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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국倍達國 신시神市를 개창하신 커발환 환웅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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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영 /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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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의 열두 나라에서 갈라져 나간 4대 문명권은 ‘신교의 신앙과 세계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세계 각 지역에 고대 문화를 형성하는 뿌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환국의 정통 정신을 계승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바로 이번 글의 주인공인 환웅천황입니다.


 

가자 동방으로!


지금으로부터 6천 년 전 인류의 황금 시절이었던 환국 시대 말. 지구의 환경 변화와 인구 증가와 물자 부족 등으로 인류의 생활이 어려워졌습니다. 이에 환국의 마지막 환인이신 지위리智爲利환인께서는 금악金岳(알타이)산과 삼위산 그리고 백두산을 두루 살펴본 뒤, 새로운 터전을 개척할 적임자를 찾게 되었습니다. 이때 오가五加의 우두머리가 모두 대답하며 추천한 인물이 서자부庶子部 부족의 수장首長인 환웅桓雄이었습니다. 그들은 환웅이 어질고 용기와 지혜를 겸비한 인물로 일찍부터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세상을 개혁하려는 뜻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추천의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에 환인께서는 환웅에게 종통과 국통 계승의 상징으로 천부天符와 인印 세 종류를 주시며 다음과 같이 당부하셨습니다.

이제 인간과 만물이 이미 제자리를 잡아 다 만들어졌으니, 그대는 노고를 아끼지 말고 무리 3천 명을 이끌고 가서, 새 시대를 열어 가르침을 세우고(開天立敎), 세상을 신교의 진리로써 다스리고 깨우쳐서(在世理化) 이를 만세 자손의 큰 규범으로 삼을지어다. 더불어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 부권父權을 세우고 노인은 부축하고 어린이는 이끌어 평화롭게 하나 되게 하여 사도師道를 세우고 세상을 진리로 다스려 자손만대의 홍범洪範으로 삼을지어다. (『삼성기 하』,『신시본기』)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환국의 마지막 환인께서는 환웅을 환국의 정통 계승자로 정하였다는 점입니다. 그 증표가 바로 천부와 인입니다. 천부란 환인이 ‘세상을 다스리는 권한의 표증’으로 내려 주신 태고의 문서입니다. 흔히 알고 있듯이 무속巫俗 세계에서 쓰는 방울이나 거울 같은 물건은 아닙니다. 그리고 인이란, ‘환국의 종통을 전한다’는 사실을 인증하는 도장입니다. 임금의 옥새와 같은 것이지요.
 

배달국 초대 커발환 환웅천황


환웅천황과 3천의 무리가 향한 곳은 동방의 태백산, 즉 지금의 백두산 일대입니다. 이 지역을 천명을 받고 나라를 연 하늘 평야, 즉 ‘역사의 개척지’라는 뜻으로 천평天坪이라고 합니다. 이곳에 우물을 파고 그곳을 중심으로 청구靑邱에 농사짓는 땅을 구획하였습니다. 백두산 신단수神檀樹 아래에서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려 나라 세움을 고하였습니다. 이때 환웅천황을 일명 거발환이라고도 합니다. 커발환居發桓은 크고, 조화롭고, 광명으로 합일된 존재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환웅천황은 제왕의 호칭입니다. 중국 도가서인 『역대신선통감』에는 “천왕가는 마음 닦는 법을 전했는데 홀로 장백산(백두산)에서 오래 도를 닦아 공을 이루었다.”라고 하여 환웅천황에 대해 간접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신교총화』에 따르면 환웅천황의 탄신일은 4월 13일이고, 천황의 성후聖后의 탄신일은 2월 10일입니다. 환웅천황은 BCE 3897년 신시개천 원년에 등극하고 신시개천 94년에 승천하였습니다. 이때 나이가 120세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동방 개척단 3천 무리


