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교(神敎)와 증산도

신교의 열매, 증산도

 

신교의 쇠퇴와 동서 종교문화의 탄생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신교는 인류 문화의 모태이자 생명의 젖줄이요, 뿌리 문화입니다. 나무로 볼 때 뿌리에서 흡수한 양분은 줄기와 가지 끝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가지 끝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운 뒤에 열매를 맺습니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도 마찬가지로 뿌리에서 멀어지면서 화려하게 꽃을 피운 뒤에 열매를 맺습니다.


신교에서 펼쳐져 나간 유·불·선·기독교는 제2의 신교로서 줄기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줄기 문화의 중심이 된 종교의 핵심 가르침

 

나무는 자연이 변화해 가는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나무는 뿌리에서 물과 양분을 흡수하여 줄기를 형성하고 꽃을 피우며 잎을 무성히 낸 다음에 열매를 맺습니다. 인류 문화를 나무에 비유해 보면, 신교는 나무의 뿌리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신교문화를 시원문화 또는 원형문화라 합니다.


신교에서 뻗어 나간 줄기 문화는 각기 동서양 문화의 중심이 되어 발전해 왔습니다. 인류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종교문화는 실로 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유명 관광지나 유적지를 보면 종교 건물 아닌 곳이 없습니다. 성당, 사원, 탑, 동상, 신전, 제단 등이 거의 모두 종교문화에서 나온 유산입니다. 종교의 발전에 따라 의복, 예악, 음식, 건축, 인쇄 등 거의 모든 문화 영역이 함께 발달하였습니다. 인류 역사는 종교를 빼놓고는 도무지 설명이 안 될 정도입니다. 이처럼 줄기 문화의 중심이 된 종교는 어떤 가르침을 전할까요?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은 개성과 재능이 서로 달라도 그 모습과 성격은 닮습니다. 모체 종교인 신교에서 뻗어 나간 기성 종교의 가르침도 그렇습니다. 줄기 문화를 펼친 성자들의 가르침은, 신교라는 뿌리에서 멀어지는 인류에게 ‘신교 회복’을 강조한 점이 서로 같습니다. 문화권과 언어권에 따라서 표현이 다를 뿐입니다. 기존 종교들은 신교의 주인이신 우주의 조화주 하느님, 삼신상제님이 계신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신교문화의 종통 계승자, 대한민국


신교는 천산산맥 동방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환국시대 이래로, 우리 한민족이 9천 년 장구한 역사 동안 믿음으로 받들어 온 생활 문화입니다. 신교는 그 맥이 지구촌 곳곳으로 뻗어나가 동서양 문화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동서양의 모든 종교와 정치와 철학, 생활 문화가 신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서양에도 오래 전부터 신의 가르침을 받아 내리는 신탁 문화가 있었습니다. 2천 년 서양 문화의 주축이 된 기독교 또한 그 진리가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신 하나님관으로 구성된 신교문화의 일부입니다. 서양 문명은 신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건설된 것입니다.


또한 우주의 조화주 하나님이신 상제님의 천명天命을 근본 가르침으로 하는 동양의 유교도 신교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신교의 다른 말이 천天의 주재자인 상제님의 가르침, 곧 천명天命입니다. 또한 도교의 『도장道藏』에는 우주의 조화세계를 거니는 도신道神들이 증언한 상제님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한민족은 유·불·선·기독교 등 세계 종교의 시원 문화인 신교의 종주宗主로서 전통적으로 우주의 지고신至高神이신 절대자 상제님께 제사를 올리면서 동시에 자신의 선령先靈(조상신)과 민족의 뿌리와 천지신명을 숭배하는 신앙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국조國祖든, 선령신이든, 지역의 신명이든, 산신이나 바다의 용왕이든, 인류 역사상 인간이 체험했던, 삶을 바르게 이끌며 도와주는 모든 신을 수용하여 섬긴 것입니다. 그래서 한민족은 상제님뿐만 아니라 동서의 모든 민족과 종교에서 섬기는 신을 다 포용할 수 있는 상생과 화합의 신관을 지켜온 민족입니다. 한마디로 동방의 한민족은 유일신唯一神과 다신多神이 통일되어 조화를 이루는 가장 이상적이고 진리에 부합되는 신관을 수립했습니다. 그리하여 인류 역사에서 발생한 신들을 모두 아우르는 가장 넉넉하고 보편적 신관, 그리고 이에 따른 우주관, 자연관, 인간관과 광명의 역사관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물론 동북아 시원 역사의 밑뿌리까지 잘라버린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만행으로 민족혼의 본원인 신교문화가 말살됨으로써 우리 한민족은 회복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이에 한민족의 시원 역사를 바로잡고 인류 창세역사의 정의正義를 세워 가을 천지개벽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 상제님께서 동방 조선 땅에 강세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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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강세하신 삼신상제님


