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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FAQ는 증산도 진리 도서들의 핵심 내용을 일부 발췌해서 재정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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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잃어버린 자 역사에 휩쓸려 가리라.”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한민족의 근세사를 돌아보면, 마지막 조선 왕조가 몰락의 위기에 내몰리던 무렵, 고종황제는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꺼져가는 국운을 다시 일으키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노력은 13년 만에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무너지고 맙니다. 

 

이후 일본 식민통치 35년 동안, 환국-배달-단군조선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상고사는 모두 말살되었고, 약 8백만 명이 무참하게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당시 한민족은 일본인들에게 “고노 조센징 바카야로(이 조선인 바보다).”라는 말을 들으며 치욕스러운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왜 잃어버린 역사를 꼭 알아야 하는가? 

왜 우리 한국 문화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역사를 잃어버리면 과거를 알 수 없고 과거를 모르면 현재 사물을 보는 눈이 뒤틀려서 제대로 미래를 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민족의 패망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잃어버린 역사를 찾으려 하지 않고 “그게 뭐가 급하냐? 나는 관심이 없다.” 하는 한국인은 진정으로 바보 같은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 10위 대국의 문턱을 넘어섰다고 하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마치 사상누각과 같아서 우리의 장래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환단고기』 「단군세기」 서문을 보면 역사와 국통國統의 중요성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나라는 국통으로 인하여 세워지고, 백성은 이 국통으로 인해 흥하였나니, 역사를 배움이 어찌 소중하지 않으리오?”

 

한민족은 태고 시대 인류 창세 문화와 역사를 개창한 동방 문화의 주역입니다.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 당당하게 서려면 시원 역사를 복원하고 국통맥을 바로 세워 잃어버린 민족혼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 중심에 인류 시원문화이자 한민족의 원형문화인 상제문화, 천제문화의 전통을 계승한, 한민족 9천 년 역사의 최종 결론인 참 동학 증산도가 있습니다. 

 

제국주의 열강이 몰려와 동양의 약소국을 짓밟던 19세기에, 수운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東學은 진정한 근세사의 출발점입니다. 수운은 하느님(상제님)에게서 성령으로 도통을 받고 ‘시천주侍天主’ 즉 ‘(인간으로 오시는) 하늘의 주인, 상제님을 모셔야 한다.’는 것과 ‘다시 개벽으로 인류의 새 시대가 개명된다’는 것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한민족 고대사가 말살되어 상제문화를 잃어버린 악업 때문에 ‘시천주’, ‘개벽 사상’ 또한 완전히 변색되어 근세사마저 왜곡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동학의 개벽 사상, 개벽 역사관의 원형을 바르게 아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모든 생명은 뿌리 기운으로 태어나 매순간 뿌리 기운으로 살고 열매를 맺습니다. 따라서 뿌리를 부정하는 것은 생명의 근원을 거부하고 잘라내는 일입니다. 그것은 결국 소멸이 있을 뿐입니다.  

국가와 민족도 그렇습니다. 뿌리 역사를 잃어버리고 국조國祖를 부정하면 영원한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요 입니다. 

나라는 1945년에 해방되었으나 한국의 창세 역사와 원형문화는 아직 식민 시대의 어둠 속에 갇혀 있습니다. 입니다. 

 

이제 한국인이라면 누구도 역사 광복운동의 독립군이 되어, 인류 창세 문화인 신교의 정통맥을 이은 증산도와 함께, 한민족의 잃어버린 옛 역사와 문화를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8,200만 한민족이 모두 참된 대한大韓 사람으로 거듭나 지구촌 전 인류가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희망의 새 시대를 여는 자랑스러운 역사의 주인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한민족과 증산도 중 -

통일전망대에서

 

지난 이른 봄날, 필자는 한민족 분단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대한민국 최북단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통일전망대에 올랐습니다. 저 멀리 해금강의 반짝이는 수면이 금강산의 수려한 자태와 함께 눈부시게 펼쳐졌습니다. 

 

9천여 년을 함께 살아 온 동족이 남북으로 갈리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한반도! 쌀쌀한 겨울 바다의 기운을 느끼며 분단된 한민족의 비극사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층의 마지막 전시실을 나서면서 입구 벽에 걸린 박두진 시인의 ‘아 민족’이란 시를 읽는데, 문득 대한민국 통일의 비전과 남북통일의 새 역사 정신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겨레여 형제여 

우리들 이 가슴 속엔 

진한 혈조血潮가 눌리다 또 끓어올라 

솟구치지 않느냐 

오늘 우리가 우리의 조국 못 통일하면 

자유 민주 민족통일 못 이룩하면 어떻다 하리 

먼 후예가 오늘의 우리를 어떻다 하리

 

곁에 있는 일행에게 “이 시 속에 남북통일이 안 되는 핵심 이유가 들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아느냐?” 하고 물었으나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유, 민주’라는 가치입니다. ‘자유와 민주’는 근대 이후 자본주의 혁명을 성공시키고 인간의 꿈을 성취할 수 있게 한 근대사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러나 한민족의 통일은 이 소중한 ‘자유와 민주’라는 이념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기반으로 한, 그보다 더욱 중대한 역사 과제가 있습니다. 19세기에 바로 이 땅에서 실제적인 인류 근대사의 새벽을 선언한 ‘다시 개벽’이 그것입니다. 동학東學의 ‘개벽’으로만 통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치열한 동북아 역사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더욱 거세게 휩쓸려 들어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한반도가 처한 위기에 대해 서울대 송호근 교수는 “구한말 망국 때와 정확히 일치한다. … 과장이 아니다. … 그때보다 더 열악하다. 한국을 두고 벌어지는 국제정세가 그렇고, 그와는 아랑곳없이 터지는 내부 분열도 그렇다.” (중앙일보 송호근 칼럼 2013.12.3) 라고 경고합니다. 

 

현재 한민족은 제국주의 침략으로 국토가 유린되던 19세기 후반보다 훨씬 더 위험한,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통일전망대를 내려오면서, 필자는 한반도 위기 상황의 근본 원인인 동북아 역사 대전쟁의 실체를 극명하게 밝혀 대한민국이 이 위기를 벗어나 진정한 통일을 이루고 희망찬 미래를 여는 해법과 비전을 제시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동북아 영토 분쟁의 실체

 

지금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는 영토 분쟁이 치열합니다. 독도를 두고 일본과 한국이, 대한민국의 소유인 이어도를 놓고 중국과 한국이, 일본이 점유하고 있는 센카쿠(댜오위다오) 열도를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분쟁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일본 『문예춘추』에 실린 한 기사에 따르면, 중국이 센카쿠 도발을 하는 이유는 아시아 맹주로 군림하기 위한 작전으로 “중국은 ‘현대판 대동아공영권’을 꿈꾸고 있다.”라고 합니다. 2013년, 시진핑이 중국 공산당 총서기로 취임한 뒤 행한 연설을 분석한 어느 일본 정치인은, “그의 연설에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고 주변국은 중국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지적합니다. 『문예춘추』, 2014년 1월호

 

중국은 지금 21세기 판 중화中華사상을 완결 짓기 위해 한 수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국에 대항하여 일본의 아베 내각은 대중국 경제 봉쇄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맹국이 무력공격을 받을 경우 그 나라를 원조하여 공동으로 적국을 공격할 수 있는 ‘집단자위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군국주의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도 단순히 섬 하나를 차지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동북아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나아가 다시 한 번 세계 정치무대의 강자로 등극하겠다는 속셈입니다.