한편 무리 3천에 대해서 이유립 선생은 이들을 제세핵랑군이라 하였습니다. 제세핵랑濟世核郞은 세상을 건지는(濟世) 핵심이 되는 랑(核郞)이라는 뜻으로 낭郞은 삼신상제님을 수호하는 관직 이름입니다. 환국 이래 환웅, 단군 시대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지도층이 이 제세핵랑에서 나왔습니다. 이들은 삼신상제님께 올리는 제사를 주관한 신교의 핵심 일꾼으로, 신교의 가르침을 받들어, 신교의 성소인 소도의 경당扃堂에서 문무를 겸전하였습니다. 이들은 단군조선의 국자랑國子郞, 북부여의 천왕랑天王郞, 고구려의 조의선인皁衣仙人, 백제의 무절武節, 신라의 화랑花郞, 고려의 재가화상在家和尙 등의 전통으로 면면히 내려왔습니다. 최근세에는 갑오 동학혁명, 항일 구국 운동과 광복군의 독립운동 등으로 민족의 위기 때마다 낭가의 정신은 유감없이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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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3천 명에서 3수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3수는 창조, 개창, 시작을 의미하는데 역사의 첫 출발을 나타내는 동방 목기의 창조수(생수生數)로, 배달국 창세 역사에는 환웅천황뿐 아니라 3천 명의 제세핵랑군이 함께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분들의 자손이기도 합니다.
 

중국 시조로 알려진 반고盤固의 정체


환웅이 무리를 이끌고 동방 백두산으로 떠날 무렵, 당시 기이한 술법을 좋아하던 반고라는 이가 있었습니다. 반고는 다른 한 무리를 이끌고 삼위산三危山으로 향하였습니다. 삼위산은 중국 간쑤성 둔황에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삼성기』 하편에서는 중국 한족漢族의 창세 신화에 등장하는 반고를 환국에서 갈려 나가 한족 역사의 뿌리가 된 실존 인물로 밝혀 주고 있습니다. 환인께 청하여 이주를 허락받은 반고는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의 신장神將과 공공共工, 유소有巢, 유묘有苗, 유수有燧 등의 여러 부족장과 백성을 거느리고 많은 재물과 보화를 꾸려 길을 떠나, 마침내 삼위산 납림拉林 동굴에 이르러 임금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이들을 제견諸畎이라 하였습니다. 반고는 이곳에서 반고가한般固可汗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중국인은 그들의 시원 조상인 반고가한을 천지를 창조한 조물주로 묘사하고 대신에 황제헌원黃帝軒轅을 시조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환단고기』는 중국인들의 잃어버린 뿌리 역사까지 밝혀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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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성산聖山, 백두산


환웅천황님과 3천 명의 개척단이 터를 잡은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성산입니다. 백두산은 백산白山 이외에도 삼신산三神山, 개마산蓋馬山, 불함산不咸山 등으로 불리었습니다. 또한 인류 구원의 완성이며, 모든 진리 도맥의 완성인 시루산(증산甑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중국인들은 장백산長白山이라고 부릅니다.

인근에 자리 잡은 배달국 사람들은 아침에 동산에 올라 태양을 경배하고, 밤에는 달을 맞이하는 광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터 잡은 백두산에 대해서 『삼한비기三韓祕記』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백두산이라는 거대한 산악이 광활한 대지 가운데 장중하게 자리 잡아 가로로 천 리를 뻗고, 높이는 2백 리를 우뚝 솟았다. 웅장한 고산준령이 꿈틀거리며 널리 덮어 배달천국倍達天國의 진산鎭山이 되었다.

여기서 진산은 한 국가나 도시 또는 각 지방에 있는 주산主山이라는 뜻입니다. 백두산은 우리 배달국 환웅천황님과 제세핵랑군 3천 명이 터전을 잡고, 홍익인간의 큰 뜻을 펴신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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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이름과 도읍지, 배달과 신시


백두산에 도착한 환웅은 나라 이름을 배달倍達이라고 하였습니다. 배달겨레라는 말은 한민족사의 첫 번째 나라인 배달에서 그 근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외부에서는 구리九黎, 청구靑丘라고도 불렀습니다.

‘배’는 밝다는 뜻입니다. 고대어는 한자의 의미보다는 음가音價에 따라서 그 의미가 정해지기도 합니다. ‘달’은 땅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응달, 양달 할 때 그 달이 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결국 배달은 광명의 동방 땅을 뜻합니다. 배달을 ‘땅의 광명(地光明)’을 가리키는 ‘단檀’자를 써서 단국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래서 환국과 배달을 합쳐서 환단桓檀 시대로 통칭하기도 합니다.

