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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과 상흔에 싸인 회교국, 수단 (영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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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은 아프리카 북동부에 위치한 나라로, 수단인들은 기원전 11세기에 이집트 문명에 비견되는 쿠시 왕국 문명을 건설하였다. 이후 4세기부터 기독교와 회교 왕조가 19세기 초엽까지 이어지다가 오스만 제국과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으나, 강력한 저항운동을 벌인 끝에 1956년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하지만 독립 이후 인종 및 종교적 갈등이 심화되고 정국의 불안정이 이어지면서 남부와 북부 간에 내전이 일어나 2011년 남부 지역이 남수단으로 분리 독립을 했으며, 2003년 이후에는 수단 서부 다르푸르 지역에서 아랍계와 비아랍계 간의 인종 청소 참극이 벌어지는 등 정치 사회적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경제 또한 원유 및 자원 등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여러 여건의 불비로 운용과 성장에 제한을 받고 있다.

이슬람 원리주의의 보수적 문화가 지배하는 수단이 당면한 국가적 난제를 극복하고 안정과 발전을 이룰 수 있기를 기원하며, 그 과거와 현재를 차분히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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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연환경과 역사


 

영토와 자연환경

수단 공화국Republic of Sudan은 아프리카 북동부에 위치한 나라로, 국명인 수단은 아랍어로 ‘흑인들의 땅(빌라드 앗수단)’을 뜻한다. 수단은 ‘남수단 공화국Republic of South Sudan’과 구분하는 의미로 흔히 ‘북수단 공화국Republic of NorthSudan’, 약칭 ‘북수단’으로도 불리는데, 2011년 7월에 국민투표 결과를 수단 정부가 수용함으로써 ‘남수단’이 평화적 과정을 통해 독립 국가로 분리되었으므로, 동독-서독이나 남한-북한의 분단 개념과는 다른 경우라 할 수 있다.

201704_127.jpg수단은 아프리카 대륙의 북쪽에 있으며 홍해와 경계를 이룬다. 면적은 1,861,484㎢로 세계에서 16번째(2016년 기준)로 넓은 나라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알제리, DR콩고에 이어 3위를 차지하며 한반도의 약 8.6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해안선은 853km이며, 북쪽으로 이집트, 북동쪽에 홍해, 동쪽에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 남서쪽에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남쪽에 남수단, 서쪽에 차드, 북서쪽으로는 리비아와 접경하고 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인 나일Nile 강이 수단을 동쪽과 서쪽으로 가르며 흐르고 있다.

국토는 나일 강 연안을 제외한다면 평야와 고원지대로 구성되어 있다. 남부에는 1,500m 이상의 이마통Imatong 및 누바Nuba 산맥, 서부에는 자벨 마라라Jabel Marrah 라는 3,024m의 사화산, 그리고 북동부에는 레드 시 힐Red Sea Hill 등이 있다.

백나일 강과 청나일 강이 수단에서 합류하여 이집트와 지중해를 향해 흘러간다. 청나일 강은 길이가 800km로 이어지며 딩다 강과 만나기도 한다. 백나일 강은 뚜렷한 지류가 수단 내에서 없다. 댐이 여럿 있으며 누비아 호수 인근에 이집트와 국경을 맞닿고 있다. 나일 강 부근의 지나친 경작과 계속적인 사막화로 인하여, 농경지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수단의 교통 상황은 영국 통치시대에 건설된 철도와 나일의 수로가 전통적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공업화 정책에 따라 도로의 정비가 추진되고 있으나 현재에도 우기에는 간선도로 이외의 곳에서는 교통이 곤란하다. 차량은 우측 통행이며, 도로가 협소하고 노후 차량들이 많은 관계로 도로별 속도 제한은 의미가 없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안전벨트 착용을 하지 않으며, 시내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편리한 곳에 주차하면 된다. 로타리 회전 시 좌측 차량에 우선권이 있다. 최근 중고차 수입으로 거의 50%의 차량이 한국차이다. 햇볕이 강하므로 창문은 썬팅을 하는 게 좋으며, 열악한 도로 사정과 수명 연장을 위해 내구성이 강하고 잔고장이 적은 디젤 차량를 구입, 운행하는 것이 유리하다. 비가 내리면 수도인 카르툼 전역에 도로가 통제되고 대중교통이 운영되지 않기도 하는데, 이는 배수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아 도로 침수가 심해 운전이 어렵기 때문이다.

기후는 남부가 열대성 기후이고, 사막에 접해 있는 북부는 건조한 사막기후(습도 15% 이하)로 1~2월을 제외하고는 연중 고온의 매우 더운 날씨가 지속된다. 여름에는 온도가 40도 후반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습도가 낮아 그늘에 가면 지낼만 한 수준이다. 사막, 스텝, 사바나, 열대우림성으로 바뀌며 남하할수록 강우량이 많아지고 기온도 높아진다. 3~6월, 8~11월은 고온 건조하고 자외선이 강하다. 낮에는 뜨거워서 야외 활동이 거의 불가능하고, 야간에도 30도 중반을 유지한다. 7~8월에는 우기로 습도가 높고 갑자기 다량의 소나기가 내리기도 하지만 몇 차례 되지 않는다. 남부지방의 경우에는 비가 자주 내린다. 12~2월은 한국의 가을 날씨와 유사하며 건조하지만, 밤낮 기온차가 상당히 크다.

