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와 증산도

원불교를 하다 만난 증산도

원불교를 하다 만난 증산도 사례

 

30년 원불교 신앙을 통해 원불교의 뿌리가 증산도임을 깨닫았습니다.

 

 

원불교 50년의 결론, 증산도 


최00(여, 82) / 익산신동도장 / 151년 음력 4월 입도

딸과 신앙 문제로 갈등하고

 

저는 원불교 신앙을 50년 동안 해 왔습니다. 2017년 80세로 작고하신 남편과 원광대학교 학창 시절에 만나서 결혼한 후 원불교에 입교하였습니다. 남편은 원광대학교 법경대학, 법정대학, 법과대학 학장 및 대학원장 등을 역임하셨고, 대학교 재학 당시 대학 총장님을 연원淵源으로 입교해서 북일 교당 교도 회장도 꽤 오랜 시간 맡았습니다. 남편은 원불교 신앙 예법과 다르게, 유교적 생활관을 가지고 계셨던 분이라 돌아가신 형님 대신 부모님 제사를 극진히 잘 모셨습니다. 저 역시 원불교 신앙을 깊이 있게 하지는 못했습니다만 감사 생활을 배웠고 저희 가족 모두 원불교 테두리 안에서 많은 은혜 속에 살아왔습니다.

저는 슬하에 딸, 아들 남매를 두었습니다. 아들딸 모두 원광대학교를 나왔고 딸은 역시 대학 동창인 사위와 결혼을 해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증산도를 하겠다고 뜻밖의 선언을 하였습니다. 한 가족에 여러 종교가 있는 게 석연치 않고, 시집을 갔으니 차라리 시댁 종교인 기독교를 하라고 아무리 타일러도 좀처럼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신앙 문제로 저와 딸 사이에 갈등이 심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증산도 신앙을 하기 전까진 엄마 말을 한 번도 거역해 본 적 없는 착한 딸이었기에 그로 인해 제 마음고생은 심했고 딸 역시 마음고생이 심했을 겁니다.

2006년 딸이 도장에서 사돈어른 49재 천도식을 올리고, 몇 해 전 저희 남편 49재 천도식을 올릴 때도 도장에 방문하였고, 이후로 대전 태을궁 행사가 있을 때면 가끔씩 참여도 했습니다.

 

상생방송과 남편의 가호가 인도한 신앙의 길

 

저와 딸은 어느 모녀 이상으로 인연이 깊고, 제게는 효녀인 딸이 열심히 증산도를 신앙하면서 엄마도 상생방송을 보라고 권하기에 즐겨 보게 되었습니다. 내용이 너무 좋고 건전한 방송이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도전 말씀이 나오는 영상은 어쩌면 그리 아름다운 풍경인지 늘 감탄하게 됩니다.

살아생전 저희 남편은 “우리는 우리대로 원불교 하고 딸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증산도 하게 놔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딸뿐 아니라 손녀까지 열심히 신앙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같은 신앙을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결혼하면서 후손을 위하고 가문을 일으키자고 한마음으로 한평생을 살아왔기에 저는 지금도 남편에게 감사하고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말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이를 먹고 보니 지난날의 고생이 헛되지 않고 고생을 견디고 나니 지혜가 열리고 복이 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런 깨달음을 갖게 되는 이 나이까지 살게 되어 너무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투병 생활에 지성으로 간병해 온 보답을 해 주시는 것인지, 저는 남편이 천상에서 저희 가족을 잘 돌봐 주고 계시고 저에게 고생했으니 남은 여생 잘 살다 오라고 보살펴 주시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원불교를 정리하고 나온 후 지난 4월부터 딸과 함께 상생방송 아침 수행에 매일같이 참여하고 조금씩 진리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딸이 원불교 뿌리가 증산도라고 하면서 이제 종갓집(큰집)에 잘 왔다고 합니다. 제 딸은 “아버지도 천상에서 증산도 신앙을 잘하고 계실 겁니다.”라고 말해 주었고 저 또한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증산도에 입도할 수 있도록 남편이 하늘나라에서 도와준다고 믿고 싶습니다.

제 생일인 음력 4월 4일(양력 5월 15일)에 입도하면 후천 생일이 선천 생일과 같아진다 하여 좋은 날에 입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 진리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제 딸과 손녀가 열심히 신앙하는 증산도에 참여해 남은 생애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봉사하려고 합니다. 보은. ◎



천ㅇㅇ(24세) / 서울 목동도장 / 도기 133년 6월 22일 입문

지금 이 순간이 있기까지 많은 공을 들이신 성도님께 감사 드립니다.
증산도의 진리를 알아가고, 우주의 일년을 알아가고…
지금까지 어떤 철학, 학문, 종교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들…
그것을 어렴풋이 알면서 나의 또다른 생의 시작은 예고 되었습니다. 참 가슴 벅찼습니다…



2003년 6월 21일 작은 오빠와 외삼촌께 증산도에 대해 들었습니다. 오빠가 또 다시 정상궤도에서 벗어나고 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빠는 4년전 원불교에 출가를 해 저뿐만 아니라 저희 가족 모두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출가하더니 이제는 듣도 보도 못한 증산도라니... 또 다시 먹구름이 드리워질 우리 집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오빠가 너무 미웠습니다.

