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도장이야기

[자료] 정성과 봉사로 다진 신뢰의 증산도 가가도장 (배영관, 박미영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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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 일꾼에 있어 도장은 진리를 닦고 실천하는 성소이다. 진리가 소중하고 귀한 만큼 그 속에서 운신하는 도생들의 생활과 마음가짐도 성스럽고 넉넉해야 함은 불문가지다. 그런데 도장이 단순한 진리 실천의 피상적 표준으로만 비쳐서는 오히려 신앙의 멋과 품격이 소실되고 용신의 여유도 창발적 문화 생성의 기운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정법과 규율과 기강이 빛나도록 뒷받침하는 것은 결국 구성원인 도생들이 만들어 가는 신앙의 문화와 소통에 달려 있다면 지나친 말일까? 그래서 오랫동안 주목하고 강조해온 신앙의 최종 바탕은 결국 심법心法의 문제가 아니었던가.

지역도장이나 가정도방에서 신앙의 정서와 문화를 만들고 빛내는 일은 모두가 진리적 심성과 서로에 대한 배려 및 소통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를 일러서 심법이라 부른다는 사실은 모든 도생이 공감할 것으로 믿는다.

신앙 심법의 기저에는 상호 존중과 배려를 확장시킨 봉사의 정신이 내재해 있다. 도생들의 안정과 편의를 위해 자신의 손해를 감내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내면의 자유와 안정을 창출하고 보람과 만족을 얻는 것 등이 모두 봉사의 본질과 관련되어 있는 요소들이다. 그런 봉사의 정신과 행동으로 묵묵히 도장에 참여하고 신앙문화를 형성해 가는 것은 평가와 선호의 문제를 떠나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이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도방은 포항대신도장 배영관(남, 48세, 녹사장), 박미영(여, 46세, 종감) 부부 도생의 이야기다. 두 도생은 모두 시작의 동인이 확실한 경우에 강한 몰입과 정성으로 일의 매듭을 짓는 성품이 서로 닮아 있다. 다만 의식의 초점과 동기가 분명한 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쉽게 시작을 하지 못하는 점 또한 공통된 성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원인이야 어떻든 간에 두 도생은 상제님 신앙으로 진입하는 데에 있어 다소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조상의 감화와 가호 및 영적 메시지에 힘입어 결국 동반 신앙의 길에 진입을 했다. 그리고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도정에 봉사하고 협일을 하면서 도방의 큰 그림과 함께 신앙의 결실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이번 호 도방 스토리를 통해 부부가 신앙으로 진입한 각각의 사연과 그에 얽힌 신도와 인사에 얽힌 사실들, 그리고 천도식 문화를 중시하며 도방 및 가족 결집의 토대로 삼고 있는 모습과 오랜 시간 도장에 봉사하며 형성된 그들의 덕성과 심법 문제를 하나하나 공유하며 그 배경 이야기를 풀어내 보고자 한다.

지난 5월 두 번째 일요일 오후 취재진은 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에 위치한 이 부부의 가정도장을 찾아갔다. 아파트 4층에 조성된 가정도장에 들어서서 배영관, 박미영 도생과 더불어 아들 배성진(18세, 교무종감), 딸 배성윤(12세, 도감) 도생과 인사를 나누고 가장 안쪽 좌측 방에 독립된 공간으로 마련된 도방에서 천신단에 예를 올렸다. 도방 공간이 그리 넓은 편은 아니지만 아주 단정하고 말끔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신단 상단 중앙에 상제님 어진을 모시고 좌측에 태을주 액자와 조상선령신위, 우측에 태모님 진영과 태상종도사님 성용이 모셔져 있다. 아래쪽에는 순백색 청수 단이 조성돼 있어 깔끔함을 더하고 있다. 거실로 이동해 마주 앉아서 그간의 신앙 스토리를 하나씩 풀어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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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관문을 향한 체험과 기적


 

고향처럼 느껴진 도장을 만나다

배영관 도생은 경북 포항에서 두 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맏이인 만큼 배 도생은 의젓하고 책임감이 강했으며 해야 할 일은 끝까지 해 내는 성격이었다. 반면에 의외로 유연한 심성과 영적인 감수성도 지니고 있었다고 하는데, 중학교 때는 밤에 아름답게 높이 뜬 달을 보고 부지불식간에 읍배를 올리고 기도를 한 적이 있으며 유년 시절에는 종종 유체이탈 경험을 하기도 했다. 가정적으로 배 도생은 불교 신앙을 하는 집안 분위기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닌 기억이 있고, 특히 가족들의 생일이나 절기 때마다 깨끗한 정한수를 모셔 놓고 정성껏 기도를 올리는 할머니의 모습은 배 도생의 성장 과정에서 정서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렇게 포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군 입대를 하게 된 배 도생은 바로 그곳 군 병영에서 증산도를 처음 만났다. 서울대에 다니던 한 고참 선임병이 상제님 진리를 들려주었는데, 난생 처음 들어 보는 신기한 이야기라 유심히 들었고 동기 한 명과 같이 1992년 포항죽도도장을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고참의 보이지 않는 강요도 일부 있기는 했지만 마음이 허락하여 움직인 일이니 뭔지 알아보자는 심정으로 당시 도장 교정님으로부터 우주 1년과 진리 개요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듣고 태을주 수행을 하게 되었다. 처음 하는 태을주 수행인데 이상하게 온몸이 따끔따끔하고 간질간질한 느낌이 계속되었다. 옆에 계신 도생분에게 물었더니 지금까지 막혀 있던 혈맥이 수행을 통해서 뚫리는 현상이라고 했다. 그렇게 한 첫 수행 체험은 배 도생에게 무척 신기함과 여운을 안겨 주었다.

