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만난증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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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만난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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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교 신앙을 한 어머니 영향으로 불교, 기독교, 천주교를 거쳐 증산도를 만나다 (이재준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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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63, 남) / 대구수성도장 / 147년 음력 10월 입도

저는 새벽마다 지극정성이셨던 어머니의 장독대 정화수 기도 덕분에 비교적 순탄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불교 학교를 나왔고 불교에 심취하여 1주일간 홀로 입산 수도도 해 보았습니다. 성당도 5년이나 다녔습니다. 여러 교회도 다녀 봤습니다. 나름대로 삶과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하며 명상을 하거나 뜻대로 안 될 때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저에겐 또 다른 종교가 있었습니다.

먼저 ‘고향교’입니다. 제 고향은 충청도 홍성이며 차령산맥의 끝자락 변두리 두메산골이었습니다. 아직 팔순 어머니가 지키고 계신 고향을 떠나온 지 벌써 4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엔 ‘고향의 돌이 되어’라는 글을 교지에 싣기도 하였습니다. 어쩌다 밤에 고향 꿈을 꾸면 다음 날 일진이 좋았습니다. ‘고향’은 나의 신앙이었고 종교였습니다.

다음은 ‘조상교’입니다. 문중의 파조 존오 할아버지는 고려 말 요승 신돈을 탄핵하려다 좌천되어 귀양지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상면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셨으나 행방을 알 수가 없습니다. 사진 한 장 외에는 흔적을 찾을 수가 없고 독립유공자 혜택도 없습니다. 그러한 상면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군인이 되었고, 파조 존오 할아버지처럼 불의에는 맞서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조상’은 나의 신앙이었고 종교였습니다.

세 번째는 ‘마누라교’입니다. 후배들에게나 어쩌다 부부 동반 모임 술자리에서 저는 마누라교 교주라며 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래야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는 마누라 말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진정성 없는 위선이었고 조선 남자의 전형을 감추기 위한 허세였습니다.

군에서 만기 전역을 한 후 역사 공부도 마무리할 겸 새 직장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사회 생활 경험이 없던 저는 지독한 꾐에 빠져 평생 한이 되는 일을 당하였습니다. 속았다는 분노는 원한으로 변했습니다. 원한은 심장에 불을 질렀고 특히 밤은 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누구를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피눈물 나는 말년을 보낼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원한을 풀기 위한 무서운 복수 방법을 고민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닥친 불행은 그 어떤 종교로도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밤새워 고민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냉엄한 현실이었습니다. 현실을 떠난 문제 해결 방법은 공허하고 헛된 망상일 뿐이었고, 망상에서 깨어나면 고통스런 현실뿐이었습니다.

답답한 심경에 인도자 태을랑 김광남 도생에게 묘책을 물었습니다. 10년 전에 『천지성공』이라는 책을 보내 온 인도자는 태을주를 소개했습니다. 태을주만 외우면 자신도 모르게 일이 해결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신기하게도 원하는 일이 잘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조상님과 신령님들이 도와준다고 하였습니다. 막연한 기대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태을주를 외워 보기 시작했습니다. 태을주를 외우는 순간은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즈음 백제 역사에 대한 특강과 연재를 준비하면서 한민족의 원류를 찾고 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찾고자 하는 내용을 발견하였는데 책을 무료로 보내 준다고 하여 요청해 보았습니다. 며칠 뒤에 양산에 있는 송성훈 포정이 보내온 책은 뜻밖에도 『한민족과 증산도』였습니다.

이게 무슨 인연인가? 인도자 김광남 도생은 조상님의 은덕과 관련 공부를 많이 한 인연 때문이라며 직접 도장에 나가 수행해 볼 것을 권유하였고 대구수성도장을 소개받았습니다. 대구수성도장의 김창현 수호사는 부끄러운 제 이야기를 경청하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증산도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팔관법을 공부하면서 수호사님을 비롯해 노윤석 포정과 김자영 포감이 정성으로 함께해 주셨습니다. 모두 고마우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9월 24일 태전에서 열린 <도전 강해 콘서트>에도 참가해 말씀을 경청하면서 태을궁의 많은 도생들과 함께 수행, 도공을 했는데 혼자서 수행할 때와는 다른 큰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종유통에서 청수 그릇에 관심을 보이자 인도자가 선물로 구매해 주었습니다. 새벽에 집안 거실에서 청수를 올리고 새벽 수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새벽 수행은 깊은 원한으로 밤잠을 설치고 뜬눈으로 지새웠던 밤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여러 주문 내용들도 나를 평온하게 해 주었습니다. 도공수행을 한 후에는 잠을 잘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가 의롭고 진실한 참도인이 될 수 있도록

전쟁과 이생에서 범한 모든 죄와 허물을 사하여 주옵시고

모든 척신과 복마의 발동으로부터 끌러 주옵시고

저의 조상을 해원시켜 주시어 선령과 후손을 새 운수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렇습니다. 막연히 은퇴 후에 도 닦겠다고 했지만 현실이 허락지 않은 상태에서 새벽 수행은 도였습니다. 이생에서 제가 닦아야 할 도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제 무지와 욕심으로 생긴 척신과 복마로부터 탈출해야 했습니다. 맨 먼저 올리는 심고문은 의롭고 진실되게 살다 가신 조상에게 면목이 없고, 후손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오늘의 제 현실을 극복해 주는 발원문이었습니다.

내 종교는 ‘조상교,’ ‘고향교,’ ‘마누라교’라고 농담같이 말하곤 했는데, 증산도는 바로 제가 입버릇처럼 말한 종교의 집합체였습니다. 종교를 뛰어넘는 현실의 도였습니다. 이제 일심으로 수행하며 도를 잘 닦아 곧 닥칠 대환란으로부터 부모형제와 가족을 구원하여야 합니다. 어머니가 새벽마다 장독대 정화수 기도를 올렸던 것처럼 새벽마다 청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엄니 마눌 아이들 웃음 건강 오래 지속시켜 주시고

백제 역사의 올바른 전도사가 되게 하여 주소서.

저의 무지와 욕심으로 생긴 원한을 끊고 새 운수의 길로 나갈 수 있도록

새벽 수행이 끊이지 않게 하여 주시고 태을주를 입에 달고 살도록 해 주소서.”

원한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평생을 괴롭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도둑 맞은 돼지를 찾는 신경수 성도에게 하신 상제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네가 전생에 남의 눈을 속여서 손해를 끼쳤으므로 이제 금세에 그 보복을 받은 것이니 분해하지도 말고 아까워하지도 말라.”

이제 잃어버린 돼지를 찾는 어리석음을 끊고 새 길로 나가야 합니다. 원시반본하여 태을주를 외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계속하다 보면 새 길의 희망도 열어 주실 것입니다. 평생 쉬지 않고 태을주를 읽어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실천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몸이 불편하여 특별한 날에만 새벽 장독대 정화수 기도를 하시는 어머니의 정성을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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