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도장이야기

신앙과 함께 세운 신성한 가정도방 (최호경 양은숙) (영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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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경, 양은숙 성도
태전선화도장에서 신앙을 하고 있는 양은숙 성도는 결혼 초기 아이 양육의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성직자로서 봉직의 길을 걸으며 진리와 신앙의 근본을 확립했고 굳건한 평생신앙의 기틀을 세운 도생이다. 남편인 최호경 성도 또한 대구복현도장에서 현직 성직자로 봉직 중이며 아내 및 외동딸과 함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면서 신성한 가정 존립의 가치를 신앙의 기틀 속에서 잘 다져가고 있다. 가족 간의 신뢰와 화합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신앙과 삶을 일체로 만들며 살아가는 이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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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을 걷던 신앙인, 부부의 연을 맺다


충만한 푸르름이 계절의 여왕이라는 수사를 만들어 낸 5월은 ‘가정의 달’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가정의 역할과 책임의 중요성에 대해 정부와 민간의 인식을 제고할 목적으로 UN이 제정한 세계 가정의 날을 비롯하여,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은 물론이고 스승의 날과 성년의 날, 부부의 날, 입양의 날 등이 집결해 있는 특별한 달이 5월이다. 이 5월을 매듭짓는 마지막 날, 취재진은 대전시 중구 목동에 자리한 가정도장을 방문하여 신앙과 가정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호 가가도장 도방 기사는 태전선화도장에서 신앙하고 있는 양은숙 도생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대구복현도장에서 책임자로 봉직 중인 남편 최호경 도생과 고교생인 외동딸 최정윤 도생까지 세 식구가 하모니를 이루며 가꾸어 온 한 가족의 신앙 스토리를 함께 엮어 구성을 했다. 단출한 가족이지만 신앙이라는 공통의 범주 아래 굳게 결속함으로써 가족의 소중함과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신성한 가정 존립의 가치를 지켜내 온 이들의 사연을 들어보았다.

최호경, 양은숙 부부 도생은 둘 다 증산도 성직자로 봉직한 경험이 있다. 지금도 최 성도는 현역 도장 책임자로 봉직 중이고, 본부와 지역도장에서 봉직했던 양 성도는 현재 초등학교 교직에 근무하며 가정을 꾸리고 남편의 봉직을 응원하면서 생활 속에서 최선의 신앙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양 성도가 내온 재스민 차의 향취를 음미하며 두 사람의 만남과 봉직 과정, 그리고 가정도장의 의미에 대해 하나하나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경남 함양에서 태어난 최 성도는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83년 12월, 동료 친구의 인도로 대전 괴정동 본부 동지 치성에 참석하여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의 도훈을 듣고서 입도를 결심했다. 특히 당시 태상종도사님을 뵙고 큰 도인이시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한다. 그 후 1년여 정도 신앙을 하다가 군에 입대하면서 신앙이 단절되었고, 1988년 1월 제대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1991년 다시 입도해 신앙을 새롭게 시작했고 재입도 즈음에 중등교사 진출에도 성공하게 되었다.

201607_060.jpg양 성도는 경남 함안 출신으로, 진주교육대학교 입학 직후인 1990년 3월에 증산도 진리를 만났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에 진학하면 자기 자신을 위한 공부와 함께 우리나라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은 꿈을 갖고 있었다. 3월에 대학 도서관에서 스스로의 본질을 찾기 위해 심리학 책을 읽던 중 증산도 진리 홍보활동을 하던 류남숙 성도를 만나서 상제님 진리를 전해 듣게 되었다. 양 성도는 우리 문화와 역사를 알고 싶었기 때문에 증산도 학생회에서 전하는 우리 역사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또한 우주원리 이야기가 신기하고 너무 재미가 나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자연스럽게 도장에서 상제님과 태모님을 접하고 한 달 정도 지난 4월에 입도를 하게 되었다.