201806_055.jpg그 후 같이 갔었던 동기 한 명은 더 이상 도장에 발걸음을 하지 않았지만 배 도생은 그렇지 않았다. 도장 성전에 처음 들어갔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옛 고향에 온 듯한 아주 푸근하고 아늑한 기운을 느꼈던 배 도생은 자신도 모르게 도장으로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그때만 해도 도전이 처음 발간될 때여서 진리보다는 어린 마음에 도장의 푸근함과 도생님들에 대한 좋은 느낌 때문에 도장에 계속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2년 정도 도장에 다니기는 했지만 진리 공부를 제대로 하거나 신앙 문화에 적극적으로 동화되거나 하지를 못했고 거리도 멀었던 탓에 배 도생은 왔다 갔다 하면서 어설프게 신앙을 이어갔다. 그 결과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닌데 회사 취업 후 자신도 모르게 도장에서 발길이 멀어지게 되었다. 여러 도생들로부터 수차 연락이 오고 교정님과 만나기도 했지만 다시 도장에 발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 후 신앙과 멀어지고 회사 동료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도 하게 되면서 사회생활에 익숙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불현듯 체험한 태을주 도공

이후 8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회사 내에서 걸어가고 있던 배 도생은 문득 오랫동안 잊고 있던 태을주 생각이 났다. 그래서 태을주를 한번 읽어 봤다고 한다. 그동안 읽지 않았던 태을주가 생각이 나면서 주송이 되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몸이 엄청 가벼워지면서 전혀 배운 적이 없는 택견 춤을 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지금까지 한 번도 느끼고 경험해 보지 못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아주 황홀하고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공 기운을 내려 받는 딱 그 모습이었다. 태상종도사님께서 도공을 내려 주실 무렵부터 신앙을 중단했기 때문에 당시에 배 도생은 도공이 뭔지를 모르고 있었고 체험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강렬한 도공 기운을 내려 받는 은혜를 입었던 것이다. 배 도생은 그러한 체험이 신도의 작용으로 일어난 것이라 했다. 조상님께서 자신을 살리려고 피눈물 나는 지극 정성을 내려 주신 덕분에 그렇게 큰 기운을 받았다는 것이다.

배 도생이 본격적인 신앙인으로 복귀하기까지에는 이러한 도공 체험 말고도 연관된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 하나는 동료 도생의 영적 체험이었다. 경북 지역의 다른 도장에서 책임자로 신앙을 하고 있던 한 분의 도생이 평소처럼 수행을 하고 있는데 눈앞에 자꾸 배 도생 모습이 아른거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 신앙하던 아내를 통해 배 도생을 찾아 달라고 부탁을 했고, 그분은 수소문 끝에 배 도생을 찾아와 만나게 되었다. 상제님 진리 얘기와 함께 다시 신앙을 하자고 권유하며 설득을 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던지, 그 당시에는 왠지 진리 예기가 귀에 들어오질 않아 배 도생은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렸다고 한다.
 

치명적 사고와 생존의 기적

또 하나의 계기는 차량 사고와 관련되어 있다. 동료 신앙인이 찾아와 신앙 복귀를 설득했던 그 무렵 배 도생은 서울에서 동서가 내려와 가족 모임차 처갓집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 교통사고를 겪었다고 한다. 그날은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이었다. 마침 첫아이 아들 성진이가 백일이 되었고 가족들도 모였기에 백일 축하를 겸해서 처갓집에 모여 저녁을 먹었다. 배 도생이 술을 마셨던 터라 아들을 친정에 두고 가라는 장인어른의 말씀에 따라 아내가 대신 차량 운전을 하여 배 도생 내외만 귀가 중이었다고 한다. 도중에 신호 대기를 하던 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멀리서 브레이크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왔다. 순간 “비 오는 날 왜 저렇게 운전을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뒤에서 ‘꽝’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뒤에서 속도를 내며 달려온 차량이 배 도생의 차량을 들이받은 것이다. 운전을 하던 아내는 가슴이 핸들에 부딪히고 고개를 돌릴 수도 없는 강한 충격을 받았고 뒷좌석에 있던 배 도생도 앞좌석으로 몸이 튕겨져 넘어가며 거꾸러지는 사고가 순식간에 발생했다. 황망한 가운데 정신을 가다듬고 유리가 깨져서 뚫려 버린 뒷문으로 겨우 빠져나와서야 배 도생은 사고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 대입 시험을 치른 고3이 친구 5명을 집에 세워둔 차에 가득 태우고 몰고 나왔는데 차 안에 가득 찬 습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 4중 추돌 사고를 낸 것이었다. 배 도생의 차는 앞부분의 보닛이 절반 이상 찌그러지고 뒷부분의 트렁크는 아예 없어진 상태였다.

이 사고로 결국 차량은 폐차를 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 손상을 입었지만, 배 도생 부부는 이상할 정도로 다친 곳이 거의 없었다. 배 도생의 동생이 사고 차량을 보고 와서는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불시에 닥친 사고의 재앙으로부터 믿기지 않을 만큼 멀쩡하게 생명을 건진 배 도생 내외는 그 자체만으로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었지만, 100일 갓 지난 아들 성진이를 차에 태우지 않아 화를 면한 것 또한 너무도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장인어른께서는 사고가 난 그 날, 비도 오고 서울 처형도 내려와 있으니 아들 성진이를 처갓집에 놓아 두고 가라고 하셨다. 결혼 후 애기를 한 번도 처갓집에 두고 온 적이 없었는데 이날 장인어른 말씀 덕분에 아들 성진이도 화를 피했다는 것이다. 평생 한두 번 당할까 말까 한 큰 사고를 겪으면서도 배 도생 내외와 아들이 무사했던 극적인 체험은 조상선령님과 장인어르신의 가호와 은혜에 대해 깊이 상기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사고를 겪은 후 어느 날 예전에 자신을 찾았던 그 도생님이 포항에 내려왔다고 연락이 와서 시내에서 만났다. 그런데 차 한 잔을 마시고는 다짜고짜 따라오라고 해서 함께 택시를 타고 얼떨결에 도착한 곳이 도장이었다. 직장에서의 놀라웠던 태을주 도공 체험과 예기치 않은 사고의 재난에서 무사했던 특별한 체험을 가슴에 담고 있던 배 도생은 신앙에도 뭔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함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약속이나 한 듯이 찾아온 동료 도생의 정성과 노력은 그 변화를 실현시켜 줄 통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도장에 방문한 것을 계기로 하여, 당시 포항 도장의 책임자였던 수호사님에게 진리 교육을 받고 정성 수행도 마친 후에, 드디어 2002년 3월에 8년이라는 공백기를 두고 배 도생은 다시 재입도를 하게 되었다. 자신의 재입도 과정을 되돌아보며 백 도생은 이렇게 말했다. “어느 정도 진리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상생활 속에서 신앙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들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성을 기울이는 백 번의 진리 설명도 좋지만 때로는 강력하게 밀어 붙여 도장으로 인도하는 것이 지인 포교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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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입도를 위한 전략적 밀당 스토리