이렇듯 언제 급변사태로 돌변할지 모르는 한·중·일 사이 갈등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 실체는 한마디로 역사전쟁, 곧 동북아 문화와 역사의 주도권 쟁탈전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누가 동북아의 진정한 주인인가?’를 놓고 벌이는 싸움입니다. 『아시아 이상주의』의 저자 이홍범 박사의 말과 같이 ‘세계를 지배하는 국가는 경제력, 군사력을 쥐고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역사 권력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 동북아 역사전쟁은 왜,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동북아 역사전쟁, 그 원인과 시작

 

인류 문명은 동방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한민족은 9천여 년 전 동방 땅에 ‘광명의 나라’ 환국桓國을 열어 인류 창세 문명을 개척한 시원 역사의 종주宗主요, 천자국天子國의 본래 주인입니다. 중국과 일본은 바로 동방 광명 문화의 주인인 한민족으로부터 문화와 역사의 주도권을 빼앗기 위해 수천 년 전부터 우리의 상고사를 왜곡하고 문화를 탈취하면서 영토까지 넘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동북아 역사전쟁이 일어나는 근본 이유입니다.

 

한민족에게서 천자국의 지위를 빼앗으려는 중국의 도발은 4,700년 전, 중국 역사의 시조인 헌원 시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중국에서 황제로 추앙받는 헌원은 본래 동방 배달의 치우천황의 통치 아래 있던 서방 지역의 일개 제후였습니다. 그런 헌원이 천자를 자처하며 치우천황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북경 서북쪽 탁록에서 10년 대전쟁 끝에 치우천황에게 패하고 마는데, 이것을 보면 중국의 역사는 동방 문화의 주인, 천자 자리를 넘보는 모반의 역사로 출발한 것입니다.

 

한편 일본의 동방 문화 주도권 침탈은 그들의 시원 역사 왜곡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본래 일본의 시원사는 단군조선 때부터 한반도에서 건너간 한민족의 개척사이고, 일본 문화 또한 한민족의 문화가 이식된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그들에게 광명 문화를 전수해 준 어머니 나라 백제가 망하자, 한반도와의 인연을 끊고 새 출발을 하면서(670년) 나라 이름 ‘왜倭’를 ‘일본日本’으로 바꾸었습니다. ‘일본’은 ‘해가 뜨는 뿌리(日出之本)’라는 뜻으로 ‘동방 광명 문화의 주인’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한민족을 제치고 그들이 세계 문화의 근원이자 중심임을 자처한 것입니다. 이것이 일본이 일으킨 동북아 역사전쟁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인데, 정작 한민족은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중국과 일본의 끈질긴 역사 왜곡과 침탈 때문에 뿌리역사와 문화의 시원을 다 잃어 버려서 그 심각함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의 이 역사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잃어버린 역사 권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한韓 문화의 원형을 알고 그 속에 담긴 민족혼을 되살려야 합니다. 

 

역사를 잃어버리면

 

역사를 안다는 것은 나와 우리 삶의 출발점을 아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사의 근원은 인류 창세사와 직접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사의 뿌리가 희석되고 왜곡, 조작되는 것은 인류사의 기원이 왜곡되는 것과 같습니다. 

과거 역사를 잃어버리면 현재 이 세계를 보는 안목, 인간 삶의 공동체인 민족과 인류 문화를 보는 안목이 근본적으로 뒤틀립니다. 나아가 올바른 지혜의 눈으로 미래를 조망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역사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역사를 잃고서 나라를 보존한 민족은 없습니다. 오늘의 분단의 역사, 그 원죄도 다 역사를 잃어버린 데서 나온 것입니다. 남북통일을 위한 제1의 과제는 바로 잃어버린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필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탐구하다가 2012년 9월, 마침내 한민족의 시원역사와 인류 원형문화를 밝히는 『환단고기』 완역본을 출간하였습니다. 이후 국내 주요 도시를 다니며 한민족 역사뿌리 찾기 『환단고기』 콘서트 강연회를 마친 뒤 2013년 가을에 미국 강연 길에 올랐습니다. 그곳 강연회에서 현지 교민들이 하나같이 ‘이민 2세대들은 한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모른다’라고 고백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교민들은 또 2세 젊은이들이 미국 사회에서 그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성공을 했어도 ‘우리는 미국인이 아니다. 동시에 한국인도 아니다. 우리는 어중간한 존재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요? 바로 우리 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민 2세들의 무너진 정체성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것은 권력도, 명예도, 지식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한민족의 문화와 역사의 근원’을 되찾는 것뿐입니다.

몇 해 전부터 일본은, 1990년대부터 국제사회에서 한반도의 ‘동해’를 ‘동해East Sea’와 ‘일본해Sea of Japan’로 혼용해 오던 것을 ‘일본해’로만 표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였습니다. 이런 일방적인 주장을 막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와 민간은 국제사회에서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倂記하도록 외교적인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2014년, 미국 버지니아 주 의회가 ‘공립학교 교과서에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뒤이어 뉴욕 주도 동해 병기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소식에 온 나라가 한때 무슨 큰 승리라도 한 듯 떠들썩하였습니다. 미국 내 모든 주도 아니고 한두 개 주의 교과서에 관련된 이 일에 한국 정부가 온갖 노력을 쏟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정작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되는 가장 중대한 문제인 ‘잃어버린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회복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절 침묵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동북아 사태를 살펴볼 때, 만일 우리가 잃어버린 역사와 문화를 속히 되찾지 못하고 세계 패권을 차지하려는 중국과 일본에 적극 대처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멸절의 역사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바로 지금,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 한민족과 증산도 중 -

한국인의 부끄러운 역사의식

 

한민족은 자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의식과 자긍심을 갖고 있을까요?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한 한국인의 의식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바로 국보 1호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국보 1호가 남대문인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상식입니다. 남대문의 본래 이름은 숭례문입니다. 그런데 숭례문이 어떻게 해서 남대문으로 바뀌고 국보 1호가 되었는지 그 내력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임진왜란(1592~1596) 당시 해전과 육전에서 승승장구한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수도 한양까지 쳐들어왔습니다. 그때 기요마사는 숭례문을 통해 입성하여 도성을 파괴하고 수많은 백성을 살상하였습니다. 

그 후 300여 년이 지난 19세기에 이르러 일본은 또다시 한반도를 유린하고, 1910년부터 조선을 식민지화하여 통치하면서 문화재를 파괴하거나 강탈해 갔습니다. 숭례문을 비롯한 도성의 4대문도 교통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없애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조선에 들어와 있던 당시 일본인 거류민장이 이를 만류하며,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숭례문을 통해 한양에 입성하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여 숭례문을 개선문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일제 총독부는 숭례문을 훼손하지 않고, 숭례문을 단순히 방위만을 뜻하는 ‘남대문’으로 격하시켜 <조선고적 1호>로 지정했습니다(1934년). 

광복 후 대한민국은 1962년 문화재보호법을 시행하면서 일제에 의해 지정된 것을 그대로 답습하여 침략자의 입성을 기념한 남대문을 국보 1호로 지정하였습니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대한민국 국보 1호에 이 같은 치욕의 역사가 감춰져 있는 것입니다. 

국보 1호 지정 내력이 말해 주듯이, 우리는 국가의 문화재 보물 하나도 제대로 정하지 못할 정도로 역사의식이 투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직도 일본 제국주의의 정신적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 교육의 현주소

 

그렇다면 한국의 역사서, 특히 학생들이 읽는 역사 교과서에 우리 역사의 뿌리는 어떻게 기술되어 있을까요? 