건국 초기 배달의 강역은 도읍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읍지와 국호는 서로 상통합니다. 거발환환웅은 도읍 이름을 신시神市라 하였는데, 이는 신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훗날 배달국 14세 치우천황 이전의 배달 시대를 신시 시대라고도 부릅니다.
 

弘益人間, 在世理化는 배달국의 건국이념


환인천제님으로부터 국통 계승의 증표로 천부와 인을 받은 거발환환웅은 국가 통치 이념도 전수받았습니다. 그 이념이 바로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입니다. 대부분 단군조선의 국가 이념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잘못입니다. 홍익인간 사상은 사실 9천 년 전 환국의 통치 이념으로 천지광명의 뜻과 대이상을 성취한 인간이란 뜻이 있습니다. 거발환환웅은 재세이화在世理化를 기반으로 홍익인간을 실천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삼신상제님의 진리, 즉 신교로써 세상을 다스리고 깨우쳐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한 것입니다.

이어서 환웅천황님은 삼칠일 즉 21일을 택하여 상제님께 제사를 지내고 바깥일(外物)을 꺼리고 삼가 문을 닫고 수도하셨습니다. 주문을 읽고 공덕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였으며, 선약을 드시어 신선이 되셔서, 괘卦를 그어 미래의 일을 아시고, 천지 변화의 움직임[象]을 파악하여 신명을 부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집상운신執象運神이라고 하는데, 우주 운동의 비밀을 깨달아 신명을 부려 인간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상象은 천지간에 가득 찬 우주의 기氣의 운동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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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符經』과 『三一神誥』


환웅천황은 『천부경天符經』을 풀어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강론하여 신교의 우주관, 신관, 인성론, 수행관에 관한 가르침을 베풀었습니다. 『천부경』은 환국 때부터 구전되어 오다가 배달 시대에 문자로 옮겨졌습니다. 실로 인류 최고最古의 경전이자 우주론과 인간론의 고갱이가 압축 서술되어 있는 인류사 최초의 계시록이라고 할 것입니다. 여든한 자에 불과한 짧은 글이지만, 삼신 사상의 3수 원리를 근거로 하여 천지인天地人 삼위일체三位一體에 대한 정의를 내려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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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신고』는 백성의 교화를 위해 환웅천황이 직접 지은 다섯 장으로 구성된 신학서神學書입니다. 조물주 삼신, 그 삼신의 조화권을 자유자재로 쓰시며 하늘 궁궐에서 우주 살림을 주재하시는 삼신상제님, 삼신을 근원으로 하여 화생한 인간과 만물 탄생 섭리 그리고 인간의 진아眞我 실현 등에 대한 이치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이미 6천 년 상고 시대에 우리 민족은 우주와 신과 인간에 대한 지극한 깨달음이 있었고, 이런 깨달음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일이었음을 알게 해 줍니다.
 

국가 통치 시스템, 三伯 五事


환웅천황은 재세이화와 홍익인간의 도를 실현하기 위해 삼백三伯 오사五事 제도를 실시하였습니다. 삼백은 공약을 정하는 입법부 역할인(立約) 풍백風伯, 정사를 베풀어 지금의 행정부과 같은(施政) 우사雨師, 형벌을 집행하는(行刑) 사법부인 운사雲師를 말합니다. 이 3백은 계획, 조직, 통제로 파악할 수 있고, 조화·교화·치화의 3화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신시 시대 조직은 그 후 단군조선 시대에 내려와서 삼신의 우주관인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의 정신을 기초로 하여 진한, 번한, 마한의 ‘삼한관경제’와 ‘삼경 제도’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오사는 주곡主穀, 주명主命, 주형主刑, 주병主病, 주선악主善惡이라는 다섯 부서를 말합니다. 『태백일사』 「환국본기」에서는 이 오사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가牛加는 곡식의 생산과 관리를 주관하고(主穀), 마가馬加는 왕명의 하달과 집행을 주관하고(主命), 구가狗加는 형벌 제도를 주관하고(主刑), 저가猪加는 백성들의 건강과 질병을 주관하고(主病), 양가羊加는 사회도덕과 선악을 맡아 다스린다(主善惡)고 합니다. 이 아래로 366사 조직의 하위 조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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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환국 말 배달국 초기의 역사를 통해 배달국의 건국이념 등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에는 환웅천황의 구체적인 업적과 우리를 곰의 자식으로 왜곡한 소위 단군신화의 진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더불어 인류 창세사를 다시 쓰게 한 동북아의 홍산紅山 문화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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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자부庶子部

