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증산도

기독교 왜곡과 한계

1.  예수님과 하느님의 관계

 

여러분 혹시 예수님과 하느님의 관계를 생각해 보신적이 있으신가요?

많은 교인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나 동물세계에서 보면 아버지와 아들은 닮습니다. 얼굴 있는 아들이면 얼굴 있는 아버지여야 하고, 아들 예수님을 보낸 아버지 하느님이 계시다면, 몸통 있는 예수님이였기에. 몸통 있는 하느님이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럼 그 상식만큼이나 뚜렷한 증거가 성경에 있는지 한번 실제로 알아보겠습니다.

 

1) 얼굴 있는 아버지 하느님


마가복음 14장62절을 보시면 '인자가 권능자 우편에 앉은 것' 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서 인자는 영어 원본 성경을 보면 “그 사람의 아들” 이라고 나옵니다. 권능자는 mighty one이라 하여 하느님을 별도로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요한계시록 20장11절을 보시면 요한이 보니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까 권능자께서 의자에 앉아계셨다라고 나오는데, 여기서 권능자가 앉는 의자를 흰 보좌라고 표현했고, 그 위에 앉으인 분이라고 분명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엉덩이가 있는 하느님 아버지가 따로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발한 책이 소설가 이문열씨가 쓴 '사람의 아들' 입니다. 이 책 중간쯤에 측주로 예수님이 성자의 반열에서 하느님 성부의 반열로 변질되는 기독교 역사를 정리해 놓은 부분이 있습니다.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한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리며 좀 이따 그 부분을 기독교 역사 속에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전에 실제 예수님 자신 스스로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의 대행자로 왔음을 알리는 성경구절을 알아 보겠습니다.

 

2) 예수를 보내신 하느님 아버지 
 

요한복음 7편28장에 예수께서 가로되,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다. 그가 나를 보내셨음' 이라고 되어 있고, 12장 49절에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게 친히 명령하여 주셨다' 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로써 예수를 보내신 아버지가 인격신으로 따로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흔히들 목사님들이 얼굴 없는 하느님이라고 가르치는데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님들도 알면서도 안가르치거나 기독교역사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목사들이 많습니다. 


3) 앞으로 오실 하느님 아버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기독교의 구원관의 핵심이 예수재림인데, 사실은 아버지 하느님이 재림하신다는 겁니다. 이건 저의 주장이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5절에 보면 '보좌에 앉으신 이가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1장8절을 보면 '나는 장차 올자' 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의 교리가 2000년을 거쳐오면서 많은 부분이 왜곡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외쳤던 아버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만약..예수님이 자신이 아빠였으면 그렇게 외치지 않았겠죠. 예를 들면 그건 아버지가 아들한테  아빠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부자의 위치가 바뀐것과 같습다. 여기까지 신약을 말씀드렸고, 구약의 왜곡은 더 심각합니다. 야훼하느님은 또 누구인지. 야훼를 보통 예수님이라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지 한번 보겠습니다.


야훼를 한 도시의 시장이라 한다면, 예수를 보낸 아버지 하느님은 un사무총장격이 될 수 있습니다.  중동지역을 맡아 다스리는 지방신이 야훼였고 전 우주의 통치자 하느님이 아버지 하느님입니다. 사람이 없었습니다. 너무 시대를 앞서갔던 거죠. 그럼 예수님 살아 생전에도 그것을 이해 못함을 답답해 하셨는데 돌아가신 이후에는 얼마나 왜곡이 심하게 되었을까요. 상상이 가죠. 그걸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4) 민족신 여호와의 유일신 숭배 역사


구약에 등장하는 신의 이름은 엘, 엘로힘과 여호와가 있습니다. 은 강한 자를 뜻하는 말로 헤브루(Hebrew : one from across the river, 강을 건너온 사람들이라는 뜻)족의 원뿌리인 수메르족이 하느님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헤브루는 유대족이 자신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엘로힘은 엘의 복수형입니다. 헤브루족은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가나안 지방의 전쟁신인 여호와를 엘 대신 하느님으로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 란 뜻으로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언약의 주체인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헤브루인들이 처음에 하느님이라 지칭하였던 엘이란 말 대신에 여호와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규합하여 이집트의 노예생활로부터 민족해방의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계약 공동체를 이루면서 새로운 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 이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이름이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여호와'에게서 조상 전래의 하느님을 재인식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였습니다.


