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와 증산도

유교에 관심 가지다 증산도를 하다

유교사상을 하다가 만난 증산도 사례

 

<사례1>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만난 소중한 참진리


인생을 살다보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다고 하는데 저에게는 10여 년 동안 개인 사업을 해오면서 가파른  상승곡선은 아니지만 조금 씩 조금 씩 한 계단 한 계단 욕심 없이 사업을 꾸려왔습니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번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부럽지 않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2003년 가을부터는 사업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습니다. 나아지겠지, 나아지겠지, 나아지겠지 하던 사업이 자꾸만 뒷걸음질 칠 뿐이었죠. 2004년 애기엄마에게 푸념도 많이 했죠. 별말이 없던 집사람도 저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그때 철학관이 눈에 보이고, 점집이 눈에 보이더군요. 아는 사람을 통해 어느 철학관을 소개 받게 되었습니다.저에게 받는 스트레스를 속 시원히 이야기 할 수 있었죠. 나중에 알았지만 그분은 통일교를 믿는 선생이었는데 저하고 이야기 할 때는 전혀 통일교 내색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지난 후에 통일교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의 어느 행사에 참석해보았습니다. 행사에 참석해보니 “아 저건 내가 찾는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는 철학관에 발길을 끊었죠.


저는 산을 좋아해서 전국의 유명한 산은 다 다녀보았습니다. 산마다 유명한 사찰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부처님 앞에 절도 많이 해보았고, 절을 하면서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우리의 민족성과 정통성을 많이 좋아합니다.

 

우리의 민족이 자연을 숭배하는 사상이 유교 사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생각이 증산도에 오면서 완전히 깨졌습니다. 우리민족의 정통 종교가 유교 사상이 아닌 신교사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004년 가을쯤인가 인터넷을 검색하다 유교사상이라는 글자를 쳤죠. 유교사상에 관하여 한 페이지 정도만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다 읽어본 후 밑에 칸에 깜빡이는 광고 한토막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개벽이라는 단어였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검색과 이것이 개벽이다 등 관련서적을 사보면서 그때 저는 증산도라는 것을 알았고  당리동 사하구청 앞에 증산도라는 간판을 많이 보고 다녔습니다. 아 저곳도 “도”라는 것을 공부하는 데로구나 라고만 생각했습니다.그러나 이제 증산도를 알고 그 간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가보고 싶었죠. 2005년 봄에 그곳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날이 무슨 행사였는지 많은 사람이 붐볐습니다. 젊은 학생들이 많고 차분히 대화할 수 있는 날이 아니어 다시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인터넷 검색을 통해 증산도를 알아가며 관련내용을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쁜 사업으로 인해 그 이후로 1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다 궁금한 것이 있어 올 2월경에 서점에 가서 이야기 도전, 개벽실제상황이라는 책을 구입해 보았습니다. 3월경에 증산도 00도장을 다시 방문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민족종교 라는 것에 호감이 갔었고 역사 바로 알기에서 충격적이었습니다. 내가 학교에서 배워온 역사가 잘못되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리하여 이곳이 참 하느님진리임을 알고 3월말 경에 입문을 하였습니다. 이제 상제님 신앙과 입도를 결심하니 감개무량하여 참으로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례 2>

 

진보적이며 진취적이며 보편타당한 진리가 도전 속에  

제가 12세 되던 해에 아버님의 부고를 맞으며 왜 난 태어났는가? 왜 사람은 죽는가? 단지 숙명인 것인가? 나는 왜 배우고 있으며 남들과 다른 삶을 사는 것 인가? 왜 난 이 나이에 이런 고민을 할까? 왜 어려운 책들과 어려운 사유들을 풀어가면서 사는 것일까? - 이런 무수한 질문들을 던지며 노장자로 대표되는 도교도서들과 공자를 위시한 무수한 유교도서들을 보면서 동양적 철학관을 쌓아가면서 살아왔습니다.

 

6세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뵌 80세가 넘으신 친할머니를 뵙고 느낀 점은 기독교인들(백부댁이 기독교)은 정말 살아있는 부모님도 공경하지 않는 것 인가? 돌아가시면 제사도 안 지낼 텐데 하는 걱정과 이 사람들이 과연 동방예의지국의 백성들이란 말인가? 이 나라에 예는 실종된 것인가? 란 질문과 함께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제례를 악마숭배정도로 여기는데 동양의 예법에 익숙한 저로선 충격이었습니다. 서양의 물질문명 속에 커온 기독교는 역시 그들의 사관을 반영하는 것 같았습니다. 뭔가 굉장히 부자연스럽고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서양의 신명을 박대하고 두려워하는 문화를 이때 상당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를 모르고 효를 모르는 사람이 어찌 충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어린 사람들이 治天下하는 현실이 너무 불쌍하다고 까지 느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양이 세상의 중심을 달리고 있지요.

어려서부터 종교에 관심이 많아서 교회부터 절까지 많이 돌아다녀 보았습니다만 재가 무수히 던진 질문들의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이때 상당히 느끼게 된 것이 이들은 자기 손으로 뭔가 변하려 하지 않고 썩은 웅덩이 마냥 고여있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무한한 회전을 하는 회전구처럼 돌고 도는 것이며 우주의 이치는 무한수 분열과 무한수 통일에 있다고 그리도 읽어온 동양철학의 체계에서 이들 종교는 절대적으로 논리적 불합치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신에게 돈을 바치면 구원받을 수 있다 라는 논리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신에게 용서를 구하면 죽은 사람이 살아나기라도 한다는 것인지 저의 정신세계로는 이해 할 길이 없어 웃기만 했습니다. 그 당시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는 이들이 변하지 않는 이상 절대 강림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과 다수의 불경에 있는 내용들을 그들은 다르게 전하고 있었으며 내가 보는 관점이 그들과는 상당히 달랐던 것인지 같은 책을 봐도 왜 그렇게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존 종교들에 염증을 느끼면서 살아가던 중 재 선령신들께서 급하셨던 것인지 인생공부를 좀 시켜 주실려고 하신 것인지 대순진리회를 먼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보여준 많은 증거물 중에 재가 아직도 생각나는 것은 [그날이 오면]이라는 소설책입니다.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의통이란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재 이 종교를 나오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바로 음양합발이라는 상제님의 말씀에 부합하지 못하는 종통이었습니다. 뭔가 꼬투리를 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대순진리회를 나와서 마지막 선천세상에 남은 내 욕구나 해원시키자는 마음으로 오디오파일처럼 월급을 받는 대부분의 돈을 오디오에 투자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인생 공부 혹독히 하면서 살아가던 중 000 부근에서 중국집을 하시는 첫째매형의 지인의 가게로 오게 되어서 일하던 도중 다시 서울로 갔다가 6개월 정도 후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는데 1개월정도 되던 어느 날 저의 인도자분이 000성도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날로 [개벽을 대비하라]라는 책을 빌려오게 되어서 증산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동안은 보지 못하다가 2일 만에 완독을 하고 그 책에서 내가 이 땅에 이 순간에 오게 된 사명을 크게 느껴 다시 000성도님에게 연락하여 [이것이 개벽이다]라는 책을 빌려오게 되어서 입문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입문 후에 크게 느낀 점은 바로 모든 진보적이며 진취적이며 보편타당한 진리가 도전 속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증산도인의 자부심일 뿐 아니라 선천문명의 결정체! 그게 바로 도전의 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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