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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創世 역사의 스승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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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영 / 객원기자
 

사람을 인간답게 하는 스승의 중요성


인인인인인人人人人人! 이것이 무엇이냐는 한자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답은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고 합니다. 우리의 모습은 다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람 모양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짐승보다 더 못한 인성을 지닌 이들도 있습니다. 자신만 알고, 인생의 참가치를 모를 뿐만 아니라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 동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 인人 자 다섯을 연달아 적어서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니고 사람값을 하는, 사람다운 사람만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경구라고 생각합니다.

장황하게 사람에 대해서 서두를 꺼내는 이유는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진정한 사람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스승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어릴 때는 부모의 보호와 양육을 받습니다. 어릴 적 부모의 교육, 이른바 밥상머리 교육을 받고 사람의 기본적인 자질을 키워 갑니다. 하지만 좀 더 나은 인간, 제대로 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학문이든 도리이든 이를 지도해 줄 참스승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스승이 날이 있는 5월을 맞이하여 창세역사에서 인류를 지도해 준, 특히 신교문화를 정립하고 발전시켜 준 창세 시대 이후 역대 스승님들의 발자취를 찾아보는 일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삼신상제 제천행사를 참관한 발귀리發貴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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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만날 분은 인류의 정신문명을 개창한 태호 복희씨와 동문수학한 배달국 신시 시대 인물인 선인仙人 발귀리發貴理입니다. 도를 통한 발귀리 선인은 허베이성河北省의 방저方渚와 대릉하 상류의 풍산風山 사이를 유람하며 도를 전하여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하얼빈인 아사달에 와서 제천행사를 참관하였습니다. 아사달은 삼신상제님께 제사 지내는 곳입니다. 예식이 끝난 후 이를 찬송하는 노래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만물의 큰 시원[大一]이 되는 지극한 생명이여! 이를 양기良氣(우주의 기원이 되는 생명 에너지)라 부르나니 무와 유가 혼연일체로 존재하고 텅 빔과 꽉 참이 오묘하구나. 삼(三神)은 일(一神)로 본체를 삼고, 일은 삼으로 작용을 삼으니 무와 유, 텅 빔과 꽉 참(정신과 물질)이 오묘하게 하나로 순환하고 삼신의 본체와 작용은 둘이 아니로다. 우주의 큰 빔 속에 밝음이 있으니, 이것이 신의 모습이로다. 천지의 대기大氣는 영원하니 이것이 신의 조화로다. 참생명이 흘러나오는 시원처요, 만법이 이곳에서 생겨나니 일월의 씨앗이며, 천신(상제님)의 참마음이로다! 만물에 광명 비추고, 생명선을 던져 주니 이 천지조화(의 광명과 대기) 대각하면 큰 능력을 얻을 것이요 성신이 세상에 크게 내려 만백성 번영하도다. 그러므로 원圓은 일一이니 하늘의 무극無極 정신을 뜻하고 방方은 이二이니 하늘과 대비가 되는 땅의 정신을 말하고 각角은 삼三이니 천지의 주인인 인간의 태극太極 정신이로다.


 

14세 자오지환웅 때 국사國師 자부紫府 선생


배달국 14세 자오지환웅 일명 치우천황 때 신선으로 자부紫府 선생이 계셨습니다. 자부 선생은 선인 발귀리의 후손으로, 태어나면서 신명神明하여 도를 통해 신선이 되었습니다. 자부 선생은 일월의 운행 경로와 그 운행 도수[纏次]를 추정하여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를 지었습니다. 이것은 칠성력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이는 인류 최고最古의 달력으로 이를 계승 발전시켜 당요와 우순이 366일과 365 ¼일의 1년 역수를 정립시켰습니다.
 