수단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기상 현상으로 하붑Haboob이라는 것이 있다. 하붑Haboob은 아랍어로 강풍, 폭풍, 또는 먼지폭풍을 뜻하는 말로, 수단에 불어오는 모래폭풍을 의미한다. 하붑은 주로 여름철에 뇌우가 최종 단계에 다다랐을 때 생기는 하강 기류에 의해 발생한다. 하강 기류가 강하하는 공기를 지표면에 부딪치게 해 사하라 사막에 있는 대량의 먼지를 들어 올리게 되고, 이렇게 모인 먼지 구름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하붑을 형성하게 된다. 하붑은 사막지형인 수단에서 매년 나타나며, 중동지역, 미국에서는 기온이 높은 애리조나나 텍사스 등지에서 가끔 나타나기도 한다. 수단에서는 보통 4~6월 사이에 하붑이 불며, 때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지만 심한 경우에는 초속 17~25m의 강풍이 수백 미터의 높이로 불어 한 시간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 하붑이 불어올 때의 먼지 농도는 한국에서 부는 황사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짙어 건강에도 매우 좋지 않다.
 

수단의 역사

선사시대와 쿠시왕국
수단 지역에는 BCE 8000년경 신석기 문화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 정착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일 강 지역을 중심으로 어업과 사냥 등으로 생활하던 이들은 BCE 5000년경 사하라 사막 지역에서 온 이주민들의 인도로 나일 강 계곡에서 농업을 영위하다가, BCE 1070년경 나일 강 중류에 위치한 누비아Nubia지방에 쿠시Kush 왕국을 건국하였다. 이는 아프리카에서 이집트 이외에 고대 문명의 존재가 확인된 곳이 현재의 수단 지역임을 의미한다. 쿠시왕국은 청동기 시대가 끝나고 이집트 신왕국의 분열 이후에 세워졌으며 건국 초기에 나파타Napata에 중심을 두었는데, 쿠시 문명은 철기 제련 기술을 사용하던 세계 최초의 문명 중 하나이다. 고전시대에 쿠시 왕국의 수도는 메로에Meroë였으므로, 쿠시 왕국은 메로에 왕국, 누비아 왕국으로 불리기도 했다. 쿠시인인 카시타Kashta 왕은 기원전 8세기에 이집트를 침공해 정복하였다. 이후 쿠시인들은 아시리아가 그들을 쫓아낼 때까지 쿠시인 파라오가 ‘에티오피아 왕조’라 불렸던 25번째 왕조로서 이집트를 다스렸다. 쿠시 왕국은 기원후 4세기까지 존속하다가 에티오피아 북부에 있던 악숨 왕국에게 정복되어 멸망하였다. 쿠시 제국의 멸망 이후 몇몇 나라들이 이전의 영토에서 세워졌고 그 중에 누비아Nubia도 있었다.

기독교와 이슬람
6세기 경, 메로에 왕국의 정치적 문화적 후계자로서 노바티아, 무쿠라, 알라와 등 50개의 국가가 세워졌다. 540년경에는 비잔틴 황후 테오도라가 보낸 선교사가 노바티아에 도착해 기독교를 설파하기 시작했고 이후 16세기 초까지 수단 지역에는 누비아 기독교 왕조 시대가 이어졌다.

7세기 중반부터 수단 지역에 아랍인들의 이민이 시작된 후 13∼15세기에는 그리스도교도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슬람은 긴 시간에 거쳐 이종결혼(intermarriage)과 아랍 상인들, 수피교 수행자와 정착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수단 지역에 스며들었다. 이들 아랍인들은 원주민들과 뒤섞여 수단인을 형성하였는데 이들은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아랍어를 사용하였다. 오늘날의 북수단 문화에서도 자주 누비아와 아랍의 문화 요소가 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6세기 경, 푼지Funji라 불리는 부족이 아마라 둔쿠스Amara Dunqus라는 지도자 아래 남 누비아에서 나타나 오래된 크리스천 왕국인 알와의 일부를 탈취해 앗살타나 앗자르카(푸른 술탄국) 혹은 센나르 술탄국(Sultanate of Sennar)이라 불리는 이슬람 국가를 세웠다. 푸른 술탄국은 결국 푼지Funji 술탄국의 뼈대가 된다. 이 왕국은 19세기 초까지 이어지다가 후계 분쟁과 왕족의 쿠테타가 계속되며 쇠락해졌다.

오스만 통치기와 마흐디 수단
1821년, 이집트를 정복한 오스만 터키계의 무함마드 알리Muhammad Ali 총독이 수단을 침공하여 마지막 푼지 술탄 바디 7세의 항복을 받아 냄으로써 수단은 이집트의 1개 주로 전락하여 오스만 제국의 이집트 총독하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집트 총독 정부의 통치하에서 실행된 부패와 농부들에게 과해진 모진 세금 징수 등의 폐단이 쌓이면서 반정부 저항 활동이 늘어나게 되었다.

결국 1881년 6월 개혁주의적 인물인 알-삼마니야al-Sammaniyya 종단의 지도자 무함마드 아마드 압둘라Muhammad Ahmad Abdulla가 스스로를 마흐디Mahdi(회교에서 구세주)라 선언하고 수단 혁명의 지도자로 등장했다. 그는 오스만투르크제국과 서구 지배로부터 벗어나 수단의 진정한 독립과 자유, 이슬람으로의 회기를 주장하며 투쟁 세력을 규합해 종교적 폭동을 일으켰다.

그가 이끄는 마흐디군은 마침내 1885년 1월 카르툼을 함락시켜 수단의 전 지역을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수단의 터키-이집트 정부에 승리를 거두었다. 카르툼 정복 후 몇 달이 지나 무함마드 아마드가 병으로 사망하자 압둘라 이븐 무함마드Abdullah Ibn Muhammad가 뒤를 이어 마흐디 운동을 이끌었다. 마흐디 운동을 통해 수단은 처음으로 여러 부족들에 의한 분열된 통치 구조에서 통합된 근대국가로 넘어갈 수 있는 중앙집권 형태의 정부를 수립하는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1899년 9월 2일 마흐디 군대는 카라리Karari 전투에서 영국 식민주의 토벌대의 키체너Kitchener 장군에게 패했으며, 곧이어 마흐디 국가의 수도로 정했던 움두르만Umm Durmān이 함락되고, 지도자인 압둘라 이븐 무함마드도 사망함으로써 마흐디 운동은 막을 내렸다.