이렇듯 두 사람은 출신 지역도 비슷하고 교사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도 유사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이들이 부부로서 가정을 이룬 것은 도문에서 지인들이 만들어준 인연 때문이었다. 최 성도는 진주에서 신앙하는 고등학교 친구 원동희 성도의 소개를 받고 양 성도를 만나게 되었는데, 1998년 2월 두 사람의 첫 데이트가 주선되었으나 당시 유행하던 삐삐 기기 사용이 서툴러서 최 성도가 본의 아니게 양 성도를 바람맞히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당시 교직에 몸담고 있던 두 사람은 이후 봄 방학이 되어 다시 만남을 가질 수 있었는데, 서울에 거주하던 최 성도가 양 성도를 만나기 위해 경남 창원으로 내려갔고 이를 계기로 가까워진 후 드디어 1998년 4월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때마침 양 성도는 결혼한 해 9월에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어 두 성도는 서울에서 신혼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양 성도는 약간 수줍어하면서 신앙심이 깊고 덕망 있는 남편의 인품에 끌려서 결혼을 하였다고 술회했다.
 

선령의 꾸짖음에 다시 들어선 도문


최 성도가 군 입대로 신앙이 단절되었다가 제대 후 재입도를 하게 된 사실은 앞서 언급된 바가 있는데, 그 배경에는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몽교夢敎가 있었다. 중고교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여의는 아픔을 겪은 후 최 성도를 비롯한 4남매를 키우셨던 분이 외할머니셨는데, 이 분마저 최 성도가 대학 2학년이던 무렵 타계하시고 말았다.

최 성도가 군 제대 후 재입도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무렵, 어느 날 밤에 외할머니가 나타나 “요놈아~”라고 격노하시며 크게 꾸짖는 꿈을 꾸었다. 생전에 단 한 번도 화를 내신 적 없이 자애롭게 손주들을 돌보셨던 외할머니께서 처음으로 크게 혼을 내시는 모습을 본 최 성도는 그것이 재입도를 미루고 있는 외손자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201607_061.jpg하지만 최 성도는 그래도 나중에 하겠다고 버텼다. 그랬더니 그를 둘러싼 모든 일들과 인적, 물적 관계들이 어긋나고 무너지는 상황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생활은 갈수록 피폐하여 엉망이 되어가고, 정신병 일보 직전까지 이르는 지경이 되어서야 최 성도는 결국 손을 들고 1991년에 도문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다. 최 성도는 재입도 후 그간 무너진 심신의 회복을 위해 태을주 수행에 진력했다. 수행을 하지 않으면 몸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태을주를 읽는 것이 생활 자체가 되었고, 그렇게 1년을 하고 나니 숨통이 트이며 몸 상태가 회복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당시 뒤늦게 교직에 진출하고자 노력한 결과도 결실을 맺어 입도 후에 중고교 교사로 임용되면서 서울에서 사회생활도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우여곡절의 과정을 겪으며 신앙에 재진입한 최 성도는 그 감회나 자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는데, 본격적인 신앙의 새 출발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재입도까지의 어려움이 저로 하여금 모든 걸 신앙 중심으로 생각하고 어떤 어려움도 현실적인 방법보다도 신앙적인 방법으로 풀게 만든 것 같습니다. 그 결과로 지금의 제 자신과 저의 가정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못난 자손 하나 살리려는 조상님의 은혜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도장에서 책임자로 봉직을 하면서 마음가짐을 늘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는 성도님이라 할지라도 그 조상님에게는 얼마나 귀중한 존재일까 하는 생각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서 신앙 성장에 힘이 되어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부가 봉직의 길을 걷기까지


양 성도는 입도 후 진주교대 내에서의 동아리 활동과 경상대 동아리와의 연합 활동 및 도장 생활을 중심으로 열심히 신앙을 했다. 1학년 때 동아리방을 찾아와서 입도한 여성 성도와 둘이서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교대는 보수적인 학생들이 많은 곳이라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이려는 학생이 별로 없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여학생 2명이 동아리를 지키고 활동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악전고투를 거듭하며 둘이서 많이 울기도 했고, 그러는 과정 속에서 현장 개척과 포교의 중요성을 체험하고 배워나갔다.