우리는 ‘서자’라고 하면 적자嫡子와 서자라는 개념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즉 근세조선에 있었던 병폐인 적서嫡庶 차별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서자부’ 하면 ‘첩의 자식’이라고 엉뚱하게 해석하여 왔는데, 서자부는 그런 뜻이 아니다. 서자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여러 아들, 즉 뭇 자식이라는 의미로 백성이란 뜻이 있다(『커발한문화사상사』 1권). 둘째는 부락 또는 부족 이름이라는 의미이다(『태백일사』 「신시본기」). 마지막으로 중국의 『사원辭源』은 ‘태자의 스승 기타 높은 벼슬의 명칭’으로도 말하고 있다(『한국상고사입문』34쪽).
 

대웅전과 환웅전

우리가 불교의 사찰에 가면 주된 전각에 대부분 대웅전大雄殿이라는 편액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대웅전이라는 단어는 전 세계 여러 나라 중 유독 우리나라에서 잘 나타나 있다. 대웅은 현재 불교의 교조인 석가모니를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고 큰 스승이란 뜻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본래 승가僧家의 말이 아니다. 승려들이 옛 풍속을 따라 그대로 부른 것인데, 본래는 환웅전桓雄殿이라고 하였다. 단군조선의 도해단군 때 환웅상을 모시고 대시전大始殿을 세운 것에서 유래하였다. 환웅천황의 상을 받들어 모셨는데 그 머리 위에 광채가 찬란해 마치 큰 태양의 둥근 빛이 온 우주를 환하게 비추는 것 같았다고 한다. 이 대시전을 일명 환웅전이라고 하였는데, 훗날 불교가 들어오면서 이 자리를 내주고 그 후전인 삼성각三聖閣으로 옮겨 가게 되었다. 현재도 절에 가면 대웅전보다는 높은 곳에 환인, 환웅, 단군 삼인의 성인을 모신 삼성각이 있다. 



<참고문헌>
『역주본 환단고기』(안경전, 상생출판, 2012)
『이것이 개벽이다 하』(안경전, 상생출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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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거발환居發桓환웅께서 환국 천산에서 해 뜨는 곳을 따라 동방 백두산으로 오심으로 해서, 현실 역사에 상제님의 창조 섭리를 완성할 동방 문명사의 새로운 흐름, 즉 배달국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거발환환웅과 문명 개척단들의 인류 문명 개창 업적과 소위 곰의 자손이 되어 버린 왜곡된 단군신화에 대한 진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우리는 곰의 자손일까요?


 

문명의 아버지, 환웅천황의 업적 1

 

개천절은 환웅천황이 배달국을 건국한 날

해마다 10월 3일이 되면 우리는 개천절을 기념합니다. 개천절은 기원전 2333년 음력 10월 3일에 단군성조께서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했음을 기리는 뜻으로 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개천절은 본래 환웅천황께서 인류 문명을 개벽하신 날이며(開天立敎), 개벽정신으로 배달나라를 여신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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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시원문명 국가인 환국은 약 5,900년 전, 기후 변화로 인해 나라를 이루고 있던 9부족들의 일부가 이동을 하게 됩니다. 이때 환국의 마지막 환인이신 지위리智爲利환인으로부터 정통성의 상징인 천부天符와 인印 세 종류를 받은 환웅천황께서 문명 개척단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지금의 백두산)에 오시어 신단수 아래 도읍을 정하고 신시를 열게 되었으니 이것이 신시배달神市倍達입니다. 이때 환웅천황은 하늘에 천제를 드리며 나라를 건국하였으니, 이날이 바로 우리가 아는 10월 3일 개천절입니다. 단군조선을 여신 단군왕검은 바로 이날을 기념하여 천제를 올리며 선대 환인, 환웅 성조의 가르침을 받들고 하늘의 뜻을 계승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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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배달은 환국의 광명사상을 그대로 계승하여 홍익인간, 제세이화, 광명개천의 3대 정신으로 백성들을 교화하며 1,565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이 배달국을 우리는 진정한 한민족사의 기원으로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개천절은 단군조선의 건국일이 아닌 신시배달의 건국일이며, 단군의 건국이념으로 알고 있는 홍익인간, 제세이화의 광명사상 또한 배달국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어둠을 밝힐 불을 구하라