 

안정과 평안을 찾는 소녀의 꿈

박미영 도생은 경주시 안강읍에서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가장 어린 막내이기는 했지만 형제자매 간에 나이 차가 있어 상대적으로 외로운 유년기를 보냈다. 가정은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어서 박 도생은 조금은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불교 신앙을 하셨는데 신앙심이 깊은 분이셨다. 가정에 법당을 모셔 놓고 힘든 일이 생기면 집에서 굿을 하기도 했는데 그 정성이 참 지극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박 도생은 비교적 무탈한 성장기를 보내기는 했지만 어린 시절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앞으로 어른이 되면 큰 욕심 없이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과 인생을 함께할 배우자는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하고 정상적으로 주간에 근무하는 직업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지니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인의 소개로 만난 남편 배 도생은 그리 나무랄 데가 없었고 그리던 인생을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마침내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사상과 신앙이라는 문제는 부부가 생활하는 일상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배 도생은 입도 후 한 가지 큰 소망을 갖고 있었다. 인생을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아내가 증산도에 입도하여 서로가 같은 방향을 보며 함께 걷는 동반자 신앙을 하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틈틈이 진리 얘기도 하고 도장 한번 가자고 권유도 했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 2년 차밖에 안 되는 신혼 생활을 하던 아내의 입장에서는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에 치성에 참석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대전 증산도대학교 교육에도 가고 하는 남편이 그리 달가울 리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내가 마음을 돌려 입도에 이르게 하는 여러 사건들이 일어났는데, 거기까지 가는 그 과정은 그리 순탄치는 않은 상황의 연속이었다.
 

수상한 남편과 피곤한 아내

박 도생이 비로소 상제님 신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전까지 박 도생에게 남편의 신앙은 가정의 안정과 결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인식되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신앙을 하지 않던 그 시절 박 도생의 관점에서 바라본 남편 배 도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시작과 변화의 과정을 살펴보는 일은 흥미로움을 넘어 이 가정의 도방 역사와 신앙 정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기에, 박 도생의 남편 관찰기(?)를 소개하기로 한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된 신혼 무렵, 박 도생은 남편이 어느 날 저녁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외출한 후부터 이상한 행동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늘 퇴근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오던 사람이 귀가 시간이 점점 늦어졌고, 쉬는 날엔 산책도 가고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매번 약속이 있다고 말하며 일요일마다 서둘러 집을 나갔다가 오후에 귀가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중 집 계약이 만료되어 이사를 하게 되었다. 급하게 집을 구하기 힘들어 아버님이 전세를 놓고 계시던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부터 남편의 이상한 행동이 심해졌다. 집에서 청수를 모시고 한 달에 한 번 대전을 다니면서 증산도 신앙을 하게 되었음을 알려 왔다. 그런가 하면 수요일마다 늦게 귀가해서는 시사자료라며 신문을 건네고 월간개벽지를 읽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도전이라는 것을 보여 주며 시사자료와 함께 세상의 이치가 상제님께서 정해 놓으신 대로 돌아간다며 이야기를 하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철저하게 거부를 했고, 이상한 종교에 빠졌다고 친정에 가서 펑펑 울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매스컴에서 ‘OO진리회’ 사건이 부각되면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상황이었고 가정을 버린 아내 이야기 등 많은 사건들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녀 온 욕심 없이 편안하고 고요하게 살고 싶었던 소망을 방해하는 사태가 지금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계속해서 이상한 신앙을 한다면 이혼을 해야겠다는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

살아오면서 신앙이라는 것은 정신적으로 나약한 사람이 기댈 곳이 필요할 때 찾아가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박 도생은 그간 한 번도 믿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친구들이 교회를 많이 다녀서 행사 때마다 초청을 했는데 두 번 가 본 적이 있다고 했다. 한 번은 작은 교회에 초대되어 갔는데, 아무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시간을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다시는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두 번째는 휴거가 온다며 초대를 받았었다. 엄청난 사람이 모였던 기억이 나는데, 그날도 아무것도 느끼거나 들리지 않았고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 다니며 힘들었던 기억만 남았다. 그 이후로 종교란 피곤한 것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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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시현된 운장주의 위력

박 도생은 첫째 성진이를 낳고 백일 무렵부터 취업을 해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는 시댁에서 아들을 돌보고 있었으므로, 박 도생은 귀가할 때 꼭 시댁에 가서 아이를 보고 집으로 가곤 했으나 어느 날 아들을 돌봐 주시던 시어머님께서 피곤해 하셔서 아들 성진이를 데리고 집에서 자게 되었다. 그런데 아들이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 집에서 울고 힘들게 해서 등에 업고 아파트 주변을 서성거렸다. 보통 아이들이 울며 보채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이날 성진이의 울음은 조금 달랐다. 집 밖에 나와서 업고 있으면 괜찮은데 집에만 들어가면 울었다. 업고 밖에 나왔다가 잠들면 집으로 들어가는데 집 앞에만 가면 깨어나 울어서 다시 밖으로 나오고 하기를 반복했다. 그러기를 서너 시간 되풀이하고 동네를 몇 바퀴나 돌았는데도 그치지를 않았다. 밤 12시 자정이 넘는 시간이 되도록 달래느라 배 도생 부부는 무척 힘들고 지쳐 있는 상태였다. 아이를 업은 박 도생은 허리도 아프고 피곤한데다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는데 잠까지 밀려왔다. 정말 울면서 힘들게 아들을 업고 있었다.

