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통관(수부관)

종통관 관련 강좌를 시청하시고자 하는 경우 진리 주제별 강좌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바로가기 

[관통 증산도 중] 난법 판의 특성

운영자 0 282

 

무엇을 기준으로 난법자, 난도자, 난법 판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이를 간단히 정의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난법을 꼭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난법판이라고 해서 모두 상제님의 진리를 왜곡하기만 하는, 꼭 제거되어야 하는 악의 집단으로만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난법은 그 시대 역사의 제반 상황이 낳은 시대적 산물이다. 난법은 참법의 씨앗과 더불어 커 나가면서 일면으로 시대를 맞기 위한 그 나름대로의 긍정적 역할도 하여 왔다. 상제님의 대도가 창명하고 진법이 드러나는 과도기의 발전과정에 있는 것이 난법이다. 상제님을 모신 성도들, 또는 판 밖에서 개인 신앙인으로 출발했던 난법 신앙의 개창자들도 대부분 처음에는 순수한 동기로 한 생애를 바쳐 열심히 신앙 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와 같이 지난 제1변 제2변 부흥시대, 그리고 지금의 제3변 대부흥 시대에 이르기까지 상제님을 신앙하는 교단의 개척자나 그를 따르는 신앙인들은 역사에 나름대로의 역할과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다. 

 

난법의 정체를 꿰뚫는 핵심은, 진리문제이다! 난법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또 하나의 필연성이 있다. 상제님의 진리를 잘 모를 수밖에 없었던 당시에, 상제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진리에 대한 신앙 방법과 교리해석의 체계가 서로 달랐으며, 또 그 난법자가 살고 있는 시대 자체가 세운공사의 과도기적 난법 과정이기 때문이다. 즉 과거의 제1변, 제2변 부흥시대는 참법이 뚜렷하게 역사 위에 창조되어 나올 수 없는 인류문명사적인 한계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난법판의 공통된 특성 

그러면 지금 사회에 해악을 끼치고 국민도덕에 상제님 진리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심어주는 3변 도운의 난법교단과 난법자들에 대해 몇가지 공통된 특성을 보면 뿌리를 부정하고 있다. 씨도둑이 가장 큰 죄인이다. 이 행위는 한마디로 환부역조이다. 과거의 난법 개척자들이 교단을 열 때 공통적으로 한마디 하는 말이 있는데, 계시로 종통을 받았다거나 상제님의 유물을 전수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상제님이 어느날 직접 나타나서 『네가 직접 참법을 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십중팔구는 이구동성으로 ‘진법대도를 열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상제님이 직접 오셨다거나 어느날 수도(修道) 중에 어떤 거룩한 신인이 찾아오는 신비체험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본래 종통과는 다른 뿌리를 가지고 있다(자작사당) 

따라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

●天下紛繧(천하분운)하여 自作死黨(자작사당)하니

以不安聖上之心(이불안성상지심)하고

以不安聖父之心(이불안성부지심)하고

以不安敎師之心(이불안교사지심)하니라

세상이 어지러운데 스스로 죽음의 무리를 지으니

성상(聖上)의 마음을 불안케 하고 

성부(聖父)의 마음을 불안케 하고 

스승(敎師)의 마음을 불안케 하느니라.(도전6:98)

 

●세상 사람이 다 하고 싶어도 법(法)을 몰라서 못 하느니라.

이제 각 교 두목들이 저의 가족 살릴 방법도 없으면서 ‘살고 잘된다.’는 말을 하며 남을 속이니 어찌 잘되기를 바라리오.

공자가 알고 하였으나 원망자가 있고, 석가가 알고 하였으나 원억(寃抑)의 고를 풀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저도 모르는 놈이 세간에 사람을 모으는 것은 ‘저 죽을 땅을 제가 파는 일’이니라.

수운가사에 ‘기둥 없이 지은 집이 어이하여 장구하리. 성군취당(成群聚黨) 극성(極盛) 중에 허송세월 다 보낸다.’ 하였느니라.

속언에 ‘죄는 지은 데로 가고 공은 닦은 데로 간다.’는 말이 참으로 성담(聖談)이니 잘 기억하라.(도전 2:95)

●태모님께서 하루는 여러 성도들에게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차경석, 조철제와 각 교단이 저토록 집을 화려하게 지어 놓은 것을 부러워 말라. 그러한 일들은 다 허황하며 기만에 불과하니라.” 하시고

“추수를 해서 오곡을 종류별로 갊아 두는 이치와 같다.”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천지공사에 없는 법으로 행동하고 자작자배(自作自輩)하는 놈은 살아남기 어려우리라.” 하시니라.(도전11:412)

‘자작사당’이란 난법자들에 대한 경고 말씀으로, 글자 그대로 스스로 죽음의 무리를 짓는다는 뜻이다. 천하가 이렇게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것은 죽을 당을 짓는 이러한 무리들 때문이라는 말씀이다. 물론 이는 세운과 도운 전체를 묶어서 대세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도운에서는 왜 죽음의 집단인 사당(死黨)을 짓는가? 왜 난 법판이 나오는가? 그것은 자신의 신앙 동기가 어찌되었든지 간에, 믿어가면서 사욕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개의 과도기적 난법 교단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참되게 믿은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상제님의 주요 성도들이나 세상을 떠난 김낙원씨(金洛元, 오동정파)둥이 그러하다. 물론 교리 해석을 잘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는 성도들이 가난하고 굶주릴 때 자기의 재산을 쪼개서 도와주고 양심껏 믿었다. 그는 고수부님과 차경석, 김자현, 김형렬 등 안 만나본 성도들이 거의 없다. 또 그가 성도들로부터 직접 전해 듣고 기록한 상제님 말씀의 몇 구절을 보면 ‘상제님의 대업이 대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상제님의 공사내용을 명백히 증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역사에 어떤 기준을 잡을 때는 모두를 일방적으로 사당이라고 매도할 수만은 없다. 대세로 볼 때 난법은 참법이 나오기 위한 고통스런 준비(성장)과정인 것이다.

 

『관통증산도2』-5-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Comments

글이 없습니다.
글이 없습니다.





State
  • 오늘 방문자 1,222 명
  • 어제 방문자 934 명
  • 최대 방문자 3,354 명
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네이버밴드에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