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와 증산도

신교에서 나간 유교

유교가 성립된 배경에서 우리는 신교의 핵심인 삼신상제 문화의 면모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본래 공자는 자신의 학문에 대해 ‘나는 전해진 것을 기술하였을 뿐 창작하지 않았다(述而不作)’고 했습니다. 인문人文의 큰 틀은 하늘의 질서에 근본을 둔 것으로, 공자는 가까운 시대의 문화를 통해 아주 오랜 옛 문화를 상고할 수 있으며, 그 큰 줄거리를 알면 미래도 알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그는 그 출발점을 당시까지 사료가 남아 있던 요순시대로 잡고 요순문화의 실체를 최대한 드러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요임금과 순임금은 동방의 배달족 출신으로 신교문화를 계승한 주인공들입니다. 때문에 그 문화의 골간에는 ‘상제의식’이 무르녹아 있었다. 훗날 공자는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차라리 뗏목 타고 바다 건너 구이九夷에서 살련다(子欲居九夷)’고 하며 동방의 군자문화, 상제문화를 그리워하기도 했습니다. 

 
공자가 그 시대까지의 민요와 역사 기록을 모아 엮은 유교의 주요 경전인 『시경』이나 『서경』 등에는 두렵고도 공경스러운 상제님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서경』은 ‘항상 덕을 잘 닦아 상제님의 천명을 보존해야 한다[存命]’고 가르쳤습니다.  

 


본래 원시유교에서 섬긴 ‘하늘’은 인간과 만물에게 직접 천명을 내리는 인격적인 하늘(상제천)로서 만물을 주재하는 ‘주재천主宰天’, ‘인격천’이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상제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천명을 내리며, 인간과 신들의 상벌을 주관하시면서 감정과 의지쬃를 드러내시는 ‘인격신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신교의 영향으로 그 때까지 널리 퍼져 있던 보편 사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자는 이후 『논어』에서 하늘[天]을 인격적 상제천보다는 자연천과 도덕천, 그리고 운명천의 개념으로 더 많이 언급하고 사후死後와 귀신의 문제는 언급을 꺼렸습니다. 또한 한 무제 때에 이르러 유학자 동중서董仲舒(BCE 170?~BCE 120?)가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에 나오는 “도지대원道之大原이 출호삼신出乎三神”이라는 신교의 가르침을 “도지대원道之大原이 출어천出於天”이라고 바꾸어 버림으로써 유교의 천天이 본래의 인격적인 상제천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더욱 멀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인격 주신인 상제님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지기 시작하였으며,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차 삼신상제님에 대한 신앙은 사라져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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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공자로 불리는 주자朱子(1130~1200)는 당시 성행하는 도교와 불교에 대항하여 원시유학의 부족한 이론체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유교의 주요 경전들을 정리, 주석을 달고 ‘우주의 시원이자 주재는 곧 태극(理)’이라는 등의 형이상학적인 논리를 세웠습니다. 그는 ‘우주 이법의 주재자로서 상제님의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았으나 ‘그것은 학자가 다 말할 수 있는 경계가 아니며, 언어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세계’라 하며 상세한 언급을 회피했습니다. 주자의 이러한 태도는 유교의 ‘천’을 상제천(인격천)에서 의리천義理天으로 전환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후 성리학은 사변적 이론에만 치우쳐 유교의‘인간적이고 정감적인 상제의식’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학자들에게 상제신앙[上帝天]의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을 천거했던 서애 류성룡은 이순신 장군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주었습니다.

깊은 밤 어둠 속에 상제님께서 내게 임하시네. 방안 깊숙이 홀로 있는 곳에도 신명이 살피고 계신다. … 삼가하고 두려워하여 상제님의 법칙대로 따를지어다.

또 박세당(1629~1703)은 도덕적 의지가 있는 인격적인 하늘을 참되게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예송 논쟁을 이끌었던 윤휴(1617~1680)는 경전 속에서 고대의 상제신앙을 찾아내어 하늘을 두려워하고 섬기는 수양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윤휴의 사상은 훗날 다산사상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실학의 집대성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는 고대 유교문화에서 섬겨온 ‘하늘의 주재자이신 상제님 문화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산은 젊어서 한때 서적을 읽고 천주교에 심취하여 전도까지 한 일이 있었으나, 조상을 우상이라 여기고 신주를 불태우는 행태에 분노하여 신앙을 버렸습니다. 

 
그 후 그는 유교의 본질이 상제신앙에 있음을 깨닫고 주요 경전 속에 드러난 상제사상을 정리하여 방대한 주석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성리학의 관념적인 천天 개념을 비판하면서 상제님을 인격적인 존재로 말하였다. 다산 철학의 출발점이자 근간은 한마디로 동방의 인격 주신의 상제천, 즉 상제님의 천명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상제님이란 누구신가?

 

이는 천지신인天地神人 밖에서 그것들을 조화하고 재제안양宰制安養하시는 분이다.

상제를 하늘이라 이르는 것은 마치 국왕을 ‘나라’라 하는 것과 같다. 저 푸르고 형체를 갖춘 하늘을 가리켜 상제라 하는 것은 아니다.
일음일양으로 운동하는 위에 분명히 이를 주재하는 조화의 근본(상제님)이 있다.
껍질뿐인 태극과 리로써 천지만물의 ‘주재 근본’을 삼는다면 천지간의 일들이 다스려질 수 있겠는가.

다산은 성리학자들이 하늘을 감정도 형체도 없는 ‘도, 태극, 리理’ 등 극히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이해하는 것을 비판하고, 그러한 태도는 날마다 온 인류의 곁에 계시며 굽어보시는 상제님에 대해 삼가고 두려워하는 감정을 사라지게 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산의 견해는 조선 후기, 주자학 일변도의 학풍 속에서 이단시되었으며 이후 상제문화는 안타깝게도 또다시 어둠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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