그러나 제가 마침내 증산도에 입문을 하고 증산도에 대해 알아가면서 오빠가 올바른 결정을 하였고, 참진리를 알게 해준 오빠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바닷가 완도에서 출생한 저는 어려서부터 제사를 지내고, 샘에도 공을 들이시고, 무슨 때가 되면 바다에 가서도 공을 들이시는 어머님을 보며 자랐습니다. 할머님의 말씀을 들으니 우리 형제들을 낳았을 때에도 어머님은 삼신 할머니께 공을 들이셨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어머님께서 새벽이면 무언가를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안 것은 작은오빠의 돌연한 출가 때 어머님께서 우시며 "이제 나도 교회를 나가고 그것을 고만해야겠다" 하시며, 당신이 그러시니 자식들이 다 쓸데없는 생각만 하나보다고 한탄을 하셨던 때였습니다. 그때 저는 뚜렷한 신앙이 없었기에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제실로 가시는 어머니, 밥은 잘 드시는지…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사 조상님께 공을 드리셨겠죠. 그리고 산으로도 공을 들이시러 자주 가셨습니다. 아버님은 그런 어머님을 퍽 너그러이 이해해 주셨죠.

증산도에 입문하여 생각해 보니 그 공덕이 얼마나 큰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증조모께서는 참 인자하셨고 스님들이 항상 우리 동네에 오시면 우리 집에는 꼭 들렸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당시 동네에서는 굿을 많이 했었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 집이 대표주자였습니다.

도전 말씀에 쓸 만한 자손하나 타내려고 조상신들께서 60년을 공을 들이신다던데. 앞으로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을 모시고 신앙해 가면서, 많은 참회를 하면서 겁기를 벗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득히 먼길
지구의 일년이 그렇듯…
그리고 일심의 경지를 말씀하신 참 하느님 증산 상제님…

작은 오빠가 먼저 신앙을 하고, 이제 큰오빠와 저 그리고 언니까지 입문하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형제가 함께 하기에 다른 성도님들의 부러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만큼 더욱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힘든 과정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스스로 구도자로서, 천하사 일꾼으로서, 자력을 세워 신앙하고 일할 수 있는 참 증산도인이 되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하니 저부터 열심히 일심으로 상제님의 혼이 되고 증산도의 수호신이 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기에 두가지 일을 해야하니 더욱 성경신을 바쳐야 함을 절감합니다.

그리고 상제님의 진리를 알아가며 느꼈던 이 벅찬 마음과 각오를 잊지 않고, 저의 가족, 친구를 가을개벽세상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일심으로 열심히 공부해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환단고기』를 상고사의 정사로 인정하는 것에 전율을 느끼다


이00(남, 54) / 대구대명도장 / 148년 음력 8월 입도

고성 이씨의 자손으로


유년기를 물 좋고 인심 좋은 청도 농촌에서 천진난만하고 개구장이처럼 낙천적으로 보냈습니다.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곧바로 해군에 지원 입대하여 직업군인(통신)으로 군 생활을 약 7년여 하였습니다. 당시 5년제인 방송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여 주경야독하며 저의 지적 갈구를 탐하던 중 우연히 『환단고기』를 접하고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몇 년 후 분실). 「단군세기」와 「태백일사」의 저자가 바로 저의 직계 조부이신 21대 행촌 이암 선생이었습니다. 방계이지만 행촌 조부님의 현손인 일십당 이맥 선생은 물론이거니와, 이 상고사에 대한 내용을 조선조와 일제시대 두 차례에 걸친 탄압과 어려움 속에서도 집안 내력으로 비밀리에 간직하여 근현대에 세상으로 펼쳐 내보이신 해학 이기 선생과 한암당 이유립 선조의 처절한 애국의 의지와 노력에 대단한 긍지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환단고기』에 대한 강단사학계의 어처구니없는 위서론에 고개를 떨구며 쉬쉬하며 방황했던 정신적 번민이 이미 20대 후반부터 깊었습니다. 아마 이때부터 상고사에 대한 조상님의 집안 내력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내적 갈등과 고민이 시작되었지 않은가 싶습니다.