 

현 대한민국 정규 교육 과정에서 가르치는 우리 고대 역사의 대강을 살펴보겠습니다.

2006년도까지 초·중·고 역사 교과서는 ‘서기전 2333년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라고 하여, 우리 시원 역사를 마치 남의 역사 얘기하듯 서술했습니다. 그러다 이듬해 대한민국 역사 교육 사상 처음으로 국정 교과서가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했다’라고 하여 단군조선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했습니다. 여러 해에 걸친 뜻있는 사람들의 노력이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역사 교과서는 아직도 자신감 없는 허수아비 언어로 우리 역사를 농락하고 있습니다. ‘곰이 변한 여자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으며,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고등학교 『한국사』 17쪽, 천재교육, 2012)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에 따르면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고 한다’(고등학교 『한국사』 20쪽, 지학사, 2012)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 알려야 할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전시관도 큰 문제입니다. 국정 교과서가 고조선을 실존 역사로 인정한 지 2년 뒤인 2009년,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 고조선관이 처음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가 보면 전시된 유물도 별로 없고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그곳 안내문에는 ‘최초의 국가 고조선The First Korean State’이라 했을 뿐 고조선의 실제 역사는 전혀 적혀 있지 않습니다. ‘서기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는 구절 다음에 ‘서기전 194년 위만조선으로 계승되었다’는 이야기뿐입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것이 해방 후 7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 역사 교육의 현주소입니다.

 

이러한 교육 환경에서 성장한 대한민국 국민의 의식 속에 단군조선(옛 조선)은 신화의 역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은 한결같이 “한국의 실제 역사는 연나라 사람 위만이 세웠다는 위만조선, 또는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했다는 한漢나라의 식민지, ‘한사군漢四郡’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즉 ‘한국사는 중국의 식민지로 시작되었다. 한국 역사는 2천여 년이다’라고 하며, 우리 스스로 우리 역사를 부정하고 그 빈자리를 식민지 역사, 노예 역사로 채우는 미몽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제 역사를 부정하는 혼 빠진 민족, 이것이 오늘날 부인할 수 없는 한민족의 서글픈 자화상입니다. 

 

대한민국 정부 기관의 어이없는 역사의식

 

우리 정부 기관의 역사의식도 문제입니다. 정부가 동북아의 올바른 역사 이해를 도모하고,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설립한 동북아역사재단의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1970년대 이후, 고대 한민족의 활동 무대이던 중국의 만리장성 밖 요령성 일대에서, 세계사를 새로 써야 할 만큼 충격적인 유적 발굴이 있었습니다. 이 유적을 홍산문화라 합니다. 여기서 최고 9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물이 발굴되자, 중국은 재빨리 홍산문화를 그들의 것으로 만들어 중국을 인류 문명의 뿌리 나라, 종주국으로 만들 전략을 세웠습니다. 중국은 2001년부터 자국의 시원을 확정짓는 탐원공정探源工程을 기획하고, 그 일환으로 2002년에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시작하였습니다. 

동북공정이란 중국의 동북지방, 즉 요동, 요서, 만주에서 펼쳐진 한민족의 고대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역사 왜곡 공작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한민족의 고구려와 대진(발해) 역사를 중국 내 소수민족의 역사로 둔갑시키고,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을 당나라의 유적으로 조작했습니다.

2007년, 동북공정을 마친 중국은 홍산문화를 요하문명이라 부르며, 요하문명론을 내세워 단군조선의 역사까지 중국의 역사로 만들고 있습니다. 홍산문화의 양식은 중국 한족의 문화 양식과 분명히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중국 땅에서 살고 있는 모든 민족의 과거 역사는 곧 중국의 역사’라는 억지 논리를 내세워 홍산문화를 중국의 문화로 (예를 들면, 요령성박물관에 요하문명전을 상설 전시하면서 비파형 청동검과 고인돌 등의 고조선 청동기 문화를 중국 문명으로 소개한다. ) 전 세계에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2006년, 한국 정부는 약 2,500억 원의 예산을 긴급 배정하여 ‘고구려역사재단’을 ‘동북아역사재단’으로 확대, 개편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이 단체는 홍산문화를 중국의 고대사에 편입시킨 것에 대해 대응하기는커녕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2012년에 경기도 교사 열일곱 분이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역사자료집을 만들면서 거기에 “고조선은 역사적 사실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동북아역사재단이 교육과학부(지금의 교육부)와 외교통상부에 공문을 보내어 ‘단군조선은 신화이지 믿을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라고 하며, 그 내용을 수정하도록 압력을 넣은 것입니다.

동북아재단이 행한, 이보다 더 한국인을 분노하게 하는 심각한 사건이 또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한국학연구소Korea Institute에 10억 원을 지원해서 한미합작으로 역사 왜곡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2013년에 발간한 『한국 고대사 속 한사군The Han Commanderies in Early Korean History』입니다. 큰 글자로 박힌 제목에서부터 ‘한국이 한漢나라의 식민지’임을 표방하고 있는, 300여 쪽 분량의 고급 양장본인 이 책은 ‘한漢 무제가 설치한 한사군은 역사 사실이며 한반도의 한강 북쪽에 위치했었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외세가 벌인 역사 조작극의 정수이자 핵심을 대한민국 정부 기관이 역사의 진실로 못 박아서 전 세계에 널리 퍼뜨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세계 교과서 속의 한국사

 

정부 기관에서부터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 인식이 이러할진대,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의 역사를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미국의 3대 교과서 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하나같이 ‘서기전 109년경 한국은 중국의 지배하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프렌티스 홀 출판사가 발간한 「세계사World History」에서는 ‘한漢나라의 식민지이던 그 때 중국의 유교, 정치제도, 한자, 농법 등을 전해 받았다’ 「World History」, PRENTICE HALL, 2007. 라고 하여 우리나라를 중국으로부터 문명 혜택을 받은 미개한 나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국 고대사에 대한 미국 교과서의 잘못된 기술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한국의 역사는 고대에 소규모의 유목민 집단이 중앙아시아로부터 이주해 오면서 시작되었다’ 『World Cultures』, PRENTICE HALL, 2003 고 하여 한국인의 뿌리를 저 먼 곳에서 온 떠돌이 집단으로 말합니다. 또한 고려를 칭기즈칸이 세운 원나라의 식민지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고려는 원나라의 압력으로 천자국의 지위를 빼앗기고 25세 충렬왕 때부터 황제를 왕으로 낮춰 불러야 했지만, 나라를 빼앗기고 원나라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영국의 교과서도 미국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2천 년 전의 진한秦漢 시대 동북아 지도에서 한국을 중국의 식민지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교과서에서는 “조선반도는 상(은)나라 말년에 기자에 의해 개척되었다.”  “조선은 주나라 초기에 기자가 국토를 개척한 후 3천 년 동안 중국문화의 혜택을 받았다.” 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3,100년 전에 기자가 미개했던 한반도에 와서 문명을 처음 열어 주었고, 한국은 지금도 중국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기자는 상나라가 망한 후 지금의 산동과 하남 지역에서 머물다 세상을 떠난 인물로, 그가 한반도에 왔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일본의 교과서에서는 ‘4세기 후반 최초의 통일왕조인 야마토 조정이 조선에 출병하여 한반도 남부의 임나任那(현 경남지방) 지역에 영향력을 가졌다’ 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일본이 삼국시대의 신라, 가야 지역을 정복하고 다스렸다는, 사실과 정반대되는 내용을 진실인 양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교과서가 모두 한 목소리로 한국사를 축소, 왜곡하고 있습니다. 

