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도장이야기

일곱 가족이 만들어 가는 평범한 도방의 특별한 이야기 (김인태,임종숙) (영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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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덕진도장에는 유별난 한 신앙가족이 살고 있다. 아빠 엄마와 다섯 아이까지 일곱 명의 가족이 그려 가는 매일의 일상은 매우 다이내믹하다. 한편으로 요란스럽고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내내 이어지다가도, 정해진 가족만의 시간이 다가오면 일순간에 반전의 분위기가 연출이 된다. 일곱 식구가 모여 식사를 하는 시간이 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입을 모아 이들만의 ‘가족식고문’을 낭랑하게 암송한다. 저녁식사를 마치면 전 가족이 일사불란하게 천신단을 모신 방에 모여 앉아 앞다투어 봉청수를 하고 기도를 마친 후에는 모두가 현란한 몸짓으로 도공의 향연에 빠져든다. 바로 김인태(48, 교무녹사장), 임종숙(36, 종감) 부부 도생이 운영하는 도방의 독특한 현장 모습이다.

지난해의 마지막인 12월 말일을 이틀 앞둔 날 저녁, 취재진은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에 위치한 김인태, 임종숙 도생의 도방을 찾아갔다. 아파트 1층 가정도장 문 앞에 마주 서면 ‘STB상생방송’ 스티커가 큼직하게 붙어 있고 문을 열고 들어서니 집안으로 들어가는 내부 출입문 위쪽에 커다란 직사각형 목판에다 한자로 ‘가가도장家家道場’이라 새긴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열린 문 앞에는 쪼르르 달려 나온 다섯 살배기 막내 가영이와 일곱 살 의성이, 열 살 가을이, 열두 살 가은이, 열일곱 가희의 얼굴이 보이고, 이들에 가려 뒷줄로 밀려난 아빠 김인태 도생, 엄마 임종숙 도생까지, 얼른 봐도 생동감이 넘쳐 나는 7인의 환한 모습이 취재진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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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로 들어서서 왼쪽에는 벽면 전체를 책장으로 만들어 놓은 거실이 있고 오른쪽에는 부엌과 천신단을 모신 도방이 자리 잡고 있으며 앞쪽에는 부부와 아이들이 쓰는 방이 위치하고 있다. 오른쪽 끝에 있는 신단방은 정면 벽 중앙에 상제님 어진과 태모님 진영이 모셔져 있고, 우측에는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의 존영이, 좌측에는 태을천상원군님과 조상선령신의 위패가 나란히 걸려 있다. 천신단은 주변 배색과 조명 등이 안정감을 주는 분위기로 구성되어 있고, 이곳에서 일곱 가족은 매일 정성스럽게 봉청수를 하고 활력있게 도공수행을 하며 도력을 축적해 나가고 있다.

이 가정은 요즘 보기 드문 1남 4녀의 자녀를 거느리고 있다. 아이들이 많은 것에는 여러 장단점이 있지만, 적어도 이 가족만큼은 다소 부족한 부분보다는 함께하는 장점이 훨씬 크게 느껴진다. 그 밝음과 열정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독자 여러분은 끝까지 확인해 보시길 권고드린다. 아이들 신앙 성장의 터전 자체가 되고 있는 도방 거실에 마주 앉아 신앙의 시작부터 소초동 양육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까지 하나씩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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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만나기까지


 

스승을 찾던 막내둥이

김인태 도생은 전북 군산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귀여움을 듬뿍 받고 자랐을 이 막둥이 소년은 10살 전후부터 평범한 또래와는 다른 생각과 고민을 안고 살았다. “인간은 왜 죽는 거지? 왜 인간으로 태어났을까? 나는 무얼까?”와 같은 삶의 본질적 의문은 기본이고, “이렇게 있는 우리나라 외에 북한은 왜 존재할까?”라는 다소 역사적인 질문이나 “분명히 신선은 계실 거야.....스승으로 모실 분을 만나야 되는데 어디 계실까?”와 같이 엉뚱해 보이는 고민도 하면서 조금은 특이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김 도생은 이런 자신의 생각에 대해 스스로 궁금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젠가 그 답을 찾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살았다. 마음에 품은 고민을 풀어 보려고 어릴 적에 교회나 절에도 가보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궁금증은 더 깊어만 갔다고 했다.