천하만사는 선재지아


전역 후 결혼과 더불어 가장으로서의 삶을 살면서도 이 고민은 쉬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단군세기 서문」에서 행촌 조부님의 “천하만사天下萬事 선재지아야先在知我也”(천하만사는 무엇보다 먼저 나를 아는 데 있다)를 좌우명으로 삼으며 살아가던 터라, 현실에서의 삶과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내적 갈등과 고민은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말하기 어려운 혼자만의 속앓이가 되어, 이 내적 갈등의 해소책을 찾느라 철학관을 기웃거려도 보고 기공수련 단체에 참가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명리와 풍수를 직접 배우며 자신을 알고자 기를 쓰던 중 2008년 스스로 원불교에 입교하고 다시 원광디지털대학교에 입학하여 한방건강학과(주)와 동양학과(부)를 전공하며 좀 더 도약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애쓰면서 10여 년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원불교의 한계에 부딪히다


10년쯤 되어 가니 원불교의 교리와 이상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그 표방하는 진리의 실체도 나름 파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성직자들의 변화하지 않으려는 그 답답함과 역동성 없는 무미건조함으로 인해 현실과 괴리된 비논리적 설교와 비불교적 논리에 부딪혔습니다. 알고자 하는 바를 성취하기 힘들었고 점점 신앙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이유만 쌓여 가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원불교에 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초창기 시대상을 미루어 볼 때 분명 증산도와 동학과 같은 맥락으로서 표방하는 바 유사점(개벽, 사배, 보은, 상생, 제사, 천도재 등등)이 많음을 알 수 있는데, 내부에서는 어느 누구도 시대적 공간적으로 함께하며 종교관과 진리관이 앞서 있던 동학과 증산도와의 직간접적 연관성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안다 하더라도 말하길 꺼리고 있음을 눈치채게 되었습니다. 의구심은 깊어만 가고 마음은 또 다른 무엇을 찾고자, 지향하는 바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환단고기』를 정사로 인정하는 종도사님!


마음이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였기에 작년부터 육효 공부를 개인교습을 받던 중 상생방송의 인문학 강의인 <주역 강의>를 보게 되면서 이 방송이 증산도에서 운영하는 방송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방송된 프로그램들을 시청해 본 후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로 종도사님께서 『환단고기』의 상고사를 정사로서 참역사의 사실적인 내용들로 인정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까지 <북콘서트>를 통한 강의를 하신다는 점이 대종교와 단군교라든지 국학원에서 다루는 상고사와는 또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제 머리를 번개가 내려치는 듯한 영감과 내면에 휘몰아치는 뜨거움을 느꼈습니다.

그건 바로 약 5년여 전 전반부만 읽다 그대로 둔 두 번째 구입한 『환단고기』가 있었다는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급히 찾아내어 표지를 보니 아! 바로 종도사님께서 펴내신 『환단고기 역주본』이었습니다. 적어도 5년여 전에 종도사님과의 인연이 이렇게 있었음에도 또 저만치 비켜 가기만 한 이 인과를 어찌 말해야 할지 아득하기만 했습니다.

입도 수행


아무튼 10여 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작년에 퇴직하여 개인업을 하느라 세무서를 자주 들락거리다 보니, 남대구 세무서 옆 건물 5층에 위치한 증산도 간판이 자꾸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때마다 무심히 넘겼지만 한편으론 지날 때마다 점점 제 눈에 확대되어 들어오는 증산도 간판의 크기가, 인연의 교차점에 거의 다 왔음을 결코 피해 갈 수 없구나 하고 느끼게 하였습니다.

더위도 한풀 꺾인 8월 하순 어느 날 오후, 제 발걸음은 증산도 대명도장으로 향했으며, 도장 방문 후 최미숙 상임수호사님과의 2시간 남짓 가진 대화와 공감되는 말씀에 입도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박세명 담당 포감님과 함께 저녁 입도 수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수행 후에는 곧바로 잘 정리된 노트북 자료를 통해 팔관법과 육임 등 진리 수업을 깊은 배려로 전달받았습니다. 그리고 9월 20일 21일간의 입도 수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전일한 마음으로 대도를 닦자


이제 길고 긴 어두운 곳에서 헤맨 저를 비록 늦게나마 상제님의 무극대도를 오늘 만나게 해 주신 조상 선령님들께 우선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 인연으로 상제님의 천지일꾼으로서 전일한 마음으로 대도를 잘 배우고 닦아 어떤 연유로든 괴로움에 신음하는 억조창생을 건지고, 그들의 삶이 풍요로움에 이르도록 영감을 전하는 참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일꾼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울러 저를 이곳 대명도장에서 따듯이 맞이해 주신 최미숙 상임수호사님과 조영희 수석포감님, 또한 박세명 담당 포감님과 소재찬 집정님, 그리고 저를 환영해 주신 도장 도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남은 생의 삶의 가치를 조상 선령님들을 잘 모시고 상제님의 일꾼으로 거듭나는 증산도인이 되는 데 힘쓰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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