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통관(수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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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 증산도 중] 첫 교단 개창자인 태모 고수부님(종통대권자로서의 수부사명)

운영자 0 402

 

상제님 도법의 정통의 맥과 뿌리인 종통 문제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수부사명과 수부도수이다. 수부님은 상제님의 아내요 상제님의 도의 반려자이며 상제님을 대행해서 교단을 처음으로 여신 분이다. 더 나아가서는 장차 후천 새 시대의 여성문화를 여는 우먼파워(woman power) 의 머리가 되는 분으로 곤도수, 음도수의 주재자이시다.

 

●내가 너를 만나려고 15년 동안 정력을 들였나니 이로부터 천지대업을  네게 맡기리라.(도전6:37:5)


●상제님께서 항상 수부님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씀하시기를 “너는 복동(福童)이라. 장차 천하 사람의 두목(頭目)이 되리니 속히 도통(道通)하리라”하시니라.(도전11:5:4)

상제님은 종통의 보증수표격인 도통을 직접 고수부에게 전하여 종통대권을 전수한다고 선언하셨다. 야심이 많았던 차경석 성도는 태모님의 도통사건에 대해 상제님을 원망하며 불만을 토로하였다. 본인이 상제님의 종통전수를 받아 15진주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에게 장차 운수를 열어 주려 하나니 각기 뜻하는 대로 나에게 말하라.” 하시거늘
경석이 “십오(十五) 주시기를 원하옵니다.” 하고 아뢰니
상제님께서 문득 표정을 바꾸시며 “도적놈이로다.” 하고 꾸짖으시니라.
한 성도가 상제님께 여쭈기를 “시속에 십오수를 진주(眞主) 도수라 이르거늘 경석이 제 분수를 모르고 있습니다.” 하니
탄식하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끄는데도 끝내 개심(改心)하지 못하면 그 또한 경석의 운이니 어찌할 수 없노라.” 하시니라.(5:257)


●태모님께서 21일부터 날마다 마당에 청수를 떠 놓고 물형부(物形符)를 받아서 불사르실 때, 경석이 상제님을 원망하여 말하기를 “부인만 알고 제자는 알지 못한다.” 하거늘
이에 태모님께서 경석에게 명하시어 “부(符)를 받으라.” 하시니


경석이 붓을 들고 엎드려 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끝내 부가 내리지 아니하더라.(도전11:21)

 

수부님이 도통을 받는 문제에 대해 상제님은 천지굿 공사를 보시며, “나는 천하 일등 재인(才人)이요, 너는 천하 일등 무당(巫堂)이니 이 당(黨) 저 당(黨) 다 버리고 무당 집에 가서 벌어야 살리라” 하셨다. 즉 이 개벽세상에는 상제님이 선돼해 놓으신 무당 집에 가서 벌어야 산다는 말씀이다. 수부가 천하 일등 무당도수를 받는데, 무당이란 천지의 영(靈)을 받아서 만인의 한을 풀어주는 자이다. 이것이 원래 무당(샤먼)의 의미이다. 수부는 하느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 새 시대를 여는 창세의 무당, 역사의 대무(大巫)이다. 즉 새 시대를 여는 첫 무당,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영을 받는 인간 속의 새 여자 이분이 수부이다. ‘무당 집에 가서 벌어야 산다’고 할 때의 무당은 고수부님을 상징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며, 실질적으로 수부정신을 계승하여 인류역사를 마무리 짓는 분을 의미한다.

 

고수부님은 6월 초순경에 동생 차경석을 통해 상제님을 만나셨으며, 4개월 뒤인 그해 동짓달(11월 3일)에 상제님과 정식으로 부부의 연을 맺고 수부사명을 받으셨다. 상제님이 실제로 고수부님과 혼인한 때가 정미(1907)년 음력 11월이고 기유(1909)년 6월에 어천하셨으니, 1년 8개월 동안 부부관계로 계시다가 떠나신 것이다. 말이 1년 8개월이지 상제님은 대흥리에 그리 오래 계시지도 않았다. 고수부님은 전 남편인 신씨(申民)가 일찍 죽어서, 딸 태종을 데리고 이모부(차경석의 부친 차치구)의 집에 와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당시 고수부님은 이미 이모부를 따라 동학을 신앙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신앙 경력이 상제님의 도를 받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배경이 된다. 비록 혼인을 하고 모신 기간은 짧았지만, 상제님은 수부님께 도통에 대한 약속을 하시고 종통문제를 말씀하셨으며 수부사명을 말씀하시고, 또 인사문제에 대한 투철한 심법교육을 시키셨다.

