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교에서 뻗어나간 기독교
기독교 문명은 BCE 3500년 경, 지금의 이라크 남부지역(구약의 에덴동산이 있던 곳)에서 발생한 수메르 문명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기독교와 신교문화의 관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인간의 생명을 낳고 길러 주는 신교의 칠성령 신앙이 기독교의 핵심 가르침인 성령관에 어엿하게 살아있다는 점입니다. 성서에서는 칠성령을 아버지 하나님의 천상 보좌 앞에 늘어서 있는 ‘일곱 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요한계시록」 4:4:5)
이 아버지 하나님의 일곱 영은 바로 수메르 문화권에서 받들어 온 하늘 최고의 신, 일곱 신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 교맥에 흐르는 정신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일곱 교회, 일곱 성령, 성령의 은사로서 받는 일곱 은혜, 또 일곱 장로, 일곱 천사, 일곱 나팔, 일곱 별, 일곱 금촛대, 일곱 뿔, 일곱 눈, 일곱 봉인에서와 같이 실질적으로는 생명 창조의 작용수인 '일곱(7)' 수로 나타납니다. 동양의 선이 북방선이라면 7수를 강조하는 서양의 선도인 기독교는 남방의 천지 불로 상징되는 남방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7수 문화는 인류 시원 문화인 동방 신교의 '칠성문화'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일곱 성령을 전하지만 그들의 2천 년 신학사에서 '아버지와 아들에게서만 성령이 나온다'고 할 뿐, 성령 문화의 근원과 실체인 칠성七星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곱 신은 우주를 다스리는 주신들로, 수메르인들은 이들이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고 통치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다신관은 『구약』의 첫머리 「창세기」에 뚜렷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1:26)라 하며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라는 다수의 신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신학자들은 인간 창세의 봄개벽을 주도했던 천상 성령 하나님들을 ‘천상의 신의 총회’라고 해석합니다.
이들은 앞에서 살펴본 「요한계시록」에도 ‘하나님 보좌 앞의 일곱 성령’the seven Spirits of God으로 나타납니다. 이 일곱 영은 하나님, 즉 삼신상제님을 대행하여 실무 차원에서 현실 우주를 경영하는 ‘일곱 신들’입니다. 신의 완전수 ‘10’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은 ‘삼신(3)과 일곱 신(7)’으로 나뉘어 음양 일체의 합덕合德 작용을 합니다. 성령의 ‘체’가 바로 삼신이요, 삼신은 칠성령으로 ‘용(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일곱 신이 또 다른 계시록의 구절에서는 천문으로 ‘일곱 별’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요한계시록」 1:20)
그런데 삼위일체의 유일신관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영원한 생명(성령)이 내려오는 칠성령의 7수 신앙이 점차 약화되어 신의 생명의 비밀 코드 반쪽이 사라졌습니다. 왜 기독교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삶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삼위일체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들의 초기 신관에서 음양 짝인 다신관은 잃어버렸을까요?
이를 밝히기 위해서 기독교 초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보죠.
약 4,000년 전, 지금의 이라크 지역인 갈데아 우르에서 살던 유대족의 조상 아브라함Abraham은 아버지 데라를 따라 유프라테스 강줄기를 타고 북쪽의 하란을 거쳐 떠돌다가 서방의 가나안에 정착하였습니다. 정착 후 상당 기간 동안 유대족은 수메르의 다신 문화권에서 신앙하던 신관을 그대로 갖고 있었습니다. 그 전통이 초기성서에 담겨 있는 다신 문화입니다.