그 후 10년쯤 지난 뒤 군에 입대한 김 도생은 둘째 형님(군산조촌도장 김진석 도생)이 병영으로 보내 준 ‘증산도의 진리’ 책을 통해 상제님 진리를 만났고, 이후 도문에 입도하면서 비로소 모든 궁금증들이 풀렸다. 또한 증산도 진리를 통해 자신이 어린 시절 그토록 찾던 스승님이 바로 천지일월 사체 하느님이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김 도생은 입문하기 전부터 진리가 좋아서 주변 친구, 후배에게 9,000년이 넘는 장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역사와 우주1년의 소식을 전하고 다녔지만 젊은 혈기의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듯 쳐다만 보았다고 한다. 입문 과정을 거쳐 1992년 4월 8일 드디어 증산도에 입도하게 되었는데, 김 도생은 당시 증산도의 진리에 대해 ‘거부감 없는 충격’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표현했다. 더불어 처음으로 도장에 방문했을 때, 어서 오라고 반겨 주시던 도생님들의 환한 미소가 25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고 술회했다.
 

봉사활동에서 만난 진리

김 도생과 달리 아내인 임종숙 도생은 전북 김제시 금구에서 1남 2녀 중 장녀로 출생하여 든든한 보배처럼 성장했다. 어느덧 고등학교에 입학한 임 도생은 1학년이던 1997년 겨울방학 때 친구의 권유로 신태인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보육, 장애시설에 2박 3일간의 봉사활동을 가게 되었다. 그 시설은 각 연령층의 어린이와 성인, 장애인이 함께 생활하는 곳으로 환경은 열악하였으나 사람이 그리워서인지 아이들은 봉사자들을 해맑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임 도생은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청소, 식사, 빨래 등을 같이 하며 하루를 보냈고 이튿날 다른 봉사자들이 찾아왔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대화를 통해 앞으로 일어날 지구의 지축정립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고 한다. 지축정립은 자연 질서의 변화 모습인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운 희생이 불가피함을 말했고, 그렇게 큰 위기의 상황 속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책 한 권을 건네주었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가하여 확인해 보니 그 책은 ‘다이제스트 개벽’이었다. 책 내용은 이제까지 살면서 들어 보지 못한 얘기들이 많았고 경이롭고 신비스런 부분이 있는가 하면 충격적이고 심각한 내용들도 많았다. 처음엔 어렵기도 하고 정말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하는 의문을 갖기도 하였으며, 정말로 일어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얼마 후 책을 준 이(인도자)에게 연락이 왔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 그 재난을 바르게 준비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실천하는 곳이 증산도임을 이해하였으며, 고민 끝에 정읍에 있는 시기도장을 찾게 되었다.
 

할머니의 품 같았던 도장

당시에 임 도생이 살던 곳은 김제시 금구였는데, 인도자가 알려준 곳인 정읍까지 직접 도장을 찾아갔다. 집에서 출발해 2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약 3시간이 걸려 정읍에 도착했고, 인도자를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 정읍 시기도장까지 걸어갔다. 계단을 올라 성전에 들어서자마자 아담한 크기의 성전에 상제님 어진, 태모님 진영이 보였고 느낌이 편안하고 따뜻해서 어렸을 때 할머니가 팔을 벌려 안아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치성을 할 때 주문지를 보며 읽는데 처음 보는 한자인데도 무리 없이 잘 따라 읽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친구 따라 교회도 다녀 보고 부모님이 불교를 믿으셔서 절에도 가 보고 했지만 마음이 불편하여 언젠가부터 가지 않았는데 증산도는 달랐다. 진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왠지 모르게 그 공간이 좋아서 몇 차례 도장 방문 후 1998년 6월 28일에 입도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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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과정과 체험


 

열정과 깨우침이 있었던 신앙

입도 후 김 도생은 샤니 빵 제품을 1톤 트럭으로 가게에 납품하는 장사를 하게 되었고 일요치성 때는 먼저 참석해서 도장 청소를 하면서 신앙의 초심을 키워 나가게 되었다. 이후 장사를 그만두고서 도장 상주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 여름날 수행을 하면서 지금도 기억이 나는 강렬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태을주 수행이 유독 너무나 하고 싶은 날이었는데, 사배심고 하는 시간이 약 한 시간 정도 걸릴 정도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도장 도생 한 분 한 분을 위해 기도하였다. 수행을 한 지 한두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어떤 기운이 허리와 목을 통과하면서 뒤쪽으로 백회를 거쳐 엄청난 진동이 일어났는데, 놀라서 살펴보니 몸이 가벼워지고 어디 있는지 모를 지경으로 황홀경에 휩싸이고 자신의 몸을 중심으로 운무와 같은 기의 흐름이 돌기 시작했으며, 두 눈을 감고 훔 소리만 내도 같은 현상이 반복되었다. 김 도생은 이것이 신앙에 있어 마음가짐과 참회의 정신이 얼마나 중요하고 깊은 것인지를 깨닫게 한, 너무나 충격적이고 황홀한 체험이었다고 했다.
 