보다 못한 배 도생이 울든 말든 집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박 도생은 무슨 생각인지 의아했지만 일단 따라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서 아이를 내려놓았더니 돌이 갓 지난 아이가 엄마를 힐끗 쳐다본 후 갑자기 무서운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바닥에 막 찧으며 난동을 부리는데 자해한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였다. 이러한 광경을 본 두 사람은 너무도 놀라고 당혹해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랐다. 그때 남편 배 도생이 박 도생에게 운장주 주문에 대해 뭐라고 짧게 설명을 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운장주를 읽기 시작했다. “천하 영웅 관운장~” 딱 두 구절까지만 읽었는데 아이가 순식간에 하던 행동을 멈추고 바로 새근새근 잠이 들며 편안해졌다. 그 순간 배 도생과 박 도생은 머리가 삐쭉 서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운장주의 강력한 기운을 눈앞에서 목격한 두 사람은 말을 잃은 채 그저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잠시 후 배 도생이 박 도생에게 들려준 얘기 또한 놀라운 것이었다. 이를테면 운장주를 읽게 된 이유 같은 거였는데, 그런 얘기 자체가 박 도생에게는 아주 경이로운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배 도생의 얘기를 옮겨 보자면 이렇다. 배 도생은 재입도하기 전까지만 해도 술을 엄청나게 먹었고 술버릇이 좀 안 좋았다고 한다. 술을 먹으면 집에 안 들어가려고 하고 싸움도 하고 그러면서 경찰서도 몇 번 갔었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을 따라다닌 역마신驛馬神이 있었다고 했다. 술을 먹으면 항상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집을 찾지 못했고 깨어 보면 이상한 곳에서 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던 것이 그런 삿된 기운의 작용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아들 성진이가 과도하게 울고 보채면서 자해 행위까지 하는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이자, 문득 자신이 재입도를 해서 주문 수행을 하고 내적으로 기운이 강화되니까 술 마실 때 응기했던 복마가 더 이상 붙어 있지 못하고 주위를 서성거리다가 아들에게 달라붙어서 괴롭힌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를 물리치기 위해 운장주를 읽었다는 설명이었다.

배 도생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박 도생은 온몸에 소름이 확 끼치면서 ‘도대체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한다. ‘그 말이 맞을까? 내 눈으로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심경이 복잡해졌다고도 했다. 평소 아무것도 믿지 않고 오직 자신만 믿고 스스로의 신념대로 살아가리라 마음먹었던 박 도생의 가슴 한편에선 뭔가 잔잔한 요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 듯이, 동요되지 않은 듯이 행동하면서 잠을 청했다고 했다.
 

변화의 두려움이 빚은 신앙의 장애

어느 날 배 도생은 포항에서 개벽 이야기 세미나가 있다며 박 도생에게 함께 가자고 하였다. 예식장에서 했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굉장히 더워서 힘들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관심 가는 내용이 아니어서 끝까지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현장을 나오게 되었다.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너무 힘든 자리였다고 했다.

박 도생은 재능교육 교사로 13년을 일했는데, 한번은 증산도 신앙을 하는 어느 가정에서 학습지 수업을 받아보겠다며 소개가 들어왔다. 우연인지는 미심쩍었지만 경위야 어찌 되었든 영업을 해야 했던 터라 불편하지만 오직 일로만 생각하고 찾아갔다. 아들 셋이 있는 집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어떠한 상황에도 담담한 그 엄마가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그곳도 부부신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수업을 연계시키고 잊어버렸는데,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그 부부가 천도식을 한다며 도장으로 가자고 초대를 했다. 박 도생은 그곳에 참석하는 것이 감사함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소 어색하지만 잠시 머물다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도장에 처음으로 방문을 했다고 한다. 도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으나 성전에 모셔진 신단 모습이 많이 불편하고 이상하게 느껴져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왔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또 시간이 흘러 순수한 체험 행사가 있다고 해서 거의 끌려가다시피 하며 도장에 재방문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도장 책임자분이 처음 방문했을 때 만났던 수호사님이 아니었다.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조카의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계셨던 분이라 편안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날 오라aura 사진 촬영을 하였는데 굉장히 신기했다. 박 도생은 그때부터 조금씩 궁금증이 생겼다고 했다. 진리를 알아보겠냐는 권유를 받았지만 직장 생활이 바빠서 쉽게 참여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남편 배 도생은 계속 도장에 가 볼 것을 권유했지만, 박 도생은 변화 자체가 싫었다고 한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 그것은 박 도생이 신앙에 쉽게 다가서지 못한 근원적 이유이기도 했다.
 

혼자만의 천도식, 승부수를 던지다

박 도생이 신앙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결정적 동기는 천도식을 둘러싼 문제였다. 배 도생은 아무리 권유해도 박 도생이 신앙에 관심을 보이지 않자 마지막 수단으로 충격요법을 쓰기로 했다. 배 도생은 “당신은 알아서 살아라. 나는 내 자식만 살리겠다.”며 큰소리를 치며 아이를 데리고 매주 도장을 가 버렸다. 물론 마음에는 없는 말이었지만, 아내를 신앙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의도적으로 감행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박 도생에게 혼자 천도식을 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당신이 입도를 하지 않으면 가족 모두를 위한 천도식을 할 수 없으니, 나 혼자라도 천도식을 하겠다.”고 과감히 선언을 한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박 도생은 굉장히 화가 났다고 했다. ‘함께 노력해서 가족이 살아가는데 왜 자기 조상만 천도식을 올리는 거지? 나도 내 조상님들 따뜻한 밥 지어 드리고 싶은데?’ 하는 생각이 든 박 도생은 기분이 상하면서 한편으론 괘씸하고 억울한 심정이 드는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서운하고 화가 났다고 한다. 박 도생은 어릴 때부터 집에서 제사를 극진히 모셨고 어머님이 절실한 불교 신자라서 정성을 들이는 부분은 정말 지극하셨기 때문에 제사 문화를 잘 이해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사를 잘 지내면 가정에 행복이 깃든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남편이 자신을 배제하고 혼자서 천도식을 하겠다고 하니 서운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편은 온전한 천도식을 모시려면 아내인 자신이 입도를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기 때문에 박 도생은 결국 2003년 4월 입도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박 도생의 입장에서는 사실 천도식을 모시기 위해 입도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천도식을 올리기 위해 입도 준비를 하고 그 과정에서 진지하게 증산도 진리를 바라보고 공부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완벽한 진리 정립은 안 되었지만 서서히 공부를 하면서 하나둘씩 알아가게 되었고, 증산도 신앙 문화도 비로소 이해를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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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억울함이 만든 신앙인’