동북아와 인류 시원 역사를 밝히는 『환단고기』

 

동북아 역사전쟁의 회오리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이때 우리는 하루빨리 역사의 무지와 어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한민족의 고대사와 국통 맥을 밝혀 줄 사서들이 외세의 침탈과 내부의 사대주의,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거의 다 사라진 오늘날,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역사의 진실을 밝혀 줄 정통 사서가 한 권 남아 있습니다. 『환단고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환단고기』는 『삼성기』 상·하,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등 신라 시대부터 근세조선에 걸쳐 다섯 분의 저자에 의해 편찬된 5권의 역사서를 한 권으로 묶은, 한민족의 정통 사서이자 인류 시원문화의 경전입니다.

『환단고기』는 조선이 일본에 망한 직후인 1911년에 발간된 책이지만, 근세 역사서가 아니라 한민족의 상고 역사서입니다. 여기에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 다른 사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한민족의 시원 문화와 역사에 대한 너무도 귀중한 자료가 담겨 있습니다. 

 

『삼성기』 상을 쓴 신라의 안함로安含老(579~640)는 유불선儒彿仙에 회통한 도승이었으며, 『삼성기』 하를 쓴 원동중은 비록 신원은 확인되지 않지만 한민족의 상고 시대인 환국, 배달, 조선 역사의 핵심을 몇 페이지로 압축할 만큼 역사적 식견이 높은 인물이었습니다. 

『단군세기』를 쓴 이암李&#23890;(1297~1364)은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지금의 국무총리격)을 지낸 대학자이자 문필가였으며, 『북부여기』를 쓴 범장范樟(?~1395) 또한 공민왕 때 중앙 조정에서 벼슬을 한 인물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환단고기』 분량의 80%를 차지하는 『태백일사』를 쓴 조선 시대 이맥李陌(1455~1528)은 이암의 4세 손으로 왕조실록을 기록하고 편찬하는 찬수관撰修官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다섯 분의 저자는 모두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환단고기』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요?

 

첫째, 동북아의 시원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출발점을 밝혀 줍니다. 한·중·일 세 나라의 역사 시조는 물론 서양 문명의 근원까지 드러냅니다. 한민족과 인류의 창세 역사와 문화를 밝힌 ‘역사 원전’인 것입니다. 

 

둘째, 인간 삶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 생활에서 수학, 천문학, 과학, 철학, 언어학, 문학 등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화의 전 영역에 걸친 태고 시대의 원형문화를 전합니다. 또한 동서의 종교, 철학, 역사학 등에서 제기해 온 인간 삶의 본질에 대한 궁극의 해답도 담고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인류의 문화 원전’인 것입니다.

 

셋째, 태고 시대 인류의 영성 문화 실상을 보여 줍니다. 문명이 막 시작되던 때부터 인류는 삶 속에서 늘 ‘천지와 인간 역사를 주재하는 조화주 하느님’을 섬겼습니다. 천지와 하나 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아왔습니다. 『환단고기』는 이른바 ‘신교神敎’ 문화와 역사를 기록한 ‘인류의 종교 원전’입니다. 

 

따라서 『환단고기』를 통해 어둠 속에 묻힌 한민족 뿌리 역사의 참 모습을 알고, 창세 시대 동서 문명의 근원과 분화 과정에 대한 비밀을 풀 수 있습니다. 『환단고기』를 제대로 읽을 때, 한민족은 중국의 고질적인 사서 왜곡과 일본의 주도면밀한 식민사관에 세뇌되어 까맣게 잊어버린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환단고기』가 전하는 우리의 지난 역사를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볼 때, 깊은 어둠에서 벗어나 동북아 역사전쟁에서 나라를 지켜 한민족의 미래를 열 수 있습니다. 

 

마침내 드러나는 동북아 역사의 진실 


최근에, 왜곡된 한국사를 전 세계에 고발한 이가 있습니다. 바로 미국 오바마 정부의 명예장관인 이홍범 박사입니다. 그는 2007년 미국에서 『아시아 이상주의Asian Millenarianism』란 책을 펴내 그동안 왜곡되고 가려졌던 동북아 문화와 역사의 실상을 밝혔습니다. 이 책은 미국 지성계에 적지않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이홍범 박사는 일찍이 일본 동경대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공부할 때, 지도교수들로부터 한결같이 ‘동학東學을 제대로 알아야 한국의 근대사를 알 수 있다. 동학을 연구하라’는 당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후 동학을 연구하고 동학사상의 근원을 캐면서,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의 근대사로 눈을 돌리고 나아가 『환단고기』를 기반으로 하여 고대사까지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의 연구 성과를 집약한 『아시아 이상주의』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에 관한 대부분의 저술은 일제 시대 식민지 정부에 고용된 학자들이 한 연구의 부산물이다. 일제는 한국의 전통적 사회정치 제도를 파괴하고 그들의 제도를 강요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와 정신도 파괴했다. (이홍범, 『아시아 이상주의』, 12쪽).

 

그는 또 한국사를 파괴한 일제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고발함과 동시에 강단사학자를 위시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식민지 유산의 덫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꼬집습니다. 예를 들면 고대 한민족을 가리키는 동이東夷 ‘동방의 활을 잘 쏘는 민족’을 뜻한다. 라는 말이 영어판 『한국사신론』(이기백 저)에서 ‘동방 오랑캐eastern barbarian’로 번역된 것을 지적하면서, 이것은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이 저술한 내용을 아무런 반성 없이 답습한 것이라 평가합니다. (이홍범, 같은 책, 20쪽)  그는 한국사의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식민지 유산을 극복해야 한다’ (이홍범, 같은 책, 19쪽.)고 주장합니다. 이홍범 박사는 동북아 고대사에 대한 중대한 발언도 하였습니다. 

 

고대에는 한국인들이 중국과 아시아, 그리고 러시아의 일부 지방을 통치하였다. 또 고대 한국인들이 중국을 세우고 대부분의 중국 영토를 지배하였다. 한편, 일본에도 진출하여 일본 왕실을 포함한 지배층을 형성하였다. (이홍범, 같은 책, 13, 28쪽).

 

한국의 문화와 역사가 중국 문명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고 있는 세계인의 잘못된 상식을 깨뜨려 준 것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도 이 책을 통해 동북아 고대사의 진실에 눈 뜨고 한민족사의 참모습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환단고기』를 바탕으로 동북아 역사를 재조명하면서 새로운 인류 문명 시대를 설파하는 이 박사의 연구가 국내에서도 점점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9천 년 한국사의 진실을 기록한 한민족의 정통 사서이다. 때문에 강단사학자들이 한국의 대표적 사서로 꼽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고대 한국인의 참 역사와 문화를 밝혀 준다. 『환단고기』의 역사적 가치를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환단고기』는 인류 창세문명과 한민족 시원 역사의 진실을 밝혀 주는 유일한 사서이다. 

『삼성기』를 비롯하여 『태백일사』에 이르기까지 다른 사서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한민족과 인류의 태곳적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특히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우리 환족이 세운 나라가 가장 오래되었다)”라는 『삼성기』의 첫 문장은 동서양 4대 문명이 발원한 인류 창세문명의 주체가 바로 ‘환국’임을 밝힌 짧지만 매우 강력한 선언이다. 