영국-이집트 수단
1899년 수단을 정벌한 영국은 영-이집트 간에 수단 공동통치협정을 맺어 수단 지역을 ‘앵글로이집트수단’이라고 불렀다. 영국과 이집트는 이집트에서 임명한 총독을 영국이 승인하는 식으로 선출한 총독이 수단을 운영하는 것에 찬성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수단은 영국의 식민지로서 효율적으로 통치되었다. 1924년에 영국 식민통치에 반대하는 수단인과 수단에 대한 이집트 지배권을 주장하는 이집트 민족주의자의 반발로 수단 총독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은 저항 운동이 극심한 북부 수단에 대해서는 Native Administration제를 도입하고, 남부 수단에 대해서는 Southern Policy를 채택하여 영어, 토착어 장려 및 기독교 포교를 강화함으로써 남북 간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제반 관계를 단절시켜 상호 괴리를 심화시키는 정책을 취했다.

독립 이후
하지만 계속된 영국의 수단 통치로 인해 이집트에선 갈수록 민족주의자들의 거친 반발이 일어났고 저항운동이 날로 격심하여짐에 따라 이집트와 영국은 북수단과 남수단의 주민들이 영국의 철수를 원하는지 자유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1953년 2월 영-이집트 협정에서 수단의 자치 독립을 위한 3년간의 준비기간이 합의되었고, 마침내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11년 만인 1956년 1월, 수단은 영국과 이집트 승인 하에 수단공화국으로 독립을 성취하였으며, 뒤이어 AL(Arab League: 아랍연맹)과 UN(United Nations: 국제연합)의 가맹국이 되었다.

그러나 영국 식민 정책의 결과로 남부와 북부 간의 지역 대립 및 다수 정당의 난립으로 국정의 혼란이 계속되었고, 1958년 11월에는 이브라힘 아부드Ibrahim Abboud 장군이 무혈 쿠테타로 군사 정권을 수립하고 정통 이슬람 국가를 선언하였다. 1964년에는 하르툼 대학생들을 선두로 한 군정반대운동인 10월 시민혁명이 일어나 아부드 정권을 무너뜨렸고, 민간 정치인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부가 수립되어 의회정치 체제가 되었다. 하지만 당쟁과 남부 문제 등으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안정을 회복치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자 1969년 5월 가파르 니메이리Gaafar Nimeiri 대령이 이끄는 두 번째 쿠데타가 일어나 다시 군정으로 복귀했다. 니메이리의 새 정부는 수단사회주의를 선언하고 국호를 수단민주공화국으로 개칭하였으며, 구정치인 및 반대파에 대한 대 숙청을 단행했다. 외국인 자산과 은행을 국유화하고 경제 원조 및 군사 원조의 대공산권 의존도를 급속히 높였다. 1972년에는 좌익 장교단 쿠테타 음모를 분쇄하면서 공산주의 세력을 타도하고 총선에서 니메이리가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며, 수단 사회주의 연맹(SSU)을 창립하고 단일 정당제를 채택했다.

1985년 3선의 니메이리 대통령이 외유 중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다하브Abdel Rahman Swar al-Dahab 장관은 1986년 민정 이양과 동시에 제헌의회 선거를 실시했다. 이어 1989년에는 오마르 알 바쉬르Omar al-Bashir가 군사 쿠데타로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바쉬르는 이후 연이은 집권 연장에 성공하여 2017년 3월 현재까지 28년째 장기집권 중이다.

수단은 1983년부터 내전內戰을 시작했다. 주로 남부 아프리카계 함족인 기독교도와 토속 정령신앙을 믿는 주민들로 이루어진 수단인민해방군(SPLA)이 아랍계 셈족으로 이루어진 북부 중앙 정부의 지나친 이슬람 원리주의와 차별 정책에 반기를 든 것인데, 남부 반군측은 남부 지역의 자치권과 자원 이용 확대를 요구하면서 반정부 분리 무장 투쟁을 개시했다. 그간 이 내전의 과정에서 200만 명 이상이 죽고, 400만 명 이상이 강제 추방, 구타, 강간 혹은 고문의 고통을 체험하거나 노예로 팔린 것으로 전해진다. 2005년 1월 남부 반군과 북부 정부군 간의 포괄적 평화협정으로 내전은 종료되고 평화협정에 따라 수단 정부는 남부에 반자치권을 부여하였으며, 그 후 2011년 7월 9일 남부는 독립투표를 통해 압도적인 찬성률로 남수단으로 분리 독립하게 되었다. 이로써 남부와 북부의 인종, 종교적 갈등이 어느 정도는 해결됐으나, 아직도 수단 내에서는 정치의 혼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2. 정치 및 행정


정치체제 및 행정
수단의 국체는 공화정이며 정부형태는 대통령 중심제이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은 1989년 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계속 연임에 성공해 장기 집권 중인 오마르 하산 아마드 알 바쉬르Omar Hasan Ahmad al-Bashir이다. 바쉬르는 1989년 쿠데타로 집권하면서 총리직을 없애고 대통령이 총리를 겸하면서 대통령 아래에 두 명의 부통령을 두는 체제로 행정을 운영해 왔다. 그런데 최근 수단 의회가 표결을 통해 총리직 복원 등을 포함한 헌법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28년 만에 처음으로 총리를 임명하였다. 2017년 3월 2일 수단의 새 총리에 임명된 바크리 하산 살레Bakri Hassan Saleh 부통령은 바쉬르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인물로, 부통령직을 유지하며 즉각적으로 새 내각 구성에 착수할 것이라고 집권 국민의회당(NCP)이 밝혔다.