201607_062.jpg1994년 교대 졸업 후 양 성도는 경남 함안의 초등학교에 발령을 받았는데, 근무 지역이 시골이라 차가 없을 때는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창원도장에 나갔다. 이 시기에 도장의 청소년 구역을 맡아 토요 치성을 진행했었는데, 당시 열심히 수련하던 도공의 기운이 터지기 시작하니까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경험하였다. 순수한 학생들이라 체험이 빠르고 자신이 체험한 내용을 학교에 공유하면서 친구들을 쉽게 도장으로 인도하곤 했다. 양 성도는 토요치성에 창원고 남학생들이 매번 늘어나는 것을 보며 이런 게 도전에 있는 ‘숙구지 도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볼 만큼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양 성도는 결혼 후 서울에서 신앙하면서 1999년 딸 정윤이를 출산했고, 이듬해부터 당시 서울번동도장에 새벽수행을 1년 넘게 다녔다. 처음에는 남편과 둘이서 다니다가 자신이 포교한 선생님을 합류시키고, 나중에는 구역원 1명도 함께 참여시켜 수행을 하였다. 같이 신앙하시던 포정님의 어머니께서도 항상 그 시간에 오셔서 함께 수행하셨기 때문에 본부 증산도대학교 교육을 마치고 새벽에 집에 들어와 피곤한 날도 도장 수행을 거르지 않고 참석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 그 때는 태을주 조화 기운과 도공 기운이 충만하여 매일 의욕이 넘치고 기운이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그렇게 상승된 기운으로 뭔가 도문을 위해 의미 있는 봉사를 하고 싶은 심지가 강렬하던 그 무렵, 본부에 봉직하던 성도로부터 종도사님께서 여성 일꾼 양육에 많은 관심을 쏟고 계신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양 성도는 본부 봉직에 지원하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양 성도의 뜻에 남편인 최 성도도 절대적인 지지 의사를 보였기에 이후 절차를 밟고 2002년 3월 본부에 내려와 청소년 대학생 포교부에서 봉직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직 어린 딸아이의 양육 문제가 마음에 걸렸다. 서울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었던 남편 혼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바로 이때 여동생(양은주 성도) 내외가 조력자로 나섰다. 1994년 언니 인도로 입도한 양은주 성도는 2001년 결혼해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아직 신혼이었던 양은주 성도는 남편 정병부 성도와 상의하여 신혼집을 대전으로 옮기기로 결단을 내렸다. 언젠가는 대전에 가서 살고 싶었고 언니의 본부 봉직으로 틈이 생긴 조카 정윤이의 양육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대전으로 집을 옮기고 언니와 정윤이까지 함께 한 집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 양 성도는 본부 봉직 시기에 동생이 헌신적으로 딸의 양육을 위해 애써준 사랑과 정성에 무척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양 성도는 본부에서 4년 정도 봉직을 한 후 2006년 3월 가정사로 인해 서울로 이주하였고 서울지역의 도장에서 책임자 등으로 봉직을 계속 이어나갔다. 한편 서울에서 중등교사로 재직하면서 도문에 봉사할 생각을 갖고 있던 최 성도는 아내인 양 성도의 강력한 권유로 교직을 사임하고 2004년에 봉직을 시작하게 되었다. 서울동대문도장에서의 봉직을 시작으로 경기, 서울 지역의 도장 책임자를 거쳐 현재는 대구복현도장 책임자로 재직 중이다.