원래 여호와는 시나이 반도에 거주하고 있던 부족의 지방신이었습니다. 여호와는 호렙산(시나이 반도)에서 처음으로 모세(레위 지파)에게 나타나서 자신의 이름을 알려 주었습니다. 여호와가 금방 모든 유대인들의 신이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유대족들이 가나안의 농경지역(팔레스타인)을 정복하면서부터 여호와는 부족의 전쟁신으로 전면에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여호와는 이 기간 이스라엘, 즉 유대민족의 전쟁신이 되어 자신의 백성들을 모든 적과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끌어 준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사바오트(Sabaot : 전쟁신)라는 여호와의 별명이 생겨났습니다.


유대인의 민족신 여호와는 팔레스타인의 토착민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하라고 명령합니다. 여호와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이러한 살상을 감행하도록 끊임없이 부추겼으며 유화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이를 완강하게 질책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는 사울왕이 아말렉인들을 무자비하게 다루지 않았다고 해서 그에 대한 축복을 거두었습니다.


반면에 여호와가 총애했던 다윗왕은 단순히 그가 정복한 나라의 족속들을 모조리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거기서 아예 상당히 가학적인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유대 종교사에서 포로기 이후는 유일신관의 강화가 절정에 달해 새롭게 전환되는 시기입니다. 이 때 소부족의 지방신에 지나지 않았던 여호와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는 세계의 창조주, 온 우주의 주(主)로서 절대 주권자로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의 종교, 세르게이 토카레프, 한국종교연구회 옮김, 1991)

 
유대족의 지방신인 여호와가 초월신으로 변질되는 과정


바빌론에 포로 되어 갔던 유대인이 그들의 포로 경험을 통해 그때까지 자기들의 신은 자기 민족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던 부족신관이 얼마나 허황했던가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그래서 그들은 참담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고 보편신(Universal God)이라는 새로운 신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제 2 이사야서나 예레미야서에서는 한 민족만을 위한 전투적이고 무자비한 신은 사라지고 만국을 통치하는 보편 신(Universal God)의 생각이 등장하게 됩니다. (예수는 없다, 141쪽,179쪽)


2. 왜 예수님은 하느님으로  둔갑하게 되었는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후 얼마후 AD 34년에 바울이 사막을 건너 예수님의 성도들을 핍박하러 갈 때 성령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바울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 후에 AD67년까지 약 33년 정도 기독교를 전파했는데요, 문제는 그가 본 메시지가 너무 크다 보니 정작 예수님께서 증거한 아버지를 믿게 되지 않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무엇을 보고 놀라고 있을까요? 네. 예수님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손은 자신을 가리키지 않고 뒤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보낸 아버지 하느님입니다. 바울입장에서는 예수님을 만난것도 신기한데 예수님이 증거한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이는 마치 초등학생이 산수를 배우다 로그를 접하는 것과 같을 것이고,또한  마치 달을 보라했더니 손가락을 쳐다본 것과 같은 이치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 뿐 아니라 그 후 기독교는 예수님의 기독교가 되지 못하고 바울에 의한 기독교가 되어버려 교리가 왜곡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혹시 낱말 맞추기 코너인 ‘스피드게임’ 에 대해 아세요? 헤드셋을 끼고 앞뒤 사람에게서 입모양을 보고 단어를 맞추는 게임인데요, 갈수록 단어가 변형되어갑니다. 이 과정이 기독교 교리 변형과정과 같습니다. 처음 예수님은 하느님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예수 사후 313년 니케아 공의회때 아리우스파와 아타나시우스파가 싸우게 되고 예수님이 단순한 선지자냐 하느님이냐를 가지고 싸우게 됩니다. 그리고 로마에서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게 된 이후에는 예수님이 하느님으로 둔갑하는 계기가 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뿌리에는 바울이 만들어 놓은 바울 신학이 있습니다. 이것은 뒤에서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3. 성경에 나타나는 바울을 꾸짖는 예수님 말씀