바쉬르 대통령은 2003년 2월 수단 서부 다르푸르Darfur 주에서 발생한 내전으로 30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과 관련하여, 상설 전쟁범죄재판기구인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의해 전범 등 6가지 혐의로 2008년 7월 체포 영장이 발부된 바 있다. 그런데 2015년 말 남아프리카공화국은 50여 개국의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를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최하면서 ICC 검찰 당국이 반인륜 범죄 피고로 체포 영장을 발부한 오마르 바쉬르 수단 대통령을 초청했다. ICC 회원국은 체포장이 발부된 피고를 붙잡아 ICC에 인계할 의무가 있는데 남아공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2008년까지 다르푸르 지역에서 자국민 30만 명을 학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바쉬르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남아공 정부와 달리 한 지방법원이 인권 단체의 요청대로 바쉬르의 체포를 명했고 이 소식을 들은 바쉬르는 정상회의 도중 몰래 남아공을 빠져나와 귀국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후 남아공 정부는 주권 침해를 이유로 ICC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하고 ICC에 가입 철회를 통고했으나, 지난 2월 22일 남아공 법원으로부터 ‘위헌 및 무효’ 판결을 받아 가입 철회 통고를 취소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지방행정
수단은 18개 주州로 구성되어 있다. 홍해Al-Baḥr al-Aḥmar 주州, 알자지라Al-Jazīrah 주, 알카르툼Al-Kharṭūm 주, 알카다리프Al-Qaḍārif 주, 백나일강An-Nīl al-Abyaḍ 주, 청나일강An-Nīl al-Azraq 주, 북부Ash-Shamālīyah 주, 서부 다르푸르Gharb al-Dārfūr 주, 서부 쿠르두판Gharb Kurdufān 주, 남부 다르푸르Janūb Dārfūr 주, 남부 쿠르두판Janūb Kurdufān 주, 카살라Kassalā 주, 나일강Nahr an-Nīl 주, 산나르Sannār 주, 북부 다르푸르Shamāl Dārfūr 주, 북부 쿠르두판Shamāl Kurdufān 주, 동부 다르푸르Sharq Dārfūr 주, 중앙 다르푸르Wasaṭ Dārfūr 주 등이다.

입법부
수단의 입법부인 국회는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하원에 해당하는 국민회의에 450석, 상원에 해당하는 연방의회에 50석이 배당되어 있고 임기는 모두 6년이다. 의회의 권한으로는 입법권, 정부예산 심의권, 각료해임 건의권, 선전포고, 비상사태선언 등 모든 입법권을 보유하고 있다.

사법부
수단의 사법기관에는 최고재판소, 고등법원, 지방법원, 특별군사 재판소, 종교재판소가 있다. 최고재판소는 위헌입법 심사부(재판장 1, 판사 7명으로 구성), 민사부, 형사부, 행정부, 이슬람교도 신분 관계부, 비이슬람교도 신분관계부(각각 3명의 판사로 구성) 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등법원은 각 주에 지방법원은 주요 도시에 소재하고 있다. 특별군사 재판소는 국가반역죄, 치안유지 위반사건 등을 취급하고, 종교 재판소는 이슬람법에 의거 이슬람교도의 신분소송을 취급하고 있다.
 

3. 경제


경제 구조 및 특성
수단경제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경제체제로써 농·축산업(49%), 제조업(16%), 서비스업(35%)의 산업구조를 보이고 있으며 도로, 항만, 전기 등 사회 간접시설의 불비와 숙련노동력의 부족으로 경제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수단은 1989년 6월 30일 혁명 정부 수립 후 과격 이슬람화 정책을 시행하였는데 걸프전에서의 이라크 지지, 남부 내전 난민, 인권문제 등으로 미국, 영국 등 서방국가와의 관계가 악화됨에 따라 국가재정의 75%에 달하는 대외원조의 중단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어 왔다. 수단은 그 잠재성에도 불구하고 20년 동안 이상 지속된 내전으로 전 국토의 피폐화와 전비지출에 매몰된 경제로 국가재정의 75% 이상을 대외원조에 의존하는 최빈국 중의 하나로 평가되어 왔다. 빈사 상태의 수단 경제를 구한 것은 원유 개발로 1999년 중국 자본에 의해 남부 유전지대와 홍해 석유수출항인 포트 수단을 잇는 1,600km의 파이프라인 완성과 8월 원유 수출 개시로 연 6% 이상의 경제 성장의 계기로 작용하였다. 새로운 유전 발견과 수출확대로 2000~2008년까지 연평균 6% 이상의 성장을 기록하였으나 물가급등, 빈부격차 심화, 석유 수입 자금의 인프라 투자 연계 미약 등 문제점도 상존하고 있다.

수단중앙은행 통계에 의하면 2015년 말 기준 수단의 교역 규모는 수출이 31억 달러, 수입이 95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주요 수출품은 원유, 석유제품, 원면, 땅콩이며, 주요 수입품은 식료품, 공산품, 수송장비 등이다. 주요 수출대상국은 일본(48%), 중국(31%), 한국(3.8%) 등이며(2006년), 주요 수입대상국은 중국(17.7%), 사우디 아라비아(9%), 아랍에미리트(5.6%), 이집트(5.2%), 독일(5.1%), 인도(4.5%) 등이다(2006년 기준).

최근 경제 동향 및 향후 전망
수단은 아프리카에 위치하고 있으나 종교, 문화 등 특징은 아랍 영향권에 속하며, 인구, 면적, 1인당 GDP 등 고려 시 상당한 내수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비옥한 옥토 및 원유, 금 등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농업 및 광물 자원 생산 시장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으로 인한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수단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 대한민국의 10대 수출국가이다.(2016년 11월 기준 1.39억 달러 규모)

수단은 경제 제재 장기화로 인한 외환보유고 고갈과 무역적자 지속, 원유가격 하락, 그리고 남수단 원유 수출 분배로 얻던 재정 수입의 대폭 감소 등으로 경제 여건 악화가 지속되어 왔다. 자원 의존적 경제구조로 산업기반이 취약하고, 고정투자 및 FDI 감소, 외채 누적, 경상수지 적자 등으로 경제발전이 지체되고 있으며, 실질적 경기도 후퇴 국면에 처해 있다.

