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교(神敎)와 증산도

신교의 핵심코드

신교문화는 어떻게 이어 왔는가?

 

오늘날 불자들이 마음에 부처를 모시고 살며 기독교인들이 하루하루를 아버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아가듯, 인류문화의 황금시대인 신교시대에는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조화주 하나님이신 상제님이 계셨습니다. 상제님이 모든 삶의 가치이자 생활 의식의 근원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교를 한마디로 ‘상제문화’라고 합니다. 바로 이 점이 신교의 핵심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그렇다면 인간과 신의 세계, 자연계를 다스리시는 분을 왜 ‘상제님’이라 불러왔을까?

‘상제’는 동방 신교에서 약 6천 년 전부터 불러온 ‘하나님의 본래 호칭’입니다. ‘상’은 ‘천상’ 또는 ‘지존무상’의 상上 자요, ‘제’는 하나님 제帝 자로서 상제란 인간과 신의 세계, 자연계를 다스리시는 ‘대우주의 통치자’, ‘지존의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지난 수천여 년의 장구한 삼신 신앙의 역사 속에서 체험적으로 생성된 언어이며, 근래에 흔히 쓰는 ‘하나님’보다 ‘천天의 통치자, 주재자’로서의 조화권능과 인격적 풍모를 훨씬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호칭입니다.

그러나 상제신앙을 단순히 종교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너무도 좁은 안목입니다. 왜냐하면 상제신앙에서 정치와 종교, 교육과 예술 등 모든 인류문화가 잉태되었기 때문입니다.

상제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천제天祭문화입니다. 제왕들이 제위에 올랐을 때 맨 처음 한 일이 상제님께 제사를 모시는 것이었습니다. 황제는 상제님의 대행자로서 천제의 대제사장이었고, 상제님과 백성을 이어주는 중매자였습니다. 그들은 상제님에 대한 학문과 수행과 덕행을 통해 대자연의 도를 터득하여 덕으로써 천하의 백성들을 다스렸으며, 상제님의 뜻이 담긴 경전을 통해 백성들이 삼신상제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도록 하늘의 가르침을 내려 주었습니다.

 

신교문화의 핵, 천제天祭

 

 

주문을 외우고 수행을 하며 천지 대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사는 영성문화는 하늘과 소통했던 제천행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인류 문화의 근원을 추적하다 보면 저절로 천제天祭문화와 만납니다. 동서 4대 문명은 모두 제천행사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환단고기』를 보면 환국 이래 수천 년간 한민족은 하늘에 계신 상제님에 대한 믿음과 공경의 예식으로 천제를 올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천제를 올린 뒤에는 모든 백성이 한데 어울려 술 마시고 춤추며 노래하였습니다. 천제는 상제님께 천지의 뜻을 받들며 천지와 하나 된 삶을 살겠노라 맹세하고, 보은을 다짐한 가장 거룩한 행사입니다.


그런데 태고 시절 상제님을 모시는 것은 비단 제왕들만의 특권이 아니라 일반 백성의 생활문화 자체였다.

예로부터 고을마다 소도가 있어 삼신상제님께 제사를 지내면 북치고 나팔을 불어 잔치가 벌어졌다. 백성들은 저마다 자기 집 안뜰에도 제단을 쌓아 새벽마다 기도를 올렸으며 먼 조상의 덕을 추모하여 자기가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으려 하였다. (『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홍산문화의 총묘단 유적은 배달의 천제문화를 증명합니다.

 

배달의 정신을 이어받은 고조선의 역대 단군 성조들도 매년 봄가을에 천제를 올렸습니다. 음력 3월 16일 대영절大迎節(삼신상제님을 크게 맞이하는 날)과, 음력 10월 3일에 천제를 봉행하였습니다. 이 천제문화가 부여에서는 영고迎鼓, 동예에서는 무천舞天, 고구려에서는 동맹東盟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고려 때 국가 최고 의식인 팔관회와 연등회도 천제문화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러한 천제문화는 근세조선 초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조선 초에 이르러 명나라가 천자국을 자처하며 조선 왕에게 천제를 올리지 못하게 하자, 조선의 천제는 기우제 또는 초제醮祭(하늘의 별을 향해 올리는 제사)로 격이 낮아졌습니다.

 

이처럼 수백 년 동안 사라졌던 천제문화가 부활한 것은 1897년, 고종 황제 때였습니다. 고종 황제는 원구단圓丘壇을 설치하고 상제님께 천제를 올려 만천하에 황제 등극을 알리며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선포하였습니다. 고종 황제는 천자국의 위상을 되찾으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일제는 하늘과 소통한 고귀한 제천문화가 남아있던 원구단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호텔(현 웨스턴조선호텔)을 지어 고귀한 정신문화를 말살하였습니다. 지금은 상제님의 위패를 모시는 황궁우만 초라하게 남았습니다.