 

바울은 단 한번도 예수님을 만난적이 없습니다. 오직 사막에서 만나서 했던 영적 체험 하나만 가지고 바울신학을 만들어 천년을 써먹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성경을 올바르게 성령받아 썻는가로 또한 천년동안 예수님 직계제자로부터 의심을 받아왔습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예수님의 예언은 현실화 되었습니다. 나를 찾는 자가 천국에 갈 것이 아니고 아버지를 찾는 자가 천국에 갈 것이다는 말씀이지요.  

 

1) 바울아! 내가 아니라, 아버지가 오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누가복음 4:43)

 

2) 바울아! 나를 믿지 말고 아버지를 믿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마가복음 10:18)

 

3) 바울아! 구원은 아버지의 원대로 이루어 진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가복음 14:36)


4. 예수님이  하느님으로  왜곡된  과정

 

1) 제자들에 의한 예수님 왜곡 과정

 

예수에게는 12제자가 있었는데 그들이 성경을 만들때 성령을 받아서 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태와 누가 복음은 서로 일치하지 않구요. 그 얘기는 한 분의 하느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거나, 성령을 잘못 받았거나 둘 중에 하나라는 얘기가 됩니다. 그런데도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절대시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1947년 사해에서 발견된 사해문서는 불교와 관련이 있다는 민희식 박사의 견해도 있습니다. 이렇듯 다양성을 가지고 있었던 고대의 성경들을 정치적 목적으로 4대 복음서만을 남기고 모두 없앰으로부터 기독교의 교리의 왜곡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가는 세례요한으로 부터 예수님이 세례를 받았기에 거기서 하느님의 정통성을 찾았고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하여 로고스적 하느님으로 예수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태,누가는 동정년 마리아로부터 아버지 없이 영으로 잉태된 분이 예수님이기에 예수님이 하느님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예수님이 3일만에 부활하였다는 것과 영으로 자신을 찾아온 것 그 이유로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왜곡시켰습니다. 하지만 정작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이는 정녕 따로 계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종교회의 통한 예수님 왜곡 과정

 

이제는 종교회의를 통한 예수님 왜곡과정을 보겠습니다. 325년에 니케아 공의회때 아리우스파와 아타나시우스파간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단순한 선지자로 인식했던 아리우스파는 니케아 종교회의때 만해도 가장 교세가 우세했으나 갈수록 반대파 아타나시우스파에게 이단으로 몰려서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초기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아버지 하느님이 아니였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64년이 지나서 톨레도 회의때는 예수님에게서도 성령이 발생 가능성을 처음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원래 성령은 아버지에게서만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예수님도 성령을 내릴 수 있음을 인정한거죠. 이렇게 예수님의 영적 위치가 계속 변해갔습니다. 원래 예수님의 영적 지위는 천상에서 정해졌을 건데, 단지 인간에 의해서 자꾸 왜곡되어 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1054년에 이 휠리오케 문제로 동서교회가 나뉘게 됩니다. 동방 러시아정교회에서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서방의 교회가 내부 부폐되어 칼뱅에 의한 종교개혁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때 서방교회가 천주교와 기독교로 나뉘게 되는거죠.