이와 같은 경제 환경에서 수단은 재정 확보를 위해 곡물 수출을 활성화하고 제조업 투자 유치를 위해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신흥 수출 품목으로 금광 산업을 수출 시장 견인차로 육성하고 있다. 수단은 남아공과 가나에 이어 아프리카 3위의 금 매장량을 주장하고 있는데, 2015년 수단의 금 생산량은 약 80톤 규모이고 향후 매년 45~50톤을 생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단 경제의 향후 미래를 전망해 보면, 약한 경제 기반 및 장기 경제제재로 경제 발전을 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외환보유고 고갈, 무역적자 지속, 원유가격 하락, 남수단과 원유 수출 분배로 재정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므로,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수단 정부의 성장 동력 산업 육성 및 정부의 변화 관리 능력 제고의 노력이 요청되고 있다. 경제제재 해제로 인한 기대심리 상승 및 단기적 물가 상승, 달러화 부족 현상 심화 등 고립경제의 체질 변화가 요구된다. 수단은 앞으로 잠재 해외투자의 유입 확대 및 달러화 거래 자유화로 인한 교역 활성화 등을 통해 경제 발전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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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회와 문화


사회문화적 특성
수단은 이슬람 원리주의 지배하에 있는 보수사회이므로 사회 문화적 특성도 이슬람의 율법과 풍습에 속해 있다. 그러므로 수단의 사회 정서를 이해하려면 라마단, 살라트, 이프타르 율법 문화와 복식, 음주 및 여가 문화 등에 대해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라마단Ramadan(금식) 매년 이슬람력 라마단월에 일출부터 일몰까지 식음을 금지하는 단식 기간을 의미한다. 이는 무함마드가 라마단 달(음력인 이슬람력의 9번째 달)에 처음으로 신의 계시를 받은 것에서 유래하며, 이슬람 각국에서 첫 초승달 관측 후 라마단을 발표하므로 국가별로 하루씩 차이가 나기도 한다. 라마단 한 달간 일출부터 일몰까지 물을 포함한 음식 음료의 섭취, 흡연, 성행위는 물론 폭력, 화, 시기 등이 금지된다. 라마단의 목적은 단식과 금욕을 통해 굶주린 자들의 고통을 체험하고, 인내와 자제력을 연마하면서 신에게 순종하고, 과실과 악행을 속죄함으로써 신앙을 공고히 하는 데 있다.

살라트Salat 수단은 코란과 하디스에 나오는 규칙들과 원리들을 판례들과 율법으로 편찬한 ‘샤리아 법’을 적용하는 나라이다. 이슬람은 믿음과 실천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중 실천은 이슬람의 다섯 기둥으로 ①신앙고백(샤하다), ②기도(살라트), ③자선(자카트), ④단식(사움), ⑤메카순례(하지)를 의미한다. 이 다섯 기둥 중, 살라트는 매일 5번 ①새벽 해뜨기 전, ②정오, ③오후 중간쯤, ④해질 때, ⑤잠자리에 들기 전에 해야 한다. 시간은 정확히 정해져 있지 않고, 해당 시간대 안이면 개인이 선택하여 기도를 드리면 된다. 살라트를 시작하기 전 ‘우두(부분 세정)’를 해야 한다. 우두는 손, 입, 코, 얼굴, 팔, 머리, 귀 그리고 발을 씻어야 하는데, 이것은 단순한 외적 청결을 넘어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결심도 의미하며, 바닥에 양탄자 또는 수건 등을 깔고 메카 지역의 카바 신전을 향해 행해야 한다.

이프타르Iftar 이프타르란 ‘금식을 깬다’는 의미로, 이슬람 신자들이 라마단 기간 동안 일몰 전까지는 금식을 하고 일몰 후에 가족 및 친지와 함께 푸짐한 식사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음식의 종류에는 따로 정해진 것이 없다.

음주 이슬람에서 금기해야할 사항을 하람Haram 이라한다. 음주가 이슬람에서 하람이 되기까지는 몇 가지의 단계가 있었다. 그 중 마지막 단계가 코란 ‘알-마이다’장에 나오는 “믿는 자들이여. 술과 도박과 우상숭배와 점술은 사탄이 행하는 불결한 것들이거늘 그것들을 피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번성하리라.”는 구절이다. 이슬람에서 음주자는 신과 그의 사도들에게 저주를 받는다고 보며, 술자리에 동석하는 것도 하람으로 본다. 또한 음주를 하면 40일간 예배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음주에 대한 하람은 수단 내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따라서 내국인, 외국인을 불문하고 수단 내에서의 음주는 불법이다.

201704_138.jpg히잡Hijab 이슬람 여성 전통의상은 부르카, 니캅, 히잡, 차도르가 있다. 각 의상들마다 몸을 가리는 정도와 형태가 다르다. 부르카는 눈을 포함하여 전신을 가리는 의상으로, 얇은 천으로 장갑까지 착용하기도 하며 아프가니스탄, 이집트의 여성들이 주로 착용한다. 니캅은 눈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의상으로 파키스탄과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 예멘의 여성들이 주로 착용한다. 차도르는 얼굴만 내놓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가리는 의상으로 이란의 여성들이 주로 착용한다. 히잡은 얼굴만 내어놓는 두건 모양으로, 머리와 귀, 목, 어깨를 가리는 의상이다.

수단에서는 주로 히잡을 착용한다. 이 히잡은 코란에도 언급된 의상으로 코란 제24장 ‘빛의 장’ 제31절 중 “가슴을 가리는 머릿수건을 써서 남편과 그녀의 아버지와 남편의 아버지와 그녀의 아들과 남편의 아들과 그녀의 형제와 그녀 형제의 아들과 그녀 자매의 아들과 여성 무슬림과 그녀가 소유하고 있는 하녀와 성욕을 갖지 못한 하인과 그리고 성에 대한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어린이 외에는 드러내지 않도록 하라.”는 부분에 근거한다.

