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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만나기 전 궁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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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만난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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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욕을 부린 단전호흡 수행의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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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세계인이 공감할 진리


김종우(남, 71세) / 청주흥덕도장 / 151년 음력 8월 입도
 

책에서 기운 받는 아이


저는 어릴 때부터 자연 속에서 먼산바라기처럼. 산, 들을 바라보고 하늘, 해. 달, 별을 쳐다보며 자랐습니다. 그럴 때면 항상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고, 세상이 참 신비롭게 여겨지며 왜?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에는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고운 여전도사 손을 잡고 마을의 조그마한 교회에 다녔습니다. 교회에서 성경 시험을 보았는데, 1등을 하여 칭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동전 한 푼 들고 가서 사탕 얻어먹는 재미로 성경 구절과 찬송가를 소리 높여 불렀나 봅니다. 하나님이 밥과 반찬을 주시는 줄 알았습니다.

5학년부터인가, 우리 집의 빈곤함이 피부로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땅 한 뼘 없이 아버지 박봉으로 삼시 세끼 때우기도 힘들었습니다. 6학년 때는 날마다 중학교 입시 모의고사를 보았고 학교 수업 끝나고 집에 늦게 들어와 밥 한술 먹고 책 보따리와 플래시를 들고 담임 선생님 하숙집에 가서 밤늦게까지 입시 공부를 했습니다. 그 무렵부터 ‘아! 세상 사는 것이 힘들구나’ 하고 느꼈는지, 같은 반 친구와 둘이 해인사로 출가해 도를 닦아 요술을 마음대로 부리는 도사가 되어 보자고 자주 만나 꿈을 나누었지만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의 외도로 집안이 풍비박산 나면서, 사는 것이 더 힘들어졌습니다. 학비는커녕 끼니도 잇기 힘들었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살다가 1970년대에 직장을 잡고서야 겨우 굶주림과 나물밥을 면하게 되었지만, 당시 식량 자급자족과 새마을 사업 등 일방적인 상명 하달식 조직 문화로 인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법 테두리 안에서는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라고 하니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참 고충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우리 집안에는 일찍이 문학에 뜻을 두셨던 아버지 덕택으로 역사, 문학 등 각종 서적이 많았고, 학교 도서관에도 세계 위인, 명작집이 잘 갖추어져 있어,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였던 것이 오늘날 저의 인생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저를 보고 ‘책 읽는 데서 향기가 나고 책에서 기운을 받는 아이’라고 하셨습니다.
 

과욕을 부린 단전호흡의 부작용


1980년대에 소설 『단丹』이 출간되면서 단전호흡에 관련된 책들이 부지기수로 쏟아졌습니다. 나오는 책마다 사 보고 실제로 해 보았지만, 스승도 도반도 없이 혼자 마음만 앞섰지 잘되지 않았고, 끈기 있게 하지 못하였으며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이 개최되자 직장 일은 밤낮없이 바빠지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총동원 삼매였습니다. 새벽같이 출근하면 자정이 넘거나 밤샘을 하는 날도 있어, 피곤이 쌓이면서 과로한 몸이 되다 보니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이때 다시 단전호흡을 시작했습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걸 한 번 느껴 보았지만, 욕심이 앞섰던 탓에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무리해서 상기上氣가 되어 가슴이 답답해지고, 혈압이 오르며 머리가 터질 것 같아 혼자 거리를 헤매다가 병원 응급실에 다녀와서야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 거울을 보니 눈은 충혈되고, 얼굴은 하룻밤 새에 반쪽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증세는 직장에서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피로가 쌓이는 오후가 되면 더 심해졌습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짜증이 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혈압이 오르고, 눈앞이 캄캄해져서 청심환을 입에 털어 넣고 병원을 쫓아다녔습니다.

그 후부터 손가방 속에는 항상 청심환과 혈압강하제, 안정제가 들어 있었습니다. 사람 꼴이 말이 아니었고,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한 달 병가를 내고 수승화강하는 한약을 지어 먹으면서 산과 시내를 미친 듯 돌아다니며 나물도 뜯고 고기도 잡고 하면서 모든 걸 잊고 평온을 되찾고자 애썼습니다.

단전호흡을 해서 무언가 좀 되는 듯하니 더 큰 욕심을 내고 오만해져서 자초하여 병이 된 것이었습니다. 스승의 올바른 지도 없이 이것저것 보고 과욕을 부린 것입니다.
 

신선한 충격, ‘뭐, 이런 책이 다 있지?’