여기서 재미있는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양의 교회가 대부분 천주교구요,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기독교인구가 많습니다. 하지만  지구촌 교회 인구 중에 2018년 기준  천주교가 12억, 기독교가 6억, 동방 러시아정교회가 3억정도의 인구로써 기독교인구가 작은 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독교 교회가 마치 대세인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전 세계인구중 약 8프로 밖에 안 되는 극소수 그리스도교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3) 기독교 신관은 다신관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교회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기독교는 유일신 종교라는 겁니다. 알고 보면 철저한 다신교입니다. 삼위일체 자체가 벌써 다신입니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성부하느님 신이 따로 계시고 예수님도 인간의 몸에 성령으로 탁태되시어 들어오신 것이기에 벌써 신이 두명입니다. 그리고 성신까지 합치면 셋이지요. 더군다나 성신은 각 지역의 지역신이 따로 있고 지역을 이동함에 따라 다른 지역신을 믿어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기독교는 유일신이 아니라 철저한 다신을 믿는 정교입니다. 그 외에도 성경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 창세기 1편26장을 보시면 “우리가 우리의 모습대로 사람을 만들고(창세기 1:26)”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또한 이스라엘이란 지명에서도 알수 있듯이 엘로힘이라 하여 원래 아브라함은 복수의 신을 믿었고,그의 손자 야곱이 엘신을 이기고 새로운 성신인 지방신 야훼를 섬겼으므로 이스라엘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6-27)

 

하나님의 이름들 중에 히브리 성경에 2500번 가량 나올 정도로 중요한 엘로힘이라는 이름은 어원적으로 따져보면 엘이라는 남성 신과 엘로아라는 여성 신의 이름이 합해서 된 복합명사에다가 복수를 나타내는 '임'을 붙여서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엘로힘'은 남성 신들과 여성 신들을 총체적으로 대표한 이름으로서 그 속에 남성적인 요소와 여성적인 요소를 함께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는 없다, 123쪽)

 

신명기 32장에 나오는 모세의 노래 속에 그는 너희를 지으신 아버지가 아니냐 하면서 아버지 됨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좀 내려가서 '너희는 너희를 낳은 하나님을 잊었다' 고 이야기 함, 여기서 낳다는 히브리말은 우리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하는 것과는 달리 어머니로서 산고를 치른다는 뜻이다. 따라서 야훼 하나님도 아버지이시며 동시에 어머니로서 그 안에 남성적 요소와 함께 여성적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

 

구역성서와 유대문학의 대가로 유명한 바버드 대학 쿠겔 James L.Kugel 교수는 그의 최신작『옛적의 하나님The God of Old)』에서 예수가 출현하기 이전, 교대 유대인들의 원형적 신관과 신앙관에 대해서 놀랍고 충격적인 발굴 사실들을 제시하였다. 그의 주장으로 보면 초기시대 유대족의 신관은 구약에 등장하는 칼을 든 신장들, 자손을 태워주러 아브라함에게 찾아온 세 사람의 손님(삼신)등으로 미루어 인격(주신) 신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죽은 자들이 무덤 속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음식과 음료를 필요로 한다고 믿었다. 그 죽은 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하는 것이 살아있는 자, 직계 가족들의 의무였다. …유다 왕국의 여러 평지에서 발굴 작업을 할 때 고고학자들은 여러 종류의 무덤과 매장 터에서 동물들의 뼈를 발견하였으며 그와 함께 사자들의 제기로 쓰였을지 모르는 그릇과 단지, 물병도 발견하였다.


이 구절(창세기 18장)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브라함이 보는 것은 자기 앞에 서 있는 세 명의 남자이다. (『옛적의 하나님The God of Old)』42쪽)


※ 구약의 에스겔과 다니엘(7:9)은 깊은 기도 속에서 천상의 옥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직접 보았다. 구약성서를 들여다보면, 고기를 구워 바치는 번제 등 숱한 제사의식에 대한 내용이 많다. 이것은 그들이 믿는 신이 천상의 옥좌에 앉아있으며 제사에 감응하는 인격신이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유대족의 고향인 수메르 문화의 땅 메소포타미아에 살던 종족들이 음식과 청수를 모시고 조상들에게 제사를 모셨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유대족 또한 제사문화의 전통을 계승했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개벽실제상황』 270쪽 측주)

 

4) 기독교 성경은 수메르 문화에서 왔다

 

그럼 이러한 기독교의 다신문화는 어디서 왔을까요?