환웅천황께서 사람의 거처가 완비되고 만물이 각기 제자리를 얻은 것을 보시고 고시례高矢禮에게 주곡主穀 벼슬을 맡게 하였습니다. 고시례는 농업을 주관한 인물로 그 후 단군조선 시대에도 고시라는 분이 농사를 주관하였습니다. 그래서 이후 농사짓고 산에서 나무하던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는 항상 음식을 던지면서 이름을 부르며 그 고마움을 표시하였습니다(흔히 ‘고수레’라고 부르며 음식을 나눴습니다). 그 풍습이 지금까지 면면히 전해 내려온 것이죠.

하지만 배달국 초기에는 씨 뿌리고 거두는 법이 갖추어지지 못하였고, 가장 중요한 불씨를 얻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에 고민이 많던 고시례는 우연히 깊은 산에 들어갔다가 높고 큰 나무가 말라 황량하게 줄기를 드러내고 오래된 나무줄기와 말라 버린 가지가 서로 얽혀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때 홀연 거센 바람이 불어 땅 위의 크고 작은 나무줄기가 서로 마찰하여 불꽃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에 나뭇가지를 마찰하여 불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도 불편하였는데, 훗날 호랑이를 쫓기 위해 던진 돌이 빗나가 바위 귀퉁이에 맞고 불이 번쩍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에 지금의 부싯돌 원리를 발견하여 불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사람들이 음식을 불에 익혀 먹게 되었고, 쇠를 녹이고 단련하는 기술을 통해 문명이 크게 진작되게 되었습니다.
 

태고 문자를 창시하여 한글의 기초가 되다

환웅천황께서는 대대로 왕명을 출납出納하고 사관史官의 직책을 맡은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문자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신지 혁덕은 무리를 떠나 홀로 사냥할 때, 별안간 놀라서 달아나는 암사슴 한 마리를 보고 활을 당겨 맞추려다가 그만 그 자취를 잃어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곧 사방을 수색하며 여기저기 산야를 다니다가 평평하게 모래가 펼쳐져 있는 곳에 이르러 발자국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간 곳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를 곰곰이 보고 생각하며 온갖 사물의 형상을 널리 관찰하였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깨달음을 얻은 뒤 문자를 창제하니 이른바 녹도문鹿圖文입니다. 이것이 태고 문자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이후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태고 문자가 사라져 남지 않게 되었지만, 조선의 세종대왕은 그 모습을 본떠 우리의 한글을 창제하는 데 크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문명의 아버지, 환웅천황의 업적 2

 

책력冊曆의 기원,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

날짜를 가늠하는 달력을 모은 책을 책력冊曆이라 합니다. 조선 시대에 이는 시간을 획정하는 권력의 상징이었고, 임금의 하사품이기도 하였습니다. 단순히 날짜만 적혀 있는 게 아니고 농사를 지을 때나, 그 날짜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적는 등 지금의 다이어리 역할도 했습니다.

이런 책력의 초기 모습으로 신시 배달국 시대에는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이 있었습니다. 첫째 날에 삼신상제님께, 둘째 날에 월신月神께, 셋째 날에 수신水神께, 넷째 날에 화신火神께, 다섯째 날에 목신木神께, 여섯째 날에 금신金神께, 일곱째 날에 토신土神께 제사를 지냈습니다. 날짜를 짓고 할 일들을 정하는 책력 짓는 방법이 여기에서 비롯하였습니다.
 

환웅천황의 제천행사 모습

배달 시대에는 제천행사가 자주 있었습니다. 백두산이 북쪽으로 달려가 우뚝 솟은 장엄한 모습이 비서갑斐西岬 경계에까지 이어졌고, 그곳에 물을 등지고 산을 안고서 다시 꺾어져 감돈 지역에서 환웅천황은 천제를 올렸습니다. 이곳에 순행하여 머물고 사냥하여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때 풍백은 천부경을 거울에 새겨 진상하고, 우사는 북에 맞추어 둥글게 춤을 추고, 운사는 백 명의 무사들을 칼로 무장시켜 제단 밑에 늘어서서 지켰습니다. 이렇게 천제를 올릴 때 의장儀仗이 성대하고 엄숙하였습니다.
 