자부 선생과 황제헌원

자부 선생이 청구국 대풍산大風山 남쪽 삼청궁에 계실 때, 당시 제후였던 헌원이 자오지환웅을 찾아뵙는 도중에 선생의 명성을 듣고 찾아가서 가르침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 내용은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과 중국 삼국 시절을 통합한 진晋나라 때 도사인 갈홍葛洪(283~343)이 지은 『포박자抱朴子』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운급칠잠雲笈七箴』에도 동일한 기록이 있습니다. 황제헌원黃帝軒轅은 본래 우리 동이족의 혈통으로 중국 한족이 실질적인 시조로 받드는 인물입니다. 중국의 도교는 배달의 신선인 자부 선생에게 신교의 대도를 전수받은 황제헌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신교와 도교가 둘이 아님을 말하고, 도교가 동방 한민족의 국교인 신교의 아류에 지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자부 선생은 황제헌원에게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는 그로 하여금 마음을 닦아 의로운 정신으로 돌아가게 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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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내문』은 모두 천상의 전서篆書로 쓰여 있습니다. 본래는 신시 시대의 녹도문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총 삼백여 자로 상중하 세 권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상권은 천황, 중권은 지황, 하권은 인황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삼황내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상권은 신선과 우주론, 중권은 부국안민富國安民의 법, 하권은 강병전승强兵戰勝의 술術과 천지음양, 만물의 조화 원리가 담겨 있기 때문에, 치국治國, 제가齊家, 지신持身, 불사不死의 도는 모두 이 경에서 나온 것이라 합니다.

후세 사람이 이 글을 부연하고 주註를 덧붙여 별도로 신선음부神仙陰符의 설을 만들었습니다. 주周나라와 진秦나라 시대를 지나면서 도가 학파가 이것에 의탁하였고, 이따금 단약丹藥을 만들어서 불사약으로 먹기도 하였고 그 외 허다한 방술의 설이 어지러이 뒤섞여 나돌아서 이에 미혹되어 빠지는 자가 속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민족 최초의 정사正史인 신지비사神誌秘詞를 지은 신지 발리發理


시간은 흘러 배달국의 국운이 쇠퇴하고, 단군왕검이 창업한 단군조선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단군조선 때 사관인 신지神誌(또는 신지臣智)들이 10월 소도蘇塗 대제大祭 때에 우주 창조와 단군조선의 건설, 산천 지리의 명승名勝과 후인에게 감계鑑誡할 일을 노래하였습니다. 후세 문사들이 그 노래를 이두문吏讀文이나 한자로써 오언시五言詩로 기록하여 비장祕藏하였습니다. 이를 「신지비사神誌祕詞」 또는 「해동비록海東祕錄」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 신지비사를 지은 사람이 6세 달문단군 때 사관인 신지 발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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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 달문達門단군께서 재위 35년인 임자년(단기 285년, 서기전 2049년)에 여러 왕[諸汗]을 상춘常春에 모이게 하였습니다. 상춘은 눌견訥見, 장춘長春이라고 하며 대진국, 요나라, 금나라 등에서 수도 역할을 하던 곳입니다. 이곳 구월산九月山에서 천제를 올릴 때 신지神誌 발리發理로 하여금 하늘에 고하는 글로 짓게 한 제천문祭天文이 바로 「서효사誓效詞」입니다. 「서효사」는 신지神誌에 의해 기록된 비밀스러운 글이라는 뜻으로 「신지비사神誌祕詞」라고도 합니다. 서효사는 ‘맹세할 서誓, 본받을 효效, 말씀 사詞’ 자로 문자적으로는 ‘하늘에 맹세하고 본받는 글’이라는 뜻으로 삼신상제님께 제사 지낼 때 서원하는 글입니다. 「서효사」는 한마디로 한민족 국통의 맥과 정신 그리고 삼한관경제라는 통치제도까지를 망라한 제천문이자, 삼한으로 나눈 영토를 잘 다스리는 것과 백성을 진실로 기쁘게 하려고 신께 축원을 드리는 기도문祈禱文이었습니다.

「서효사」에는 단군조선의 삼한의 각 수도(삼경三京)을 저울대와 저울판 그리고 저울추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저울대 부소량(소밀랑)은 진한의 수도인 아사달(하얼빈)이고 저울추 오덕지(안덕향)은 번한의 수도 탕지보(당산시) 그리고 저울판 백아강은 마한의 수도 대동강입니다. 핵심 내용은 삼신의 창조 원리를 적용한 신교의 삼신 신앙이 영속되어 단군조선 삼경의 균형이 잘 유지되면 삼한의 70국의 조공을 받고 크게 번영하게 되며, 만약 삼신 신앙이 쇠퇴하여 삼경의 균형이 깨어지면 바로 그날이 단군조선의 종말이 된다고 후손들에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단재 신채호는 「신지비사」를 우리 민족 최초의 정사正史이며 삼신산을 근거로 한 우리 민족 고유의 풍수지리서라고 평가하였습니다.