 

아브라함이 원래 살던 갈데아 우르 지역은 원래 수메르 우르지역이었습니다. 수메르는 기독교문명을 낳았던 최초의 서양문명이였습니다.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출토된 길가메쉬 서사시입니다. 성경과 똑같은 홍수 신화가 새겨져있어 기독교계에서 큰 충격을 받았던 고고학적 유물이였습니다. 홍수신화 뿐아니라 창조신화,에덴동산,바벨탑이야기와 그 중에서도 다신문화도 그대로 똑같습니다. 그럼 이 수메르인은 어디서 왔을까요? 

 

5) 수메르 문명은 동방 제사문화권에서 왔다

 

수메르문명의 최고 권위자 크래머 박사는 제사장과 왕을 동일시 하는 문화, 그리고 학교에서 선생님을 스승이자 아버지로 불렀던 군사부일체 문화가 모두 동방에서 왔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군사부일체 문화하면 바로 환국 배달 고조선으로 이어져온 고유의 한민족 문화였던 것입니다. 결국 수메르는 동방 한민족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군사부일체문화를 인물중심으로 알아보면 예수 또한 왕이면서 제사장에였던 멜기세덱의 반차를 쫒아 그리스도가 되었습니다. 동방에선 멜기세덱 이전부터 환인천제께서 환웅천황에게 제사장겸 왕권을 물려주시고 배달국을 건설하였으며, 환웅천황 또한 단군성조께 그 제정일치의 신권과 왕권을 넘겨주었습니다.


5. 제사장 예수의 사명 : 군사부 일체 아버지 하느님 증언

 

1) 동양 제사문화에서 변질되어간 그리스도교

 

기독교는 원래 유대문화에서 왔고 수메르와 환국문명에서 시초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이전의 모든 문명은 다신관문화, 제정일치의 문화였다가 기독교에 들어와서는 유일신관과 왕과 제사장이 분리된 문화로  변질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제사장 예수의 사명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느님과  인간을  매개하는  제사장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예수님 또한 제사장으로 임명이 되었는데, 시편 110장 4절을 같이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예전에는 하느님의 명을 받아 지상에 펼치는 사람이 가장 통치를 잘 하였기에 제사장이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쫒아라는 의미는 아브라함 시대때 최고의 대제사장이였던 멜기세덱의 종통을 이어받아 예수님 또한 하느님을 대행하는 아들이 될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제사를 잘 모시는 분 중 한 분이 제사장 예수님 이였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지금의 교회의 가르침은 완전히 예수님의 가르침과 멀어져 있습니다. 이제는 진리의 뿌리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이 모든 인류가 아들로써 아버지를 찾을 수 있는 다리를 놓는 것이였지만, 오히려 지금의 교회는 거꾸로 아버지로 가는 길을 완전히 끊어 놓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합니다.

 

3) 제사장 문화의 뿌리는 군사부 일체 하느님 문화

 

그럼 제사장 문화의 핵심은 뭘까요? 바로 군사부 일체 하느님의 뜻을 받들고 모시는 겁니다. 멜기세덱의 고향 수메르에서 있었던 군사부 일체 하느님이 기독교로 흘러가서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느님관에 영향을 주었을 것임은 너무도 명벽히 우리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동방의 삼신일체신관에서 서양 삼위일체신관으로 전개되어 가면서 신의 내재성 보다는 신의 초월성을 더욱 강조되고 또 삼위일체신관에서 성신보단 성자론을 더욱 중시여기며 인류원형신관이 왜곡되어 나갔습니다.