 

둘째, 『환단고기』는 단절된 한민족사의 ‘국통國統’ 맥을 가장 명확하고 바르게 잡아 준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한국사의 국통 맥은 지금까지 ①환국 → ②배달 → ③고조선 → ④북부여(열국 시대) → ⑤고구려·백제·신라·가야(사국 시대) → ⑥대진·신라(남북국 시대) → ⑦고려 → ⑧조선 → ⑨대한민국으로 이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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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환단고기』는 환桓, 단檀, 한韓의 원뜻을 밝혀 줄 뿐만 아니라, 환·단·한의 광명 사상이 실현된 상고시대 인류와 동북아 역사의 전체 과정을 기록하였다. 

‘환’은 이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하늘의 광명, 즉 천광명天光明을 뜻하고, ‘단’은 땅의 광명, 지광명地光明을 뜻한다. 그래서 ‘환단’은 천지의 광명이고, 『환단고기』는 천지의 광명을 체험하며 살았던 창세역사 시대인 ‘환단 시대 이래로 이어 온 한민족의 역사 이야기 책’이다.

 

넷째, 『환단고기』에는 한민족의 고유 신앙이자 인류의 시원 종교이며 원형문화인 신교의 가르침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교는 ‘삼신상제님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다. 즉 신교는 삼신상제님을 모시는 인류의 원형 신앙이다. 한민족은 ‘천제天祭’를 올려 상제님에 대한 신앙을 표현하였다. 한민족의 천제 문화는 9천 년 역사의 첫머리인 환국 시대에 시작되었다. 다시 말해 환국은 인류 제천문화의 종주이자 고향인 것이다. 제천문화로 나타난 한민족의 상제 신앙은 『환단고기』 의 전편에 걸쳐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다. 

 

다섯째, 『환단고기』는 천지인을 삼신의 현현顯現으로 인식한 한민족의 우주사상을 체계적으로 전한다. 

우주 만유가 생성되는 근원을 『환단고기』에서는 일신一神이라 정의한다. 일신은 곧 각 종교에서 말하는 조물주요, 도道요, 하나님이다. 그런데 일신이 실제로 인간의 역사 속에서 작용을 할 때는 언제나 삼신三神으로 나타난다. 『환단고기』에서는 우주사상의 근간인 일신一神과 일기一氣, 일신과 삼신, 삼신과 천지인, 천지와 인간 등의 관계를 조명하면서 종합적으로 이야기한다.

 

여섯째, 『환단고기』는 동방 한민족사의 첫 출발인 배달 시대 이래 전승된, 한민족의 역사 개척 정신인 낭가郞家 사상의 원형과 계승 맥을 전하고 있다.

낭가는 곧 낭도인데, 우리에게 익숙한 신라의 화랑도 또한 낭가이다. 환국 말기에 태동한 3천 명의 제세핵랑濟世核郞과 배달 시대의 삼랑은 그 후 고조선의 국자랑國子郞 → 북부여의 천왕랑天王郞 → 고구려의 조의선인&#30338;衣仙人, 백제의 무절武節, 신라의 화랑花郞 → 고려의 재가화상在家和尙(선랑仙郞, 국선國仙) 등으로 계승되었다. 

 

일곱째, 『환단고기』는 동방 한민족이 ‘천자天子 문화의 주인공’이요 ‘책력冊曆 문화의 시조’로서 수數를 발명한 ‘수학의 창세민족’임을 밝히고 있다.

천자는 ‘천제지자天帝之子’의 준말로, ‘상제님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환국·배달·고조선 이래로 이 땅은 원래 천자가 다스리는 천자국天子國이었다. 천자의 가장 근본적인 소명은 자연의 법칙을 드러내어 백성들이 춘하추동 제때에 맞춰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책력을 만드는 것이었다. 책력에는 숫자가 사용된다. 그래서 책력의 시조라는 것은 곧 숫자 문화의 시조라는 것이다. 수의 기본인 일一에서 십十까지의 숫자는 9천 년 전 환국 시절의 우주론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에 처음 보인다. 한민족은 세계 최초로 숫자를 만든 민족인 것이다.

 

여덟째, 『환단고기』는 한민족이 천문학의 종주임을 밝히고 있다. 

한민족은 고조선의 10세 노을단군 때(BCE 1916) 벌써 감성監星이라는 천문대를 설치하여 별자리를 관측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다섯 행성의 결집, 강한 썰물, 하늘에 두 해가 뜬 일 등 고조선 시대에 일어난 특이한 천문 현상을 기록할 수 있었다. 무려 3천 년 전에 천문대를 운영하여 천문 기록을 남긴 것은 당시 전 세계 어느 역사에도 없으며 고조선이 인류 천문학의 종주국임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아홉째, 『환단고기』는 삼성조 시대의 국가 경영 제도를 전하는 사서로서 만고불변의 ‘나라 다스림의 지침’을 담고 있다.

환국·배달·조선은 우주 원리를 국가 경영 원리로 삼아 나라를 다스렸다. 그 우주 원리가 바로 삼신오제三神五帝 사상이다. 삼신오제 사상은 동북아 한민족사에서 통치 원리로 이화되었다. 배달 시대에 삼신오제 사상에 따라 삼백三伯(풍백, 우사, 운사) 제도와 오사五事(주곡主穀·주명主命·주병主病·주형主刑·주선악主善惡) 제도를 시행한 것이다. 삼백은 오늘날의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에 해당한다. 즉 풍백, 우사, 운사는 흔히 말하는 바람신, 비신, 구름신이 아니라 오늘날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조직의 원형인 것이다. 

 

열째, 『환단고기』는 배달과 고조선이 창제한 문자를 기록하여 고대 한국이 문자 문명의 발원처임을 밝혀 준다. 

 

열한째, 『환단고기』에는 중국과 일본의 시원 역사와 역대 왕조사 및 몽골, 흉노와 같은 북방민족의 개척사가 밝혀져 있으며, 고대 수메르 문명의 기원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들어 있다. 

『환단고기』는 한·중·일의 시원 역사에서부터 북방민족의 역사, 서양 문명의 근원 역사까지 총체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나침반이다. 한민족의 옛 역사를 밝히고 인류의 시원 역사와 원형문화를 드러내는 『환단고기』는 대한의 아들딸은 물론 70억 전 인류가 반드시 읽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인류 모체 문화의 역사 교과서인 것이다.


광명을 숭상한 한민족

 

『환단고기』에는 “환국시대 사람들은 아침이 되면 모두 함께 동산東山에 올라 갓 떠오르는 해를 향해 절하고, 저녁에는 모두 함께 서천西川으로 달려가 갓 떠오르는 달을 향해 절하였다.”(『태백일사』 「환국본기」)고 하였습니다. 

 

요즘에도 새해 첫날에 가족이 함께 산으로 바다로 가서 해맞이하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정월 대보름날에도 둥근 달을 보며 두 손을 모으고 소망을 기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9천 년 전부터 하늘을 우러러 광명을 숭상한 민족문화입니다.

 

한민족의 삶의 근원에는 하늘을 섬긴 광명정신이 있습니다. 밝은 빛은 하느님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신 것이라 여기고 숭배했습니다.

 

그리고 그 광명의 주체가 실제로 계시는데 , 그분은 우주를 다스리시는 삼신상제님이시란 것을 알았습니다. 광명의 주체인 삼신상제님을 모시고 가르침을 직접 받은 뛰어난 영성문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신교神敎’라 합니다.