이 「서효사」는 「신지비사」라는 이름으로 『고려사』 「김위제전金謂磾傳」에는 그 내용의 골격이,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 「천지문」에는 내용의 일부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 시대 태종 이방원은 충주 사고에 있던 사서 중 「신지비사」만 따로 봉하여 올리라 하고, ‘70국 조공을 받았다’는 내용을 보고 황탄하다면서 불을 지르게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 한국사의 원형정신이 불 속에서 잿더미가 되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본지 2020년 4월호 ‘불태워진 「서효사」, 잿더미가 된 역사의식!’ 기사를 참조 바랍니다).
 

국자랑을 가르치는 사부 유위자有爲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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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 11세 도해道奚단군 원년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단군께서 오가에게 명하여 12명산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을 택해 국선소도國仙蘇塗를 설치하게 하셨습니다. 국선소도는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지내는 곳으로 삼신 신앙의 대표적인 장소입니다. 이 소도 신앙은 환국 시대에 비롯하였습니다. 그 둘레에 박달나무를 많이 심고, 가장 큰 나무를 택하여 환웅상桓雄像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했고, 이름을 웅상雄常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상常은 항상 임재해 계신다(常在)란 뜻입니다.

이때 도해단군의 태자이자 국자랑의 사부인 유위자有爲子가 헌책하여 아뢰었습니다. 국자랑은 국선國仙 또는 선랑仙郞이라고 불렀는데, 삼신상제님을 수호하며 한민족 역사의식 속에 살아 있는 문무겸전의 인재입니다. 그 전통은 고구려 조의선인皂衣仙人, 백제의 무절武節, 신라의 화랑花郞으로 맥이 이어져 왔습니다.
 

“오직 우리 배달이 실로 환웅천황의 신시 개천 이래 백성을 모아 ‘전佺의 도’로써 계율을 세워 교화하였습니다. 『천부경』과 『삼일신고』[천경신고天經神誥]는 역대 성조들이 조명詔命으로 기록하였고,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고 다니는 풍속은 아래로 백성이 즐거이 본받았습니다. 이에 백성은 법을 범하지 않고 한결같이 잘 다스려졌으며, 들에는 도적이 없어 저절로 평안하게 되었습니다. 온 세상 사람이 병이 없어 저절로 장수를 누리고 흉년이 없어 저절로 넉넉하여, 산에 올라 노래 부르고 달맞이를 하면서 춤을 추며, 아무리 먼 곳이라도 그 덕화가 미치지 않은 데가 없고 어떤 곳이든 흥하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덕과 가르침이 만백성에게 미치고 칭송하는 소리가 사해에 넘쳤다 하옵니다.”



그러고는 그렇게 다스려 주시기를 청하였습니다. 이에 도해단군은 동방의 유구한 역사, 그 문화 정신을 복원하겠다는 포부로 환국, 배달의 시조를 섬기는 문화를 크게 부흥시키고 『천부경』과 『삼일신고』의 내용을 근거로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창조 정신과 목적을 밝히고 우주광명 홍익인간관을 완성한 『염표문念標文』을 반포하였습니다. 이 염표문 제작자가 바로 유위자입니다.

유위자는 묘향산에 은거하였는데, 자부 선생의 학문을 이은 것입니다. 즉 신교를 이론적으로 체계화시킨 분이 자부 선생이라면, 학문적으로 집대성한 인물이 유위자인 것입니다. 이 유위자는 도의 큰 근원은 삼신에서 나온다(道之大原 出乎三神)라고 하여 이 우주 창조의 이법, 도의 근원은 하늘이 아니라 삼신에서 나온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공자의 10세손인 공빈孔斌이 지은 『동이열전東夷列傳』에서 “유위자는 하늘이 낳은 성인으로 훌륭한 이름이 중국에도 넘쳐흘렀다. 이윤이 그의 문하에서 학업을 전수받아 은나라 탕왕의 훌륭한 재상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윤伊尹은 잘 알려져 있듯이 상商(은)나라 성탕成湯을 도와 상나라를 건국하게 한 재상이며, 중국 역사에서 최초의 요리사로 받들어져 있습니다. 그런 이윤의 스승님이 바로 유위자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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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고구려 제국의 국상 현인 을파소乙巴素