포교와 봉직의 추억들

그러던 중 당시 도장책임자였던 교정님의 권유로 김 도생은 전북산업대학교(현 호원대학교)에 복학을 하였고 대학가에서 포교 활동을 하게 되었다. 장기간 방치되어 폐쇄 직전이었던 증산도 동아리방을 청소하고 페인트칠, 장판 교체 등의 정비를 마치고 새로이 신단을 모셨다. 신입생과 재학생 포교를 위해 대자보를 붙이는 과정에서 지금 안산 상록수도장에서 신앙하고 있는 성효수 도생을 만나 도문으로 인도했다. 당시 목표는 동아리 방명록에 하루 한 명의 기록을 받는다는 것이었고 그 활동의 결과로 수십 명이 방문하고 많은 사람을 도문에 인도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사유와 사정 등으로 인해 20년이 지난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당시에는 불같은 열정으로 큰 후회 없는 포교활동을 했다고 자부한다는 김 도생의 말을 들으면서 ‘의미’를 실은 신앙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김 도생은 그 당시 동아리방에서 도담을 나누다 보면 열기가 넘쳐 두 시간 정도는 기본으로 하다 보니, 화장실에 가고 싶어 안절부절 못하는 대상자를 보면서도 끊지 못하고 도담을 나눈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말소리에 기운이 붙는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고 했다. 또 한 번은 여름방학 전날 수행을 하던 중 뜨겁고 묘한 기운을 느꼈으나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다음 날 청수 모시러 동아리방에 가 보니 다른 동아리에서 불이나 합판으로 이루어진 복도와 문들이 심하게 타고 그을린 것을 보게 되었다. 이웃에 공간을 나누어 쓰던 여러 동아리 학생들이 증산도 동아리의 도 기운 때문에 주변 동아리방들의 피해가 적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걸 들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김 도생은 그 뒤 더욱 수행 공부와 포교에 박차를 가하여 동시에 3명을 입도시킨 적도 있었다.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청년기의 시간을 그는 이렇게 알차게 보내며 추억을 만들어 나갔다.

201702_064.jpg이윽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 김 도생은 2년 동안의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천록상임포감에 지원해 정읍연지도장에서 봉직하게 되었다. 그 후 전주 삼천도장으로 이동 발령이 나면서 그때 이후로 계속 전주 지역에서 신앙을 이어 오고 있다. 김 도생은 그 당시 삼천도장 천록포감으로 활동을 하면서 지금 전주 덕진도장에서 신앙하고 있는 경남호 도생을 포교하게 되었다. 어느 날 개척포교를 나갔다가 마지막으로 저쪽 가게에 한번 들러 보자는 마음을 먹고 들어간 곳에서 자동차 부품 사업을 하던 경남호 도생을 만나게 되었다. 그 당시 과로로 인한 질병을 앓고 있던 경 도생을 100일 동안 매일 집에 찾아가 새벽 수행에 인도한 사례도 김 도생에게는 소중한 신앙 추억으로 남아 있다.
 

신앙을 배우며 정성을 담고

한편 부모님 모르게 신앙을 시작한 임 도생은, 집에서 도장까지의 거리가 멀고 학생 신분인 탓에 금전적인 문제로 도장에 자주 못 가는 일이 벌어지자,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아무리 도장에 못 가도 한 달에 2번은 꼭 가자.”, “적은 금액이라도 내 정성을 담은 성금은 꼭 내자.”라고 다짐했고 이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가정에서는 신앙에 대한 왜곡된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에, 학교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주문을 노트에 써 가며 외우고, 집에선 작은 초를 켜고 종이컵에 봉청수를 한 다음 배례와 수행을 한 후 복록수를 마시면서 조용조용히 신앙을 이어갔다.

그 무렵 정읍에 시기도장에 이어 연지도장이 하나 더 개창되었고, 연지도장에서 철야수행 중 친구 2명이 도장 방문 후에 입도하게 되면서, 임 도생은 같이 다닐 친구가 생겼다는 즐거움에 용기백배하여 더 열심히 신앙을 했다. 얼마 후 연지도장과 시기도장이 통합되고 새롭게 청포구역이 생기면서 의욕적으로 신앙을 하게 된 임 도생은 동료 도생들과 함께 질문 내용과 그림 등을 그려 설문지를 만들고 학교 근처에서 꾸준히 포교 활동을 했다.
 