 

천자天子는 우주를 주재하는 상제님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입니다. 천자는 상제님께 제를 올리는 제사장으로 상제님의 가르침을 받아 내려 백성을 보살피고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우리나라는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상제님의 뜻에 따라 나라를 통치한 천자국天子國이었습니다. 천자의 맥은 환국의 1세 환인천제 이후 대대로 한민족의 통치자들에게 이어졌습니다.

중국은 우리나라에게 문화를 전수 받은 제후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 콤플렉스를 극복해 보려고 진시황 이후 스스로 황제라 칭하며 천자국을 흉내 내었습니다. 중국이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천자국이라 우기기 위한 역사조작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뿌리 역사 시대를 보여주는 홍산문화에서 동이족이 천자문화의 주인이었음이 이미 밝혀졌습니다.

천자는 신령스러운 영물인 용과 봉황으로 상징됩니다. 용은 천지 물의 조화를 다스리고 봉황은 불의 조화를 다스립니다. 중국은 자신들이 용봉문화의 주인임을 자처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자랑하는 ‘중화제일용中華第一龍’ 이전의 용봉 유물이 홍산 유적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될 중요한 역사의 진실이 있습니다. 신교의 신앙관은 우주의 주재자이신 상제님을 중심으로 하는 절대자(유일신) 신앙과, 천지간에 가득 찬 신명들을 함께 섬기는 다신 숭배 사상이 조화된 일원적 다신관一元的多神觀쬃이라는 점입니다. 모든 개별적 신들과 인간, 만물까지도 신성은 동일한 하나(삼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안에서 각개 신들이 존중됩니다. ‘유일신과 주재신관’이 조화·통일된 신교는 한마디로 조화와 상생의 평화주의 신관인 것입니다.

 

 

신교의 두 가지 DNA

 

인류는 상제님을 모시며 하늘과 소통한 신교문화를 생활 속에서도 그대로 펼쳤습니다. 그 대표적인 표현 방식이 삼신(3)과 칠성(7) 문화입니다. 삼신과 칠성 문화는 하늘의 유전자를 그대로 닮아 하늘의 자녀로 살아가려는 인류의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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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문화

 

우주와 자연을 구성하는 단위는 전부 3으로 되어 있습니다. 3은 만물의 변화를 일으켜 전체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수입니다. 삼수는 양(1)과 음(2)이 결합하여 만물이 서로 화생化生하는 새로운 탄생을 상징합니다.우주를 구성하는 삼재三才는 하늘, 땅, 인간이 3수이고, 물질의 기본인 원자를 구성하는 요소도 양성자, 중성자, 전자 셋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빛과 색깔을 이루는 기본도 삼원색입니다. 우리 몸도 머리, 몸통, 팔다리 셋으로 되어 있고 팔이나 손이 움직이려 해도 세 마디가 되어야 가능합니다.

 

약 2,500년 전, 서양 과학문명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타고라스Pythagoras도 “3은 우주의 중심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3수 문화는 우주만물이 삼신의 원리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해하는 코드가 됩니다.

 

신교의 삼신사상은 9천 년 한민족사에서 국가를 경영하는 제도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배달시대의 풍백, 우사, 운사 삼백제도, 고조선시대에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린 삼한관경제, 조선시대 삼정승 제도가 모두 삼신사상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삼신사상은 한민족 생활문화 곳곳에 깃들어 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는 자연스럽게 3수를 좋아하였습니다. 3수로 구성된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이고, 여러 사람이 자주하는 게임인 3.6.9 게임도 3수와 연결됩니다. 음양의 이치로 끊임없이 순환하는 태극을 삼태극으로 그리기도 하고 아이를 점지하는 삼신할머니에도 3이 들어갑니다. 「천부경」의 기본은 3수, 태양의 수호신 삼족오 다리도 3개, 아리랑도 3박자입니다. 이렇게 숫자 3과 얽힌 우리 문화는 매우 많습니다.

각 종교의 가르침에도 모두 삼신문화가 있습니다. 기독교에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가 있습니다. 유교에는 무극, 태극, 황극이라는 삼극사상이 있습니다. 불교에는 법신불, 보신불, 화신불이라는 삼불사상이 있습니다. 도교에는 옥청, 상청, 태청이라는 삼청사상이 있습니다. 힌두교에도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라는 삼주신이 있습니다.