 

단군조선 이후의 국통맥과 고구려

동북아의 대국 단군조선도 47세 고열가단군이 귀족들에게 나라를 맡기고 산으로 들어가 버리면서 역사를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단군조선 말기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고리국 출신인 해모수解慕漱가 웅심산(지금의 길림성 서란)을 근거지로 북부여北夫餘를 세웠고, 단군조선을 계승하였습니다. 하지만 4세 단군 때에 전한 제국의 무제武帝 유철劉徹의 침략이 있자, 이를 물리친 영웅 고두막한高豆莫汗이 졸본부여卒本夫餘를 열고 스스로를 동명왕東明王이라고 하였습니다. 이후 북부여 시조 해모수의 고손자인 주몽朱蒙이 7세 단군이 되면서 나라 이름을 북부여에서 고구려高句麗로 바꾸었습니다.

고구려가 세력을 확장하던 중 9세 고국천열제故國川烈帝의 시기가 되었습니다. 고국천열제는 8세 신대열제新大烈帝의 둘째 아들로 대신들의 추대로 즉위하였습니다. 즉위 후 후한 요동태수의 침략을 좌원坐原에서 격퇴하였습니다. 이곳은 과거 신대열제 때 고구려 최초 국상國相인 명림답부明臨答夫의 지휘 아래 한나라의 대군을 섬멸한 좌원대첩이 있던 장소였습니다. 좌원에서 두 번째 후한군을 격퇴한 뒤 한 제국은 크게 쇠락하고 그 유명한 삼국 시절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후 왕후의 친척인 중외대부中畏大夫 패자沛者 어비류於畀留와 평자評者 좌가려左可慮가 권력을 등에 업고 전횡을 일삼자 열제께서는 이를 벌하려 하였습니다. 이에 좌가려 등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진압하였습니다. 고국천열제 13년인 191년에 이런 혼란을 진정시키고자, 각 부部에 인재를 천거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신하들은 동부의 안류晏留를 천거하였지만, 정작 안류는 2세 유리명열제琉璃明烈帝 때 대신 을소의 4세손으로 서압록곡西鴨綠谷 좌물촌左勿村에서 농사를 짓던 을파소乙巴素를 천거하였습니다. 이에 고국천열제는 을파소에게 중외대부中畏大夫 벼슬과 우태于台 작위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을파소는 이런 관직으로는 자신의 뜻을 펴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고사하자, 고국천열제는 그 뜻을 알고 국상國相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기존 대신과 외척들이 을파소에게 불만을 품고 배척하자, 고국천열제는 을파소에게 전폭적인 지지와 신임을 보여 주었고, 국상에게 복종치 않는 자는 일족을 멸하겠다는 엄명을 내렸습니다.
 

국상이 되다

이후 을파소는 성경신誠敬信으로 국사에 임하였으며,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고 정교政敎를 명백히 하고, 상벌을 신중히 하였습니다. 그래서 내정이 안정되고 천하가 태평성대를 이루었습니다. 이에 고국천열제는 을파소를 천거한 공을 들어 안류를 대사자大使者에 임명하였습니다. 을파소는 봄, 가을 기간 동안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추수 때 갚게 하는 빈민 구제법인 진대법賑貸法 추진에 깊게 관여하였습니다. 을파소는 성격이 강직하고 굳세며, 슬기와 지혜가 연못처럼 깊었다고 합니다.
 

을파소와 조의선인

을파소가 국상이 되어 나이 어린 영재를 뽑아 선인도랑仙人徒郞으로 삼았습니다. 교화를 주관하는 자를 참전叅佺이라 하는데 무리 중에 계율을 잘 지키는 자를 선발하여 삼신을 받드는 일을 맡겼습니다. 무예를 관장하는 자를 조의皂衣라고 하는데,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규율을 잘 지켜, 나라의 일을 위해 몸을 던져 앞장서도록 하였습니다. 조의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면 조의는 삼신상제님의 진리, 즉 한민족 신교 낭가 사상으로 무장한 종교적 무사단으로 문무를 겸비한 상무적 무사 집단이었습니다. 조의는 개인적인 완성이 아니라 항상 공도公道와 국가, 민족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도 같이 내던지는 살신성도殺身成道를 이상과 목적으로 삼은 한민족 역사 개척의 주역입니다. 평상시에는 삼신상제님의 신교 진리를 터득하여 완전한 인격자의 길을 추구하고, 심신과 학문을 닦으며 무예를 연마하였습니다. 그러다 국가 유사시에는 항상 선봉에 서서 목숨을 걸고 국가의 위급 상황을 극복하였습니다. 이들의 계율이 바로 참전계參佺戒로 핵심 덕목은 충인의지예忠仁義智禮였습니다.