보화교를 신앙하셨던 할아버지

가족 중 장녀인 임 도생에게는 신앙과 관련된 집안의 내력 이야기가 숨어 있다. 임 도생이 동생들에게 진리를 전해 입도를 시켰으나 부모님의 강력한 신앙 반대에 부딪혔는데, 그 이유는 할아버지에 대한 가족의 기억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젊으셨을 때부터 고향인 경주에서 보화교를 신앙하셨다고 한다. 할머니와의 슬하에 6남매가 있었는데 가정은 돌보지 않고 신앙만 했다고 들었다. 결국 3형제가 어린 나이에 죽고 큰아들은 친척집에 양자로 보낸 후, 할아버지는 재산을 정리하여 할머니와 딸과 막내아들을 데리고서 전북 김제시 원평 용화동으로 신앙 하나만 바라보고 이주하였다. 아픈 할머니와 어린 아들 딸은 힘들게 지내다 막내아들이 9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막내아들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고아나 마찬가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해 행색이 초라했고 기초교육도 받지 못하고 성장한 탓에 할아버지의 신앙을 죽도록 원망하며 자랐다. 그 막내아들이 지금 임 도생의 아버지라고 하니, 상제님 신앙을 반대하는 이유를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사연이다.

부모님은 임 도생에게 “출가한 너는 알아서 하고 동생들은 건드리지 말라”면서 완고하게 선을 긋는다고 한다. 부모 입장에서 너무도 크고 아픈 신앙의 기억들이 자식에 대한 맹목적 보호로 드러나 있는 셈이다. 이러한 갈등이 지속된 지 벌써 6년이란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데, 임 도생은 자신이 그마나 증산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하는 건 할아버지의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할아버지는 일을 하시다가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하루에 4번의 수행을 하셨고, 외출을 하실 땐 항상 가방에 주문책과 108개 단주를 가지고 다니시며 시간에 맞춰 4번의 수행을 하셨다고 한다. 임 도생은 돌아가실 때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셨던 할아버지의 신앙 정성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는 말을 했다.
 

신앙의 위기를 넘고 맺은 부부의 연

임 도생이 초입 시절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을 배우며 탄력을 붙여나가던 그 당시에, 정읍시기도장에서는 진리를 잘못 이해하고 도장과 신앙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하는 몇몇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임 도생의 인도자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신앙조직에 물의를 일으킨 이 사태로 인해 임 도생은 자의와 무관하게 자신의 인도자와 도장 도생들 사이에서 심한 마음고생을 하게 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 혼란과 상심의 여파로 인해 신앙을 오해하고 포기할 마음까지 품게 된 임 도생은 친구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도적부를 찾으러 도장에 갔다. 그 때 도장은 천도식 준비로 바쁜 상황이었는데, 도장책임자가 천도식을 마치고 차로 데려다 주면서 증산도 신앙에 대한 오해와 왜곡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책임자와의 대화를 통해 대전이 본부라는 것과 천지일월 사체가 이법적으로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도장의 몇몇이 잘못된 신앙을 하는 사람들이지 모두가 다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과 정읍 외에도 전국에 도장이 있으며 집에서 가까운 도장이 전주삼천도장이라는 것 등 여태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결국 신앙과 진리에 대해 무지했던 것이 문제였음을 깨닫고 임 도생과 친구들은 조금이나마 오해를 풀 수 있었다고 했다.

임 도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주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전주삼천도장으로 적을 옮겨 신앙을 하게 되었다. 정읍시기도장에서 생긴 난법 소동 때문에 전주삼천도장에서 도생들에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는데, 마침 이때 정읍에서 함께 신앙을 했던 김 도생이 전주삼천도장으로 이동 발령이 나면서 임 도생의 낯설은 도장 적응을 도와주었다. 오해했던 진리 교육을 다시 받게 하고 도전도 챙겨 주었으며 증산도대학교와 군령이 무엇이고 왜 해야 하는지 신앙의 기본을 제대로 알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신앙 활동에 최대한 참여할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이러한 정성과 인연이 바탕이 되어 김 도생과 임 도생은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2001년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두 사람은 결혼 후 슬하에 5명의 자녀를 두었다. 첫째 김가희(17세), 둘째 김가은(12세), 셋째 김가을(10세), 넷째 김의성(7세), 다섯째 김가영(5세)까지 총 7명의 가족이 입도했거나 입문 상태로서 단란한 신앙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다.
 

연이은 시련과 도공의 은혜


 

이어진 시련의 나날들

결혼 후 두 사람은 부모님의 도움으로 방 한 칸의 전셋집을 얻어 첫 살림을 시작했는데, 제대로 된 부엌도 없고 쥐와 바퀴벌레가 우글거리는 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보일러 없이 전기장판에서 겨울을 보냈고 방 안 벽에는 곰팡이가 피어서 폐장판으로 도배를 하였으며 웃풍도 센 악조건을 모두 지닌 집이었다. 이 때 낳은 큰딸이 목욕을 할 때는 추위에 자지러지게 울면서 물을 싫어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침에 밥상인 곳에 저녁에는 이불을 깔고 아이를 재우기를 6개월 동안 하다가 그곳을 벗어나게 되었다.