여가생활 수단은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코란에 있는 안식일에 맞춰 주말을 지정한다. 코란에서 지정하는 안식일은 금요일이며, 이에 따라 여러 이슬람 국가들은 금요일을 휴일로 지키고 있다. 수단은 본래 목요일~금요일 주말제를 시행했으나, 타 문화권 간의 무역 및 금융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근무일의 차이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재계와 금융권을 중심으로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주말 변경 요구가 계속되어 2000년대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이 금요일~토요일, 또는 토요일~일요일 주말제로 변경하였고, 2008년부터는 금요일~토요일 주말제로 변경하였다. 금요일은 많은 상점과 식당들이 영업을 하지 않으며, 특히 오후 12시~3시 사이에는 대형 몰까지 영업을 하지 않는다.

수단은 기본적으로 날씨가 더워 장시간 야외 활동이 쉽지 않고, 여가를 보낼 만한 즐길 거리들이 많지가 않다. 수단 사람들은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 여긴다. 그래서 그들은 시간이 나면 가족 및 친구를 방문하는 것으로 여가를 활용한다. 또 결혼식과 장례식의 참석 역시 일종의 여가 활용이다. 왜냐하면 수단 사람들의 결혼식은 음식을 차려 놓고 밤늦게까지 음악을 틀고 춤추고 즐기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많이 꼽히는 현지인들의 여가 활용법은 축구이다. 여가 시설 면에서는 많이 낙후되어 있는 수단이지만, 인공잔디가 깔린 풋살장이 꽤 많다. 젊은 사람들은 유럽 축구 클럽의 유니폼을 외출복으로 즐겨 입으며, 유럽 축구 빅 매치가 있을 때면 큰 TV가 있는 호텔이나 식당에 모여 축구를 시청한다.

종교
전체 인구 중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으며 일부가 수단 성공회, 개신교, 로마 가톨릭 등의 기독교와 토착신앙을 믿는다. 총인구에 대한 종교 분포는 이슬람교가 64%, 기독교는 27% 중 카톨릭이 60%이고 신교가 40%이며, 원시종교는 9% 정도이다. 남부인의 종교 분포로는 기독교가 50%이며 원시종교가 40%, 이슬람교가 10%이다.
이슬람교의 분포는 대부분 수나Sunna파로서 말리키Maliki파 73%, 샤피Shafi파 1%, 안사랄 수나Ansaral-Sunna파 20%, 하나피Hanafi파 5%, 한발리Hanbali파 1%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구성된 연유는 서기 1,500년경 수단 서쪽 다르푸르Darfur 지방에서 수단 중남부 세나르Sennar 지역과 소바Soba 왕국을 병합해 세력을 확장한 푼지Funj 왕조가 스페인 계통에서 발생한 말리키 이슬람을 채택하여 그 파가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과 언론
수단의 라디오 중파 방송은 5개 지역(옴두르만, 소바, 라이바, 스이냐, 니알라)에서 하루 18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수단 전역의 70 %가 청취 가능하다. TV 방송국으로는 Sudan National Broadcasting Corporation과 Khartoum TV방송국 등 2개가 있으며 1일 8시간 방송하고 있다.

신문은 대부분 정부 통제 아래 발행되는데, 아랍어판으로 Al Anbaa(일간), Akhbar Alyoum(일간), Al Wan(일간), Al Anbaa Weekly Review(주간) 등이 있고, 영어판으로는 sudanow(월간), Sudan Vision(일간) 등이 있다.
수단은 초등학교(7~12세), 중학교(13~15세), 고등학교(16~18세), 대학교(19세 이상)의 교육 과정이 있고 교육비는 대부분 국가부담이다. 대학은 대부분 카르툼에 집중되어 있으며 국립 카르툼대(학생 25,000명)가 명문으로 인정받고 있다.

수단의 관광명소
그랜드 모스크 카르툼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으로 지어진 지 약 100년이 넘으며 적색암으로 지어져서 매우 아름답다.

옴두르만 시장Souq Omdurman 수크Souq는 아랍어로 시장을 의미한다. 옴두르만 시장은 수단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구역은 수공예품을 파는 구역으로 영어로도 간단한 의사 소통이 가능하며 흥정만 잘하면 저렴한 가격에 좋은 제품을 구할 수 있다. 옴두르만 시장은 내부로 들어가면 골목이 매우 좁고 사람이 많아 도난의 위험이 있으므로 방문 시 가급적이면 귀중품은 지참하지 않고, 현금은 잘 보관하여 도난에 주의해야 한다. 시장을 방문 후, 매주 금요일 밤 5시 옴두르만의 Tomb of Sheikh Hamed el-Nil 근처에서 열리는 Halgt Zikr라고 불리는 수피댄스를 보아도 좋다. 초록색과 흰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기도를 드리고 알라를 찬양하며 춤을 추는데, 6시쯤부터 dervish들이 팔을 벌리고 맨발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흰색, 초록색, 호피무늬 옷들이 쫙 펴지고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된다.

게벨 바르칼Gebel Barkal 카리마는 카르툼에서 약 400km 정도 떨어져 있다. 카리마에 가면 꼭 가야 할 곳은 게벨 바르칼과 그 주변에 있는 피라미드들이다. 게벨 바르칼은 과거에 이집트인들이 쿠시Kush 왕조를 정복하고 자신들의 신 아문Amun이 태어나고 살고 있는 신성한 곳으로 여겼다. 현재는 고대 나파탄Napatan 유적은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게벨 바르칼의 높이는 약 98m이고 위가 평지이며 올라가는 시간은 약 15분 정도 소요된다. 예전에 무역상이 주요 기점으로 활용하였다고 하며 외관이 코브라 모양이다. 누비아 영토로 알려진 건조 지역과 나일 강변 양쪽에 자리 잡은 5군데의 고고학적 유적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길이가 60km를 넘는다고 한다. 게벨바르칼, 엘쿠루, 누리, 사남, 주마등의 유적은 쿠시 2번째 왕국의 나파탄 문명과 메로에 문명을 보여준다.