201607_063.jpg최 성도는 부부 봉직과 관련하여 아내인 양 성도를 향해 애정이 담긴 심정을 표현했다. “집사람은 저보다 훨씬 훌륭한 신앙인입니다. 처음 집사람이 본부 봉직을 시작했을 때 저는 훌륭히 잘 수행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딸을 돌보면서 봉직하느라 어려운 상황도 많았는데 그 점도 잘 해냈습니다. 더구나 둘 중에 누군가는 아이를 기르고 가정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제가 봉직을 할 수 있도록 양보하고 배려하며 기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집사람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책임자로 봉직에 집중할 수 있는 것도 다 집사람 덕분입니다.”
 

도방은 신앙 자부심과 가정 화합의 원천


서울지역에서 교직과 봉직을 병행했던 양 성도는 2010년 다시 대전으로 내려와 목동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며, 현재는 태전선화도장에서 포감직을 수행하며 신앙을 하고 있다. 어린 아이였던 딸도 이제는 고교 2년의 학생으로 성장했다. 대전에 정착하며 집에 마련한 도방은 양 성도와 딸 최정윤 성도에게 생활의 근거이자 근본신앙의 산실이 되고 있다. 대구에서 봉직 중인 남편 최 성도는 주기적으로 집에 와서 가족과 함께함으로써 다소 소원해질 수 있는 가족간의 유대를 굳건히 하고 있다.

최 성도와 양 성도에게 가정도장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에 대한 질문에 대해 두 사람은 다른 관점에서 명확한 응답을 내놓았다. 먼저 최 성도는 도방의 배경과 역할에 대해 초점을 두고 말을 꺼냈다.

“우리 부부 두 사람 모두 지방 중견간부로서 가정을 이루었기에 서로 신앙의 반려자이면서 경쟁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모범 가정도장을 이루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거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가정도장의 중심 가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부부신앙을 통해 홀로 신앙할 때보다 신앙적으로 더 성숙해졌기에, 미혼 성도님들에게 결혼대상자를 입도시켜서 결혼하는 것보다 신앙을 잘하는 성도님과 결혼하는 게 훨씬 신앙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혼 초기에는 부부 간에 서로 다른 생활습관으로 인한 마찰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는데, 가정도방에서 수행을 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정 생활을 신앙 중심으로 한다는 원칙이 중요하고, 친가나 처가 등 집안의 다른 구성원들도 결국 신앙으로 인도할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얼마간의 갈등 요소가 있더라도 스스로를 자제하고 조절하면서 조화의 길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저에게 가정도장은 혼자서 힘들게 신앙을 했던 과거에 비해 상제님 신앙에 대한 자부심이 더 강해지고 당당해지며 두터워지는 공간으로서 큰 의미를 지닌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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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양 성도는 도방의 운영과 기능에 대한 시각에서 가정도장의 의미를 찾았다.

“집에서의 봉청수 봉행은 신앙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꾸준히 하고 있었습니다. 독립된 가정을 이루고 나서는 안방에 도방 신단을 조성하고 가정치성을 모시고 있습니다. 특히 가족의 생일에는 미역국과 나물, 조기, 과일 등 생일상을 차려서 저의 가족과 여동생네 가족이 함께 기도하고 수행을 하며 치성을 모시고 있습니다. 생일 치성 같은 때에 간지를 넣어서 칠성경을 읽어주면 가족들이 본인을 위해 준다는 마음과 상제님, 태모님, 조상선령신이 보살펴 주신다는 마음이 합해지면서 감사함이 더욱 커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가족 간의 정감과 생활신앙의 틀을 마련하는 의미도 있구요.