그 후 전주 삼천동에 월세로 거처를 옮기고 건강식품 사업을 하게 되었으나 여의치 않아 우여곡절을 많이 겪으며 고생을 했고 거의 녹줄이 끊긴 생활을 하다가, 2003년 2월 15평 주공 아파트에 겨우 들어가게 되어 둘째 아이부터 다섯째까지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살았다. 2011년 파산면책이 확정될 때까지 어렵게 살아가다 보니 생활고가 점점 심해지면서 한동안 말 그대로 하늘만 바라보는 호한呼寒이라는 새처럼 살게 되었다. 하지만 시련과 고통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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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주 도공의 은혜로 재기하다

김 도생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유지했는데, 지병처럼 아팠던 허리와 근육이 잘못 맞은 주사로 인해 좌골신경통과 허리디스크 합병증으로 악화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좌측 다리가 옆으로 움직이질 않았고 병원과 한의원에서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말과 함께 언제 낫는다는 기약을 들을 수가 없었다. 이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었지만 김 도생은 절망하지 않았다. 오직 태을주를 집중해 읽으면서 여러 공원에 있는 체육시설을 돌아다니며 재활치료를 대신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근력운동과 치료에 매진한 결과 7개월 만에 완치하게 되었는데, 병원에서는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에는 일을 하던 중 그라인더에 오른쪽 손목의 인대와 핏줄이 끊어지는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다행히 장갑에 그라인더 날에 걸리고 그라인더 줄이 몸체를 휘감아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손목이 절단되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다. 이는 천지일월 부모님과 조상님의 보살핌 덕분이었다. 오른손이 다치다 보니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산재보상으로 5개월까지 치료는 받았으나 실생활은 10개월 넘게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생계의 위협에 직면한 김 도생은 치료조차 제대로 안된 굳은 손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2개월 만에 이번에는 사다리에서 떨어져 왼손의 손목이 꺾이는 부상을 당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온 시련의 그림자는 태을주 도공의 위력으로 맞서고서야 자취를 감추었다. 종도사님께서 강조하고 힘을 실어주신 도공의 조화 영력을 전파하는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본부의 지방 순회도공이 그 역할을 했다. 김 도생은 전주덕진도장에서 열린 3차 본부 순회도공에 참여하면서 강력한 도공 기운으로 왼손 손목이 깔끔히 치유되는 은혜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2016년 10월에 있었던 5차 순회도공 시에는 더욱 강력한 도공 치유 기운을 받았다. 그때 약 한 시간 정도 머리 위로 강력한 기둥 같은 도공 기운이 내리꽂히는 것을 느꼈으며, 엄지와 검지와 중지에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찌릿찌릿 하다가 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간지러움이 반복되었다. 도공이 거의 끝나 갈 즈음에 그라인더에 다친 오른손을 자연스럽게 쥐어 보니 힘이 들어가면서 주먹이 쥐어졌다. 김 도생은 1년 6개월 만에 힘껏 쥐어진 오른손을 보면서 기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기뻤다고 했다. 태을주 조화 성령의 신권과 은혜를 받아 아픈 몸이 도공으로 치유되는 걸 직접 느끼면서 김 도생은 16년 전 동료 도생의 암 치유 신유를 하던 기억과 체험들, 그리고 20여 년 전 풍에 걸려 잘 걷지도 못하는 노년의 여성을 2분 정도의 신유로 치유했던 태을주의 권능 체험 사례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것은 착각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우리가 체험하는 도공의 힘과 신권은 사람의 생각과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분명히 얘기하자면, ‘영원히 잊지 못할 천지일월 사체의 은혜’라 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가족의 특별한 도방 이야기


 

기적처럼 도방을 마련하다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며 때로는 흩어져 살기도 했던 김 도생의 가족은 2011년 한 집에 모두 모여 사는 기쁨을 얻었으나 그 사이 가족 수가 늘어난 관계로 집이 좁아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당시의 경제적 여건과 현실 속에서 이사는 꿈도 꿀 수 없었지만, 아이들은 커 가고 집은 좁아 더 이상 살 수 없는 지경에 처한 이 부부는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공인중개사무소를 찾아갔다. 몇 군데를 가도 모아 놓은 돈이 없으니 힘들다고 했고 실망하여 돌아서는 길에 한 공인중개사무소가 눈에 띄었는데, 그곳에서는 대출에 대해 언급을 했다. 두 도생은 신용불량에서 파산 면책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 대출은 생각지도 못했으나, 대출 상담을 해 보니 임 도생의 신용등급이 간신히 올라 가능하다고 했다.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기회가 눈앞에 마련되자 두 사람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서류를 준비하여 2016년 2월 전주 남고산 아래에 위치한 30평 아파트에 드디어 입주하는 기적을 체험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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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방은 소초동 양육의 현장