구약성서와 유대문학의 대가로 유명한 하버드대학 쿠겔James L. Kugel 교수는 그의 최신작 『옛적의 하나님The God of Old』에서 예수가 출현하기 이전, 고대 유대인들의 원형적 신관과 신앙관에 대해 놀랍고 충격적인 발굴 사실들을 제시하였습니다. 그의 주장으로 보면, 초기시대 유대족의 신관은 구약에 등장하는 ‘칼을 든 신장들, 자손을 태워주러 아브라함에게 찾아온 세 사람의 손님(삼신)’ 등으로 미루어 인격(주신) 신관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견해 가운데 몇 가지만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죽은 자들이 무덤 속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음식과 음료를 필요로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 죽은 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하는 것이 살아 있는 자, 직계 가족들의 의무였습니다. … 유다 왕국의 여러 평지에서 발굴 작업을 할 때 고고학자들은 여러 종류의 무덤과 매장 터에서 동물들의 뼈를 발견하였으며 그와 함께 사자들의 제기로 쓰였을지 모르는 그릇과 단지, 물병도 발견하였습니다.
성서 속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보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을 하고자 하실 때에는 보통 인간의 모습을 한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히브리어의 천사angel를 뜻하는 말은 ‘보내다’라는 말에 어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장(the chief of the Lord’s Army)은 하나님의 사자나 대리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적어도 첫 인상에서 하나님의 신장이 일반 사람의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 구절(창세기 18장)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 아브라함이 보는 것은 자기 앞에 서있는 세 명의 남자입니다.
그런데 이집트 노예 시절을 겪으면서 유대족에게는 고난에 처한 자기네 민족을 강력하게 통합시킬 힘이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이에 모세는 민족정신을 하나로 강력하게 묶기 위해, 그들 민족의 하나님인 만군萬軍의 신 야훼와의 계약을 통해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유일신 신앙을 선포하게 됩니다. 이로부터 천지 안에 가득 찬 무수한 신들을 철저히 배격하고 야훼 이외의 신들을 섬기는 것을 모두 ‘우상숭배’로 간주하였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다신관이 사라지게 된 역사적 배경입니다.
기독교의 본질 : 제사장 멜기세덱의 도를 계승한 예수
구약 창세기 14장에는 매우 신비스런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멜기세덱입니다. 4천여 년 전, 아브라함은 엘람 왕에게 납치된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엘람 왕의 군대와 싸워 승리한 후 돌아왔을 때 아브라함을 영접한 연합국의 왕들 가운데 한 사람이 살렘 왕 멜기세덱이었습니다, 그는 왕이었을 뿐 아니라 하느님의 제사장으로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아브라함을 축복하였고,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그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바쳤습니다. (창세기 14:17~20) 멜기세덱이 하느님과 인간을 매개하는 제사장이었기 때문입니다.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은 '의로운 왕' 이라는 뜻입니다. 또 살렘은 평안, 평화를 의미하니 멜기세덱은 평화의 왕이기도 하였습니다.
신약의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를 바로 이 멜기세덱과 같은 반열에 오른 대제사장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시편 11:4)
예수는 멜기세덱의 도를 계승하여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그리스도(기름 부음을 받은자)가 되었습니다. 정의와 평화의 왕인 멜기세덱의 뒤를 쫓아 제사장이 된 예수는 인류가 하느님 앞에서 의롭고 죄 없는 평화로운 생명의 존재로 살아가는 것을 자신의 고귀한 사명으로 삼았던 상제님의 아들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에게로 가는 길을 여는 기독교의 본질은 선도仙道다. 예수가 천상 궁전에 실재하시는 인격적인 통치자 하느님의 소식을 전하기도 했지만, 그는 또 무극 생명의 조화 바람을 타고 육신을 가지고 영생하는 선도를 외쳤습니다.
제자들을 데리고 변화 산에 올라 기도드릴 때, 그는 이미 불멸의 선의 생명 비밀을 체득하여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지고" (마태복음 17:2) 하늘사람의 영생의 옷(천의무봉)을 입고 있었습니다.
*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옷은 호지 않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요한복음 19:23)
구약 시대의 선지자 에녹과 엘리야에게서 신약 시대의 예수로 이어지는 도맥은 바로 선의 불멸의 생명을 추구하는 선도입니다. 구약에는 에녹과 엘리야가 육신을 그대로 가지고 선화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아브라함에서 야곱까지
요셉에서 사사시대까지
사울 이후 800년이 안 되는 이스라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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