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와 증산도

원불교와 증산도

지난 100여 년 동안 인류의 새 문화를 개벽해 주신 증산 상제님의 대도 진리를 받아들여 발전한 ‘원불교’가 증산도를 어떻게 왜곡했는지 간단히 알아보겠다. 

 

 

원불교는 증산도와 무엇이 다른가?

 

원불교는 증산도의 진리를 기성불교에 접붙여, 진리의 뿌리와 도통의 근원을 왜곡하고 있다.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朴重彬,1891.5.5-1943. 6.1)은, 상제님을 직접 모시고 수종들었던 박공우(朴公又)성도와 6촌간으로 상제님의 성적(聖蹟)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며, 그의 고향인 전남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는 일찍부터 보천교의 포교가 성하였던 곳으로 그는 태모님의 초기 교단시대부터 상제님을 신앙하였다. 그리고 소태산 박중빈과 함께 원불교의 2대 교주인 정산(鼎山) '송규(宋奎,1900-1962) 또한 초기 교단 시대 상제님의 신앙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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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의 창업자 소태산 박중빈과 2대 교주 정산 송규, 3대 김대산은 천지의 조화주 아버지 상제님이 금산사 미륵불로 오시고, 떠나실 때도 그곳으로 해서 떠나셨다는 것을 너무 잘 았았다. 그래서 몇 년씩 금산사를 찾아가 미륵부처님을 참배했다고 한다.

 

태모님이 원평 주막에서 5일 동안 머무실 때 송찬오가 상제님의 목침을 슬쩍 빼돌렸다. 그리고 10년 뒤에 '묘한 인연으로 제가 들어왔다'고 하면서 목침을 불교 교조 박중빈에게 갖다 바쳤다. 송찬오가 엿을 떼다가 원평에서 팔러 다녔는데 바로 그 옆집에 당숙인 박공우 성도가 살았다. 송찬오는 박공우 성도에게 개벽 소식을 전수 받고 '상제님이 하나님이시다, 미륵불이다'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소태산 박중빈은 원평에서 살았는데 바로 이웃집에 친족 박공우 성도가 살았다. 그래서 박공우 성도로부터 상제님의 천지공사, 상제님께서 미륵불로 오신 이야기 등을 숱하게 전해 들었다. 그래서 후에 상제님 진리를 따 자기 호를 짓게 된다. 금산사 금미륵불 아래에 솥이 있는데 밑 없는 솥을 걸고 미륵불을 세우라는 미륵님을 명을 받고 진표 대성사가 만든 것이다. 바로 그걸 때서 자신의 호를 소태라고 정했다. '솥에 산'을 뜻하는 소태산이 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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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교주 송규라는 분도 호가 솥 정자를 써서 정산이다. 대순진리회의 원 뿌리, 태극도의 조철제도 호가 정산이다. 솥 정자를 쓴 것이다. 원불교의 1대, 2대 교주가 전부 상제님의 존호와 금산사 미륵불의 솥 기운에서 호를 따간것이다. 김대산이라는 분은 상제님 9년 천지공사의 중대한 마무리 공사를 보신 성지들을 사 그곳에 집을 짓고 자신의 병을 치유하며 수년 동안 생활을 했다. 상제님께서 공사 보신 성지를 원불교 교단에서 구입해 관리를 하고 있는데 이걸 통해서도 원불교의 원뿌리가 미륵불로 오신 상제님 도법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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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박중빈은 고부 객망리의 상제님 고향길을 자주 다니면서 성부, 성모님을 잘 모셔드리고 특히 상제님의 따님, 강이순에게 잘해 주었다. 평소 상제님이 따님에게 '너에게 가장 잘해 주는 사람이 찾아오리니 그 사람에게 이것을 전해 줘라' 하시며 네 자를 써 주셨는데 앞의 두 글자가 이리이다. 강이순이 그걸 박중빈에게 전해 줘서 원불교 본부가 이리(현 익산)에 있다. 이리는 나중에 익산이 되는데 익산에서 원불교가 뿌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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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정산 송규는 소년시절 도문에 들게 해달라고 정읍 대흥리 태모님 교단을 찾아갔다. 그러면서 돌아가지 않으니까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왔다고 한다. 태모님이 '부디 자네 아들 좀 데려가라' 하셨다 한다. 태모님이 자신을 안 받아주시니 송규는 고부 객망리로 갔는데 거기서 만난 강이순이 상제님 안방 벽장 위에서 책 한권을 꺼내 준다. 그것이 선가의 신선되는 수행법, 영보국정정지법이다. 이 책을 소태산 박중빈에게 바쳐서 원불교 수행 경전인 수심전경이 된 것이다.  수심전경은 원불교의 마음 닦는 수도 경전으로서 원불교가 종교 교단으로 성립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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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에서 내세우고 있는 기본 교리의 모든 핵심은 소태산과 정산 송규가 증산 상제님 신앙의 과정에서 체험한 진리 내용이다.

 

즉 <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라든지 <지은보은(知恩報恩)>, 또는 <영육쌍전(靈肉雙全)> 등등은 모두 증산도의 <천지개벽 정신과 보은 이념>, 그리고 <신인합발(神人合發)>의이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아울러 원불교에서 불교 법신불의 상징으로내세우고 있는 일원상(一圓相)은 무극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상제님의 무극대도 정신을 이어받고 있는 대표적인 것이다.

 

원불교의 개교(開敎) 표어의 탄생에 대한 이런일화가 있다. 박공우 성도 가족의 증언에 의하면, 하루는 원평에서 엿장수를 하던 박중빈이 박공우 성도의 집에 들렸다가 상제님의 개벽말씀을 전해 듣고 나오면서 "너무 배가 고프니 우선 물질이나 개벽하자."고 했는데, 이 말이 후에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그 유명한 원불교의 개교표어가 된 것이다.

 

또한 상제님을 신앙하던 박중빈이 후에 상제님 진리를 불교에 접목 시켜 교명을 원불교라고 한 자체가 , 상제님이 미륵부처님으로 이 지상에 오신 것을 확신한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원불교라는 교명을 사용하기 이전 이리에서 '불법연구회'라는간판을 붙인 때(1919)에도 사실 신앙의 근본 속 내용은 상제님을 신봉했다는 사실이다.


더욱 주지해야 할 것은 소태산(소태는 솥을 의미)과 그의 제자 정산(鼎山,솥정)이 모두 성숙과 결실의 도(道)를 상징하는 증산상제님의 존호를 모방하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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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불출암 (현재 화엄사)에서 남서쪽으로 8km가면 마동이라는 데가 있다. 그곳이 바로 원불교가 처음 창시되기 시작한 곳이다. 그곳이 화해리 인데 원불교 교당 앞에 보면 소태산 박중빈과 정산 송규, 두 사람이 만난 사실을 적은 비석이 있다. 대순진리회 원 뿌리인 태극도를 세운 조철제도 여기에서 상제님의 여동생을 만났다. 그런데 마동에는 상제님 천지개벽 공사의 비밀이 있다. 바로 말도수 이다. 또 마동은 상제님이 20대 때 서당을 여시고 학동을 가르친 곳이다. 그때 상제님이 오시면 마을이 갑자기 환해졌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내려오는데 그런 내용이 도전에 나와 있다. 이 마동 전설, 마동의 역사 이야기, 마동의 도운사가 얼마나 신성한가? 상제님은 미륵불 말굴레 도수로 오셨다. 그래서 원불교는 상제님이 계시던 마동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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