이사를 한 후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부모로서 매우 흐뭇한 일이었다. 임 도생은 항상 천지일월 부모님을 부족하게 모셨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으나, 이제 신단방을 마음먹고 꾸밀 생각에 너무나 설레고 감사했다고 한다. 매일 저녁 퇴근한 남편을 도와 어진을 모시고 봉청수 신단과 LED촛대를 만들고 홍보용 전단지와 서적을 진열하는 과정에서 뿌듯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무를 자르고 못도 박아 신단을 만들고 보니 많은 애착과 자부심이 들었다고 한다. 거실 한쪽 벽을 책꽃이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증산도 진리서적을 놀이 삼아 접하게 하고, 아침에 눈 뜨는 순간 상생방송을 틀어 놓았더니 하교 후 어린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도 스스로 상생방송 틀어 시청하기도 하는 등 아이들의 생활신앙이 자리를 잡았다. 신단방이 생긴 후 아이들은 스스로 집 옆에 있는 약수터에 가서 청수물을 떠 온 후 봉청수를 서로 하겠다고 다투는 일이 잦은데, 그 과정에서 5살 된 막내딸은 울음을 터트리기도 할 정도라고 한다. 매일 저녁 식사를 마치면 온 가족은 천신단이 있는 도방에 모여 수행과 도공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다. 주문 수행은 아이들이 오래 앉아 지속하기 어려운 점이 있어 이 도방에서는 곧바로 도공을 겸한 주문수행을 하도록 하여 수행 자체를 마음껏 즐기도록 유도하였고, 아이들의 반응도 좋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은 등하교 시나 외출 전후에는 신단방에 들러 인사를 하고, 문구점에서 사온 사탕 하나라도 반드시 신단에 먼저 올리고 태을주를 읽은 다음 먹는 습관이 생겨났다. 신단방이 누구의 강요 없이 아이들 스스로 찾아 편안한 마음으로 수행하는 것이 일상생활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아 부모로서 무척 대견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한다. 도방이 화기가 무르익어 매일 저녁 정성수행을 하는 성소가 되었다는 점도 큰 은혜요 축복이라고 여기고 있다.
 

10년 이상 지속한 두 가지 도방문화

이 부부 도생의 도방에는 10년 이상을 지속해 온 두 가지 신앙문화가 있다. 첫 번째는 아이들이 잘 때부터 아침까지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 성음의 태을주 CD를 틀어 주는 것이다. 첫째 가희가 5살 때 동화 테이프를 듣고 잠들었는데 무서운 꿈을 꿨다고 하기에 다음 날 태을주로 바꿔 주니 잘 잤다고 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의 잠자리에 꼭 태을주를 틀어 주고 있다. 하루는 이사를 온 지 얼마 안 되어 7살 난 아들이 잘 자다가 무섭다고 울며 일어났다. 옆집에서 가족끼리 자주 싸우는 편이고 그날따라 소리가 크게 들려서 깬 것인데, 임 도생은 일부러 태을주 소리를 크게 하고서 아들을 재웠고, 그 후로는 옆집에서 밤늦게 싸우는 일이 사라졌다. 또한 이렇게 태을주를 듣게 하니 면연력도 강해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 다섯 아이 모두 독감 예방 주사를 맞지 않았지만 독감에 걸린 적이 없으며, 학교에서 단체 생활을 하는 특성상 안 아플 순 없겠지만 다른 질병도 웬만하면 수월하게 지나가는 편이라고 한다. 임 도생은 이와 같은 태을주의 도력을 설명하면서 신앙하는 모든 분들께 강력히 추천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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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통성 식고다. 보통 우리 신앙인들은 조용히 마음속으로 하는 식고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이 가정도장에선 또렷하고 당당하고 정성스럽게 통성으로 식고를 한다. 그 유래는 이렇다. 오래전 임 도생은 저녁을 먹던 중 당시 4~5살쯤 되었던 첫째 아이가 눈을 감고 손을 모으며 식고를 하는 모습을 목격했는데, 문득 “속으로 뭐라고 하고 있을까? 하고는 있나? 아니면 엄마 아빠가 하니까 흉내만 내는 거면 어떻게 알려 줘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의논을 했더니 김 도생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식고를 함께 하며 가르치기로 했다. 처음에는 짧은 내용으로 소리를 내어 아이와 같이 식고를 했는데 정작 부모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지고 조금 쑥스러웠지만 아이는 좋아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다시 가다듬고 3번의 수정을 거친 끝에 다음과 같은 현재의 식고문이 만들어졌다.