배달 시대부터 내려온 민족 음악

신시 배달 시대의 음악을 공수貢壽 혹은 공수供授 또는 두열頭列(두레)이라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노래를 불러 삼신을 크게 기쁘게 해 드렸습니다. 나라에 복을 내려 길하고 창성하게 하고, 백성의 마음을 진실로 기쁘게 해 달라고 말하였습니다. 배달 시대의 음악은 대체로 신에게 삶의 기쁨과 평안함을 빌며, 분수를 알고 천리를 좇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서는 전하고 있습니다.
 

배달국 개국공신 초대 풍백, 우사, 운사의 사명과 공력

『환단고기』 「신시본기」에는 배달국 개국공신들에 대한 사실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환웅천황께서 풍백 석제라釋提羅를 시켜 비록 새, 짐승, 벌레, 물고기의 해는 없애게 하셨으나, 사람들은 아직 동굴과 움집 속에서 거처하였다. 땅의 습기와 바깥바람의 기운이 사람에게 침범하여 질병을 일으키고, 또 금수와 벌레와 물고기 무리가 한번 쫓겨난 뒤로 점차 인간을 피해 숨어 버려 잡아먹기가 용이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사 왕금王錦을 시켜 사람이 살 집을 짓고, 소와 말, 개, 돼지, 독수리, 호랑이 같은 짐승을 잡아 길러서 이용하게 하셨다. 한편 운사 육약비陸若飛를 시켜 ‘남녀가 혼인하는 법’을 정하게 하시고, 치우治尤로 하여금 대대로 ‘병마와 도적을 잡는 직책’을 관장하게 하셨다. (「신시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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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국의 호족과 웅족 이야기1


이제 여기서 우리는 전 국민이 왜곡된 채로 알고 있는 우리 민족의 시원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아마 단군신화라고 들어보았을 겁니다. 환웅천황께서 곰과 호랑이를 마늘과 쑥을 주어 동굴에 들어가게 해서, 곰만 여자가 되었고, 그 아들인 단군께서 조선을 건국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과연 이 신화 같은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요? 이제 그 진실을 살펴보겠습니다.
 

웅족과 호족의 대립과 환족의 교화

환웅천황이 동방 백두산 문명을 개창할 당시 ‘백두산에서 송화강’에 이르는 만주 일대에는 본래 거주하던 원주민 호족虎族과 새로 이주해 온 웅족熊族이 살고 있었습니다. 호족은 탐욕이 많고 잔인하여 오로지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웅족은 어리석고 괴팍하며 고집이 센 편이라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같은 곳에서 살았으나 세월이 지날수록 서로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서로 물건을 빌리거나 빌려 주지도 않고, 혼인도 하지 않으며, 매사에 서로 불복하여 함께 같은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이에 웅족의 여왕은 환웅천황께서 신령한 덕으로 통치하심을 알고 무리를 거느리고 환웅천황을 뵙고 아뢰었습니다. “원하옵건대 저희들에게 살 곳을 내려 주십시오. 저희들도 하나같이 삼신의 계율을 따르는 환족의 백성이 되고자 하옵니다.” 하고 간청하였습니다.

이에 환웅께서는 “가히 가르칠 만하도다” 하시고, 신령한 도술로써 환골換骨케 하여 정신을 개조시키셨는데, 먼저 삼신께서 전해 주신 정해법靜解法으로 그렇게 하도록 하였습니다. 정해법은 몸과 마음을 고요히 수행하여 해탈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쑥 한 묶음과 마늘 스무 줄기를 영험하게 여겨 이를 주시며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고 기도하여 참된 인간이 되는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쑥은 몸속의 냉冷을 치료하고, 마늘은 구워 먹으면 마魔를 물리친다고 합니다. 마늘은 각종 질병의 치료제로 육체의 힘을 솟아나게 하는 신비로움이 있다는 믿음으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여러 가지 용도로 쓰였습니다.