우주의 통치자이신 상제님은 일찍이 공자, 석가, 예수와 같은 성자들을 이 세상에 내려 보내시어 인류를 교화하고 문명을 꽃피우게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동학 신도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나니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각기 ‘저의 스승이라’ 하여 따르리라. ‘예수가 재림한다’ 하나 곧 나를 두고 한 말이니라.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느니라. (道典 2:40:6)

 

그리고 후천 가을개벽을 맞이하여 세상과 인간을 구하시기 위해 상제님은 마침내 인간의 몸으로 친히 동방의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상제님께서 인간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늘에 계신 상제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상제님의 명을 받아 수천 년 동안 지구촌 인간의 교화를 맡았던 동서양 성자들은 한 목소리로 장차 상제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환란 속에서 인류를 구원하고 새 세상을 열어주실 것이라 전하였습니다.

 

 

신교의 부활, 600만명이 신앙한 보천교 

 

나라를 잃은 시기였던 1920년대에 큰 세력을 떨친 민족종교가 있었습니다. 상제님을 신앙하며 신교와 역사정신을 지킨 보천교普天敎입니다. 조선총독부*의 공식 통계를 보면, 불과 몇 년 만에 신도가 600만 명(1920년대 초기 조선 인구 약 1,700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빠른 기간에 신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일은 세계 종교 역사상 유례가 없습니다. 인구의 1/3이 상제님을 신앙했으니 가히 국교라 할 만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70% 이상이 보천교를 신앙했습니다. 집집마다 청수를 모시고 태을주를 읽었습니다. 보천교는 9천 년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온 상제 신앙을 바탕으로 한 생활문화였습니다.


보천교는 항일운동도 뒷받침했습니다. 보천교는 상해 임시 정부*에 자금을 보냈습니다. 보천교에서 독립자금을 몰래 전하다가 일제에 검거되었다는 당시 신문 기사도 많습니다.
보천교는 저 유명한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좌진 장군에게 군자금 2만 원(당시 쌀 한 가마니 값이 5원)을 지원하였습니다. 김좌진 장군은 이 돈으로 무기를 사들여 무장대를 편성했습니다(증거 자료: 관동청 경무국 제 32743호). 1920~30년대에 보천교 신도들은 물산장려운동 등 민족경제 자립 운동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보천교는 이처럼 항일 민족운동과 독립 운동을 지원하는 사령탑 구실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근대사, 종교, 철학, 정신문화, 독립운동사를 알려면 보천교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우리는 보천교를 알지 못할까요? 그것은 일제가 자행한 민족정신 말살 정책 때문입니다.


조선총독부는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서 기독교, 불교, 일본 신도를 제외한, 보천교를 포함한 민족 종교를 ‘유사 종교’로 규정하여 탄압했습니다. 민족정신을 말살하라는 특명까지 내렸습니다. 중일전쟁(1937)*을 일으킨 일제는 1938년에 유사 종교 해산 명령을 내렸습니다. 일제는, 한양의 경복궁보다도 더 큰 십일전을 비롯한 보천교 건물들을 헐값으로 전국 여러 곳에 팔아 버렸습니다. 본전本殿인 십일전十一殿은 조계사 대웅전을 짓는 데 쓰이고, 건물 일부는 동대문으로 가고, 청기와는 일제 경무대 건물 기와에 쓰였습니다. 광복 후 윤보선 대통령이 경무대 건물을 사용하면서 대통령 관저를 청와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광복 70년이 지났지만, 일제의 탄압과 식민사학의 잔재로 말미암아 보천교의 항일투쟁사는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보천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일제의 압제에서 풀려난 이후 우리는 6.25전쟁의 아픔과 숱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한민족의 역사 혼인 상제문화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보천교는 이 땅에 신교를 부활시키고 상제문화를 다시 일으킨, 민족의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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