가정도장은 제가 하루를 시작하는 곳이고 하루를 마무리 지으며 반성하는 성소이자 살아있는 진리교육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딸아이에게 어릴 때부터 자기 전에 태상종도사님의 말씀을 읽어주었는데, 나중에는 말씀을 읽어주지 않으면 읽어달라고 요청을 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도방은 청수 모시고 태을주 읽고 도전을 읽으며 온 가족이 신앙을 같이 가꾸어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부모의 신앙을 자연스럽게 보고 배운 딸은 지금도 저녁 11시가 넘어서 학교에서 돌아오지만 항상 청수를 정결히 모시고 잠이 드는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학업으로 힘들어하는 딸의 건강과 스트레스 문제 등은 도방에서의 수행과 신유로 해결을 하곤 합니다. 신앙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하는 것인데, 생활신앙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은 가정도장이 있어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태상종도사님께서 자식은 끼고 키워야 하고 신앙을 하지 않으면 버린 자식이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는데 자식에게 신앙을 가르치고 함께할 곳은 가정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녀 신앙의 정착은 도방에서 아이들을 돌본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신앙 훈련’이 필요합니다. 저는 어린 딸을 키울 때 늘 어린이 도전과 태상종도사님 말씀을 읽어주고서 취침을 하게 했고, 차로 학교에 태워다 주면서 딸과 함께 성구 암송을 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축적된 기운을 갖고 도전성구 암송대회에 딸과 동반 출전하여 좋은 신앙 추억을 쌓기도 했습니다.”
 

도방에서 올린 영적 신유 체험


양 성도는 10여 년 전에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천도식을 올려드리고 난 뒤에도 자주 꿈에 나타나시곤 했다. 그 이유를 궁금해 하다가 신도에 밝은 한 성도님의 조언을 듣게 되었는데, 할머니께서 살아생전에 골반뼈가 부러져서 걷지 못하는 상태로 돌아가신 탓에 몸이 불편해 잘 다니지를 못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할머니를 위한 신유치성을 권유받게 되었다. 당시 본부에 봉직 중이라 가정에서 제물치성을 올리고 신유치성을 해드려도 되는지를 알아본 후, 7일간 입공치성을 올리고 가정도장에서 본격적인 신유치성을 봉행했다. 평소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백설기와 막걸리 등을 준비하여 제물 치성을 올리고 할머니가 누워 계신다고 생각하고 꾸준히 신유를 해드렸다. 신유치성 후 다시 할머니가 어떠신지 알아보았더니 덕분에 완쾌되어 잘 다니고 계시며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양 성도는 당시에 가정에서도 치성을 모실 수 있고 돌아가신 조상님도 자손이 신유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고 했다. 장소와 방식의 문제를 초월하여 조상과 자손은 밀접하게 상호 응감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그 후 서울로 이사를 가서 생활하던 중 또다시 할머니께서 꿈에 나타나셨다. 이번에도 예전 성도님의 도움을 받았고, 할머니께서 손녀를 따라 진리 공부를 하고 싶으신데 신발이 커서 자꾸 벗겨지니 마음이 바쁠 때는 벗어 들고 다니신다고 했다. 천도식 때 올려드린 신발이 컸던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 신발을 두 켤레 샀고 진리 공부를 할 수 있는 책자와 노자를 넣어서 가정에서 치성을 올렸다. 그 후 할머니께서는 신발이 맞아서 진리 공부를 잘 하고 다니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가정도장과 포교활동


부부가 신앙을 한다는 것이 진리를 전하는 포교활동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치느냐의 문제는 늘 관심의 대상이 되는 주제이다. 최 성도는 이에 대해 서로의 가족포교와 지인포교 때 부부 신앙이 아주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친구나 가까운 지인 포교를 할 때는 일부러 준비하거나 애쓰는 것보다는 생활 속에서 부부 신앙의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그 자체가 힘이 되고 자연스러운 어필이 됐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또한 가정도장에서의 부부 신앙 경험이 도장 성도님들의 가족신앙을 입체적으로 지원하고 성숙되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201607_068.jpg가족포교의 경우, 최 성도는 결혼 전 형님 댁에 살면서 큰 조카를 입도시켰고, 같이 살던 막내 여동생을 입도시켰다. 양 성도 또한 입도 후에 여동생 양은주 성도를 여름 방학 때 전국 대학생 연합회에서 운영하는 캠프에 데리고 간 것을 계기로 신앙으로 인도를 했다. 이외에 양 성도는 결혼 전 한창 도공의 은혜를 받았을 때 그 기운으로 포교를 한 얘기도 들려주었다. 창원에 살던 대상자의 사례가 그것인데, 그분의 아이들이 아팠을 때 양 성도가 창원까지 가서 신유를 해주며 인연을 맺었던 선생님이 현재 창원에서 신앙을 하고 있는 박선자 성도이다. 그 인연으로 생긴 좋은 감정과 함께 태을주의 힘을 느꼈던 가족이라 신앙의 길로 인도하여 선생님의 딸과 아들도 함께 신앙을 할 수 있었다. 그 분의 남편도 신앙에 협조적이라 태을궁 교육과 새벽 수행 등에 적극 지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당시 창원으로 찾아가서 도장으로 인도했을 때 도장 수호사와 포감 등 성도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수렴이 되었던 점에 대해 양 성도는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봉사와 보은의 삶을 위한 서원