 

왜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생겨난 종교의 가르침이 하나같이 삼수 원리로 되어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환국 시절부터 내려온 삼신의 가르침을 뿌리로 해서 생겨난 줄기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시대와 장소는 다를지언정 각 종교 교리의 핵심에는 ‘삼신’의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칠성문화

 

신교문화에서는 하느님을 삼신상제님으로만 모시지 않고 칠성님으로도 모셨습니다.

 

칠성이란 밤하늘을 수놓은 많은 별 가운데 북녘 하늘에 있는 북두칠성을 말합니다. 칠성은 우주를 통치하시는 삼신상제님이 계시는 별입니다. 동방 한민족은 약 만 년 전부터 이것을 알았습니다.

칠성에 계신 삼신상제님께서는 인간의 무병장수와 생사화복, 영원불멸, 도통道通과 깨달음을 주관하십니다. 예로부터 우리 할머니들이 정화수를 떠놓고 자손의 건강과 행복을 기도하고, 고인돌에 칠성을 그리고, 죽은 사람이 들어가는 관 바닥에 칠성판七星板을 깐 것은 모두 칠성문화입니다. 대표적 민속놀이인 윷놀이에서도 칠성문화를 볼 수 있습니다.

 

배달의 치우 천황 때 국사國師를 지낸 자부선사紫府仙師는 윷놀이를 만든 분입니다. 윷놀이는 북두칠성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본떴다고 합니다.

한민족 고유의 상투도 북두칠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상투란 한자어로 ‘상두上斗’이고, ‘두’는 하늘의 북두칠성을 뜻합니다. 인간이 머리 위에 상투를 틀어 동곳을 꽂은 것은 ‘나에게 사람의 몸을 내려 주신 조화주 상제님과 한마음으로 살겠다’는 약속입니다. 상투를 틀어서 칠성에 계신 광명의 주인인 상제님과 늘 삶의 주파수를 맞추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상투를 트는 것은 결혼을 하여 어른이 된 표시라 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상투의 본래 의미는 이처럼 상제님과 소통한 생활 속의 신교문화입니다.

상투는 지구촌 곳곳으로 뻗어 나갔습니다. 동아시아 남방의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등에는 특히 상투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석가모니 부처도 상투를 틀었습니다. 인도에서 불도를 닦은 사람은 모두 상투를 틀었습니다. 2천 년 이전 제사장들이 깔때기 모양의 긴 모자를 쓴 것을 지구촌 전역에서 볼 수 있습니다. 모두 머리를 틀어 올린 뾰족한 상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류는 신교를 생활화하며 상제님의 자녀로 살려 했습니다. 요즘 젊은 여성들 사이에 상투처럼 뒷머리를 틀어 묶는 것이 다시 유행하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서양으로 건너간 삼신·칠성 문화

 

서양 문명은 여러 측면에서 동양 문명과 대조되지만 그 근본은 동방의 삼신·칠성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환국 문화를 전수받은 수메르인은 지금의 이라크 남부로 가서 20여 곳에 도시국가를 세웠습니다. 4,300년 전 사르곤 왕은 수메르 초기 왕조의 혼란을 끝내고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통일하여 아카드 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수메르 유물에 등장하는 사르곤 왕이 들고 있는 과일나무의 중심 줄기가 세 개이고 열매도 세 개입니다. 그리고 왕 앞에 있는 생명나무도 본줄기는 세 개씩이고 열매도 세 개씩 매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동방 환국의 3수 문화가 흘러들어간 것입니다. 수메르 문명의 맥을 이은 기독교 『구약성서』에서는 천지창조가 7일 만에 이루어졌다고 하고, ‘일곱 개의 금 촛대’, ‘하나님의 일곱 성령’ 등 곳곳에 7수가 등장합니다.

 

인디언의 삼신·칠성 문화

 

삼신·칠성 문화는 저 멀리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에도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수레* 풍습입니다. 인디언은 옥수수나 과일로 만든 발효주 치차를 마시기 전에 손으로 세 번 찍어 대지에 뿌립니다. 중남미 인디언이 밥을 먹기 전에 음식을 손으로 떼어서 세 번 던지는 풍습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남긴 기록에도 나와 있습니다.

이런 문화는 북미 인디언 풍속에도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인디언들은 윷을 신의 뜻을 묻는 종교의식에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윷놀이로 농사의 풍흉을 점치던 우리 농가의 풍습과 흡사합니다. 이처럼 9천 년 전 환국 이래 삼신상제님을 받들어온 삼신·칠성 문화의 자취를 지구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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