한 달 뒤 직장에 복귀해서 일하다가 휴게실에 들렀는데 그곳에 있는 책장을 들여다보다가 『이것이 개벽이다』라는 책 한 권을 발견하였습니다. 평소 예언서 등 각 종교에서 많이 듣던 말이라 선뜻 손이 갔습니다. 밤새 읽어 보고서 ‘뭐, 이런 책이 다 있지?’ 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음 날 서점에 달려가 『이것이 개벽이다』 나머지 한 권과 『증산도의 진리』, 『환단고기』를 사서 읽어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거기에는 신화로만 배웠던 우리 역사가 장쾌하게 기록되어 있었고 유불선 종교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정의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신도 세계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그전에 저는 ‘강증산’이란 분의 사진과 함께 조선 말의 예언가였다고 쓰인 어느 일간지를 본 적이 있어 그저 예언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증산도에서 나온 책을 읽고서 그분이 ‘우주의 주재자 상제님이시구나’ 하고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상제님을 신앙하고 도道를 배우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 수 없었습니다. 제가 있는 경북 영주에는 증산도 도장이 없었습니다. 다만 대전에 증산도 본부가 있고 책 저자가 ‘안경전安耕田’이란 분임을 알았을 뿐입니다. 그 후 저는 다시 진리를 찾아 해인사의 장경각에서 중국 달마 스님 이래 혜능 스님과 큰 스님들의 전집 수십 권을 구입해 읽어 보았습니다. 1990년에는 영주불교대학(원)을 다니면서 각종 경전을 익히고 유명 법사와 스님들로부터 법문을 들으며 불경도 읽고 사경도 하고 화두도 틀어 보았지만 ‘깨달음’이란 것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깨달았다는 스님들은 왜 속세에 나오셔서 중생을 제도하지 않고 산사에 은둔하여 스스로 자득하고만 계실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와 우주 이법은 알려고 하지 않고, 그저 기도하고 “믿습니다.”만 외치는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역사와 수행, 우주까지 담은 진리이니


퇴직한 후, 아내와 아들이 있는 청주에 와서 머물던 어느 날 불교방송을 시청하려고 채널을 돌리다 상생방송을 보았고 증산도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야~! 증산도에도 방송국이 있구나!.’ 하고 놀랐습니다. 상생방송을 시청하면서 『월간개벽』도 신청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청주흥덕도장을 알게 되고 올 3월 14일 처음 도장을 방문했습니다. 그날부터 도장을 오가며 진리를 배웠으며 도장 분위기가 너무나 친근하고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증산도에 마음이 끌리게 된 것은, 무엇보다 우리에게 친근한 상제님과 하느님, 미륵부처님, 옥황상제님이 호칭만 다를 뿐 같은 분이시며 더불어 잘살자는 것, 우리 역사에 대한 민족사관이 뚜렷하다는 것, 주문수행과 기도만 하는 줄 알았는데 호흡 수련도 하고 우주 이법에 대한 공부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 한민족만이 주류가 되고 한류가 원류라는 것만 내세워 민족종교에 그치고 세계종교로서는 자리 잡기가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교육을 받아 보니 세계인 모두가 공감하고 신앙할 수 있는 진리여서 세계종교가 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진리 체화를 향한 힘찬 발걸음


그동안 진리를 공부하고 수행과 치성에 참석하면서 신앙생활이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으며 머리와 가슴으로 진리가 조금씩 쌓이고 있습니다. 요즘은 지난날 경험을 토대로 호흡 수련도 조금씩 새로운 방법으로 하고 아침과 저녁 봉청수 때 제 잘못을 참회하며 조상님들 음덕과 상제님 은혜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또한 진리 서적 탐독과 더불어 잠자는 시간 외에 주문을 계속 듣고 읽으며 천지와 같이 숨 쉬고, 천지와 같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면서 진리를 체화하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저를 상제님 도문으로 이끌어 주신 조상 선령님들과 부모님께 보은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상제님 진리를 저희들에게 내려 주신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천금 같은 시간을 할애하여 상제님 대도 세계를 교육시켜 주신 청주중앙도장 이승계 수호사님, 여러 VOD를 통해 뵈었던 수호사님 감사합니다. 도장에서 따뜻하게 맞이해 주신 수석포감님, 여러 도생님들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제가 상제님 도문에 입도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심에 감사드리며 나도 살고, 이웃도 살리는 데 성경신을 다하겠습니다.

증산 상제님! 요즘 날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상제님을 그립니다. 소생은 이제 겨우 열두 살. 아직은 정이 그립고, 배움에 목이 마른 철부지 어린아이입니다. 이제야 상제님을 뵙게 되었으니, 상제님 어깨에 매달려 사무치게 울고 싶습니다. 보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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