낙타 사막 탐험 카르툼에서 북부의 카리마까지 약 400km에 달하는 사막을 낙타와 함께 탐험한다. 여행은 약 11일간에 걸쳐서 이루어지며 야간에는 텐트에서 잠을 잔다. 날씨 여건상 프로그램은 매년 3월에 운영된다. 메로에 피라미드 입구에서도 적은 비용으로 낙타를 타고 피라미드 근처를 돌아볼 수도 있다.

동골라Dongola 카르툼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53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로, 수단 북쪽 주의 주도이다. 한때 고대 누비아 권력의 중심지였으며, 1964년부터 폴란드에 의해 시작된 발굴 작업으로 고대 동골라의 유물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이집트와 연관된 유적지가 많고, 현재도 계속해서 유럽 고고학자들의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 그중 수단 북부 나일 계곡에서 6세기부터 약 900년 동안 번성했던 마쿠리아 왕국의 수도 ‘동골라’ 흔적이 발견되었다. 바로 ‘미스터리 지하실’이다. 이 지하실에는 흰색 벽에 검은색 잉크로 그리스어와 고대 이집트 남부의 언어가 쓰여 있다.

누비아Nubia 사막 수단의 북부에 위치한 사막으로, 사하라 사막의 동단에 위치한다. 누비아 사막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은 누비안들로 불리는데. 그들은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크고 다양하게 받았다. 수단의 관광 지역인 메로에, 동골라 지역을 방문하면 누비아 사막을 경험할 수 있다. 카리마에서 10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누리에 누비아 왕들의 피라미드가 남아있다. 누리의 피라미드는 작은 규모지만 고운 모래 위에 있는 피라미드들로 아름답다.

메로에Meroe 카르툼에서 북동쪽으로 약 2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대 유적지로서, 차량으로 약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수단에는 총 216개의 피라미드가 있는데, 이 중 57개가 메로에에 있다. 근방의 나가Nagga 신전과 함께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메로에의 피라미드는 절반 이상이 꼭대기 부분이 폭파되어 있는데, 이는 19세기 중반 이탈리아 탐험가 페를리니가 피라미드의 금을 꺼내기 위해 폭파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금들은 현재 베를린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아프리카에는 두 개의 고대 문명이 확인되었는데, 이집트 문명과 메로에를 중심으로 하는 쿠시 왕국 문명이다. 쿠시 왕국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파라오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반대로 기원전 1000년경에는 이집트를 지배하고 레바논, 현재 수단의 카르툼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한 강국이었다. 고구려가 요동반도를 호령했던 역사가 한국인에게 자랑스럽듯, 쿠시 왕국의 역사는 수단인들에게 큰 자부심과 긍지의 역사로 남아 있다.

메로에 방문을 원할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드라이버를 동반한 렌터카를 이용한다. 메로에는 사막에 위치해 있어 주변에 이렇다 할 숙박 업소가 없기 때문에 여행사에서 메로에 근처에 텐트 형태의 숙소를 마련해 놓고 있다. 날씨 문제로 5월 6일부터 10월 1일까지는 텐트를 폐쇄한다.
 

5. 한국과 수단의 관계


외교 관계
한국과 수단은 1976년 영사관계를 수립하고, 1977년에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1977년 4월에 주수단 한국대사관이 개설되었고, 1990년 11월에는 주한 수단대사관이 개설되었다. 1983년 3월 니메이리Gaafar Nimeiri 대통령의 방한과 1984년 10월 타예브El Tayeb 제1부통령의 방한으로 두 나라의 관계는 돈독해졌으며, 여러 분야의 협력관계가 증대되고 있다.

경제문화 관계
한국의 대對수단 교역량(2016년 11월 기준)은 수입이 0.1억 달러, 수출이 1.39억 달러이다. 주요 수입품목은 동,연, 알루미늄 스크랩, 식물성액즙 등이고, 주요 수출품목은 자동차 및 부품, 건설중장비, 정밀화학원료, 전자부품 등이다.

향후 대對수단 진출 유망 분야로는, 먼저 수출유망품목으로 건설중장비 및 자동차부품, 승용차, 화물자동차, 배터리 등 자동차관련 품목이나, 원활한 교역 환경 조성에 따른 소비재 및 경제개발을 위한 기자재 분야의 수요 증가가 전망된다. 또 소비재 분야에서는 화장품, 축전지, 금고, 금전출납계(POS시스템...) 등 저품질의 중국산 제품을 기피하는 소비층 공략이 필요하며, 품질 및 경쟁력 있는 가격대의 제품을 선호하는 성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농·축·광산업 기자재 분야에서는 수단의 광활한 옥토를 활용한 농업 및 축산업 개발 수요의 증가세에 주목하여 트랙터, 콤바인, 이양기, 경운기, 발전기, 관계시스템, 태양광 시스템, 축산 영양제, 항생제 등을 집중 공략할 필요가 있다. 기타 각종 의료용 소모품, MRI, 심전계 등 한국산 의료기기에 대한 선호도도 높은 편이며, 수단 정부의 행정 자동화 및 투명화를 위한 전자정부 시스템 도입 수요에 대비하여 IT시스템 관련 분야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와 수단 간에는 1978년 6월에 무역 및 경제기술협력 협정, 1979년 10월에 문화 협정, 1993년 11월에 의료협력 협정, 2004년 5월에 체육·청소년교류 협정, 2004년 9월에 이중과세방지 협정을 체결하였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수단에서 9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였다. 또한 1974년 이래 수단 기술연수생 약 60명이 방한하여 훈련을 받았으며 한국의 섬유기술자 등 10명이 수단에 파견되어 기술지원을 실시하였다. 또한 수단에는 1978년부터 한·수단친선협회가 구성되어 있고, 양국 의원들 간의 한·수단의원친선협회도 1983년에 구성되었다.