입도를 준비하면서 7일 동안 새벽 수행을 진행했는데, 박 도생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행을 함께 해 준 남편 배 도생과 도장 예정님이 너무도 감사하다고 했다. 오전 공부를 하다가 출근하고 또 도장으로 바로 퇴근을 해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일주일 동안 쉴 틈 없이 입도 준비를 했다. 박 도생은 힘들다는 생각보다 신기하다는 생각과 전혀 몰랐던 내용들이라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아울러 박 도생은 입도 준비를 도와 준 도생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자신만 힘든 게 아니라 진리 공부를 도와주시는 모든 분들이 참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입도 준비를 하던 여러 사람이 있었는데 각기 공부 시간이 달랐던 만큼 교육을 담당하셨던 분이 얼마나 힘들었겠느냐는 것이다. 질문을 하면 바로 대답을 해 주지 않고 계속해서 직접 찾아보게 유도했던 도생님과 마지막 날 머릿속이 엉켜 버려서 입도 시험을 포기하려고 하는데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준 교정님 등 그 시절 모든 분들이 친절하고 감사했다는 흐뭇한 기억을 박 도생은 지금까지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단독 천도식 문제로 촉발된 입도 과정의 얘기를 들려주면서 박 도생은 자기 자신을 ‘억울함이 만든 신앙인’이라고 묘사했다. 여러 의미가 담긴 재미있는 표현인데, 결과적으로는 남편 배 도생이 원하던 그림대로 안착을 했다. 이는 남편이 승리한 전략의 산물로 비치기 쉽지만, 실은 부부 공동의 승리요 인생 최대의 역대급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참하느님의 진리권에 진입하는 부부간의 공방전, 밀당 스토리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배 도생은 그간의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을 믿고 따라와 신앙의 동반자,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준 박 도생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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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신뢰, 그리고 봉사에 얽힌 신앙 스토리


 

가족포교를 만든 신뢰의 문제

배 도생은 입도 후 가족포교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이제 겨우 아내와 아이들, 부모님 정도밖에 입도를 못 시켰지만 그 기반을 형성한 것은 가족들에게 자신에 대한 신뢰를 유지시켰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배 도생은 신앙을 하면서 가족 포교가 성사되려면 집안에서 가족, 친지들에게 우선 자신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고 전제가 되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배 도생은 신앙하면서 집안일을 더욱더 세심하게 챙기고 신앙하기 전보다 가족들에게 더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을 했다. 그 결과 아직은 진리 의식과 도정 참여가 부족하지만 부모님이 큰 난관 없이 입도를 하시게 되었다.
 

당당하게 신앙을 하다

박 도생은 신앙 초기에 경기도에 살고 있는 둘째 언니네 조카들을 포교했다. 그 집이 딸만 넷인데 아이들이 모두 착하고 똑똑하고 영리하다. 아이들이 방학이라 포항으로 놀러왔을 때 아이들에게 상제님 진리를 전했다고 한다. 아들도 없는 집안이라 조상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좀 더 간절하길 바랬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음식을 먹으며 우주 1년 이야기를 통해 상제님 이야기를 전했는데, 첫째가 관심을 가지고 증산도를 알아보고 싶다고 했다. 돌아가면 도장을 찾아가 보고 싶다고 해서 집이랑 가까운 경기도 구리수택도장으로 인도를 했다. 함께 가지도 못했지만 스스로 찾아가서 도장 도생님의 친절한 안내를 통해 입도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부모가 증산도를 잘 모르는 경우 신앙 반대에 부딪히기 쉽고 특히 학업을 닦는 청소년이라 제약이 큰 것이 사실이라서 입도 성사에 우려가 있었으나, 첫째 조카는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당당하게 신앙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실제로 언니네 부부의 허락하에 무사히 입도를 하게 되었다. 형부에게 증산도 신앙을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살펴보니 증산도는 종교라기보다는 대단한 학문을 공부하는 곳인 것 같다며 처제를 믿는다는 말과 함께 아이들의 신앙을 허락해 주었다는 것이다.

조카가 입도 공부를 하며 이것저것 물어왔는데 시원하게 대답할 수 없었을 때 박 도생은 스스로 답답함과 부족함을 느끼며 기도했고 눈물도 흘렸다고 한다. 첫째가 입도를 하면서 둘째도 셋째도 입도를 하고 사촌도 입도를 했다. 현재는 도장 참여가 잘 되지 못하고 있지만 태을주와 운장주 등 주문을 읽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번은 구리수택도장의 청포 도생이 천도식을 해야 했으나 사정이 있어서 당일에 참석을 못했는데, 그 자리를 첫째 조카가 채워 대신 천도식을 모셨다고 한다. 박 도생은 이 얘기를 듣고서 “남의 조상을 잘 모셨으니 너의 조상님은 더 기뻐하실 거다. 남의 조상을 극진히 모시면 내 조상님 천도식 한 것과 같이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고 덕담을 건넸던 기억을 말하기도 했다.
 