도방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향후 신앙 계획 등과 관련된 마무리 질문을 했다. 최 성도는 역시 도장 운영을 하는 입장에서 신앙계획을 밝혔다. “봉직하는 모든 도업에서 최선을 다해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첫째 목표입니다. 도장 성도들이 모두 태을랑이 되어 다 함께 발전하고 서로 이끌어줄 수 있도록 힘껏 조력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현재 제 여동생 부부의 신앙이 잘 되지 않고 있는데 신앙가정으로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고, 장인 장모님 처남들도 신앙인으로 하루 빨리 자리 잡기를 기원합니다.”

양 성도는 가정과 신앙에 대한 기원을 담은 메시지를 전했다. “현재 남편은 대구복현도장에서 봉직하고 딸아이는 고2라 밤 늦게 귀가를 합니다. 혼자 가정을 지키는 시간이 많고 가족이 함께 모이기도 힘이 드는 게 현실이지만, 모두 다 각자의 위치에서 제대로 신앙하기를 바라고 천지에 보은하는 일꾼이 되기를 매일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제 스스로는 교직에 종사하고 있으므로 신앙의 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날마다 우일신又日新의 자세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상 여건이 상제님의 개벽 진리를 전해도 진지하게 수용이 될 만큼 분위기 조성이 되고 있으므로, 과거에 도공을 통해 신유 문화를 체험했던 그 경험을 복원시켜 진리 포교에 힘을 집중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 태을랑太乙郞으로서 천지에 서원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신앙인이 되겠습니다.”

한편 외동딸인 최정윤 성도도 도방의 일원으로서 평소 가져왔던 부모님에 대한 관점과 신앙관에 대해 언급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께서 신앙하는 모습을 쭉 보면서 성장을 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도장 치성이나 구역 모임, 포교 활동 현장 등 많은 곳을 따라다니며 체험하고 배웠으며, 그 덕분에 제 나름대로 보는 눈도 넓어지고 적응력도 생긴 것 같습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아버지, 어머니께서 신앙하시는 모습은 참 대단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이렇게 저를 신앙인으로 길러주시고, 든든하고 훌륭한 상담 역할도 해주셔서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내년에 고등학교 3학년인데, 상제님 진리대로 널리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향으로 향후 진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릇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정은 세상 그 누구보다 각별한 법이다. 외동딸을 바라보는 이 부부 성도의 마음과 애정 또한 여느 부모들처럼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딸 최정윤 성도에 대해 아버지인 최호경 성도는 조금은 특별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우리 딸은 자식이라기보다 우리 부부 두 사람을 통해 이 세상에 일하러 나온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정윤이는 모든 걸 알아듣고 이해해주는 아이였습니다. 다소 부족할 수도 있었을 양육 환경이었지만 이렇게 잘 자라주고 신앙에 대해 반듯한 언행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부모 입장에서는 고맙고 대견한 일입니다. 나아가 상제님 진리를 위해 열심히 일할 증산도의 일꾼으로 보다 나은 성장을 이루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이번 신앙가족의 도방 취재를 하면서, 우리는 부부의 순수한 신앙 열정과 노력이 봉사하고 화합하는 가가도장을 이룬 원동력이 되었음을 확인했다. 또한 조상선령의 강력한 영적 감응 체험이 모든 것을 신앙 중심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해주었고, 성도님들의 존재와 인연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준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대목이었다. 특히 상제님 신앙은 생사와 무관하게 하는 것이고 도방을 원천으로 진리신앙의 중심이 바로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한 양은숙 성도의 말은 신앙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본부 봉직을 통해 가까이서 체험한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의 정신과 신앙 도훈 및 격려가 큰 은혜와 선물이 되어 지금까지 인생의 등불 역할을 하고 있다는 소감도 개인적 차원의 언급을 떠나 신앙인 모두에게 ‘모시는 신앙’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해주었다.