“상제님 태모님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 조상님 맛있게 흠향하세요. 저희 가족 건강하고 씩씩하고 지혜롭고 바르게 신앙하고 생활하게 보살펴 주세요. 태을주 많이 읽고 도전, 환단고기, 우주변화원리 많이 읽고 전해서 사람을 많이 살리는 태을랑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네 문장의 식고문이 매 식사 때마다 예외 없이 합창으로 울려 퍼지는데, 취재 당일 현장에서 실제로 들어 본 식고 소리에는 유창하고 숙달된 어조와 목소리 외에도 정성과 진심이 감동과 함께 묻어 나왔다. 도문에서 강조되는 신앙 언어나 표어가 새로 등장하면 식고문에 첨가 반영하여 가족들 간에 공유를 거친 뒤 곧바로 암송을 하고 식사 때 함께 통성으로 적용한다고 한다. 둘째부터 5살 된 막내까지는 태어나면서부터 듣고 따라 하게 되었으며 지금처럼 가족 모두가 자연스럽게 통성식고를 하게 된 것이 벌써 12년이 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감미롭고 개성 있는 가족이 아닐 수 없다.

이 도방은 전주 한옥마을에서 홍보용 전단지로 홍보포교 활동을 하는데 가끔 아이들이 함께 동참하기도 한다.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차량과 우편함에 상생방송 전단지로 홍보를 하고, 카카오톡 등 SNS로 상생방송과 북콘서트 등 증산도 소식을 부지런히 알리고 있다.
 

초심과 참여, 그리고 소초동 양육을 지향하며


도방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취재를 통해 듣게 된 김 도생의 신앙 과정을 정리하며 떠오른 키워드는 결국 마음과 태도의 문제였다. 갖은 시련과 고통스런 현실 상황들을 마주 대하면서도 마음을 곧추세우고 신앙의 중심을 잃지 않았던 이 가족의 신앙 심법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김 도생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라는 그릇에 담긴 불필요한 아집, 이기심, 시기, 음해 등을 참회와 기도라는 도구로 덜어 주는 만큼 천지의 기운을 받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저를 도문에 인도하신 형님께서는 도장에 가는 순간부터 경건한 마음으로 청소하고 청수물 길러 봉청수를 하며 정성을 다해 참여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추운 겨울에도 꽁꽁 언 좁은 길을 물지게에 청수 두 통을 메고 걸었던 기억이 변함없는 신앙의 초심을 이어 주는 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그 마음과 교훈을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더불어 신앙과 도방의 미래에 대한 질문에도 답변을 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생활고에 시달려 도장에 적극 참여하지는 못했으나 꾸준한 도장 참석으로 인해 구역 부포감 보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구역 포감님을 도와 구역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열심히 봉직하겠습니다. 또한 제대로 된 가가도장의 면모가 갖춰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조금은 미흡하지만 우리 가족이 바른 신앙으로 뭉쳐서 계속 전진할 수 있도록 잘 관리하고 성장시키겠습니다. 천지일월 사체의 은혜에 보은하는 태을랑, 생동하는 태을랑, 선봉에 서는 가가도장으로 거듭날 것을 서원합니다.”

아내인 임 도생도 신앙과 도방의 향후 계획에 대해 언급을 했다.

“예전에 전주평화도장 시절 제물치성 할 때는 도장에 여성 도생들이 모여 음식 장만을 했는데, 어려서 걷지도 못하는 첫째를 보행기에 태워 놓고 참여 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제 손으로 음식을 해서 올리는 기쁨과 함께 협동하며 배워가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그때의 기쁨을 되살리며 앞으로 도장 운영과 봉사에 적극 참여하겠습니다. 저는 아직 신앙이 짧고 아이가 있어 그동안 보직을 맡을 수가 없었는데, 얼마 전 처음으로 어포 부포감을 맡게 되었어요. 미흡하지만 어포 포감님과 협동하여 어포 구역원을 저의 아이들이라 생각하고 잘 보살피고 이끌어 가겠습니다. 저희 가정은 대체로 어린 자녀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바르게 신앙하며 성장하도록 보살핌에 최선을 다할 것이고, 천지일월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일꾼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는 신앙을 하고 맡은 어포 부포감직에 최선을 다하며, 도장 중심의 참여와 봉사에 적극 동참하여 도장 성도님들과 세상의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이어 곁에서 내내 부모의 인터뷰를 지켜보던 첫째 김가희 도생은 엄마 아빠의 신앙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부모님은 신앙에 있어 저의 롤모델입니다. 우리 5남매를 키워 주시느라 많은 고생을 하신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신앙을 떠나서 두 분은 생활 자체가 진리 지향적이고 영적 감성이 많은 분들이세요. 제가 성장하면서 늘 들었던 얘기가 ‘너희들은 천상에서 사명을 받고 왔다. 엄마 아빠하고 사는 한은 신앙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었고, 특히 엄마는 ‘만약 엄마 아빠가 죽고 없더라도 증산도는 꼭 해야 한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신앙 교육을 받으며 컸는데, 유치원에서 밥을 먹을 때도 다른 애들이 감사기도 올린다고 중얼거릴 때 저는 속으로 가족식고문을 읽었어요.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

큰딸의 이 말이 이 도방의 분위기를 그대로 표현하는 말이 되었기에 덧붙인다. 자녀들의 신앙 양육에 관심을 두는 분들은 참고가 되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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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이 체험한 영적 세계

임 도생은 신앙 과정 중 신유를 하면서 체험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특히 남편인 김 도생과 함께 16년 전 암에 걸린 강○○ 도생을 신유할 때의 세 가지 영적 체험은 처음 겪는 일이어서 기억에 생생하다고 한다.