 

4) 삼신일체 상제님과 삼위일체 하느님

 

동양의 삼신 일체관은 ‘하나 속에 셋이 깃들어 있다’ 하여 신의 내재성 (조화, 교화, 치화)을 강조한 반면 서양의 삼위 일체관은 ‘셋이 결국 하나다’는 신의 초월성 (성부, 성자, 성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동방 신교의 성령론과 서방 기독교의 성령론


기독교의 성령론
기독교의 신관, 인간관, 우주관, 구원관, 즉 기독교 진리의 핵심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다 들어있다. 삼위일체신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한 분이나 현상계에 자신을 드러낼 때는 셋으로 구별되어 역사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독립된 세 위격으로 구분되어 창조와 구원과 성화의 역사를 펼치신다. 아버지(제1위 하나님)가 보낸 아들도 하나님(제2위 하나님)이며, 성부와 성자로부터 끊임없이 나오시는 성령도 그 본질이 아버지와 아들과 동일한 하나님(제3위 하나님)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너희가 성부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증거하라”는 예수의 가르침도 있지만, 이 삼위일체신관을 정립한 사람은 CE 400년경의 성 어거스틴이다. 그 핵심은 ‘이 우주에는 창조주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천상옥좌에 계시며 그가 보낸 아들이 인류의 원죄를 대속하고 구원 사역을 하기 위해 아버지의 명을 받아 인간으로 왔다. 그리고 아버지의 창조와 아들의 구원 역사는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는 제3위의 성령이 이룬다’는 것이다.


이 성령의 출원지에 대한 견해 차이로 1054년, 동방정교와 서방 교회(로마가톨릭)가 분리되었다. 동방정교(그리스정교)에서는 성령이 신성의 유일한 근원인 아버지로부터만 나온다고 주장하며, 가톨릭과 지금의 개신교에서는 신약성서를 근거로 하여 ‘아들에게서도(휠리오케Filioque)’ 출원이 된다고 한다.


성령은 항상 인간의 곁에서 지켜주고 돌봐주고 가르치고,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하늘 보좌의 아버지 하나님에게 돌아가도록 기도해 주는 어머니와 같은 보혜사保惠師(파라클레토스παρακλητο? paraclete : 항상 곁에서 돌봐주고 가르쳐주는 분)의 역할을 한다.


동서 성령론 비교


여기서 동방의 삼신관과 서양의 삼위신관을 대비해 보면 하나가 셋이요 셋이 일체(1→3, 3→1)라는 공통된 논리와 함께 흥미로운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동방 삼신관에서 말하는 하늘과 땅의 창조섭리를 완성하는 인간 태일은 서양의 삼위일체신관으로 볼 때 성자 하나님(아들)에 해당한다. 그런데 동양은 보편적인 인간의 위상으로 태일을 말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유일하게 하나님의 독생자만을 말한다. 성령에 대한 관점 또한 다르다. 동방의 삼신관에서 성령은 지일, 즉 아버지 하나님(천일)과 음양 짝이 되어 하늘의 생명을 받아 인간과 만물을 창조하여 길러내는 땅하나님, 어머니 역할을 한다.


반면에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동시에 발원되어 내려오는 (서양 기독교의) 성령은 독립된 제3 위격의 하나님으로서, 아버지와 아들의 모든 구원의 뜻을 성취시켜 간다. 기독교 신앙의 생명과 구원의 열매는 오직 하늘을 감동케 하는 뜨거운 기도로 성령을 받아 내림으로써 성취된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가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4:29)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한복음」 14:16~17)


성서에 나오는 성령 사역의 예


신약성서를 보면(사도행전 2:1~4), 예수가 로마군에게 잡혀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쇠갈고리의 채찍을 맞아가면서 고문당할 때 ‘나는 저 사람을 전혀 모른다’고 잡아떼던 소인배 제자들 120명이 예수 승천 후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를 하는 중에, 급히 바람이 불면서 뱀의 혓바닥 같은 불덩어리로 성령이 임재하자 갑자기 모두가 담대하고 강력한 영적 군사로 변화되었다. 그리하여 베드로가 하루에 3천 명을 전도하는 기독교 전도 폭발의 첫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성령은 유약한 자연의 인간을 성부(아버지) 성자(아들)의 구원의 뜻과 진리를 깨달아 아버지 하나님의 생명과 합일되는 영원한 생명적 인간으로 변화시켜 준다. 기독교 신앙과 모든 문명 창조를 받쳐주는 원동력이 바로 성령 하나님을 받아 내리는 데 있다.