 

신교의 뜻

 

신교神敎란 삼신상제님의 가르침으로 ‘나’와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환국-배달-조선의 삼성조 시대에 한민족 역대 통치자들은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려 신교를 직접 받아 내렸습니다. 백성들은 그 뜻에 따라 삶을 누렸습니다.

 

신라 때 최치원 선생은 ‘난랑비 서문’에서 한민족 고유의 도가 있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우리 민족이 닦아온 본래의 현묘한 도는 유儒, 불佛, 선仙 삼교 정신을 모두 포함하는 풍류風流이다’라고 하여 기존 종교가 있기 이전에 이미 그것을 포함한 풍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최치원 선생이 말한 ‘현묘한 도, 풍류’는 인류의 뿌리 문화인 신교입니다.

 

하나님의 본래 호칭, 삼신상제님

 

그러면 신교에서 모신 삼신상제님은 어떤 분일까요? 

 

우리는 전래 동화나 드라마, 영화에서 하늘의 통치자를 옥황상제라 부르는 것을 흔히 보고 들었습니다. 이 삼신상제님, 옥황상제님을 줄여서 상제님이라 부릅니다. 

 

상제上帝님은 하늘과 땅 사이에 꽉 찬 인간과 신의 삶과 죽음, 역사를 다스리시는 존귀하신 하느님의 본래 호칭입니다.

상제님에 대해 분명히 알려면 먼저 ‘삼신三神’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대우주를 가득 채우는 광명(빛)은 곧 삼신입니다. 삼신은 신이 셋이라는 뜻이 아니라 상제님께서 만물을 낳고[조화造化], 기르고[교화敎化], 다스리는[치화治化] 세 가지로 작용하신다는 뜻입니다. 

삼신이 3수 원리로 현상 우주에 자신을 드러낸 것이 하늘과 땅과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늘, 땅, 인간은 모두 살아 있는 동일한 신이고, 삼신상제님의 지혜와 덕성을 우리 인간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신교문화의 위대한 경전, 「천부경」

 

한민족의 신교 문화에는 세 가지 위대한 경전이 있습니다.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이 그것입니다.

유불선 종교에는 사서삼경, 불경, 성경 등 경전이 있습니다. 「천부경」은 이러한 경전보다 6~7천 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천부경」은 9천 년 전 삼신상제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아 이루어진 인류 최초의 경전입니다. ‘천부天符’는 ‘하늘의 법’이라는 뜻입니다. 총 81자로 이루어진 「천부경」에는 삼신상제님의 가르침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환국의 통치 방법이 담겨 있습니다. 또 자연과 하나 되는 인간 삶의 원리와 깨달음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천부경」은 환국시대에 입으로 전하여 오다가 배달의 초대 거발환 환웅 때 신지神誌 혁덕赫德이 녹도문鹿圖文(상형문자)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을 단군조선 때 신지神誌가 돌에 새겨 태백산에 세웠습니다. 그 후 통일신라 때 최치원이 이것을 발견하여 한자로 바꿔 세상에 전하고 묘향산 바위에도 새겼다고 합니다.

 

「천부경」은 일(一)부터 십(十)까지 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一)는 우주 만물이 태어난 생명의 자리이며 절대 유일자를 상징합니다. 하늘은 양의 근본인 일(一)이요, 땅은 음의 근본인 이(二)요, 인간은 천지의 합덕으로 생겨난 존재이므로 삼(三)을 상징합니다. ‘일적십거一積十鉅’에서 십十이라는 수에 분열의 선천 시대가 개벽 과정을 지나 통일의 후천 새 천지를 지향하는 이상이 담겨 있습니다. 

또 우주가 돌아가는 이치를 ‘대삼합육大三合六’에서 알 수 있습니다. 만물이 태어나 변화해 가는 원리를 3수로 말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변화도 3수 정신이고 땅의 변화도, 인간의 변화도 3수 정신입니다. 그래서 천지의 정신은 3+3인 6수로, 하늘과 인간의 정신도 6수로, 땅과 인간의 정신도 6수로 나타냅니다. ‘중천지中天地’에서는 천지의 이치를 관통하여 궁극의 이상을 완성하는 가장 지극한 존재가 인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천지의 뜻을 이루는 태일인 것입니다. 

 

이처럼 「천부경」에서는 인간을 가장 거룩한 존재로 정의합니다. 우리 민족은 깨달음을 얻고 신성한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태고 시대부터 신성한 글귀인 「천부경」을 주문처럼 외우고 수행하였습니다.

「천부경」을 정성껏 읽으면 정신이 맑아지고 건강해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천부경』이 낳은 하도와 낙서는 동서양 문명의 기초

 

「천부경」은 동양 문명에 깨달음의 역사가 열리게 한 뿌리이기도 합니다. 「천부경」을 처음으로 공부하고 하늘과 땅,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분은 배달의 태호복희씨입니다. 태호복희씨는 배달 5세 태우의 환웅의 막내아들입니다. 

 

태호복희씨는 「천부경」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천지 만물이 탄생하는 법칙과 우주가 나아가는 미래상을 밝힌 하도河圖를 그렸습니다. 천하天河(지금의 송화강)에서 용마龍馬의 등에 새겨진 무늬를 보고, 「천부경」에서 밝힌 1에서 10까지 수를 동서남북과 중앙에 배치하여 우주 공간이 순환하는 원리를 밝힌 것입니다. 하도는 한마디로 우주 창조의 설계도입니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복희씨는 동방의 성스러운 백두산에서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하도를 내려 받았습니다. 

 

그리고 「천부경」을 바탕으로 하여 나온, 또 다른 우주변화의 원리를 밝힌 그림이 있습니다. 4,300년 전 단군조선 초기, 중국의 순舜 임금 때 사공司空 우禹가 9년 홍수를 다스리던 중에 얻은 낙서洛書입니다. 

 

『서경書經』 「홍범洪範」 편을 보면, 우는 낙수洛水에서 올라온 거북의 등껍질에 새겨진 무늬를 보고, 당시 대홍수를 다스리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우가 보았다는 무늬가 바로 낙서입니다. 그런데 『환단고기』에 따르면 우는 단군조선의 부루 태자로부터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을 전수받아 9년 홍수를 해결하였습니다. 이 두 기록을 비교해 보면 낙서와 오행치수법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낙서는 9년 대홍수를 막으려 고심하던 사공 우의 정성에 하늘이 감복*하여 내려 준 계시입니다. 낙서도 「천부경」과 하도처럼 삼신상제님이 내려 주신 것입니다.

하도는 1에서 10까지 수로써 우주가 나아가려는 이상향을 그린 반면에, 낙서는 1에서 9까지 수로써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려 냅니다. 이렇게 음양 짝을 이루는 하도와 낙서는 동양 수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인류의 지식과 지혜의 상징인 책을 보관하는 ‘도서관’이라는 말은 이 하도와 낙서에서 유래했습니다. 옛날 황실에서 하도와 낙서를 최고 보물로 여겨 이를 보관하는 장소를 하도의 ‘도’와 낙서의 ‘서’를 합해서 도서관이라 하였습니다. 인간 지혜의 출발점이 하도와 낙서이기 때문에 도서관이라 이름 지었을 것입니다. 