저는 자손이니 술잔을 올려야

박 도생의 조카들은 여자니까 평소 가정에서 제사를 지내면 늘 뒤편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증산도 신앙을 하고 나서 조상님을 알게 되었고 자신들이 앉아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 첫째 조카는 아버지께 “나는 우리 집 첫째고 자손이니 술잔을 올리게 해 주세요.”라고 말을 했다. 그간 한 번도 술을 올린 적이 없던 터라 맏딸의 말을 듣고 아버지는 잠시 고민하더니 흔쾌히 허락하셨고, 그로부터 제사 때마다 술잔을 올리며 절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원시반본의 진리 이념과 가르침을 훌륭하게 구현해 낸 장녀의 용기와 정신에 격려의 박수를 보낼 만하지 않은가.

조카들은 현재 대학 진학 등으로 도장 참여가 어려워져서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 있는데, 대천제와 각종 도문의 행사에 부지런히 초대를 하고 있고, 본인들도 항상 태을주와 운장주를 읽으며 상제님 신앙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박 도생은 보다 적극적인 신앙 참여가 이뤄지길 기도하면서 태을주 MP3를 전달해서 태을주 기운이 충만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도장의 발이 된 17년 카니발의 전설

이 부부가 아들의 백일 축하 모임 후 귀갓길에 차량 추돌 사고로 폐차를 한 체험을 앞서 언급한 바 있는데, 차량 없이는 일을 할 수 없는 터라 사고 직후에는 박 도생이 배 도생의 차를 이용하고 배 도생은 카풀로 출퇴근을 했다고 한다. 이후 고민을 한 끝에 배 도생은 카니발 차량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증산도 신앙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 카니발과의 인연이다. 재입도 즈음의 시기에 구입한 이 카니발은 만 16년이 지나 17년에 접어들고 있다. 카니발 차량은 벌써 17년째 포항도장 식구들의 발이 되어 대전을 왔다 갔다 하는 봉사를 하고 있다. 17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은 꼭 대전을 갔으니 못해도 200번은 넘게 움직인 셈이다. 현재 주행 기록이 30만 킬로미터를 넘었는데 언제 멈출지 모르지만 오래도록 더 버텨 달라고 기도 중이라고 한다. 카니발은 포항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량이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배 도생은 대천제든 증산도대학교든 수련회든 간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장 도생들의 발이 되어 주었다. 배 도생은 직장 퇴근 후 피곤함을 무릅쓰고라도 차량 운행에 직접 나섰으며, 대전 교육관에 가서 교육 내용을 하나도 듣지 못하고 졸더라도 운전을 해서 다녀오는 투지를 발휘했다. 오죽하면 박 도생이 다시 차를 구입하게 된다면 5인승 이상은 사지 말자고 말하면, 배 도생은 ‘그래도 카니발이 좋다’며 애정을 표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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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의 뜻대로 신앙하는 삶

상제님 신앙을 하다 보면 가끔은 자기 과신이나 자존심, 욕심 등이 넘치는 사람이 나타나 개벽이나 도전 해석과 관련하여 임의로 떠들거나 분란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러한 행동은 결국 좋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 진리와 신앙은 그렇게 마음대로 재단해서 얻거나 풀어낼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때 그러한 사례에 직면했을 때 배 도생은 “그냥 우리는 지금처럼 신앙하면 된다. 욕심내지 말고 상제님 말씀대로 꾸준히 신앙하자. 억지로 알아내려고 하지 말고 포기하지도 말고 쭉 안내대로 따라가자.”라고 박 도생을 다독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부부는 늘 ‘제 개인 생각이 아닌 상제님의 뜻대로 신앙하는 참일꾼’으로 거듭나기 위해 기도하며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 부분은 지역도장 수호사님도 늘 강조하고 있는 신앙 주제이기도 하다.
 

도방은 신앙의 구심점이자 심법의 터전


입도할 때부터 가정 내 도방의 천신단은 존재하였지만, 이 부부는 함께 신앙을 하면서 신단을 잘 만들고 정성스레 모시고 싶다는 의지로 뭉쳐 많은 신경을 썼고 여러 번 교체도 했다고 한다. 박 도생의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상식을 올리면서 기준이 일정치 않은 천신단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는데, 전국적으로 가가도장의 천신단이 하나둘 공유가 되면서 더 정갈한 천신단을 꾸미기 위해 많이 연구하고 노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이 가정의 천신단은 원래 거실에 조성돼 있어 누구든 집에 오게 되면 천신단이 먼저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진법 도운이 열리는 올해 들어 결심을 하고 성스럽게 방으로 천신단을 모셔 전용 도방을 만들었다. 1년 정도 고심하던 것을 부부 도생이 최종적인 의논을 거친 후, 올 5월 초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며 천신단을 새롭게 정비했다.

부부 도생뿐만 아니라 두 자녀 도생에게도 천신단은 가족 신앙과 화합을 위해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대상이다. 자녀인 배성진 도생과 배성윤 도생은 어릴 때부터 가정도장의 천신단에서 청수를 모시고 기도도 함께 했으며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항상 천신단에 먼저 올려 두고 먹는 습관을 길렀다. 미술에 소질을 보이는 둘째 성윤 도생은 친구들이 오면 마음껏 그림 그리고 만들기를 하며 놀 수 있도록 집에서 거실 옆에 공간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것 외에도 친구와 함께 천신단 앞에서 사배심고도 하고 무릎 꿇고 앉아서 같이 태을주도 읽는다고 한다. 잘 설명은 못하지만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달라고 편지를 써서 붙이는가 하면 친구와 함께 상제님께 엎드려 기도를 하기도 한단다. 아이들에게 좀 더 쉽게 진리를 설명하고 도담을 나누기 위해 박 도생은 이전보다 더 공부하고 신경을 쓰고 있는 중이다.

배 도생에게 가정도장은 신앙의 구심점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심법과 의식의 기반을 닦는 곳이다. 박 도생은 가정도장이 자기 자신과 주변인을 수용하고 지역 생존의 터전이 되는 곳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아들 성진 도생은 이전과 달라진 가정도방에 대해 우리 가정의 수호신이라는 표현을 썼고, 도방을 또 하나의 도장이자 우리 집의 자랑거리라 말하는 딸 성윤 도생의 가정도장 활동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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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서 그 일을 하는 참여의 삶이 되기를


가정도방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앞으로의 신앙 계획과 각오를 물었다.

