원하지 못하고 이제야 비로소 해원하게 되었느니라.” 하시고
“내 일은 삼변성도(三變成道)니라.” 하시니라.(도전5:356)

도운은 3변으로 이루어진 도의 역사 개척 과정으로서 3인의 주요인물이 등장하면서 천지도업이 3마디의 교단 개척과정을 거쳐 도성덕립이 되도록 하셨다. 1변 도운은 상제님의 종통전수자인 태모고수부님을 모시고 교단이 열렸다. 2변 도운은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이 해방과 더불어 용화동에 개창한 증산교였다. 마지막 마무리 3변 도운은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과 안경전 종도사님이 태전을 본부로 하여 상제님의 문명을 드러내고 인재를 길러 도성덕립이 이루어지도록 하셨다. 상제님께서는 이 3인의 도운 개척사를 이렇게 공사로 처결하셨다.

 

●三人同行七十里(삼인동행칠십리)요 五老峰前二十一(오로봉전이십일)이라

七月七夕三五夜(칠월칠석삼오야)요 冬至寒食百五除(동지한식백오제)라.
(도전5:407:2)


●하루는 태모님께서 옥구 선연리 삼불산(三佛山)에서 장상(將相) 집결 공사를 보시며 말씀하시니 이러하니라.
사람도 참석해야 할 것 아니냐.
장상신이 아니면 들어가지 못하느니라.(도전11:379:1~3)


●삼련불성(三聯佛成) 되게 되면
천하만사 아련마는 어느 누가 알쏘냐.(도전11:309:8)


●口傳三代詩書敎(구전삼대시서교)하고 文起千秋道德波(문기천주도덕파)라
입으로는 삼대에 걸쳐 시서(詩書)의 가르침을 전하고
글로는 천추에 도덕의 물결을 일으켰도다.(도전6:121:3)


●“우리 일은 삼대(三代)밖에 없다.” (도전10:149:5)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도전8:117:2) 

 

3수 변화, 3수가 아니면 우주의 뜻이 성취될 수 없다. 우주의 창조원리는 ‘탄생(개창)→성장(발전)→성숙(개벽단행과 세계구원 실현)’으로 전개되므로 3변은 펼연적인 도사 개척의 과정이다. 상제님께서는 이 3人의 도운 개척사의 전개과정을  세 부처(三聯佛成)로 표현을 하신 것이다. 이는 3인의 부처가 출세를 하면서 도성덕립이 된다는 의미이다. 이 의미는 세 부처를 종통으로 해서 1만2천 도통군자가 출세를 하는 것이다.

 

『貫通甑山道』-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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