 

낙서는 놀랍게도 멀리 서방 세계까지 전파되었습니다. 낙서를 연구한 미국 수학자 프랭크 스웨츠Frank Swetz는, 낙서가 서양에 전해져 마방진magic square이 생겼다고 합니다. 서양 수학의 밑바탕을 구축한 고대 바빌로니아, 그리스, 이집트 시대에는 마방진이 없었습니다. 그 후 6세기경에 인도에서, 9~10세기경에 이슬람에서 마방진이 쓰이기 시작했고, 유럽은 12세기 이후에 마방진을 사용했습니다. 서양의 마방진은 고대 서양 수학과 무관하게 출현한 것입니다. 낙서가 서양으로 가서 마방진이 된 것입니다. 

 

5,500년 전 배달시대에 나온 하도도 고대에 서양으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도 안쪽의 수를 합하면 10이 되는데(1+2+3+4=10), 안쪽의 수는 1에서 4까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피타고라스Pythagoras는, 낙서에는 없고 하도에만 있는 10을 ‘완전한 수’라 정의했습니다. 피타고라스가 생각해 낸 테트락티스를 이루는 수를 합하면 10이 됩니다.

 

하도와 낙서는 현대문명의 상징인 디지털 문명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컴퓨터의 원리인 이진법을 창안한 라이프니츠G. Leibniz*는 당시 중국에 있던 선교사 부베J. Bouvet와 교환한 편지에서 64괘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자신이 개발한 이진법과 64괘의 구성 원리가 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라이프니츠는 이진법이 수학에 새로운 광명을 열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주 수학의 근본이 되는 「천부경」에서 하도와 낙서가 나왔고, 동서 문명은 이 하도와 낙서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 발전했습니다.

 

피타고라스(BCE 580?~BCE 500?)는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서양 과학문명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연대로 보면 단군조선 후기 때 사람입니다. 

 

피타고라스는 일찍이 이집트로 유학을 가서 23년간 수학하고, 바빌론에 12년을 머무르며 메소포타미아 문명도 익혔습니다. 또 인도를 거쳐 중국과 티베트까지 여행하면서 다양한 수의 이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우주가 3수의 원칙으로 운행한다는 것에도 환히 통했습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수메르 문명에서 나갔고, 수메르 문명은 환국에서 뻗어나간 것입니다. 동방의 수학이라 할 수 있는 낙서는 실크로드를 통해 이미 그리스에까지 전해졌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신교문화의 우주 수학(하도·낙서의 상수학)을 전수받아 서양 문명의 체계를 세웠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타고라스가 동서양을 넘나들며 배운 문화와 사상은 동방의 신교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신교문화의 핵, 천제天祭

 

주문을 외우고 수행을 하며 천지 대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사는 영성문화는 하늘과 소통했던 제천행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인류 문화의 근원을 추적하다 보면 저절로 천제天祭문화와 만납니다. 동서 4대 문명은 모두 제천행사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환단고기』를 보면 환국 이래 수천 년간 한민족은 하늘에 계신 상제님에 대한 믿음과 공경의 예식으로 천제를 올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천제를 올린 뒤에는 모든 백성이 한데 어울려 술 마시고 춤추며 노래하였습니다. 천제는 상제님께 천지의 뜻을 받들며 천지와 하나 된 삶을 살겠노라 맹세하고, 보은을 다짐한 가장 거룩한 행사입니다. 

 

앞서 보았던 홍산문화의 총묘단 유적은 배달의 천제문화를 증명합니다.

 

배달의 정신을 이어받은 고조선의 역대 단군 성조들도 매년 봄가을에 천제를 올렸습니다. 음력 3월 16일 대영절大迎節(삼신상제님을 크게 맞이하는 날)과, 음력 10월 3일에 천제를 봉행하였습니다. 이 천제문화가 부여에서는 영고迎鼓, 동예에서는 무천舞天, 고구려에서는 동맹東盟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고려 때 국가 최고 의식인 팔관회와 연등회도 천제문화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러한 천제문화는 근세조선 초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조선 초에 이르러 명나라가 천자국을 자처하며 조선 왕에게 천제를 올리지 못하게 하자, 조선의 천제는 기우제 또는 초제醮祭(하늘의 별을 향해 올리는 제사)로 격이 낮아졌습니다.

 

이처럼 수백 년 동안 사라졌던 천제문화가 부활한 것은 1897년, 고종 황제 때였습니다. 고종 황제는 원구단圓丘壇을 설치하고 상제님께 천제를 올려 만천하에 황제 등극을 알리며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선포하였습니다. 고종 황제는 천자국의 위상을 되찾으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일제는 하늘과 소통한 고귀한 제천문화가 남아있던 원구단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호텔(현 웨스턴조선호텔)을 지어 고귀한 정신문화를 말살하였습니다. 지금은 상제님의 위패를 모시는 황궁우만 초라하게 남았습니다.

 

천자天子는 우주를 주재하는 상제님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입니다. 천자는 상제님께 제를 올리는 제사장으로 상제님의 가르침을 받아 내려 백성을 보살피고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우리나라는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상제님의 뜻에 따라 나라를 통치한 천자국天子國이었습니다. 천자의 맥은 환국의 1세 환인천제 이후 대대로 한민족의 통치자들에게 이어졌습니다. 

 

중국은 우리나라에게 문화를 전수 받은 제후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 콤플렉스를 극복해 보려고 진시황 이후 스스로 황제라 칭하며 천자국을 흉내 내었습니다. 중국이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천자국이라 우기기 위한 역사조작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뿌리 역사 시대를 보여주는 홍산문화에서 동이족이 천자문화의 주인이었음이 이미 밝혀졌습니다. 

 

천자는 신령스러운 영물인 용과 봉황으로 상징됩니다. 용은 천지 물의 조화를 다스리고 봉황은 불의 조화를 다스립니다. 중국은 자신들이 용봉문화의 주인임을 자처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자랑하는 ‘중화제일용中華第一龍’ 이전의 용봉 유물이 홍산 유적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신교의 두 가지 DNA

 

인류는 상제님을 모시며 하늘과 소통한 신교문화를 생활 속에서도 그대로 펼쳤습니다. 그 대표적인 표현 방식이 삼신(3)과 칠성(7) 문화입니다. 삼신과 칠성 문화는 하늘의 유전자를 그대로 닮아 하늘의 자녀로 살아가려는 인류의 모습이었습니다. 

 

삼신문화

 

우주와 자연을 구성하는 단위는 전부 3으로 되어 있습니다. 3은 만물의 변화를 일으켜 전체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수입니다. 삼수는 양(1)과 음(2)이 결합하여 만물이 서로 화생化生하는 새로운 탄생을 상징합니다.

우주를 구성하는 삼재三才는 하늘, 땅, 인간이 3수이고, 물질의 기본인 원자를 구성하는 요소도 양성자, 중성자, 전자 셋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빛과 색깔을 이루는 기본도 삼원색입니다. 우리 몸도 머리, 몸통, 팔다리 셋으로 되어 있고 팔이나 손이 움직이려 해도 세 마디가 되어야 가능합니다.

약 2,500년 전, 서양 과학문명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타고라스Pythagoras도 “3은 우주의 중심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3수 문화는 우주만물이 삼신의 원리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해하는 코드가 됩니다.