을파소는 참전과 조의들에게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내려 주었습니다.
 

“신시 시대에 신교의 진리로 세상을 다스려 깨우칠 때는 백성의 지혜가 나날이 지극한 다스림에 이르렀으니, 그것은 만세에 걸쳐 바꿀 수 없는 표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전이 지켜야 할 계율을 두고, 상제님의 말씀을 받들어 백성을 교화하며, 한맹寒盟을 행함에도 계율을 두어 하늘을 대신해서 공덕을 베푸나니 모두 스스로 심법을 바로 세우고 힘써 노력하여 훗날 세울 공덕에 대비하라.”



여기서 한맹은 고구려에서 10월에 행하는 신교의 제천 의식으로 일명 동맹東盟, 동명東明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래 삼신상제님께 제사를 지내던 신교의 소도제천蘇塗祭天 의식이 전승된 것으로 오늘날 개천절開天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참전계경參佺戒經과 을파소

을파소는 백운산白雲山(지금의 평안도 천마산天摩山)에서 기도하면서 참전계경參佺戒經을 얻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을파소 자신은 배달 환웅 시대 때 이미 참전계로써 교화대행敎化大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그 이전에 있었던 것을 을파소가 경전으로 다듬어 완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참전계의 전佺은 지덕체智德體 삼육三育을 겸전한 완전하고 건전한 인격자라는 의미입니다. 참전계는 완전한 인간에 이르기 위해 지키고 연마해야 할 계율이라는 뜻입니다. 이에 대해서 을파소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이 전계佺戒로 더욱 힘써서 자신을 수양한다면 백성을 평안하게 하는 공덕을 실현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라고 설파하였습니다. 을파소는 고국천열제 뒤를 이은 산상열제 때인 203년에 죽으니 백성들이 대단히 슬퍼하며 곡을 했다고 합니다. 묘는 삭주朔州 거문산巨門山 서쪽 기슭에 있습니다.

<참고문헌>
『역주본 환단고기』(안경전, 상생출판, 2012)
『이것이 개벽이다 하』(안경전, 상생출판, 2014) 



 

평양 을밀대와 을밀선인

북한의 평양 금수산錦繡山 마루에는 11미터의 축대 위에 잘 생긴 대臺가 있습니다. 을밀봉 밑에 있는데 6세기 중엽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북쪽 장대에 세워진 을밀대乙密臺입니다. 현재 정자 건물은 조선 숙종 40년인 1714년에 축대를 보수하면서 고쳐 지었습니다. 그래도 축대의 원형은 고구려 때 모습인데, 을밀대란 이름의 유래를 보면 옛적 ‘을밀선녀’가 기막힌 이곳의 경치에 반해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고 합니다. 이곳은 평양팔경의 하나로 이곳에서 봄놀이가 꼽힐 정도로 경치가 수려합니다. 또 다른 설화로는 을지문덕 장군의 아들 을밀 장군이 이곳을 지켜 싸웠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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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장 신빙성 있는 기록은 환단고기 고구려본기에 나옵니다. 을밀대의 주인공은 고구려 22세 안장열제安藏烈帝 때의 조의皂衣 을밀乙密입니다. 그는 2세 유리명열제 때의 대신인 을소乙素의 후손이자, 위에서 본 을파소의 후손이기도 합니다. 을밀은 집에서 글을 읽고 활쏘기를 익히고 삼신을 노래하였습니다. 그리고 무리를 받아들여 수련시키고, 정의와 용기로 나라를 위해 힘을 다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당대에 이름난 조의가 되었고, 따르는 무리가 3천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을밀선인乙密仙人이 을밀대에 거주하며 하늘에 천제 올리고, 수련하는 것을 직분으로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나라 사람들에게 사표師表가 되어, 천추만세에 추상을 받아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인존人尊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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