먼저, 신유 중에 몸이 으스스해지고 음산해지면서 동물 소리, 낙엽 소리, 바람 소리, 새 소리가 들렸는데, 알고 보니 그 집터가 공동묘지였다고 한다.

두 번째는 하늘색 신생아 양말 한 켤레와 바람 빠진 작은 풍선 모양을 한 슬픈 표정의 눈코입이 보였는데, 확인해 보니 당시 치병을 위한 천도식이 준비 단계였을 때는 영유아의 위패가 없었다가 천도식 당일에는 영유아 위패를 모시며 치성을 한 사실이 있다고 하였다.

세 번째는 신유를 하고 있는 도생의 어깨에 남자 아이들이 하나씩 앉아 환자인 강 도생의 몸에 빨대를 꽂아 빨아 먹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며칠 후 병원에서 검사 결과 암 덩어리 크기가 많이 작아졌다는 소식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막 신앙을 시작한 신입신도로서 이런 영적 체험을 한 것이 너무 신기하였으나, 그 도생은 암을 완전히 치료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안타깝고 슬픈 체험이었다고 한다.

반면 5살 먹은 막내딸 가영이가 얘기하는 체험은 놀랍고 신기한 부분이 많다. 평소 씩씩하게 태을주를 잘 읽는 가영이는 잠자리에서도 태을주를 자장가 삼아 듣곤 하는데 어느 날 자고 일어나서는 “엄마, 상제님 태모님이 오셔서 자고 가셨어.”라고 하는가 하면 지난 12월에 있었던 금산사 성지순례에 다녀와서는 갑자기 책장에서 <증산도 이야기 도전> 책을 꺼내더니 “엄마, 이것 봐.” 하면서 미륵불 그림이 나오는 쪽을 펼쳤다고 한다.

그리고 가족 누구도 평소 진리에 대해 한 번도 가르친 일이 없는데도 어느 날은 진리 관련 책을 꺼내 우주일년 도표 그림이 나오는 쪽을 펼치더니 손으로 가리키며 “사고가 많이 났어...”라고 중얼거린 일도 있었다. 지난 10월 전주덕진도장에서 있었던 5차 순회도공 시에는 가영이도 함께 현장에 참석을 했는데, 아빠인 김 도생에게 “아빠 옆에 키가 큰 사람들이 많아.”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천진난만한 막내딸은 귀여운 재롱둥이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가끔씩 가족을 놀래키는 일이 있다고 한다.  



이번 가가도장은 온갖 시련과 난관 속에서도 신앙의 근본을 잃지 않고 다섯 자녀를 신앙을 중심으로 굳게 결속시켜 소초동 양육의 전범을 보여 준 도방 가족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우리는 이 가정도장이 지닌 ‘유별난’ 운영 방식이 결코 일회성의 방편이 아니라, 10년 이상의 역사를 거치며 다듬어져 온 배워야 할 대상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 도방은 부모의 신앙 및 양육에 대한 분명한 생각과 방침이 정해져 있고 그것이 고식적인 것이 아니라 탄력적이면서도 확고한 중심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가족의 신앙문화를 긍정적이고 발전적으로 이끌고 있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도방문화를 기반으로 도문의 미래인 소초동 양육의 바람직한 한 가지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특히 10년 이상 지속해 온 두 가지 도방 문화는 자녀들의 영성을 계발시키고 신앙을 체질화, 생활화하는 데에 결정적 열쇠로 작용했다. 이는 이 독특한 도방문화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것’이 되어도 좋을 만큼 매력적인 구석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이 가정도장은 변함없는 부모의 신앙 열정과 근본 심법을 바탕으로 나날이 진보해 나갈 것이다. 이를 지켜보고 성원하는 여러 도반들도 저마다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닮아 가며 더 나은 도방문화를 각기 뿌리내릴 것이 자명하다. 그곳에 우리 도문의 밝은 미래가 달려 있고 함께 성공하는 상생의 동력이 함축되어 있음을 확신한다. 김인태, 임종숙 도생과 가희, 가은, 가을, 의성, 가영이의 앞날에 천지일월 사체의 축복과 조상선령의 가호가 깃들기를 축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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