 

성령의 역할


그렇다면 동서양에서 말하는 공통된 성령의 역할은 무엇인가?
첫째,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 믿음과 평화의 마음을 열어준다. 때문에 성령을 받으면 믿음이 뭔지 신앙이 뭔지를 안다. 우주 원리로 말하면 토심土心, 즉 대자연이 태어난 생명의 근원인 토 자리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둘째, 성령은 진리의 영이다. 성령을 받으면 진리 말씀이 들리고 깨달아진다.
셋째, 성령은 치유의 영이다. 성령은 몸에 있는 모든 불결하고 불건강하고 어두운 기운, 죽음의 모든 병기를 완전히 소멸시켜 씻어내 준다.
넷째, 성령은 조화의 영이다. 본래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연합’하여 한 몸으로 역사하기 때문에 성령을 받으면 모든 것이 하나라는 일체적인 삶의 소중함을 느끼고, 서로 화합하고 적극 참여하여 우주의 조화주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천지의 통치 목적, 대자연의 섭리에 부합하는 생명적 인간, 섭리적 인간, 역사적 인간으로 살아가게 된다. 또한 살아있는 만물의 조화 모습 자체가 진실로 아름답고 참되게 보인다.
다섯째, 성령은 진리 선포의 영으로서 인간의 구원 사역을 성취하는 은혜의 손길이다.

 

선·후천 성령관


천지와 인간을 낳는 조물주 삼신하나님의 생명 창조의 역사는 현실적으로는 천지부모의 생명구조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을 낳아 기르는 선천 봄여름 세상에는, 인간의 생명 창조에 대해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오는 성령하나님의 사역만을 주장해 왔으나, 인간 생명을 추수하는 가을우주 개벽기에는 인간을 낳아 준 직접적인 생명의 부모인 선령신들이 성령의 손길과 함께 사역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존시대를 당하여 모든 인간의 선령신들이 가을의 생명 법칙, 즉 생장을 종식하는 추살 기운에 의해 일제히 죽어가는 가을개벽의 화급한 순간에 자손 줄을 건지기 위해 천상에서 내려와,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생사를 걸고 분주하게 역사하는 것이다.


우주의 아버지 하나님이신 상제님은 이것을 가을 개벽기 인간의 생사 판단에 가장 결정적인 구원의 명제로 강조하셨다. 자손을 위해 애통해 하고 간절히 사무치게 돌보는 조상의 음덕이 닫힌 선천 우주의 조화성령의 힘보다 더욱 큰 것이다. 그래서 상제님은 조상이 너희들 각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만성萬姓 선령신들이 모두 나에게 봉공奉公하여 덕을 쌓음으로써 자손을 타 내리고 살길을 얻게 되나니 너희에게는 선령이 하느님이니라. 너희는 선령을 찾은 연후에 나를 찾으라. 선령을 찾기 전에 나를 찾으면 욕급선령辱及先靈이 되느니라. (7:19:1~2)
예수는 선령신들이 반대하므로 천지공정에 참여치 못하리라. 이제 인종 씨를 추리는 후천 가을운수를 맞아 선령신을 박대하는 자들은 모두 살아남기 어려우리라. (2:26:7~8)


그럼에도 기독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유일신주의만을 주장하여 선령신의 존재를 소홀히 여긴다. 대자연의 생명계는 전부 음양이 하나로 조화되어야 성립된다. 신의 세계 또한 그렇다. 유일신과 다신이 조화를 이루며 음양 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행하여 직접 저를 낳아 길러준 생명의 근원적 뿌리인 조상에 대해 우상숭배라 하여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하며 조상을 박대하는 행위는, 가을천지가 열리는 인간 씨종자 추리는 가을 개벽기에는 살 길이 없다고 경계하셨다.

 

-개벽실제상황 도서 중-

 

5) 성경에 나타난 기독교인들을 꾸짖는 예수님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7:21~23)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누가복음6:46) 

 

 

6. 창조론 VS 진화론?  생명탄생과 성숙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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