2016년 현재 수단 내 한국 교민은 60여 명이며, 주요 진출 업체로는 삼성 및 LG지사, 대우 관련 합작회사 등이다.

북한과의 관계
수단은 1969년 4월 북한과 영사관계를 수립하고 같은 해 6월 21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수단은 북한에 원면아라비아고무 등을 수출하고, 북한으로부터 면직·문방구 등을 수입하는 등 소량의 통상관계가 있으며, 북한이 수단에 청소년회관 건립지원 등 무상원조를 제공한 바도 있다.

수단의 대북한 관계는 중국의 태도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아 왔다. 1992년 7월 주수단 북한대사관이 폐쇄(주이디오피아 대사가 겸임)된 이후 명목상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실제 교류는 활발하지 않은 실정이다. 2014년 10월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수단을 방문한 바 있으며, 수단 내 친북한 단체로는 수단-북한 친선협회와 코리아 클럽이 있다.

수단과 북한 간에는 1969년 4월에 문화 협정과 과학기술협력 협정, 통신기술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70년 8월에 경제·문화 및 기술원조 협정, 1978년 3월에 항공운수 협정을 체결하고, 1999년 5월에 수단·북한 외무성간 협조에 관한 합의서를 교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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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푸르Darfur 사태
수단은 오랜 기간 동안 내전에 휩싸여 왔다. 사망자 200만 명, 난민 400만 명을 양산하며 20년 넘게 지속되어 온 아프리카 최대의 유혈분쟁은 북부의 수단 정부와 남부의 반군이 2005년 평화협정에 도달함으로써 21년 만에 끝이 났고 남수단 국가 독립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수단은 또 다른 유혈분쟁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수단 서부의 해발 600∼900m 고원지대에 위치한 다르푸르Darfur 주에서 2003년 2월 이래 아랍계 민병대 무장조직이 비아랍계 토착민들에 대한 ‘인종 청소’ 대량 학살에 돌입하면서, 40만 명이 학살당하고 27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사건의 경위 다르푸르 지역의 인종 구성은 크게 아랍계와 아프리아계로 구분할 수 있다. 북부 아랍계 주민들은 주로 유목생활을 해왔으며, 남부와 서부 아프리카계 주민들은 주로 농경 생활을 해왔다. 그 결과, 기상 추이에 따라 유목민들의 농경지 침범 등 경제적 이유로 아랍계와 아프리카계 간에는 그동안 분쟁이 빈번하였다. 1970년대에 이어 1990년대에 다시 다르푸르 지역은 극심한 가뭄으로 사하라 사막이 확대되어 민심이 혼란해졌다. 급기야 북부 아랍계 유목민들이 수자원의 고갈을 피해 남부 농경지역 기독교계 흑인을 본격적으로 약탈하기 시작함으로써 남·북부 종족 간 긴장이 고조되었는데, 수단 중앙정부는 남·북부 종족 간 갈등을 의도적으로 방치하였다.

결국, 2003년 2월 26일 다르푸르에 거주하는 기독교계 흑인 반군 조직들은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고 북 다르푸르 지역의 군 초소를 공격하였다. 이를 기점으로 반군단체들이 연이어 무장 공격해오자, 중앙정부는 정부군 병력으로는 다르푸르 지역 반군을 진압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종족 간의 갈등을 악용, 친정부 계열의 아랍족과 민병대 잔자위드Janjaweed를 조직하여 정부를 대신해 반란을 진압하도록 했다. 정부군에 의해 군사훈련은 물론 무장까지도 지원받은 잔자위드는 반군 토벌이 아닌, 해당 지역 내 기독교계 흑인들을 무차별 살상하였다. 반란군 지원 마을들에 대해 방화, 살인, 약탈, 강간 등 잔학행위를 전개함으로써 내전은 지속되었고, 이 와중에 약 40만 명이 사망하고 27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태로 인해 수단의 오마르 알-바쉬르 대통령에게 전쟁범죄 및 대량학살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로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됐으나 아직 체포되지 않았으며, 정부군과 다르푸르 반군 사이에 유혈 충돌은 여전히 간헐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해법 모색 다르푸르 사태가 금세기 들어 최대의 인도적 재앙으로 부각되면서 이 사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먼저 아프리카연합(AU)은 2004년 수단 다르푸르 지역에 AMIS(African Union Mission in Sudan)를 설치하였고, 아프리카연합기구(OARU: Organization for African Unity)를 아프리카연합(AU: African Union)으로 체제를 변환하였으며, 아프리카상비군(ASF: African Standby Force)의 창설을 결정하였다. UN도 다르푸르 지역에 군인 2만 명과 경찰관 6천 명으로 구성된 UN/AU 혼성평화유지군(UN/AU Hybrid Mission in Darfur, UNAMID)을 배치하기로 결정하고 2008년 초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수단 내 병력 주둔에 대한 수단 정부의 반대로 인해 순조롭지 않았다.

향후의 전망 2009년 2월 17일 수단 정부와 다르푸르의 최대 반군 세력인 ‘정의평등운동(Justice and Equality Movement: JEM)’은 카타르의 중재로 평화협상을 개시하고 지속적으로 협상을 벌여나가기로 합의하였다. 또한 다르푸르의 수백만 난민을 보호하고 이들에게 구호의 손길이 닿을 수 있도록 협조하기로 뜻을 모았으며, 포로교환을 성사시키기로 원칙적인 합의를 했다. 하지만 양측이 최종 합의에 도달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향후의 전망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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