배 도생은 “올 한 해 더욱더 강력한 일심과 진리 중심으로 깨어져서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진리를 선포할 수 있는 진리의 화신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올해 말까지 반드시 육기초를 완수할 계획이며, 지역도장 목표인 3배가 성장과 자가 성소 마련을 위해서 더욱더 최선을 다하고, 항상 천지일월 사체와 조상님의 음덕에 보은하는 진정한 태을랑, 태을핵랑이 되겠습니다.”라는 각오를 밝혔다.

박 도생은 자신의 신앙에 대한 소회와 함께 신앙 참여 및 가족에 대한 소망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늘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핑계가 많습니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이렇게 되면 하고 저렇게 되면 안 하고.. 늘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남편의 외삼촌이 돌아가시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불편하신 몸으로 혼자 지내시다가 당신의 어머니 제삿날 쓸쓸하게 돌아가신 것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외삼촌이랑 함께 드라이브하고 밥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등이 불편하고 다리가 불편해서 삶이 많이 힘드셨어요. 이모들은 절에서 49제를 지내셨는데, 저는 바쁘기도 했지만 도장으로 모실 거니까 그곳에 참석하지는 않았습니다.

남편이 정성을 다해서 천도식을 올려 드렸고 수호사님의 안내에 따라 천도식이 끝난 후엔 제가 정성수행에 들어갔습니다. 각오는 ‘하루도 빠지지 말고 시외삼촌을 모셔 둔 도장에 가자, 무슨 일이 있어도 도장 참여를 100%로 하자’였습니다. 매일 일을 하고 아이들을 챙기면서 도장에 가기란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1주일, 2주일이 지나니까 힘들다는 것보다는 마음이 가볍고 즐거웠습니다.

앞으로도 저의 계획은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신앙해 오면서 일요일에 행사를 정해서 놀아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부모님 생신이면 하루 당겨서 하고 무슨 일이 있든 치성에 빠지지 않기 위해 날을 변경해서 치성에 참석했습니다. 아파서 움직일 수 없는 날이 아니면 치성엔 꼭 참석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또한 5월에 완성된 천신단과 도방을 계기로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상제님 신앙에 즐거움을 갖길 바라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 부부가 도장 일에 끝까지 참여했던 터라 아들은 불만이 많습니다. 혼자 도장에서 놀아야 했기에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함께 놀아준 것도 아니고 혼자 놀아야 했으니까요.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한창 엄마랑 옹알이하고 놀아야했는데 그렇게 해 주질 못했어요. 아들과는 오히려 요즘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합니다. 가족 모두가 상제님 신앙의 표본이 되길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가족을 하나로 묶는 성결한 천도식 문화

201806_062.jpg천도식이 성스러워야 하는 이유
배 도생과 박 도생이 가족들을 위해 신경을 써서 추진하는 중요한 사안은 바로 천도식이다. 천도식을 통해 집안 일가 친척들이 최대한 참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데, 직선조와 외선조 천도식 때는 열 분 이상 되는 일가 친척분들이 오셔서 증산도 문화를 알리고 진리를 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명절 때나 집안 모임 시 증산도 진리로 도담을 나누는 일이 훨씬 쉬워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올해 2월에는 사선조 천도식과 외삼촌 천도식을 올리면서 울산 이모님이 참석하셔서 이모님께도 진리를 전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천도식을 통해 조상님께 보은하고 가족뿐만 아니라 조금 더 넓게 지인들과 포교대상자들까지도 도장으로 인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배 도생은 신앙문화에 있어 천도식의 의미와 활용에 대해 이렇게 정리를 했다. “태상종도사님께서 늘 ‘우리는 개척자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증산도 문화는 우리가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천도식 문화를 사회 어떤 선천 종교의 문화 행사보다 가치 있고 성스러운 행사로 만들어서 조상님 은혜에 보은도 하고 살릴 생 자 포교의 장으로 바꾸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천도치성은 큰 잔칫날
박 도생 또한 천도식 문화를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게 생각하고 있다. 박 도생이 입도를 한 후 곧바로 진행한 일은 천도식을 위한 조상님 찾기였다. 그런데 당시 매스컴에서는 사이비 종교와 대순진리회의 비리 등 온갖 사건들로 시끄러울 때라서, 천도식 준비를 위해 부모님께 말씀을 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진리가 맞고 내 스스로가 자신의 조상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다. 할아버지 존휘尊諱를 물으며 이야기를 꺼냈는데 굉장히 좋아하시며 족보 책을 들고 나와 여러 권의 책 속에서 명단을 찾아 주셨다. 처음엔 조상님들 존휘만 물었는데 어머니께서 궁금해 하며 조상님은 왜 찾느냐고 물어보셨다. 조상님들 천도식을 올려 드리려고 한다니까 죽은 귀신 부르면 시끄러워지니 하지 말라고 하셨다. 박 도생은 천도식을 하려고 마음먹었음을 알리고, 조상님 잘 모셔서 나쁜 가정은 없으며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설득을 했다.

처음 천도식을 하던 날은 박 도생에게 아주 뜻깊은 날이었고 기억에 남는 날이었다. 친정부모님과 시부모님이 모두 참석하신 가운데 양가 조상님 천도식을 한꺼번에 했기 때문에 결혼식 이후 가장 큰 잔칫날이었다. 사실 박 도생의 친정아버지는 만주에서 형제를 모두 잃어 버렸기 때문에, 부모님과 형제들의 이름을 보며 눈물도 흘리셨고 천도식이 특별하고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과거 KBS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특별생방송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 잃어버린 가족을 찾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 도생은 2002년 올케 언니의 도움으로 중국으로 사업차 왕래하시는 분을 통해 아버지의 동생인 삼촌을 찾게 되었다. 아버지께선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형제들 소식과 조카들 소식에 기뻐하셨다고 한다. 가족이란 이런 것이다. 수십 년 떨어져 있어도 만나고 싶고 그리운 존재가 바로 가족이고 혈육이다.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 어느 하나 쓸모없는 건 없다. 서로가 다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던가.