신교의 삼신사상은 9천 년 한민족사에서 국가를 경영하는 제도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배달시대의 풍백, 우사, 운사 삼백제도, 고조선시대에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린 삼한관경제, 조선시대 삼정승 제도가 모두 삼신사상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삼신사상은 한민족 생활문화 곳곳에 깃들어 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는 자연스럽게 3수를 좋아하였습니다. 3수로 구성된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이고, 여러 사람이 자주하는 게임인 3.6.9 게임도 3수와 연결됩니다. 음양의 이치로 끊임없이 순환하는 태극을 삼태극으로 그리기도 하고 아이를 점지하는 삼신할머니에도 3이 들어갑니다. 「천부경」의 기본은 3수, 태양의 수호신 삼족오 다리도 3개, 아리랑도 3박자입니다. 이렇게 숫자 3과 얽힌 우리 문화는 매우 많습니다.

 

각 종교의 가르침에도 모두 삼신문화가 있습니다. 기독교에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가 있습니다. 유교에는 무극, 태극, 황극이라는 삼극사상이 있습니다. 불교에는 법신불, 보신불, 화신불이라는 삼불사상이 있습니다. 도교에는 옥청, 상청, 태청이라는 삼청사상이 있습니다. 힌두교에도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라는 삼주신이 있습니다. 

 

왜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생겨난 종교의 가르침이 하나같이 삼수 원리로 되어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환국 시절부터 내려온 삼신의 가르침을 뿌리로 해서 생겨난 줄기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시대와 장소는 다를지언정 각 종교 교리의 핵심에는 ‘삼신’의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칠성문화

 

신교문화에서는 하느님을 삼신상제님으로만 모시지 않고 칠성님으로도 모셨습니다. 

칠성이란 밤하늘을 수놓은 많은 별 가운데 북녘 하늘에 있는 북두칠성을 말합니다. 칠성은 우주를 통치하시는 삼신상제님이 계시는 별입니다. 동방 한민족은 약 만 년 전부터 이것을 알았습니다.

칠성에 계신 삼신상제님께서는 인간의 무병장수와 생사화복, 영원불멸, 도통道通과 깨달음을 주관하십니다. 예로부터 우리 할머니들이 정화수를 떠놓고 자손의 건강과 행복을 기도하고, 고인돌에 칠성을 그리고, 죽은 사람이 들어가는 관 바닥에 칠성판七星板을 깐 것은 모두 칠성문화입니다. 대표적 민속놀이인 윷놀이에서도 칠성문화를 볼 수 있습니다. 

배달의 치우 천황 때 국사國師를 지낸 자부선사紫府仙師는 윷놀이를 만든 분입니다. 윷놀이는 북두칠성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본떴다고 합니다.

 

한민족 고유의 상투도 북두칠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상투란 한자어로 ‘상두上斗’이고, ‘두’는 하늘의 북두칠성을 뜻합니다. 인간이 머리 위에 상투를 틀어 동곳을 꽂은 것은 ‘나에게 사람의 몸을 내려 주신 조화주 상제님과 한마음으로 살겠다’는 약속입니다. 상투를 틀어서 칠성에 계신 광명의 주인인 상제님과 늘 삶의 주파수를 맞추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상투를 트는 것은 결혼을 하여 어른이 된 표시라 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상투의 본래 의미는 이처럼 상제님과 소통한 생활 속의 신교문화입니다.

 

상투는 지구촌 곳곳으로 뻗어 나갔습니다. 동아시아 남방의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등에는 특히 상투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석가모니 부처도 상투를 틀었습니다. 인도에서 불도를 닦은 사람은 모두 상투를 틀었습니다. 2천 년 이전 제사장들이 깔때기 모양의 긴 모자를 쓴 것을 지구촌 전역에서 볼 수 있습니다. 모두 머리를 틀어 올린 뾰족한 상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류는 신교를 생활화하며 상제님의 자녀로 살려 했습니다.

요즘 젊은 여성들 사이에 상투처럼 뒷머리를 틀어 묶는 것이 다시 유행하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서양으로 건너간 삼신·칠성 문화

 

서양 문명은 여러 측면에서 동양 문명과 대조되지만 그 근본은 동방의 삼신·칠성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환국 문화를 전수받은 수메르인은 지금의 이라크 남부로 가서 20여 곳에 도시국가를 세웠습니다. 4,300년 전 사르곤 왕은 수메르 초기 왕조의 혼란을 끝내고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통일하여 아카드 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수메르 유물에 등장하는 사르곤 왕이 들고 있는 과일나무의 중심 줄기가 세 개이고 열매도 세 개입니다. 그리고 왕 앞에 있는 생명나무도 본줄기는 세 개씩이고 열매도 세 개씩 매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동방 환국의 3수 문화가 흘러들어간 것입니다.

수메르 문명의 맥을 이은 기독교 『구약성서』에서는 천지창조가 7일 만에 이루어졌다고 하고, ‘일곱 개의 금 촛대’, ‘하나님의 일곱 성령’ 등 곳곳에 7수가 등장합니다.

 

인디언의 삼신·칠성 문화

 

삼신·칠성 문화는 저 멀리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에도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수레* 풍습입니다. 인디언은 옥수수나 과일로 만든 발효주 치차를 마시기 전에 손으로 세 번 찍어 대지에 뿌립니다. 중남미 인디언이 밥을 먹기 전에 음식을 손으로 떼어서 세 번 던지는 풍습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남긴 기록에도 나와 있습니다.

이런 문화는 북미 인디언 풍속에도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인디언들은 윷을 신의 뜻을 묻는 종교의식에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윷놀이로 농사의 풍흉을 점치던 우리 농가의 풍습과 흡사합니다.

이처럼 9천 년 전 환국 이래 삼신상제님을 받들어온 삼신·칠성 문화의 자취를 지구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교의 쇠퇴와 동서 종교문화의 탄생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신교는 인류 문화의 모태이자 생명의 젖줄이요, 뿌리 문화입니다. 나무로 볼 때 뿌리에서 흡수한 양분은 줄기와 가지 끝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가지 끝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운 뒤에 열매를 맺습니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도 마찬가지로 뿌리에서 멀어지면서 화려하게 꽃을 피운 뒤에 열매를 맺습니다.

신교*에서 펼쳐져 나간 유·불·선·기독교는 제2의 신교로서 줄기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신교문화에서 인식한 신神의 세계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사후세계는 어떤 모습인지 명쾌하게 밝힌 진리는 아직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한 번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정말로 영혼이 있을까?”

 

상제님과 천지신명, 조상님을 받들던 우리 선조들은 신교의 세계관으로 신의 세계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속담이나 생활언어에는 영적 세계와 귀신에 관련된 것이 많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

“저 사람 귀신같다.”(귀신같이 잘 알아맞힌다.)

“원한이 구천에 사무친다.”

“신명난다.”

“혼비백산하다.”

 

우리 민족은 인간 세계인 이승과, 인간이 죽어서 영혼으로 살아가는 저승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자연스럽게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끝이 아니라 영적 존재인 신명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천상 신명세계가 있습니다. 죽은 후에 새로 태어난 신의 본성이 밝기 때문에 ‘신명’이라는 말에 밝을 명明 자를 붙인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삶과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이 지상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하면, 혼은 육신을 떠나 천상에 올라가 신명으로서 새로운 삶을 삽니다.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육체를 벗어나서 천상 신명으로 태어나 제2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 살다 간 모든 인물은 천상에 조상 선령신으로 존재합니다. 사람은 육신이 있는 사람이요, 신명은 육신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삶과 죽음의 실상입니다. 이 우주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눈에 보이는 인간 세계와 보이지 않는 신명 세계가 공존합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이런 사실을 잘 알았기에 조상 제사를 지극한 정성으로 모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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