더불어 도방 탐방의 결과로 드러난 가정도장의 의미를 찾아보자면, 생활신앙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하는 성소이고, 자식에게 신앙을 가르치며 함께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장이며, 가정 생활의 분위기와 크고 작은 갈등 요인들을 신앙으로 통제하고 조화시키는 조정소이고, 상제님 신앙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강화시킬 수 있는 신앙공간이라는 정도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신앙의 기본에 충실하면서 가정을 신앙화합의 성소로 운용하고 있는 이 가족의 도방에 상제님과 태모님의 충만한 은총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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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의 아파트 6층에 자리 잡은 이 도방에 들어서면 주인장인 양 성도의 밝고 호쾌한 웃음과 함께 오른편 거실 공간 벽 쪽에 가득 들어차 있는 서적들이 반갑게 방문객을 맞는다. 한쪽 벽면 전체가 상하 5단 책장으로 배치되어 각종 진리서적과 신앙 및 도정자료, 일반 참고서적 등이 촘촘히 꽂혀 있는 조금 특이한 풍경은 이곳이 도방임을 상기시키는 신호등 역할을 하고 있다. 안쪽 큰방에 조성한 천신단에는 낮은 여닫이 선반 위에 상제님 어진, 태모님 진영과 더불어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 모습을 나란히 모신 가운데 6개 국어로 번역된 도전道典이 함께 진열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단정하고 따뜻한 질감이 풍기는 도방 분위기는 깊은 신앙의 공력이 더해져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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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는 신앙과 감화의 체험

양 성도는 2002년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본부에 봉직하면서 느끼고 감화를 받은 체험들을 소중히 기억하고 있다.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제가 본부 부임 후 첫 업무 보고를 하러 들어갔을 때 태상종도사님께서 격려하고 힘을 주신 기억들이 생생합니다. 태상종도사님께서는 남편에 대해 물으시고 더불어 아이에 대해서도 몇 살이고 누가 돌보고 있는지 등등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셨습니다. 그 후 괴정동 본부에서 진행된 청소년 신도들 교육에 도훈 말씀을 전하러 오셨을 때는 엄마와 떨어져 생활하는 딸 아이 장난감 사주라고 격려금을 주셨는데 그 따뜻한 보살핌과 배려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인사 보고나 청소년 책자 작업을 위한 보고를 들어갈 때도 종종 딸아이가 어떻게 크고 있는지를 일일이 물어보셨고,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늘 격려하셨습니다. 평소에 저는 아이가 있어서 홀몸으로 봉직하는 신도들보다 덜 집중하게 되는 것만 같아 항상 죄송한 마음이 있었는데 태상종도사님의 말씀은 늘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도정보고 시 저 말고도 포감 한 명이 어린 아이를 데리고 참석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태상종도사님께서 그 어린 아이의 이름을 물어보시고 아이와 엄마를 함께 칭찬하며 마치 친할아버지처럼 따뜻하게 격려해 주셨었는데, 그 아이는 현재 중학생이 되어서 엄마와 같이 신앙을 잘 하고 있습니다. 태을궁에서 이따금 만나는데 지금도 당시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 감사함과 은혜에 대해 얘기하곤 합니다. 한번은 태상종도사님께서 봉직 수행에 분주하고 봉사에 여념이 없는 지방과 본부의 여성 봉직자들을 위해 옷을 사 주라고 명하셔서, 봉직자들을 백화점에 데리고 가서 말씀을 전하고 정장을 한 벌씩 구입해 주었던 일이 있었는데, 그 때 무척 행복해하고 감격해하던 봉직자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봉직 시의 여러 어려움들에 대하여 위로와 격려를 받은 일 외에도 태상종도사님 말씀을 통해 신앙 의식의 제고와 삶의 교훈을 체득한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포정원 보고 시, 태상종도사님께서는 ‘인간은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서 먹느냐?’는 말씀을 하시면서 사람은 가치관에 입각하여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고 사상신앙을 하도록 교육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스스로의 생활을 되돌아보면서 혹시 먹기 위해서 살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 보고 가치관에 입각한 삶, 즉 사상 신앙에 대해 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보고 중간중간에도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사람은 의통목을 지나 봐야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하시면서 지금은 모른다고 여러 차례 말씀을 하셨습니다. 태상종도사님 어천 후에 음해와 배신을 하고 도문을 등진 사람들을 보면서 그때의 말씀이 뼈저리게 와 닿았습니다. 또한 도훈 중에 상제님을 꼭 잡고 있어야 살 수 있다고 하시면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상제님을 꼭 붙들고 있으라고 여러 차례 말씀해 주신 기억이 있습니다.”