영적 감응으로 알게 된 천도조상들의 사연
박 도생이 신앙하면서 도장에서 가장 먼저 배운 것도 천도식 문화다. 여성 도생님들이 천도치성 준비에 참여해 봉사를 함에 있어, 어떠한 곳에서 제물을 사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음식을 만들어 내는지 또 얼마만큼의 정성을 들여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천도식을 하기 위해 입도를 결심했던 게 작용을 했는지 박 도생은 도장 천도식 준비 과정에 참여해 봉사하는 일이 아주 많았다고 한다.

박 도생의 체험에 의하면, 천도치성 제물 음식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천도식을 올리는 가정의 배경을 조금씩은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한번은 음식을 준비하는데 아무리 먹어도 계속 배가 고팠다고 한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서 음식 준비가 힘든 날이 있었는데, 천도식을 봉행하실 분이 말씀하시길 돌아가신 할머니가 먹지 못해서 굶주리다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는 것이다. 또 어떤 날은 떡이 맛나 보이고, 다른 날은 고기가 맛나게 보이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는 모두 천도식을 모시는 가정의 조상신명 기운이 응해서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도장의 모든 여성 도생분들이 직장에 나가게 되어 천도식 음식 준비에 봉사를 할 사람이 거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아무리 시간 계산을 해도 안될 것 같아서 박 도생은 이틀에 걸쳐 제수 준비를 했다. 전날 밤부터 다듬고 준비하며 도장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국 끓이고 전 부치고 하며 바쁘게 준비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음식 준비를 할 사람이 단 두 명만 있었던 때가 있었다. 숨이 탁 막힐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둘이서 새벽부터 각자 일을 분담해서 하기로 하고 종일 단 한마디의 말도 못한 채 천도식 시작 시간까지 거의 물도 마시지 않고 준비했던 날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힘들게 준비하면서도 음식 준비를 하러 오지 못한 분들을 탓하기보다 치성에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길 간절히 바라며 봉사를 했다고 한다. 비록 음식 준비하는 시간엔 맞춰서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치성 때는 많이 모이니까 그걸로 만족하고 보람으로 삼았다며 박 도생은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장과 도생들을 대하는 원만한 신앙 심법을 엿볼 수 있는 사례라서 공유를 드린다.

내가 성구를 잘못 골라서...
반면 웃지 못할 천도식 에피소드도 있다. 한번은 박 도생 자신의 천도식이 있던 날이었다. 전날 기도문을 작성하는데 이상하게 태모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 사람, 사람 없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참으로 사람이 없구나!” 이 성구가 떠올라 내가 참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기도문(천도 발원문)에서 낭독하게 되었다. 그런데 천도치성 당일이 되자 치성에 모인 사람이 너무 적었다. 좌집사가 부족하여 신단에서 헌작을 하고 좌집사가 내려오길 기다려야했다. 말 그대로 사람이 없는 고난의 천도식이 된 것이다. 박 도생은 ‘아! 그동안 정성이 부족했구나’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말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동은 마음의 자취라. 말을 좋게 하면 복이 되어 점점 큰 복을 이루어 내 몸에 이른다.”고 하셨는데 내가 성구를 잘못 골랐구나 하며 가슴을 쳤다고 한다. 그 뒤로는 성구 선택을 할 때 정말 고심을 한다고 하니, 참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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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가가도장은 조상의 감화와 가호 끝에 다시 신앙의 길로 들어선 남편이 변화 대신 안정이라는 삶의 끈을 부여잡았던 탓에 신앙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던 아내를 인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거쳐 동반 신앙의 궤도에 접어든 40대 부부의 도방 스토리를 담았다.

두 사람 모두 기본적인 심법과 진리에의 인연은 갖고 있었지만 각기 그것이 활성화되기 어려운 장애 요인들을 스스로 안고 있었고, 그 활로를 틔워주는 일은 결국 조상 선령의 인도라는 신도神道의 작용과 더불어 배우자의 정성이라는 인사人事의 실현에 달려 있었다. 특히 운장주의 위력으로 역마신이 붙은 아들을 안정시킨 일이나 천도식에 대한 보은의 논리로 아내를 신앙으로 이끈 사실 등은 부부라는 공속 관계의 틀에 상제님 신앙이라는 변화의 기운을 접목시켜 동반자 신앙의 결실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이 부부는 성격상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해내고야 마는 공통점이 있어서, 힘겨운 천도식 준비에 힘을 쏟으면서도 만족과 보람을 찾는 아내와 17년을 한결같이 도장 가족들의 발이 되어 차량을 운행한 남편의 정성과 봉사 정신은 신앙생활에 있어 가장 근원적이고 중요한 ‘심법’의 문제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이들 가족은 도방을 신앙의 구심점이자 심법과 의식의 기반을 닦는 곳이라 정의했다. 또한 가족을 수호하는 성체요 지역 생존의 터전으로 가정도장을 인식하고 있는 것은 이들 가족이 상제님의 진리, 일꾼신앙의 본질과 부합되는 도방 운영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더불어 이들 가족이 천도식 문화를 매우 가치 있고 성스러운 행사로 여기고 여기에 힘을 싣는 것이나, 도장 참여에 매우 적극적인 점, 그리고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을 신앙의 지표로 삼는 모습은 이 도방의 미래와 번영을 상징하는 이정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배영관, 박미영 도생 부부와 배성진, 배성윤 자녀 도생이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도방 스토리가 그야말로 상제님 신앙의 표본이요 화합의 전범으로 승화되기를 희망하며, 상제님과 태모님의 성령과 조상선령 및 천지 성신의 가호 속에 조화로운 신앙 문화가 크게 만개하기를 기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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