상제님은 고수부님에게 ‘네 동생이 어떤 인물이며, 그가 앞으로 무슨 일을  저지를 것이고, 너와 어떤 관계를 맺어갈 것이다’ 하고 미리 일러주시며  개척자로서 걸어가야 할 삶의 노정을 말씀해 주셨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경석에게 “세숫물을 가져오라” 명하시므로 경석이 세숫물을 가져다 올리고 나가거늘 상제님께서 손가락으로 경석을 가리키시며 수부님께 이르시기를 “저 살기(殺氣)를 보라. 경석은 만고대적(萬古大賊)이라. 자칫하면 내 일이 낭패 되리니 극히 조심하라” 하시니라.(6:89:1~4)

 

살기(殺氣)란 사람을 죽이는 기운 아닌가? 경석이 살기, 즉 사람 잡는 기운을 가지고 있는데, 그 살기가 수부님에게 뻗쳐서 경석이 수부님을 배반할 것이며 난법의 판이 열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또 동생에게 배신을 당하게 될 것이니 앞으로 극히 조심하며 일을 해라, 적은 항상 내부에 있다는 조직교육을 시키신 것이다. 고수부님은 상제님이 어천하신 사실을 1년이 넘도록 모르고, 다만 청국공사를 보러 가신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동생인 차경석 성도와 주변 사람들 모두가 진실을 은폐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주문을 읽던 중 신안(神眼)이 열려 상여와 들것이 보이고, 또 상제님이 밤마다 찾아오셔서, “내가 죽었는데 네가 어찌 나의 묻힌 곳을 찾아보지 않느냐? (11:13:5)” 는 말씀을 해주시어 상제님이 떠나신 것을 안 것이다. 

 

☯ 수부사명이 첫 의식혁명


당시 성도들이나 동생 경석은 고수부님에게 상제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씀을 차마 드릴 수 없었다. 고수부님이 과부가 되었다가 상제님을 만난 것이 1년 8개월 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서 소문에 의해서든 본인이 눈치를 채든 스스로 알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수부님께서는 영(靈)이 지극히 밝으셨으며, 또 상제님이 뒤에서 성령으로 옹호하고 계셨다. 상제님이 오셔서 “내가 죽었는데 네가 어찌 나의 묻힌 곳을 찾아보지 않느냐?" 하시며 일깨워주신 것이다. 하루는 고수부님께서 주문을 읽는데 환히 열린 광명 속에서 상제님의 성체가 묻힌 곳이 보였다. 너무도 괴로워서 뜬눈으로 밤을 새운 수부님은 뒤늦게 상제님이 돌아가셨음을 깨닫고, 경술(1910)년 9월 초 어느 날 새벽에 사립문을 열고 구릿골 대밭을 향해 달려가셨다. 초빈을 헤치고 천개(관 뚜껑)를 열어 보니 돌아가신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상제님의 성체는 상하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고수부님은 상제님이 일찍이 잘 갈무리 하여두라고 당부하시며 주신 ‘옥황상제(玉皇上帝)’라 씌어있는 명정을 상제님 가슴 위에 덮어드렸다.

 

이것은 상제님이 어천하시고 고수부님이 수부사명을 집행하는 첫 번째 예식으로서 첫 번째 의식혁명의 과정이다. 일찍이 상제님이 주셔서 지니고만 있던 염낭을 끌러서 상제님이 친히 옥황상제라 쓰신 명정을 가슴에 덮어드리면서 처절한 의식혁명이 일어났다! 자신의 남편이 누구라는 사실을 그때 구체적으로 더욱 심도 있게 체험하고, 실제로 역사의 전면에 나서서 역사를 개창하는 여성, 혁명가로서 여성, 후천의 우먼파워를 쓰는 여성으로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또한 ‘옥황상제’라는 증산 상제님의 호칭을 후천 진법의 씨를 뿌리신 고수부님이 역사의 보증인으로서 선언하고 증명해 주신 것이다.

 

『관통甑山道』-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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