양 성도는 종도사님께서 배려하고 보살펴주신 은혜로운 체험도 전하고 있다.

“종도사님께서는 누구보다도 분주하신 가운데서도 늘 봉직자들에 대해 음으로 양으로 신경을 쓰셨습니다. 제가 몸이 아파서 힘들어 할 때 영양제 등을 직접 보내 보살펴 주셨고, 요가 운동을 권하기도 하셨으며 옷을 사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포정원 2층에서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있을 때면 나오셔서 격려를 해주시곤 하셨고, 가까이에서 성음을 들으면 마치 동굴 속에서 듣는 것 같이 소리가 울렸던 것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종도사님께서는 봉직자들의 교양과 문화의식의 제고를 위해 필독서적과 권장서적을 선정하여 주시고 선물도 많이 하셨습니다. 지금도 집 책장에 종도사님께서 하사하신 진귀한 책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문화수준을 높이고 머리를 식히는 차원에서 영화 관람과 음악회 관람을 시켜 주신 일도 기억에 남는 일입니다.”

본부 봉직을 마치고 서울로 이동하던 때에도 태상종도사님께서는 노고를 치하하시고 올라가면서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과자 값도 주시며 양 성도와 아이를 챙기셨다. 양 성도는 정감이 깊게 배인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의 크고 작은 격려와 말씀들이 가슴속에 그대로 남아 지금까지도 인생과 신앙에 큰 자양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본부 봉직 시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을 가까이에서 뵙고 도훈을 받들고 보고를 드리는 은혜를 입은 것은 그 후 신앙을 하고 삶을 살아가면서 항상 밝은 등불 역할을 하고 있다는 소회도 덧붙였다.

또 하나, 양 성도는 본부 청소년포교부 조직을 관장하면서 얻은 보람에 대해서도 잠시 언급을 했다. “본부에 봉직하면서 어린이, 청소년 계층을 위한 자료집 편찬과 실무교육 기회를 자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남편의 조력을 받아 어포 <팔관법 교재>를 발간했으며, 태상종도사님께 보고하는 자리에서 격려를 받았던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또한 청포 계층을 위해 <청포운영길라잡이> 교재를 만들어 포감들에게 ‘진리 교수법’을 교육하기도 했는데, 이 시기에 여러 청포 포감들이 양육이 되고 성장해 가는 모습들을 보게 된 것은 매우 보람있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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