이에 웅족뿐 아니라 호족도 함께 쑥과 마늘을 먹으면서 삼칠일, 즉 21일 수행을 하며 외부와 접촉을 끊고 지냈습니다. 웅족은 능히 굶주림과 추위를 참아 내고 계율을 지켜 온전한 인간의 참모습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호족은 방종하고 게을러 계율을 지키지 못하여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두 족속의 성정性情이 서로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후에 웅족 여인熊女들이 시집갈 곳이 없어 매일 신단수 아래에 와서 주문을 외우며 아이 갖기를 빌었습니다. 예전에 아이를 갖기 위해 명산대천에서 100일 정성 공부나 치성을 드리던 모습과 유사합니다. 이에 환웅께서 이들을 임시로 환족으로 받아들여 환족 남자들과 혼인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임신하여 아이를 낳으면 환桓의 핏줄을 이은 자손으로 입적시켰습니다. 이렇게 환족과 웅족은 협력하여 ‘신의 도시’란 뜻의 신시神市를 수도로 하는 배달국을 흥왕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른 우리의 배달과 단군조선의 역사인 단군사화檀君史話의 내용입니다.
 

환웅천황은 어떤 분일까요?


배달국을 여신 환웅천황은 과연 어떤 분이실까요? 이제 『환단고기』 「삼성기 상」에서 전하는 내용을 통해 그분의 위격과 업적을 살펴보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을까 합니다.
 

환웅씨가 환국을 계승하여 일어나 하늘에 계신 상제님의 명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의 지역에 내려오셨다. 그리하여 천평天坪에 우물을 파고 청구에 농사짓는 땅을 구획하셨다. 천부와 인을 지니고 오사五事를 주관하시어 세상을 신교의 진리로 다스려 깨우쳐 주시고,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시며, 신시에 도읍을 정하여 나라 이름을 배달이라고 하셨다.

21일을 택하여 상제님께 제사 지내고 바깥일을 꺼리고 삼가 문을 닫고 수도하셨다. 주문을 읽고 공덕이 이뤄지기를 기원하셨으며, 선약을 드시어 신선이 되셨다. 괘를 그어 미래의 일을 아시고, 천지 변화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신명을 부리셨다. 여러 신령한 인물과 명철한 인재를 두루 모아 신하로 삼고, 웅씨족 여인을 맞아들여 황후로 삼으셨다. 혼인 예법을 정하여 짐승 가죽으로 폐백을 삼게 하시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게 하시고, 시장을 열어 교역을 하게 하시니, 구환족九桓族이 사는 모든 지역에서 공물과 세를 바치고, 뭇 새와 짐승들까지 따라서 춤을 추었다. 이에 후세 사람들은 이분을 지상의 최고신으로 모시고 세세토록 제사 지내기를 그치지 않았다. (「삼성기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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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개천절開天節은 10월 3일일까?

배달국 신시 시대 때부터 음력 10월을 세수歲首(한 해의 첫머리)로 삼아 상달이라 하였다. 천지 기운의 변화에 따라 음력 4월에 음 기운이 처음으로 태동하기 시작하고, 음력 10월에 양 기운이 최초로 태동하기에 10월을 첫머리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해마다 10월이 되면 항상 국가적인 행사(국중대회國中大會)를 열어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지냈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濊의 무천, 삼한의 5월과 10월에 치르는 소도제, 거란이 세운 요遼의 요천繞天 등이 모두 배달, 단군조선 시대의 신교 제천 풍속을 계승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진시황이나 한나라 유방 등도 종주국인 단군조선을 본받아 10월을 한 해의 첫머리로 삼았다.
 

동북아 시원 문명, 홍산문화紅山文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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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국은 BCE 3897년부터 1,565년간 지속되었으며 한반도를 비롯하여 만주와 중국 동부를 영역으로 하였습니다. 최근 배달국 지배 영역의 중간 지역인 만주 대릉하 유역의 우하량牛河梁, 동산취東山嘴, 호두구胡頭溝 등의 유적에서 대략 BCE 3600년경의 돌무지무덤(적석총)과 여신묘女神廟가 발견되고, BCE 3500년경의 대형 석조 건물과 제단, 돌널무덤(석관묘), 옥기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이른바 홍산문화紅山文化입니다. 철광석으로 뒤덮여 산 전체가 붉게 보이는 홍산에서 이름을 따 명명된 홍산문화는 석기와 청동기를 섞어 사용한 BCE 4700 ~ BCE 2900년경의 문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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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하량의 16개 유적지 가운데 13곳이 적석총 형태의 돌무덤(총塚)입니다. 적석총은 고대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 시대까지 계속 나타나는 동이족의 대표적인 묘제墓制로 황하 지역의 화하족 문명권에서는 전혀 출토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확인되는 돌무덤의 주인공을 밝힐 수 있는 기록은 『환단고기』가 유일할 정도이며, 이에 따르면 그 주인공은 배달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하량의 여러 적석총 중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네모난 방형으로 짜인 대형 무덤 무리와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던 원형 3단 구조의 제단(#단壇#)입니다. 그 전체 구조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방정하다는 동양의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천원지방 구조는 단군조선 때 지은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 명나라 때 세운 북경의 환구단, 조선 말기 고종 황제가 세운 서울의 원구단 등의 제천단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하량 제단은 동북아 제천단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하량에서 특이한 점은 신전(#묘廟#)이 발굴되었는데, 이 신전의 주인공이 여신女神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신전 터에서는 세 여신상과 함께, 곰 소조상과 새 소조상이 발굴되었습니다. 홍산문명의 사람들은 곰과 새를 신성시하는 토템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환웅천황과 웅족이 연합했음을, 웅족이 곰을 토템으로 한 세력임을 알려 줍니다. 이와 같이 총묘단塚廟壇을 모두 갖추고 국가 단계의 복잡한 문명을 일군 홍산문화는 동북아 신석기 문화의 최고봉으로서 중국 한족의 문화와는 계통이 전혀 다른 고급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 홍산문화를 발해연안문명이라고도 합니다).

특히 지금까지 황하문명의 전유물처럼 인식해 온 갑골문화는 본래 황하 유역이 아니라 발해 연안 북부에서 기원하였습니다(BCE 3500년경). 동북아시아의 빗살무늬토기와 석묘(적석총, 석관묘, 석곽묘, 지석묘 등) 문화의 기원지도 발해 연안입니다. 동북아에서 최초의 청동기가 발견 된 곳 역시 발해 연안 북부입니다. 이 지역은 고대에 동이족이 활동했던 지역으로 환웅의 배달국 건국과 그 존속은 가공의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임이 고고학적 유물로도 입증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과 문화의 기원은 마땅히 발해 연안을 중심으로 찾아 나가야 하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동방 문명의 당당한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진정한 인간이 되는 길, 성수聖數 수행修行
웅족과 호족 두 종족은 항상 삼신상제님의 계율을 따르는 밝은 백성, 즉 환족이 되기 위해 환웅천황에게 교화의 길을 간절히 구하였다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단군사화의 진실입니다. 웅족과 호족은 환웅천황의 가르침에 따라 삼칠(3×7=21)일간의 수행에 들어갑니다. 이 21일 동안의 구도 기간은 우주 원리로 볼 때 대단히 깊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주기의 수행이 아니라 삼신을 상징하는 3과 칠성을 상징하는 7로 조합된 시간을 외부와 단절하며 수도했다는 것은 이 3·7을 대단히 신성하게 여겼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3은 만물의 변화를 일으켜 전체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수입니다. 모든 변화는 생장성生長成으로 이루어집니다. 생각의 논리도 정반합으로, 우주의 시공간도 하늘 땅 인간으로, 시간도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로 벌여져 있습니다. 3은 양과 음의 결합(1+2)으로 이루어져 ‘만물의 화생’을 상징합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수의 시작은 3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부경』은 이 3수 법칙의 정수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7은 3이라는 하늘의 완전수(삼신)와 4라는 지상의 완전수(동서남북,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시)가 합쳐진 수입니다. 생명의 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성기도 공부는 7일 단위의 수행을 주로 하였습니다.

우주의 통치자 삼신상제님은 삼신으로 생명을 낳고 칠성으로 만물을 길러 냅니다. 때문에 신교문화에서는 상제님을 삼신상제님으로만 모신 것이 아니라 칠성님으로도 모셨습니다. 그래서 칠성님은 신교문화에서 한민족의 선조들이 하느님을 부르는 또 다른 호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과 7이 바탕이 된 삼신, 칠성 사상은 9천 년 한민족사의 모든 왕조에서 국가 경영 제도의 근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 전반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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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역주본 환단고기』(안경전, 상생출판, 2012)
『이것이 개벽이다 하』(안경전, 상생출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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